247. 쉘터 (1)
“그럼, 형태에 대해서 말씀드려보자면요.”
윤 실장은 쉘터에 관한 얘기를 쏟아내었다.
“하남시에 있는 스타필드 아시죠?”
“스타필드? 당연히 알죠. 아내랑 즐겨 가는 곳인데.”
“공식적인 프로젝트는 프리미엄 아울렛 사업입니다.”
“오호······.”
스타필드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기업에서 프리미엄 아울렛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 선도그룹이 프리미엄 아울렛 사업에 진출하는 게 딱히 이상해 보일 건 없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하네요.”
“뭡니까?”
“세계그룹 회장이 작은아버지 거든요.”
“아······.”
스타필드는 세계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다.
선도그룹이 프리미엄 아울렛 사업에 진출하면 사업 영역이 겹치게 된다.
“불편하실 수 있겠네요.”
서로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건 범선도가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어쩔 수 없죠.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1997년 선도테스코라는 이름으로 유통업에 진출했었다.
사업철수한 지 오래되었고, 다른 사업자에게 매각되어 원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이상하게 보진 않겠네요.”
지금은 손 떼었지만, 선도물산은 경험이 있으며 유통업 사업자 자격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선도물산 대표와 전략실장이었기에 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네, 이상하게 보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업만 진심으로 한다면요.”
지혁은 턱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지하에 쇼핑몰을 만들고, 그날이 오면 쉘터로 바꾼다······.”
“······.”
“생각할수록 기발한데요? 하여간 윤 실장님은 잘할 거면서 꼭 엄살 부리시더라.”
지혁이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윤 실장은 걱정이 되었다.
‘왜 내가 안을 내고, 내가 걱정하는지······.’
“타당하고, 당위성도 있고.”
“······.”
“누가 뭐라 하면, 실패했던 사업 재진출한다고 하면 되잖아요? 그게 선도의 특징이니까. 일등주의. 불굴의 도전.”
윤 실장은 초조한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보았고.
지혁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윤 실장에게 물었다.
“왜 더 얘기 안 하세요? 어서 더 자세하게 말씀해 보세요.”
“진짜······ 하실 생각이신 거죠?”
“에이~ 당연한 거 물어보지 말고.”
“······.”
“빨리요. 빨리.”
하아······.
순간 또 현타가 왔지만, 윤 실장은 말을 이어갔다.
***
“점포의 위치는 인구분포가 많은 대도시 인근으로 했으면 합니다.”
“······.”
“중심지가 아니라, 인근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 인근의 하남 스타필드처럼요.”
“그건 왜죠?”
“불시의 상황이 닥치면, 일제히 안전한 곳을 향해 이동하려고 하겠죠.”
“······.”
“쇼핑몰이 대피소로 알려지는 순간, 사람들은 너도나도 달려들 겁니다. 시내 중심가에 있다면, 눈에 더 띌 테니 사람들이 더 몰릴 것이며, 우리 직원들이 진입하기 힘들겠죠.”
“······.”
“그렇다고 중심지에서 너무 동떨어진 곳에 있으면 접근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고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 실장이 포인트를 잘 잡고 있네.’
쉘터의 최우선 조건의 하나는 접근성이다. 보호하기 위한 시설도 보호할 객체가 들어와야 의미가 있다.
“아포칼립스 영화 같은 것 좀 보셨어요?”
“네, 안타깝게도······ 좋아합니다. 많이 봤습니다.”
“역시.”
“그래서 중간중간 현타가 씨게 옵니다.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어요. 최근 남북 정상회담 소식도 들리던데.”
“저도 평화가 유지되길 바래요. 쇼핑몰 만들어서, 쇼핑몰로만 운영되면 좋겠어요.”
윤 실장은 헛기침하고, 이어서 설명했다.
“쇼핑몰의 주공간은 지하가 될 겁니다. 스타필드의 지상 공간을 그대로 지하로 들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
“쇼핑몰 구조는 전문가와 상의해 봐야 하지만, 가족들이 주거할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많아야 할거고요. 가운데는 스타필드와 비슷하게 광장 형태로 뚫어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버티려면 넓은 공간이 있는 게 좋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그럼 지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주차장과 공원으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쇼핑몰은 지하에, 주차장은 지상으로.”
“네. 그리고······ 흠! 지상에는 방공 시설도 만들어야겠죠.”
윤 실장은 염려되는 얼굴로 지혁을 향해 말했다.
“프리미얼 쇼핑몰을 지하에 만드는 게, 과연, 수익성 측면에서 괜찮을까 싶은 의구심은 있습니다.”
“그건 주목적이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
“쉘터로서의 구조를 먼저 설계하고, 비즈니스는 그다음에 생각합시다.”
“네······.”
“그리고 너무 사업이 잘되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날이 터졌을 때 고객들 내보내는데, 애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
이 얘기를 들으며, 윤 실장은 그의 말이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쉘터는 선도그룹 직원을 위한 시설이다.
지혁은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며, 정과 연민에 연연하지 않는다.
“점포 수도 생각해 보셨어요?”
“전국 20개 점포입니다.”
“20개······.”
“네, 점포당 약 25,000명의 인원을 수용하게 되는 거죠. 대피 인원을 50만 명으로 가정한다면요.”
지혁은 윤 실장의 얘기를 들으며 묵묵히 생각했다.
그는 계속 말했다.
“50만 명을 수용할 쉘터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점포를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도그룹은 전국 각지에 있으니, 대피하기에도 더 쉬울 거고요.”
