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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07화 (207/301)

207. 어색한 재회 (2)

오 부회장은 곧바로 지혁의 눈을 피했고.

지혁 또한 사람인지라, 그를 마주하기가 어색했다.

‘분위기가 좀 달라졌네.’

짧은 순간임에도, 지혁은 오 부회장의 눈빛과 분위기를 살폈다.

‘좀 차분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직 실체는 모르지만, 잠깐 눈빛을 마주했을 때 분위기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윤리경영위 이후 오 부회장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었지만.

그렇게 난도질을 한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안부 연락을 해볼 수는 없었다.

목숨 걸고 싸운 적과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세계’에서는 보내버린 사람과는 우연일지라도 절대로 마주치지 않는다.

‘가족이라 가능한 일이지.’

가족들도 어색했다.

작은아버지들을 제외하고, 지금 지혁과 오 부회장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의 조우에 긴장감이 흘렀고.

“형님, 배고프죠?”

오진원이 억지로 웃으며, 오 부회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고.

큰어머니도 거들었다.

“그래, 어서 손 씻고 식탁으로 와라. 어르신들 기다리고 계셔.”

“네.”

오진양은 화장실을 향해 걸어가다가.

“진양아.”

오 부회장은 멈추고,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바라봤다.

“작은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네.”

어머니의 인사에 뼈가 없다는 걸 느끼고, 오 부회장은 순순히 응답했다. 어머니는 윤리경영위 일을 모른다.

“왜 집에 또 안 놀러 오니?”

“그게······ 새로운 자리로 가게 돼서 좀 바빴어요.”

“새로운 자리? 지금은 선도전자 대표님 아니야?”

“······.”

쓰읍.

어디선가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사안을 잘 모른다는 건, 순수하게 인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아픈 곳을 후벼팔 수도 있다.

“그 좋은 자리 두고 왜? 어디로 갔는데?”

오 부회장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규모 면에서 선도전자와 비교도 안 되는 ‘선도SDS’의 대표이사로 갔다. 즉, 좌천급 인사발령이다.

그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겼기에, 굳이 이 자리에서 관계사 이름까지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른 관계사 대표로 갔어요.”

“아~ 그래. 또 대표로 갔구나. 그런 거긴 선도전자 있을 때보다는 좀 한가해지는 건가? 더 늦기 전에 연애도 하고 좋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어머니의 불편한 인사는 계속되었고.

큰어머니 표정이 썩어가고 있을 때쯤.

“어머니, 어른들 기다리세요. 형님도 식사하셔야죠.”

지혁이 끼어들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오랜만에 진양이 만나니까 반가워서. 호호.”

가족들은 그런 어머니가 재밌어서 웃었지만.

오 부회장과 큰어머님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형님, 안녕하세요.”

그때, 지혁이 슬쩍 오 부회장에게 인사했다.

“······ 그래. 오랜만이다.”

오 부회장은 잠자코 있다가, 아주 짧게 대꾸했다.

‘의왼데?’

지혁은 그가 인사에 대꾸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오 부회장은 시종일관 지혁의 눈을 피했는데.

‘뭐지?’

지혁은 오 부회장의 태도에 속으로 좀 놀랐다.

‘설마······ 꼬리를 내린 건가?’

그 대단한 오 부회장이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사람도 동물이다.

지금 지혁이 오 부회장에게 느껴지는 본 모습은······분명히 꼬리 내린 동물이었다.

***

다시 식사 자리로 온 뒤, 곰곰이 생각했다.

‘한번 꼬리 내리면 끝인 건데.’

생각지 못한 반응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는 건가?’

지금 상황은······.

한창 싸울 준비를 하며, 힘을 기르고 있는데.

최대 보스가 싸우기도 전에 자연사한 것과 비슷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은 조심해야 해.’

지혁은 그래서 더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양아, 어서 와라.”

“안녕하십니까. 건강하셨죠?”

