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악재 혹은 기회 (1)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심각한 일일 것 같아서, 분위기를 유하게 하려고 일부러 밝게 인사했는데.
“연휴는 잘 보내셨어요?”
양 부문장의 표정은 심각했고, 그 옆에 함께 온 건설부문 전략실장도 마찬가지였다.
“······ 대표님께서는 잘 보내셨습니까?”
“그럭저럭 지냈습니다만······ 무슨 문제인가요?”
지혁은 인사는 관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꽤 급해 보였다.
“문제라기보다는······ 건설부문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겨서요.”
“사고는 아니군요.”
“네, 그런 건 아닙니다.”
“어디 들어보죠.”
지혁은 자세를 고쳐 앉고, 양 부문장의 입에 집중했다.
“선도물산에서 10년 전에 발주받은 원전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첫 원전 수출 건으로 알려진 프로젝트인데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하잖아요. 발주 국가가 요르단 맞죠?”
“네, 맞습니다.”
“그건 이미 다 지어진 원전 아닌가요?”
“다 지어진 것도 있고, 진행 중인 것도 있습니다. 한 두기 만드는 게 아닌 대형 프로젝트라서요.”
요르단, 사카라 원전.
10년 전에 국전(국가전력)이 주계약자로 하여, 국내 건설대기업들이 참여한 국내 최초 원전 수출 사업 프로젝트다.
“한화 약 25조 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거든요. 국가적 의미도 있는 데다가, 규모가 워낙 커서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라, 미래건설, 도산중공업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25조원이면, 여러 회사가 함께 참여할 정도면 꽤 큰 사업이긴 하네요.”
양 부문장은 건설을 잘 모르는 지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경 설명해주었다.
“총 5호기 건설하는 걸로 수주했는데, 1호기는 얼마 전에 시험가동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시험가동에서 문제가 발견된 건가요?”
“아닙니다. 성공적으로 잘 가동되었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듣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시험가동도 성공적이었다고 하고.
하아······.
양 부문장은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운영 허가만 앞두고 있는데요······.”
양 부문장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역사 얘기는 충분히 들었으니까요.”
“네.”
양 부문장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고.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운영 허가를 앞두고, 정비사업계약이라는 걸 합니다.”
“정비사업계약?”
“네. 장비가 잘 가동이 되도록 유지보수를 해야 하고, 만약 고장이 나면 정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원전이 보통 시설이 아닌데, 유지보수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죠.”
어느 시설이나 유지보수가 필요하지만, 원전은 특히나 중요하다.
“정비사업계약은 유지보수를 맡길 사업체를 선정하는 건데, 최초 계약 수주받았을 때 어느 정도 얘기가 되어 있었고, 당연히 저희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금 양 부문장의 말에서 뉘앙스를 느낀 것이다.
‘그게 잘 안된 모양이네.’
“국전이 우리 기업을 공동사업자로 선정 해줘서, 정비사업계약은 국전과 선도물산이 맡기로 되어 있는데······.”
“다른 기업이 끼어들었나요?”
양 부문장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저희가 선정되어 있고, 국가가 개입하는 사업이기에 다른 기업이 갑자기 끼어들 수는 없습니다.”
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
양 부문장이 말했다.
“근데, 그건 국전과 우리나라 기업과의 관계일 경우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거고요.”
“······.”
“요르단 정부에서 정비사업계약 사업자 선정 기조 자체를 바꾼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음?”
국전 또한 요르단의 주계약자일 뿐.
진짜 발주처는 요르단 정부다.
그런, 요르단 정부에서 기조를 바꾼다는 건, 판을 엎겠다는 걸 의미했다.
지혁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아······ 쉽지 않겠네요.”
“네······.”
웬만한 문제면 개입하여 어떻게든 해결할 생각을 했는데.
국가가 상대라면 쉽지 않다.
“정확히 요르단 정부에서 하려는 게 뭔가요?”
“지금까지는 저희가 정비사업계약의 단독 수주하는 걸 당연시하고 있었는데요.”
“네.”
“단독으로 한 계약자에게 주지 않고, 나누려는 것 같습니다.”
지혁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격 경쟁을 하려는 건가? 그렇게 하면 유지보수에 일관성이 없지 않을까?’
양 부문장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저희가 기대한 건 15년 이상의 장기계약입니다.”
“기간에 대해서 구분을 짓는 건가 보네요?”
“네. 아직 정확하진 않지만, 국전에서 준 정보에 따르면 요르단 정부에서는 5년 단기 계약을 제안할 것 같습니다.”
“단기 계약이라······.”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윤 실장이 물었다.
“정비사업계약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까? 대략으로라도.”
지혁도 막 물으려던 참이었기에, 양 부문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양 부문장은 건설 전략실장을 향해 물었다.
“아까, 4조라고 했던가?”
지혁은 눈이 번쩍 뜨였다.
‘4조?!’
생각보다 큰 금액에 깜짝 놀랐는데.
건설 전략실장의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죄송합니다. 다시 시뮬레이션 해봤는데, 5~6조 정도 예상됩니다.”
지혁의 눈이 커졌고, 윤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히 큰 사업이네?’
선도물산 연간 매출액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완성된 발전소에 인력과 장비만 추가하면 되는 거라, 수익성도 높습니다.”
양 부문장이 부연 설명을 했고,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게다가, 저희가 건설한 것이니, 절감 방법도 잘 알고 있으며,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할 거고요.”