“취지 자체는 동의합니다.”
“······.”
“그런데 20개는 너무 많네요.”
***
“리스크도 분산되지만, 힘도 분산됩니다.”
“······.”
“점포는 10개까지로 맞추는 게 좋겠습니다.”
“10개면······.”
윤 실장이 시뮬레이션 해봤을 때는 지방의 경우 이동 거리가 굉장히 길어진다.
대피 중에 위험이 생길 가능성이 꽤 높다.
윤 실장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며, 지혁이 말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우리는 최선을 생각하는 거지, 완벽할 순 없어요.”
“······.”
“모든 사람을 다 살릴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들으니, 부담이 좀 덜해졌지만, 씁쓸한 기분도 느꼈다.
“효율성을 따져야죠. 선도그룹 공장이 집중된 지역 있죠? 점포 위치는 그곳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업계와 정부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요? 왜 고객 많은 곳 말고, 외딴곳에 쇼핑몰을 짓냐고······.”
“이유야 만들면 되죠. 그리고 우리 공장들이 대도시와 너무 동떨어진 곳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선도그룹 공장은 충북 청주, 경기도 화성, 거제도 등 대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다.
“대표님, 11곳으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제주도에도 직원들이 있는데······.”
지혁은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제주는 쇼핑몰 말고, 대피시설을 하나 만드는 거로 하죠. 직원 수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일일 보고 후에 가볍게 시작한 대화였는데.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지혁은 시계를 본 후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없습니다.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말씀을 너무 많이 드렸네요.”
“네, 그러면 바로 움직일까요.”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윤 실장은 그를 멀뚱히 바라봤다.
“뭘 움직여요?”
“실무자들과 상의해봐야죠. 선도물산 대표랑 건설 부문장 정도 만나면 될까요?”
“잠깐, 잠깐.”
윤 실장은 당황하여 지혁을 말렸다.
“바로 이렇게 진행한다고요?”
“더 하실 말씀 없으시다면서요.”
“아니······ 그래도 중요한 일인데 좀 더 숙고를······.”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죠. 속도가 중요한 일이라고.”
“······.”
“중요한 일이라서 서둘러야 합니다. 빨리 일어나세요.”
윤 실장은 이 엄청난 일을 자신의 제안 하나로 바로 진행하려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혁을 말릴 수는 없었다.
“회장님! 정 그러시면.”
지혁이 윤 실장을 바라보자, 그는 간곡한 눈길로 말했다.
“당사자들을 부르시죠. 그룹 회장님이 할 말 있다고 갑자기 찾아가면 여러 사람 힘들어집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그룹 회장이지.’
“그러시죠. 그럼 선도물산 대표, 건설 부문장 불러주세요. 아! 리조트 부문장도 부르는 게 좋겠네요. 아마 사업을 하게 되면 리조트 부문에서 맡게 될 테니.”
윤 실장은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하하. 회장님 너무 반갑습니다.
-엊그제 옆 사무실에서 뵈었던 분 같은데~
그룹 회장이지만, 머리 맞대고 치열하게 일했던 사이라서, 두 부문장은 친근하게 인사했고.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금방 또 뵙네요. 하하.”
부문장들과는 달리, 한 대표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지혁이 웃으며 말했다.
“바쁘신데,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가려 했는데, 윤 실장님이 부르는 게 좋을 거라고 해서. 하하.”
한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와야죠. 어쩐 일이십니까?”
분명 중요한 지시사항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네. 바쁘신 분들이니까, 빨리 얘기하는 게 좋겠네요.”
지혁은 윤 실장을 한번 본 후, 입을 열었다.
“프리미엄 아울렛 사업에 진출했으면 합니다.”
“······.”
선도물산에서 온 세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웬 아울렛?’
‘유통업에서 철수한 지가 20년도 더 되었는데.’
“전국에 10개 점포를 만들었으면 하고요. 규모는 스타필드 하남 수준입니다.”
“헉.”
한 대표는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와서, 곧바로 입을 막았다.
부동산, 건축, 기타비용만 합쳤을 때 대략 점포 하나당 1조 원 규모다.
그걸 10개를 짓는다면 10조 원.
말 그대로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지혁은 진도를 나갔다.
“양 부문장님.”
“네!”
건설 부문의 양 부문장은 놀라서 대답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뭘······.”
“점포 10개 다 짓는데요.”
“아······ 네. 글쎄요. 동시다발적으로 짓는다고 해도······ 인허가받는 시기까지 고려해서 최소 6년 정도는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혁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5년으로 줄여봅시다.”
“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쇼핑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구조가 있거든요. 윤 실장과 상의해서 진행해주세요.”
잠자코 듣던 한 대표가 말렸다.
“회장님, 좀 성급한 결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사업성을 꼼꼼히 따져본 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지혁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하세요.”
“네?”
진짜 의도를 모르는 사람은 의구심을 가질만하다
윤 실장은 지혁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하며 지켜봤다.
“회장이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사업입니다.”
“······.”
“제가 돈 쓰는 거 좋아해서, 쇼핑몰 사업을 반드시 해 보고 싶었거든요. 대표님 아시잖아요? 제 씀씀이.”
신입사원 때 월급으로 하와이 갔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씀씀이가 헤퍼서 쏘는 게 취미라는 것도.
“아니, 그래도 그렇죠······.”
“제 꿈입니다. 쇼핑몰은 진행하는 거로 하시고, 사업성은 만들어 주세요.”
윤 실장은 지혁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하나 했더니만······ 그냥 무대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