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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08화 (208/301)

208. 잘 판단해라

‘이게 사람 눈빛이야?’

오혜빈은 살면서 이런 눈빛을 마주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지혁은 지금까지 오혜빈에게 친절했으며, 그녀 또한 지혁을 막냇동생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대했었다.

꿀꺽.

오혜빈은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큰오빠와 아빠가 상대한 오지혁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눈에 힘을 주고.

마음을 다잡아서 말했다.

“너 지금 나 협박하니?”

‘음?’

지혁은 오혜빈의 반응에 약간 놀랐다.

‘제법이네?’

“이게 묻는 거야? 협박하는 거야? 좀 전에 직접 확인하고서 묻는 건, 협박이 맞지?”

“······.”

지혁은 곧바로 대답했다.

“협박이라니요. 그냥 수신 거부를 왜 한 건지 물은 거잖아요.”

“내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어?”

“······.”

“난 지금 너랑 대화하고 싶지 않은데?”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오혜빈의 모습이 신선했다.

‘형제 중에 진원이 형 다음가는 인재라더니······.’

그녀와 맞서서 대화해본 건 처음인데, 보통이 아니라고 느꼈다.

‘적 많이 만들어서 좋을 필요 없어. 일단 회유해보자.’

지혁은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누나,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요.”

움찔.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오혜빈은 놀랐다.

‘뭐야? 사람이 뭐 이렇게 확 바뀌어?’

“글쎄, 무슨 오해일까.”

하지만 오혜빈은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었다.

“전 그냥 누나랑 대화 좀 하고 싶은 거예요. 수신 거부는 누나한테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궁금해서 물었던 거고.”

“······.”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듯한데.”

“훗.”

지혁의 말을 오혜빈이 웃으며 끊었다.

“색안경?”

“······.”

“큰오빠를 공격하려고 가족 전체를 엿먹이려 했는데. 그럼 어떻게 봐야 할까?”

“······.”

“그런 사람을 가족이라고 받아들여야 해? 피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게 아닐까?”

지혁은 잠자코 오혜빈의 얘기를 들었다.

현재 형제 중에 지혁에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혜빈밖에 없다.

‘용기가 가상하지만······ 좀 거슬리네.’

다른 형제들처럼, 오혜빈에도 평탄화 작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오해라고 했지? 방금 내가 말한 것도 오해야?”

모르는 게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 오혜빈이 지혁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딱 그거였다.

지혁은 싱긋 웃고는 말했다.

“오해죠.”

***

오혜빈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와, 진짜 뻔뻔하네?’

오해라고 우기는 지혁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다.

“웃기고 있네.”

오혜빈은 막냇동생 대하듯 말했고, 지혁은 피식 웃었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큰오빠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집안을 풍비박산 내려고 했잖아. 뻔히 보이는 사실인데, 오해라고?”

“오해죠. 그건 기만전술이었으니까.”

“기만······ 뭐?”

겁을 주려고 했을 뿐, 오 부회장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지혁의 가족에게도 영향이 갈만한 일이기에.

지혁도 연일 오 씨다.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해를 풀어주는 거예요.”

벽에다 얘기하는 것 같았고, 오혜빈은 열불이 나서 얼굴이 벌게졌다.

“됐고. 넌 처음 나한테 협조를 구할 때, 큰오빠가 기업 총수에 어울리지 않으니, 네가 기업 총수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했었어.”

“그랬죠.”

너무 순순한 대답에 오혜빈은 약간 당황했지만, 말을 이어갔다.

“그, 그래.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서 수긍했는데.”

오혜빈의 눈이 빨개졌다.

“우리 아빠가 힘들어하시잖아!”

“······.”

“방법이 그런 식일 수밖에 없어?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거야?”

오혜빈은 쌓인 게 많았는지,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하자 쏟아내었다.

“왜 아빠까지 힘들게 해? 우리 엄마는 괜찮아 보이니? 요즘 집안 분위기가 어떤지 알아? 가족들 다 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요.”

“그러니까······ 뭐?!”

오혜빈은 말문이 막혔다.

방금 지혁의 대답은, 가족을 다 적으로 만드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걸로 들렸다.

“너 지금 뭐라 그랬니?”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누나 보기보다 순진하네요.”

“······.”

“진양 형님을 막는 게 쉬운 일인가요? 아름다운 과정을 생각했어요?”

“······.”

“분명 누나도 돕겠다고 동의한 일이에요. 이 정도 리스크는 감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진원 형님도 가만히 있잖아요.”

오혜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목표를 잡은 이상, 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요. 그게 당연한 거로 생각하고요.”

지혁은 오혜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테라스에 몸을 기대어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다.

오 회장댁은 성북동 언덕에 있어서, 전방에 막히는 곳 없이 시내 전경이 다 보인다.

“너 정말······.”

오혜빈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지혁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사회적 매장?”

오혜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충격이었어요?”

“······.”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

“전 필요하면 해요.”

지혁의 목소리가 너무 평온해서, 오혜빈은 소름마저 돌았다.

‘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지금, 지혁의 말이 조금도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오혜빈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혁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싸움에 제한이 어딨어. 순진한 사람들······.”

***

오혜빈은 지혁이 지금 한 말들을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무엇을 감수하든 큰오빠가 총수가 되는 걸 막겠다는 거잖아.’

처음엔 개인적인 욕심일 거라 생각했는데, 깊이 대화를 나눌수록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야?”

“······.”

“큰오빠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니?”

