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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34화 (234/301)

234. 권력의 행방 (2)

성큼. 성큼.

최 부회장은 회장실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똑똑.

“미래기획실장입니다.”

한 전무가 아침에 지시받고 인사지원팀에 왔다고 했으니, 오 회장이 출근했을 거로 생각했다.

[들어오게.]

덜컹.

최 부회장은 안으로 들어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아침부터 어쩐 일인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최 부회장은 다짜고짜 물었고.

오 회장은 그를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은밀히 하라니까. 비서실장이 딴 건 잘하는데, 이런 건 약하단 말이야.”

최 부회장의 표정은 심각했다.

오 부회장을 실무자급에서 내린다는 것.

그룹이 흔들릴 만한 엄청난 사건이며, 주가도 영향받을 수 있다.

일간, 주간지에 오 부회장 인사발령 얘기가 도배될 것이며, 온갖 추측성 기사가 나올 것이다.

선도그룹의 명실상부한 후계자.

선도전자가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일조했으며, 그의 이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오진양 선도그룹 부회장.

절대로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회장님.”

“하여간, 최 부회장은 눈치가 참 빨라.”

“······.”

“자네가 짐작하는 게 맞아.”

최 부회장은 오 회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차분한 얼굴이었다. 물론, 얼굴 한구석에 그늘은 있었지만.

“그렇게 됐어.”

“······.”

오 부회장의 실각.

목표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결론 지어지니 씁쓸했다.

‘참담하실 텐데······.’

아무리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최 부회장은 오 회장의 심정을 모르지 않다.

그 어떤 풍파가 있어도, 장남의 후계를 밀어붙였던 사람.

그런 그가 자기 손으로 큰아들을 자리에서 내렸으니······.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할 말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상주 만났을 때와 비슷했다.

위로는 해주고 싶으나,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

그렇다고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저 모르는 척할 도리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 부회장은 지나간 얘기 말고, 미래에 관해서 물었다.

“지혁이 아니면 진원이가 내 자리를 이어가게 될 거야.”

“네?!”

최 부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웬, 진원? 새로운 전쟁의 시작인가?’

하지만 오 회장에게서 전투적인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 회장은 최 부회장의 놀란 얼굴을 본 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닐세.”

“······.”

“지혁이가 제안하더군.”

“아······.”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야 당연하다.

오진원은 오 회장의 친자식이니까.

“자네도 처음에 진원이를 밀었지 않은가?”

오 회장은 최 부회장이 당연히 오진원을 지지해줄 줄 알았는데.

‘음?’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

“왜? 지금은 아니야?”

오 회장의 물었지만.

“······.”

최 부회장은 표정만 굳힐 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이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의왼데. 최 부회장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오 회장은 다시 말했다.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게.”

“······.”

“왜? 총수는 꼭 지혁이가 되어야 해?”

급기야, 그의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 오 회장은 노골적으로 물었고.

최 부회장은 입술을 깨물다가.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오 회장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용기를 내었다.

“네, 오지혁 대표여야 합니다.”

“······.”

예상했던 대답이긴 하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좀 놀랐다.

“처음엔 아니었습니다. 오진원 대표나 오지혁 대표. 둘 다 그룹 총수로서 충분히 자격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졌습니다. 오지혁 대표가 우리 선도그룹의 총수가 되어야 합니다.”

오 회장은 그의 의견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그룹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이며, 혈연 관계없이 이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최 부회장이 지금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오지혁이 총수가 되어야 한다라······.’

애써 내색은 안 하고 있으나, 오 회장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이유가 뭔가? 왜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거지?”

“오지혁 대표가 회장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뭐?!”

오 회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장남을 보내버린 남자가 자신을 닮았다니.

오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최 부회장은 꿋꿋이 말했다.

“선도그룹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회장님이 그러셨던 것처럼요.”

“······.”

“아시다시피, 세계 곳곳에 선도그룹을 노리는 경쟁자들이 많습니다. 작년에 피치 소송 건도 그렇고, 지금은 대만과 반도체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최 부회장의 말이 틀리지 않기에 오 회장은 묵묵히 들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지만, 이런 국제 환경 때문에 전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보지 않습니다. 전문 싸움꾼이 가장 꼭대기에 서서 진두지휘해야 합니다. 적을 무참히 박살 낼 줄 아는 전투력 최강자가요.”

“······.”

“지금은 덕장보다는 용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최 부회장은 계속 말했다.

“지금······ 지혜까지 갖춘 용장이 나타난 게 선도그룹에게는 천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 사람이 연일 오 씨라서요.”

오 회장은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고.

최 부회장은 말을 멈추고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혹시 말씀드린 것 중에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닐세. 회사를 생각하는 자네 마음은 잘 알고 있으니까.”

“······.”

“하지만 이건 내가 이성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최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

“어떻게 결정하시든, 전 따릅니다. 다만, 제가 드린 의견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 부회장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전 회사만 생각합니다. 그뿐입니다.”

