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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40화 (240/301)

240. 너무 잘된 일

[지혁아,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 너희 내외 오라고 하시는데, 언제 가능하니?]

오진원에게 온 메시지를 본 후, 지혁은 생각했다.

‘같이······.’

“자기야.”

“응?”

수아는 소파에 누워서 대답했다.

지혁이 집에 함께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회사는 휴직하여, 최근 집에서 쉬고 있다.

“큰아버지가 초대하셨는데.”

“큰아버지?”

수아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큰집과 지혁의 불편한 관계를 알기에, 큰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긴장하게 된다.

“왜?”

“자기 임신 소식을 아신 거 같아.”

“아······ 자기가 얘기했어?”

“어제 진원 형님 만났었거든. 형이 말씀드렸나 봐.”

“응······.”

수아는 살짝 고민했다.

‘큰집 형제들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임신하여 인사하러 간다는 게, 괜스레 미안했다.

“내일 나 퇴근하고 가자. 어때?”

지혁은 수아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말했다.

“몸 불편하면 다음에 가도 되고.”

“아니, 불편한 건 없는데.”

“그러면 내일 가자.”

“큰아버지가 당장 오라고 부르신 건 아닐 텐데.”

수아는 서둘러서 가고 싶지 않았으나.

“아니야. 몸 불편한 게 아니면, 빨리 갔다 오자.”

“왜?”

오 회장이 단순히 축하나 해주려고, 부르는 게 아니다.

이번 만남에서 그룹 총수 자리에 대해 확실한 마무리도 하게 될 것이다.

지혁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시간이 없어.”

“시간?”

수아는 어리둥절했다.

‘뭔 소리야. 이제 임신 7주 차인데.’

출산까지 앞으로 약 8개월 남았다.

하지만, 지혁이 얘기한 시간은 출산을 말한 게 아니었다.

‘그 세계가 언제 올지 몰라.’

지혁은 ‘그 세계’가 언젠가 올 거라고 믿고 있으며.

영감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도적같이 오리라.’

반드시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겼고, ‘그 세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결심이 든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빨리 총수가 되어 ‘그 세계’를 준비해야 했다.

“에이~ 알았어. 가장께서 하자면 해야지 뭐.”

수아는 더 묻지 않고, 지혁의 의견을 따랐다.

“그러면 자기 퇴근 시간 맞춰서 바로 성북동으로 가면 돼?”

“아니, 퇴근하고 집으로 올 거야. 같이 가.”

“뭘 굳이 그렇게······.”

“안전하게 모실게.”

지혁의 마지막 말에, 수아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알았어.”

***

다음날.

선도물산 대표이사실.

윤 실장은 일일 보고를 준비하며 지혁의 출근을 기다렸다.

‘설마 오늘도 연차 쓰진 않겠지.’

오늘마저 땡땡이 치면, 선배로서 정말 한소리 할 생각이었다.

“실장님.”

문이 열리며, 지혁이 아니라 웬 리셉션 직원이 꽃바구니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께 배달 왔습니다.”

“대표님?”

윤 실장은 꽃바구니를 보았다.

“대표이사 취임한 지가 언젠데, 웬 화환? 누가 보냈는데?”

직원은 주소지를 본 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장님께서 보내셨는데요?”

“뭐?!”

윤 실장은 재빨리 화환을 유심히 살폈고.

꽃송이 안에 조그만 네임카드를 발견했다.

‘임신을 축하합니다. -오종건 회장-‘

윤 실장의 눈이 커졌다.

‘임신?!’

“안녕하세요~”

때마침 지혁이 출근했고, 리셉션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대표이사실을 나갔다.

지혁은 들어오자마자, 윤 실장 옆에 놓인 화환부터 보았다.

“그거 뭡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윤 실장은 놀란 얼굴로, 화환 속 네임 카드를 들어 보였다.

“이거 뭐야? 임신했어?!”

