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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25화 (225/301)

225. 뭔가 이상하다 (2)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윤 실장은 황 팀장의 연락을 받고 회사 근처의 이자카야로 왔다.

“안녕하십니까.”

황 팀장의 인사에, 윤 실장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신혼이 말이야. 집에 일찍 들어갈 것이지. 왜 고맙게도 노땅이랑 놀아주는 거야?”

“하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른 사람이 쏘는 거 알지?”

황 팀장은 가자미눈을 뜨며 대꾸했다.

“팀장님, 너무 하십니다. 임원 턱도 안 쏘셨으면서.”

황 팀장은 윤 실장을 사적인 자리에서는 ‘팀장’이라고 부른다.

그룹 비서실에서 두 사람은 팀장과 팀원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원래도 잘 알던 사이지만, 낯선 그룹 비서실에서 서로 의지하고 지내며 더 친해졌다.

“나 딸이 둘이야.”

“매번 그 소리는.”

“앉아. 빨리 술 먹게.”

술 좋아하는 두 사람은 한 병씩 끼고, 각자 따라 마셨는데.

‘표정이 썩었네. 썩었어.’

최근 일 때문인지 황 팀장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윤 실장 그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웠다.

그가 무슨 심정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고 있기에, 묵묵히 옆에 있어 주었다

술 한 병을 비운 뒤.

황 팀장은 살짝 눈이 풀려서는 말했다.

“오늘 취기가 빨리 오르네요.”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하아······.”

황 팀장은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술잔을 비웠다.

“대표님한테 죄송해 죽겠습니다.”

윤 실장은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역시 그 일 때문이구나.’

“계속 폐만 끼치고 도움만 받는 거 같아요. 아, 이번엔 그냥 폐만 끼쳤죠.”

황 팀장은 방금 마셔놓고는 금세 또 술잔을 비웠다.

“이번엔 잘 해결되었나 싶었는데······ 일이 꼬여도 진짜.”

회사 생환에 이런 불운이 생긴 것만 해도 속상한데, 그게 하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니.

하아······.

황 팀장은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윤 실장은 그의 빈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뭘 그런 생각을 해? 자기가 사고 치는 게 한두 번이야?”

“그걸 위로라고······.”

“맞잖아. 사고 잘 치잖아. 새삼스럽게 왜 그래?”

황 팀장은 윤 실장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서 다운점퍼 납기 사고 났을 때, 그렇게 난리를 치셨었어요?”

서로 생산 담당과 상품기획으로 있을 때, 대형 납기 사고가 있었다.

그 일로 황 팀장은 상품본부장 앞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렀었는데.

당시, 상품본부장이 황 팀장을 사정없이 밀어붙였지만, 누가 잃을 게 더 많겠냐는 지혁의 ‘자폭’ 발언으로 위기를 넘겼었다.

“야~ 왜 지나간 일 꺼내고 그래. 그땐, 살아남으려고 그랬던 거지. 다 같이 죽을 필요는 없잖아.”

“참 뻔뻔하시다. 진짜.”

윤 실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런 일을 겪고도 잘 살아 있잖아. 이번 일······너무 마음에 두지 마.”

“······.”

“다~ 지나간다. 잠깐 좀 아픈 거야.”

황 팀장은 술잔을 비운 후, 말했다.

“나만 아프면 상관없어요. 대표님 얼굴에 똥칠을 하니까······.”

KC 부적합 사고는 회사 이미지와 관련 있다. 대표이사에게는 꽤 뼈아픈 사고다.

“있어 봐.”

“네?”

황 팀장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윤 실장을 바라봤는데.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만 지을 뿐 더 설명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안 끝났으니까, 있어 보라고.”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졸랐지만.

윤 실장은 웃기만 할 뿐, 더 말하지 않았다.

***

“와~ 여기 처음 와보는데, 좋네요.”

세종호수공원을 지나 기다랗게 이어진 정부청사 건물을 보며, 지혁은 감탄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꼭 미래도시 같습니다.”

윤 실장도 정부세종청사는 처음이었다.

“차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일단 내비 찍고 왔는데.”

원래는 수행기사가 같이 와야 하는데.

정부청사에는 비공개 일정으로 두 사람만 왔다.

오늘 일정은 상품본부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냥 수행기사와 함께 올 걸 그랬나 봐요. 어차피 알려질 일인데.”

장관 측에 비공개 만남을 요구할 수는 없다.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중에 알려질지라도 약간의 타이밍을 벌 수 있잖아요. 그게 중요합니다.”

“네······.”

헤매다가 겨우 주차한 후, 산업통상자원부가 있는 정부청사 13동으로 이동했다.

윤 실장이 리셉션에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산업통상자원부 찾아왔는데요. 여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네. 장관님 뵈러 왔는데요.”

리셉션 직원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선도물산에서 오셨나요?”

그러더니 옆에 선 지혁을 보고는 얼굴이 붉어져서 말했다.

“어머, 오지혁 대표님이시군요!”

“네? 절 어떻게······.”

“신문에서도 뵈었고, 우리 산업부에서는 완전 유명인사세요. 호호.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예상치 못한 환대에 얼떨떨했다.

나주에 있는 국가전력 찾아갔을 때와는 달랐다.

“장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네.”

또각. 또각.

조용한 정부청사에 여직원의 구두 소리가 울렸다.

‘뭘 또 기다리기까지 해. 부담스럽게.’

힐끔. 힐끔.

여직원은 앞서가면서도 계속 곁눈질로 지혁을 살폈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붉어져서 배시시 웃기도 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산업부 슈퍼스타?”

윤 실장이 지혁의 귓가에 대고 장난삼아 소곤거렸고.

“에이, 진짜.”