“맞습니다.”
지혁은 생각하다가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금액은 단독 수주했을 경우죠?”
“네. 부분 수주받거나, 불발되게 되면······.”
“불발될 가능성도 있는 거예요?!”
양 부문장이 대답했다.
“그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잠깐, 생각을 하자. 생각을······.’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정도 규모면 회사에 꽤 타격이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상징성의 문제도 있었다.
애써서 다 지어놓고, 유지보수하면서 수익 내기 좋은 단계에서 다른 기업체에게 넘겨주는 건.
‘죽 쒀서 개 준 꼴이잖아.’
타닥. 타닥.
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고.
지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회의실 안을 울렸다.
‘이유가 있겠지. 그들이 왜 그러려고 하는 건지.’
양 부문장이 그것까지 알까 싶은 의구심은 들었으나, 그래도 물어봤다.
“부문장님.”
“네.”
“그들이 왜 갑자기 판을 엎을 수도 있는 걸까요? 우리 독자 기술로 지었는데, 유지보수는 우리한테 맡기는 게 그들로서도 좋은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혹시 국전 측에서 가격을 높게 불렀나요?”
양 부문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처음 원전 건설 수주 가격이 있고요. 그 수준을 고려하여 정비사업 계약 단가를 부릅니다. 독점도 아닌 사업에서 가격을 높게 부를 수는 없죠.”
상식적인 선에서 가격 책정했다는 얘기였다.
“그럼 가격도 아니고, 기술력 문제도 아니고······ 도대체 뭡니까?”
이 물에 대한 양 부문장의 대답이 황당했다.
“감정적인 문제 같습니다.”
“네?! 감정이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국가가 연관될 정도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감정적인 문제로 수주 규모가 달라진다니.
“······.”
지혁은 어이가 없어서 양 부문장을 바라봤는데, 표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근거 없이 이런 말 할 사람은 아니다.
“부문장님 좀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우리나라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펼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죠.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잖아요.”
탈원전에 대한 논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것과 비슷하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찬성과 반대 모두 타당한 사안.
정부 정책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게······ 요르단 정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나 봅니다.”
“아······.”
“탈원전한다면서 왜 원전을 수출하냐는 거죠.”
구매하는 처지에서는 기분이 안 좋을 만하다.
안 좋다며 나 갖기 싫은 걸, 남에게 파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니까.
“그걸 마음에 두고 있다가, 이번 정비계약사업에서 표출하는 것 같습니다.”
윤 실장은 입술을 내밀고 중얼거렸다.
“우리 정부 입장이 어떻든 말든 본인들 필요한 거 취하면 되는 거 아닌가?”
***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죠. 돼지고기 홍보대사가 사실은 채식주의자였다고 고백하는 거나 다를 바 없잖아요.”
“······.”
“홍보대사를 맡겼던 업체는 배신감 느끼고, 기분이 상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사장님이 절대 권력자 성향이라면요.”
요르단은 왕국 체제다. 표면상 입헌군주제지만, 사실상의 전제군주제.
감정을 건드리면 얼마든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국가다.
“하긴······ 전 세계에 원전 기술력을 우리나라만 가진 것도 아니고.”
윤 실장은 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했다.
지혁이 양 부문장에게 말했다.
“명절 전에 정부에서 그 얘기하려고 기업들 불러 모은 거였군요.”
“네. 연휴 앞두고 불편한 얘기 안 드리려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양 부문장의 눈 아래 다크 써클이 보였다.
‘마음고생 좀 했겠네.’
“다음부터는 문제 있는 건 바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부담 느끼고 책임감 가지라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지혁은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
“5~6조 사업이라고 하셨죠?”
“네.”
“그냥 간단하게 6조라고 합시다. 그림을 크게 그려야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요.”
지혁은 싱긋 웃었고.
양 부문장은 그 모습을 보고 좀 놀랬다.
‘걱정도 안 되나?’
“해당 사업 규모 6조는 선도물산 기대 매출에 잡혀 있는 거겠죠?”
“네, 잡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여서.”
“흠······ 그럼 그룹 계획에도 올라가 있겠네요.”
“맞습니다. 작년에 경영계획안 작성할 때, 예상 수치로 넣었었습니다.”
“부분 수주받으면 규모가 어느 정도일 것 같습니까?”
“많아 봐야 2조 원 규모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불발될 가능성도 있고요.”
지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올해 예상 매출 규모가 전년과 큰 차이가 안 났는데······.’
선도물산 대표가 되어 성과를 내야 하는 판국에, 예상된 성과도 까먹을지 모를 판국이 되었다.
피식.
지혁은 상황이 참 재밌다고 여겼다.
‘가족들 힘들게 해서, 하늘이 벌주는 건가.’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지혁이 잘못한 게 아니라 불운으로 생긴 일이지만.
경영자는 결과로 평가받는다.
운 또한 경영자의 덕목이다.
작은아버지들이 오진원이 운이 좋다며, 칭찬한 것도 그 이유였다.
‘안 되겠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가만히 앉아서 벌어질 일을 기다릴 사안이 아니었다.
“부문장님.”
“네, 대표님.”
“이 일에 대한 국전의 전략이 어떻게 됩니까?”
“지금 계속 논의 중인 거 같은데, 뾰족한 수가 없는 듯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는 눈치였습니다.”
지혁의 눈이 빛났다.
“요르단에는 간다는 말은 없었고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