오 부회장은 제원그룹 회장과 세계그룹 회장에게 차례대로 인사했다.

“어서 앉거라. 배고프겠다.”

“네.”

오 부회장의 자리는 오 회장 바로 옆으로, 작은아버지들보다 상석이다.

연일 오 씨는 장남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다.

작은아버지들은 오 부회장이 상석에 앉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식사는 다시 시작되었고.

오 부회장이 온 뒤로 분위기가 아주 어색해졌다.

지혁과 오 부회장.

불편한 사이의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하니, 주변 가족들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는데.

“선도SDS 대표이사로 갔다며?”

“······.”

제원그룹 회장이 불쑥 물었다.

정보가 없으니, 질문에 필터링이 없다.

작은아버지들은 윤리경영위는 모르고, 지혁과 오 부회장이 불편한 사이라는 것도 당연히 모른다.

명절 때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는 노총각 노처녀에게 결혼 왜 안 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했다.

안 그래도 어색했던 식사 분위기는 찬물 끼얹은 듯 싸늘해졌고.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 부회장은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짧게 대답했다.

제원그룹 회장이 말했다.

“왜? 선도전자가 훨씬 큰 회사 아니야? 그룹 총수 할 사람이 왜 더 작은 데로 가?”

콜록. 콜록.

누군가 사레 걸린 듯 헛기침했고.

오 부회장의 이마에 핏줄이 솟구쳤다가 사라졌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뜻이 있으실 거로 생각합니다.”

세계그룹 회장이 오 회장을 바라봤다.

“형님이 발령 낸 거예요? 진양이가 자청한 것도 아니고?”

“······.”

“뭐야? 왜 그러셨어요? 그럼 선도전자는요?”

오진원이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가게 됐습니다.”

작은아버지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이 보게들.”

오 회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들 다 있는 자리에서 회사 얘기는 그만하지.”

제원그룹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가족 회사인데, 회사 얘기를 안 하면 입 다물고 식사만 하자는 거예요? 하하.”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분위기가 한층 더 얼어붙는 걸 보며.

제원그룹은 회장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 있나 보다.’

세계그룹 회장도 이제야 눈치채고, 웃으며 마무리 지었다.

“그래~ 다른 관계사 가보는 것도 좋지. 진양이가 선도전자에 오래 있었잖아. 어차피 총수 할 사람이니까, 여러 경험 쌓아보는 것도 괜찮아.”

오 회장의 어금니 근육이 불끈불끈하는 거 보고 세계그룹 회장은 생각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어색한 침묵 속에 식사는 계속되었고.

밝은 성격의 제원그룹의 회장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불쑥 오진원에게 말을 걸었다.

“진원이는 선도전자 어떠냐?”

그리고 그는 슬쩍 오 회장의 표정을 살폈는데.

이번엔 아무렇지 않았다.

***

“콜록. 저요?!”

이번엔 오진원이 당황했다.

오 부회장도 표정이 살짝 불편해졌지만, 좀 전에 선도SDS와 그룹 총수 얘기 꺼낼 때만큼은 아니었다.

제원그룹 회장은 이 대화 주제는 괜찮겠다는 생각에, 본인 스타일대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집 나갔다던 녀석이 어느 날 불쑥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갑자기 웬 선도전자 대표이사?!”

“······.”

“단일 회사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이며, 선도전자 대표이사는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 아니냐.”

선도전자는 이젠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회사다.

세계그룹 회장도 맞장구쳤다.

“그러게. 네 아버지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냐? 하하.”

오진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오 회장을 곁눈질로 봤다.

‘구워삶기는요. 내가 구워지고 있는 거 같은데.’

오진원은 이 얘기를 그만했으면 하는데, 제원그룹 회장은 계속 말을 걸었다.

“이번에 은하수 신제품 반응 어떠냐? 작은아버지는 출시되자마자 그걸로 폰 바꿨어~ 하하.”

“쓰실 때 불편한 건 없으세요?”