지혁이 인상을 찡그리자, 윤 실장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

장관실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머리가 새하얀 남성이 지혁에게 다가왔다.

“오지혁 대표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산업부 장관 임영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허리를 숙여 깍듯이 인사했고. 옆의 윤 실장도 함께 허리를 숙였다.

“뭘 이렇게 나와 계셨습니까.”

“하하. 나와야죠. 귀한 손님 오시는데. 인사하시죠. 이쪽은 차관이고, 그 옆에 보좌관······.”

지혁은 십여 명의 사람들과 차례대로 악수로 인사했다.

‘이게 아닌데.’

은밀히 오려고 했던 건데, 일이 커진 것 같았다.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사진부터.”

“네? 사진이요?”

산업부 관계자들은 지혁이 설 자리만 비워놓고 그를 불렀다.

물 흐르듯 이어지니, 더 어색했다.

그렇다고 자세까지 잡고 기다리는데, 무시할 수도 없고.

찰칵!

결국, 지혁은 장관실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관계자가 커다란 감사패를 들고 있는데, 그 옆에 장관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지혁은 얼떨결에 장관의 맞은편에 가서 섰다.

“감사패 증정이 있겠습니다!”

찰칵! 찰칵!

***

여러 사전 행사를 거친 뒤.

드디어 지혁은 장관실 접견 의자에 앉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순식간에 펀치 여러 대 맞은 기분.

‘정신 차려야지.’

“원전이 발전단가도 낮아서 경제적이고, 탄소 배출량도 적어서 환경에도 좋고요~”

산업부 장관은 원전의 장점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공기도 빠르고, 단가도 저렴하지요. 선도물산과 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너무 좋은 얘기만 늘어놓으니, 지혁은 원전의 위험성을 들어 딴지 걸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관두자. 오늘 원전 얘기하러 온 거 아니잖아.’

목적과 상관없는 일이므로, 잠자코 들었다.

“사카라 원전 단독수주로 우리나라의 원전 경쟁력을 다시 한번 세계에 입증시켜주셨어요.”

“아니 뭐······ 그냥 정비사업계약인데요. 신설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금은 ‘대단한 게’ 중요했다.

다른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선도물산 덕분에 우리 정부가 면이 섰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말로만 하는 감사는 쉽죠.”

“······.”

지혁의 말 한마디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갑자기 그렇게 들어가면 어떡하냐고, 윤 실장이 툭툭 건드렸으나.

지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관은 웃는 낯을 서서히 걷히고는.

“혹시 뭐······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글쎄요.”

이렇게 대답한 후, 지혁은 장관실 안에 있는 주변 사람들을 힐끔 돌아보았다.

여러 사람 앞에서 꺼낼 얘기가 아니라는 의미.

장관은 눈치챘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자리 좀 피해주겠나?”

잠시 후.

장관 포함하여 지혁, 윤 실장. 이렇게 세 사람만 남았다.

장관은 지혁을 바라봤다.

“얘기해 보시죠.”

“우선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려야 해서요. 윤 실장님?”

“네.”

윤 실장은 시판품 조사와 관련된 일을 설명했다.

부적합 판정부터, 표준기술원 협의, 사전보도 통보까지.

빠지지 않고 다 얘기했다.

“흠······.”

장관은 듣는 내내 심각한 얼굴이었고.

윤 실장의 설명이 끝난 뒤, 지혁이 말했다.

“내부의 일은 잘 모르겠으나, 저희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습니다.”

“······.”

“표준기술원에서 안내받은 대로 했고, 제품 이상 없다는 결과 성적서도 받았거든요.”

사전보도 자료까지 나온 마당에, 결과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혁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했다.

“저희 선도물산은 빼주실 수 있으십니까?”

산업부 장관은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아······ 이런 부탁을······.”

***

선도SDS 대표이사실.

“굿모닝~”

오 부회장은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비서실장의 인사에 밝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커피 마셨어?”

“네? 아, 아직요.”

‘그걸 왜 물어보지?’

사람이 평소와 다르면 괜히 불안해진다.

“문벅스 가서 내 거랑 같이 사와. 아니다. 비서실 직원들 다 하나씩 돌려.”

“네?”

재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 부회장은 주변인에게 돈을 더럽게 안 쓰는 사람이었고.

커피 쏘는 건, SDS 발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가격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거로 사 와.”

덜컹.

비서실장이 나간 뒤.

오 부회장은 콧노래가 나오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이건 아니야. 체통 없게.’

오늘을 기다려왔다.

‘시판품 조사 언론 공시 날’

오 부회장은 책상에 앉자마자, 노트북부터 켰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선도물산의 부적격 제품이 언론에 뜨는 순간부터, 앞으로 만들어갈 일들을 다 그려놨다.

‘우선 일을 키운 다음에, 담당자 징계하고, 윤리위 소집해서 책임자 징계, 소비자클레임 만들어서 대표이사 형사처벌······.’

완벽한 복수를 꿈꿨다.

‘국표원, 여름의류. 공기 매트리스 등 87개 제품 안전기준 부적합’

노트북 화면에 뜬 기사 제목을 보고, 오 부회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떴구나.”

예정대로였다.

클릭!

앞부분의 취지와 시정명령 따위는 넘겨버리고.

드르륵.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드르륵. 드르륵.

스크롤의 압박. 제품 하나당 사진과 내용이 있어서 꽤 길었다.

오 부회장의 눈에 점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선도물산. 선도물산.’

계속 이 이름만 기다리며 계속 내렸다.

드르륵. 드르륵.

스크롤 내려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드르······륵.

“어?”

어느덧 리스트의 끝까지 왔고.

아무리 스크롤을 더 돌려도, 내려갈 곳은 없었다.

“씨발, 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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