윤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말이 편하게 나왔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네. 그렇게 됐습니다.”

“뭐야~ 왜 얘기 안 해줬어~ 하하.”

윤 실장은 지혁에게 다가와, 손을 붙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축하해! 정말, 축하해!”

“하하. 감사합니다.”

지혁은 화환이 궁금했다.

“누가 보낸 거예요?”

“네임 카드 봐봐.”

지혁은 윤 실장이 건네는 걸 받았다.

‘아······ 회장님께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게 고마웠다.

내일쯤이면, 오 회장이 보낸 임신 축하선물을 보고 더 놀랄 것이다.

“대표이사가 임신 축하받는 건 전무후무한 일일 것 같은데?”

지혁은 선도그룹의 최연소 대표이사 기록을 경신했었다. 젊은 대표이기에 이런 임신 축하받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된 거야?”

“음······ 제주 베이비라고 해야 할까요?”

“아~ 이틀 연차 쓴 날 역사가 이뤄졌구먼?! 하하.”

유추할 필요가 없었다. 불사조가 생긴 날은 아주 명백했다.

일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들고,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기분이 어때?”

“얼떨떨하고, 신기하고. 그렇죠. 뭐.”

윤 실장은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공주님들 배 속에 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자기 얘기 들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지혁은 바투 앉으며 물었다.

“임신 기간 중에 신경 써야 할, 중요한 팁 같은 거 있어요?”

“글쎄 너무 오래전이라. 그리고 요즘은 병원이 좋아서 알아서 잘해주잖아.”

윤 실장은 지혁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와이프한테 잘해주면 돼. 임신 중에 서운했던 일은 잘 기억하는 거 같더라. 자기 몸을 찢어서 낳는 거잖아.”

“······.”

“그리고 조심하기만 하면 되고······ 그거 말고는 별거 없지 뭐. 진짜는 낳은 다음부터지. 하하.”

윤 실장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잠은 못 잔다고 봐야 해. 2시간마다 배고프다가 악다구니를 쓸 테니까. 수시로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그러게요. 근데, 모든 부모가 다 겪는 일이니까요. 각오해야죠.”

“그래. 힘들지만. 그러면서 또 어른이 되는 거지.”

윤 실장은 커피를 마신 뒤 말했다.

“성인이 되어서 두 번 더 성장한다고 하잖아. 결혼하고 난 뒤, 아이 낳고 난 뒤.”

“······.”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마음. 진짜 희생이 뭔지 알게 돼. 그건 부모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거야.”

지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 실장은 지혁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 대표님은 잘할 거야.”

“······.”

“누구나 다 좋은 아빠가 될 자질이 있어. 본능이니까.”

지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윤 실장이 말했다.

“정말 잘된 일이야. 임신 축하해.”

***

성북동 가는 길.

지혁이 운전하고, 수아는 뒷자리에 앉아있다.

백미러로 수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표정이 안 좋네? 몸 안 좋은 거 아니지?”

“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좀······ 불편해서.”

“뭘 불편해. 왕래도 여러 번 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수아는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아주버님들하고 형님들 혼자시잖아.”

“······.”

“신경이 좀 쓰이네. 미안하기도 하고.”

피식.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기 뭐가 미안해. 우리가 결혼 못 하게 말렸어? 자기들이 선택해서 안 간 건데.”

“······.”

“부러우면 가면 되잖아?”

“하여간, 자기는 참 단순해서 좋겠어.”

“단순한 일이니까.”

지혁은 당부의 말을 했다.

“신경 쓰지 마. 그것도 스트레스야. 불사조한테 안 좋아.”

“응······.”

성북동 도착.

오 회장이 앞서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

“어서들 와라~ 아이고~ 아가~ 고생했다.”

오 회장은 수아를 종종 ‘조카며느리’가 아니라 ‘아가’라고 부른다.

“안녕하세요~”

“집안에 좋은 소식 전해줘서 고맙다. 잘했어~”

“호호. 감사합니다.”