***

지혁은 하루 쉬고, 다음날 선도물산에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지혁이 대표이사실로 들어오자, 윤 실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달려들었다.

“대표님, 무슨 일 있어요?”

“네? 무슨 일이요?”

“지금 묻잖아요.”

“아무 일 없는데요?”

“······.”

윤 실장은 유심히 지혁의 얼굴을 살폈다.

‘왜 이렇게 얼굴이 밝아 보이지?’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다.

“있는 거 같은데?”

“하하. 무슨 일이 있길 바라세요?”

지혁은 웃으며 서류 가방을 자리에 내려놓았는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표정이 후련해 보였다.

지혁이 웃는 모습을 간혹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분위기가 해맑은 미소는 처음이었다.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줘 봐요. 내가 대표님을 모르나?”

윤 실장은 궁금한 건 못 참는 사람이다.

지혁을 만나기 전부터도 안테나에 특화된 사람이었으니까.

피식.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어제 쉬었잖아요. 일단 밀린 일 처리부터 하고요.”

그래도 윤 실장이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자, 지혁은 잠시 생각 후 말했다.

“점심때 오랜만에 다 같이 식사하죠.”

지혁라인을 부르라는 얘기였다.

“점심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지혁은 대꾸하지 않고, 업무를 시작했고.

윤 실장은 더 묻지 못했고, 궁금함을 참아야 했다.

점심시간.

회사 인근의 중식당.

지혁은 윤 실장과 함께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같은 선도물산 다녀도 얼굴 뵙기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 하하.

먼저 도착해 있던 지혁라인은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했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혁라인도 윤 실장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대표님, 좀 달라 보이는데.’

‘요즘 일이 잘 풀리시나.’

“우선 식사부터 할까요?”

다들 묵묵히 식사하며, 지혁을 말을 기다렸다.

아무 이유 없이 밥 먹자고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어느 정도 식사가 끝마쳐 갈 때쯤.

지혁은 휴지로 입가를 훔치며, 대뜸 본론부터 말했다.

“예상보다 전투가 일찍 끝났어요.”

지혁라인과 있을 때면, 주로 전쟁용어를 썼다.

다들 식사 멈추고, 지혁의 말에 집중했다.

“적군이 위험한 작전을 벌이려 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발각됐습니다.”

“······.”

“기습작전을 하려다가 역공격당하면, 난사 당하기에 십상이죠. 예상 못 한 공격일 테니까요.”

모두 긴장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그렇게 끝났습니다.”

“······.”

“우리의 승리로 완벽하게 끝났어요.”

지혁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순간 멍해있다가.

짝짝짝.

지혁라인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와~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완전 전광석화네요. 하하.

-그럼, 이제 정말 총수 되시는 거예요?

지혁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총수는······ 제가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인사실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당연히 대표님이 하셔야죠!”

지혁은 그에게 말했다.

“그 또한 사정이 있습니다. 어쨌든, 오진양 부회장은 아닐 테니까요. 누가 되든 지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제 뜻이니까요.”

지혁라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으로는 업무 외의 다른 요청은 드릴 일 없을 거예요. 회사 성과에만 집중해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대한 보상은 꼭 하겠습니다.”

지혁은 일어서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했다.

“믿고 따라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

퇴근 후에 오진원은 컴퓨터 게임을 즐긴다.

그의 유일한 취미생활로, 방에서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데.

[진원아.]

문밖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원아~]

‘올 게 왔구나.’

오진원은 조심스럽게 게임 볼륨을 낮추고, 인기척을 죽였다.

[총소리 다 들었다. 안 자는 거 알아.]

“하아······.”

오진원은 머리를 싸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덜컹.

“네, 아버지.”

“얘기 좀 하자.”

“들어오세요.”

“여기 말고, 내 서재에서.”

오진원은 좋지 않은 기운을 느꼈으나, 오 회장의 말을 거역할 순 없다.

“알겠습니다.”

“그래. 지금 바로 와라.”

덜컹.

오 회장이 나간 뒤, 오진원은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생각했다.

‘총수 자리 맡으라는 얘기를 하시겠지.’

뻔했다.

이틀 전 지혁을 만났을 때부터, 조만간 오 회장이 부를 거라고 예상했었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그냥 확 짐 싸고 도망가?.’

우주의 기운이 자신을 총수 자리로 떠미는 것 같았다.

오진원은 도리질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서재로 향했다.

‘내가 왜 도망가? 안 한다면 못 하는 거지. 안 해. 절대 안 해.’

똑똑.

“접니다. 들어갈게요.”

[그래.]

확-!

오진원은 호기롭게 서재 문을 열었는데.

“어?!”

서재 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 오진양, 오혜진, 오혜빈.’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헉······.’

오 회장을 바라봤는데, 자신을 향해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요 녀석, 걸려들었구나.’

오진원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오 회장을 바라봤다.

‘이래서 서재로 오라고······.’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으나.

“뭐하냐? 어서 앉아라.”

오 회장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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