“하하.”

지혁은 웃었다.

‘이 소리를 또 듣네.’

지혁이 기업 총수로서의 포부를 밝힐 때마다, 항상 듣는 말이다.

이번엔 오혜빈에게 듣게 됐다.

“왜 웃어?”

그녀가 불편한 얼굴로 묻자, 지혁은 미안하다는 듯 양손을 들고 말했다.

“아, 별거 아니에요.”

“······.”

“큰형님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저한테 잘못한 것도 없고요.”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총수가 되어야 하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물었을 때와 똑같이 대답했다.

오 부회장에게 감정이 없다면서, 그가 총수가 못 되게 하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차라리 야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설득력 있다.

‘이마의 색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혜빈은 가자미눈을 뜨고 지혁을 바라봤다.

“그게 아닌 거 같은데······.”

그녀는 꽤 눈치가 빨랐고, 지혁은 이왕 연기하는 거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일 오 씨고, 회사에 입지도 있으니, 야망 좀 가질 수 있는 거죠.”

“······.”

그녀가 받은 느낌은 그게 아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휴우-

오혜빈은 짧게 한숨을 쉬었고.

지혁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혜빈 누나.”

“음?”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지혁은 가까이 다가왔고.

오혜빈 자신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 쳤다.

지혁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총수가 되고 나면 그 과정 중에 무슨 일이 있었든, 다 돌아올 겁니다.”

오혜빈은 반박했다.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돌릴 건데?”

“······.”

지혁은 살짝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건, 시간이 필요하겠죠.”

“······.”

“하지만, 물리적인 우려는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총수가 되어도 큰집은 여전히 잘 살 겁니다.”

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약속드릴게요.”

오혜빈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지혁에게서 좀 떨어졌다.

둘 사이의 정적이 흘렀고.

지혁은 생각했다.

‘좀 더 확실하게 얘기해주는 게 좋을까?’

밝고 착한 오혜빈을 겁주긴 싫지만.

‘필요한 일은 해야겠지.’

그녀 또한 연일 오 씨며, 오 회장의 자식이다.

다른 형제들에게 했던 ‘평탄화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잘 판단하길 바라요.”

“······.”

“괜한 짓 해서 내상 입지 마시라는 소립니다.”

오혜빈은 얼어붙은 듯, 지혁의 무심한 눈길을 바라봤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지혁의 태도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지켜볼 거예요.”

***

오 회장과 대화해보고 싶었으나, 도저히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저녁 식사 이후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고, 지혁과 가족들이 집에 갈 때쯤에야 배웅하러 나왔다.

“회장님, 건강하세요.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지혁이 인사했지만, 오회장은 받지 않았다.

대신, 지혁의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제수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머니는 지혁과 오 회장의 얼굴을 번갈아 본 뒤.

“네, 아주버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어색하게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큰집에 있는 동안, 가시방석이었지만 소득은 있었다.

오 부회장과 오 회장의 얼굴을 봤으며.

오혜빈을 단도리 했다.

‘똑똑한 사람이니까, 알아들었겠지.’

회유와 경고의 메시지를 분명히 보냈고.

오혜빈이라면 알아들었을 거로 생각했다.

추석 연휴를 보낸 후. 회사에 출근했다.

“어서 와요~”

먼저 사무실에 도착해 있던 윤 실장이 반갑게 지혁을 맞았다.

“네, 실장님. 연휴 잘 보내셨어요?”

“잘 보내긴요. 누구 덕분에 일 생각이 자꾸 나서, 맘 편히 쉴 수가 있어야지.”

“하하.”

“내가 웬만해선 집에서 일 생각 안 하는데······ 아주 늘그막에 일복이 터졌다니깐요.”

윤 실장은 지혁을 보자마자 앓는 소리부터 했고, 지혁은 그의 스타일을 알기에 웃고 넘겼다.

“그래서 임원 되신 거죠.”

“······.”

“형수님이 좋아하시지 않아요?”

“그거야. 그렇죠.”

윤 실장은 헤벌쭉 웃었다.

임원 승진 이후, 집에서 난리가 났다고 했었다.

일가친척이 모여서 축하 파티를 열었다고······.

회사 임원이라는 건, 급여 수준도 올라가지만 꽤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다.

“아, 맞다.”

윤 실장이 지혁을 바라봤다.

“건설부문장님 기다리고 있어요.”

“건설부문장님이요? 갑자기?”

지혁은 별다른 스케줄을 받은 게 없었다.

윤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연휴 전날, 원전 사업 관련해서 정부 협의회에 참석했었잖아요.”

“네. 그건 알고 있어요.”

“특이사항이 있나 봐요. 급히 뵈었으면 한다고, 아침에 건설 쪽에서 연락받았어요. 부문장님이 직접 보고하신대요.”

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원전 사업······.’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시겠어요?”

“잠깐만요. 먼저 가 계세요. 금방 따라갈게요.”

“네.”

윤 실장이 나간 뒤.

지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오늘 출근한 후, 바로 확인해 보려 했다.

‘오혜빈.’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 뚜- 철컥.

[여보세요?]

오혜빈은 신호음 두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 거절 메시지는 없었다.

“누나 접니다.”

[어, 아침부터 웬일이야?]

“전화기 고쳤나 보네요?”

지혁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말했고.

[응? 어······.]

그녀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역시, 말귀를 잘 알아듣네.’

“그냥 좋은 하루 보내라고 전화했어요.”

오혜빈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 고맙다.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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