오 회장의 열렬한 축하에, 수아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왔니? 축하해.”

큰어머니도 축하한다고 말하긴 했다.

“올케 축하해~”

“제수씨~ 축하해요~”

서서 인사받는 시간이 길어지자, 오 회장이 말했다.

“자, 일단 앉자. 홑몸도 아닌데, 오래 서 있으면 안 좋아.”

오 회장을 따라서 식탁으로 왔는데.

“와······.”

푹 고아진 사람 머리통만 한 닭들이 큰 그릇 안에 잠겨 있었다.

“보양식이 좋다고 해서, 준비했거든? 많이 먹어라. 먹고 더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오 회장은 수아에게 계속 관심을 보였다.

“병원은 어디로 다니니?”

“집 가까운 곳이요. 어제 한번 갔어요.”

“담당의 배치할 테니까. 다음부터는 선도서울병원으로 다니거라.”

“담당의요?”

“오늘부터 출산 때까지 전체 관리하도록 얘기해 놓을 테니까.”

수아가 얼떨떨해하는데, 지혁이 옆에서 콕 질렀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 수행 기사 대기 시켜 놓을 테니, 병원에 회사 차로 다니고. 홑몸도 아닌데.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 거 위험해.”

“이이랑 다니면 되는데······.”

“지혁이 근무 중에도 병원 갈 일이 있을 수 있잖아.”

수아는 부담스러웠지만, 지혁은 옆에서 계속 콕콕 찔렀다.

“네, 감사합니다. 큰아버님.”

“그래.”

오 회장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연일 오 씨의 28세 손이다. 너희들만이 아니라, 우리 가문의 경사며 소중한 아이야. 아가, 잘 부탁한다.”

“네······.”

***

“따라오거라.”

식사 후에 오 회장은 지혁을 호출했다.

“아버지 저도 함께 갈까요?”

오진원의 물음에 오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낄 자리 아니야.”

“네?”

“지혁아, 어서 와라.”

덜컹

서재에 오 회장과 지혁이 마주 보고 앉았다.

“얘기 들었다.”

오 회장의 운을 떼었고, 지혁은 대답했다.

“번복해서 죄송합니다. 원치 않으셨을 텐데.”

“······.”

오 회장은 대꾸하지 않고 지혁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왜 마음이 바뀐 건지는 묻지 않으마. 의미 없는 질문이니까.”

“······.”

“다만, 약속은 꼭 지켜야 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나와 상의 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 심경 변화가 생겼을 거로 짐작했다.

오 회장은 그게 신사업일 거라는 생각에, 단도리를 하는 거였다.

“염려 마십시오. 약속은 지킵니다.”

지혁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게 아니다.

선도그룹이 가지고 있는 것들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일 뿐.

‘오 회장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게 아니야.’

선도그룹을 견고히 함으로써, 그룹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

지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회장님.”

“그래.”

“권한 이양을 6개월 내로 끝냈으면 합니다.”

“뭐?!”

지혁은 처음에 2년으로 얘기했었다.

선도물산에서 시작한 일들을 끝내려는 목적도 있었고.

오진원과 지혁, 누가 총수가 되든 촘촘하게 준비하여 변화되는 게 좋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6개월은 너무 빠르지 않니? 처음엔 2년 말하던 녀석이······.”

2년은 길고, 1년이면 충분하다고 오 회장이 얘기했지만, 지혁은 듣지 않았었다.

“이 또한 죄송합니다. 지금은 좀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

“뭘 서둘러야 하는데?”

“그건······.”

‘’그 세계’를 대비할 거라는 말을 할 수는 없어······.’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도그룹과 직원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어차피 죽을 거, 즐기다 죽자’에서 ‘세상이 바뀌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자’로 목표가 바뀌었다.

적어도 내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게 두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6개월은 너무 빠른데.”

지혁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되게끔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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