“사이즈가 좀 애매하더라. 난 플러스 쓰는데, 플러스 선택한 사람들은 큰 걸 바래서 쓰는 거거든? 조금 더 컸으면 좋겠어.”

오진원은 핸드폰을 켜서 곧바로 받아적으며 말했다.

“네, 그런 고객 의견이 좀 있더라고요.”

지혁은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고.

제원그룹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진원이 너 일하는 거냐?”

“네? 아, 아니요. 그냥 들은 얘기 잊어버릴까 봐.”

“하하, 아닌 척하긴.”

바로 옆에 앉은 세계그룹 회장은 오진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얘가 원래 어릴 때부터 이랬어요. 완전 허허실실이라니까. 실제로는 열심히 하면서 아닌 척하더라고.”

오진원은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어딜 가도 사랑받네.’

지혁은 오진원을 관찰하며 생각했다. 작은아버지들이 오진양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판매는 잘 되지?”

“네. 올해 시장점유율은 다시 1위 차지할 거 같아요. 현재 1위 업체인 샤먼폰이 흔들리고 있기도 하고, 제품 반응도 좋거든요. 근데 뭐, 점유율은 그렇지만, 문제는 기술력이죠. 피치사보다 많이 팔리지만, 그들보다 우리가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부드러운 말투 속에 냉철함이 있었으며, 사업가다운 면모가 보였다.

두 회장은 말끝에 겸양 섞인 대답보다는, 그 앞에 시장점유율 1위에 관심을 가졌다.

제원그룹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쟁사 위기로 1위 탈환이라······운이 좋구나.”

세계그룹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운도 경영자의 덕목이죠. 앞으로 잘하겠네.”

그때.

잠자코 듣기만 하던 오 회장의 입이 열렸다.

“그래. 진원이가 잘하더라.”

음?

그의 한마디 말에 가족들 모두가 놀랐다.

오 회장은 좀처럼 사람들 있는 앞에서 칭찬을 안 한다.

지금 이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지혁이었다.

재빨리 오 회장과 오 부회장의 표정을 살폈는데.

‘너무 차분해.’

괜한 기우일지. 혹은 지혁이 모르는 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끼리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오 회장은 방으로 들어갔고.

오진원은 작은아버지들과 대화 중이며.

여자들은 큰어머니 방으로 몰려갔다.

지혁은 천천히 집안을 돌면서, 대화를 엿듣고 주변을 살피다가.

테라스에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오 부회장과 오혜빈.

지혁은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했다.

‘실체는 맞서 보는 게 낫지.’

지금은 오혜빈이 어떤 심정인지 너무 궁금했다.

어색하긴 했지만, 생각에 이르렀으니 바로 테라스로 돌진했다.

“저도 끼워주십시오~”

지혁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오 부회장과 오혜빈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지혁은 개의치 않고, 술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오 부회장은 이런 지혁의 뻔뻔함도 싫었다.

예전 같았으면 저리 가라고 바로 한소리 했겠지만.

“혜빈아, 오빠 먼저 들어갈게. 쉬고 싶어서.”

“네?”

오 부회장은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역시······.’

다가가면 오 부회장이 자리를 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대로였다.

지혁은 오혜빈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랑 뭐 할 얘기 있니? 아니면······.”

오혜빈은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말했는데.

“꼭 용건이 있어야 가족끼리 대화하나요.”

그년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가족······.”

지혁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저도 테라스에서 밤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오혜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잘 쐬다가 들어가렴.”

차갑게 말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웬 스피커 통화음이 들렸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지혁의 묵직한 음성이 들렸다.

“혹시나 해서 전화해봤는데, 맞는 거 같네.”

이 자리에서 오혜빈에게 전화했고, 약간의 진동 소리도 없이 곧바로 전화 거절 메시지가 나왔다.

“누나, 저 수신 거부했어요?”

움찔.

순간 느껴진 어두운 기운에, 오혜빈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지혁을 바라봤는데.

그의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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