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막싸움 (1)
“화면에 보이는 내용이 좀 불편하실 겁니다.”
홍 팀장은 회의실에 모인 임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특히, 오 회장과 오 부회장의 눈치를 봤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좀 불편하셔도 현상 진단을 위해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홍 팀장은 프레젠테이션 포인트로 한 게시글을 가리켰다.
“그럼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오진양은 양아치인가 개새끼인가.』
클릭.
‘내가 이 얘기 올라온 거 너튜브에서 봤었음. 선도전자 직원들과 시위자들이 몸싸움하는 영상이었는데. 뭐, 인간적으로 무조건 시위자들을 편드는 건 아니었음. 시위자들 막는 직원들은 무슨 잘못이겠어. 내가 집중했던 건 영상에서 보여지던 오진양의 표정임. 똥을 아주 제대로 씹고 있었음. 시위자들을 보는 인상이 진짜······ 난 그래서 오진양이 개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시위 중이던 한 할머니가 다가오자, 냅다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걸 보고 양아치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바뀌었음. 오진양은 양아치일까 개새끼일까.’
임원들이 읽기를 기다렸다가, 홍 팀장이 말했다.
“다수가 어떻게 생각할지 확인이 필요하니까요. 댓글도 함께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좀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오진양 꺼져 씨발 새끼야.
└둘 다 해라. 개새끼랑 양아치.
└생긴 건 젊잖은데, 완전 미친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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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수십 개 달려 있었는데.
대부분 아주 원색적이며, 노골적인 내용이었다.
XX 처리 같은 건 없었다. 오 부회장의 실명도 그대로 나왔다.
댓글을 읽은 참석자들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고.
홍 팀장은 화면을 돌린 뒤, 말했다.
“소수의 인원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지금 보여드린 글과 앞으로 보여드린 글들은 모두 ‘개념글’로 올라온 게시글입니다.”
‘인사이드 갤러리’를 잘 모르는 임원들은 ‘개념글’이 뭔지 잘 몰랐다. 이어진 홍 팀장의 설명에 눈과 귀가 모였다.
“회원들로부터 일정 수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개념글’ 탭으로 옮겨지는데. 이는 곧,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글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오 부회장이 양아치이자, 개새끼로 많이 공감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보시면 방금 본 게시물의 조회수가 3,000을 넘는데, 마이너 갤러리에서 이 정도면 굉장히 높은 겁니다.”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새어 나왔고.
오 부회장은 눈을 부릅뜬 채, 여전히 아랫입술만 떨고 있었다.
“다음 게시글도 살펴보겠습니다.”
『부모 잘 만난 게 자랑임? 그것도 능력임?』
클릭.
오 회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지만, 홍 팀장은 진행했다. 회사 내규에 따른 그룹 윤리경영위가 소집 회의였으니까.
‘씨부럴 새끼가, 제 잘난 줄만 알아요. 오진양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이렇게 살았을 것 같애? 오종건 회장은 그 많은 돈으로 뭐 했나 몰라. 아들 인성에 돈 좀 처바르지. 씨벌놈들.’
홍 팀장은 오 회장의 눈치를 보며, 화면을 바로 넘겼다.
“댓글은 넘어가겠습니다. 분위기는 좀 전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고요. 방금 보신 글 또한 개념글이었습니다.”
‘개념글’이라는 말이 뼈아팠다.
오 회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으나, 홍 팀장은 애써 외면하고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위아래도 없는 쓰레기.』
***
“이상입니다. 커뮤니티 반응은 여기까지 읽는 거로 하고요.”
홍 팀장은 화면을 바꾸며 말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유동닉들이 오 부회장님 장작에 열광하는지, 그 시초가 된 영상을 보겠습니다.”
개념글 아래쪽에 있는 게시글들 차례대로 클릭했다.
『오 부회장 폭행 사건 1』
『오 부회장 폭행 사건 2』
『돈 먹여서 너튜브 영상 내린 전말 1탄』
『돈 먹여서 너튜브 영상 내린 전말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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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너튜브에서 내렸던 ‘할머니 폭행 사건’의 영상에 이어서.
너튜브에 올라왔던 시간, 내려간 시간, 그 당시에 댓글 반응 등 모든 것들이 캡처되어 정리된 글이 게시되어 있었다.
이를 본 참석자들은 생각했다.
‘와······ 뭐, 공작 당한 거야?’
‘너무 철저한데?’
‘오 부회장이 이런 짓을 했었어?’
‘욕먹을 만하네.’
좀 전까지만 해도 왜 이렇게 커뮤니티가 난리인가 싶었는데.
영상과 근거자료를 보니, 욕먹고도 남을 만했다.
청주공장 폭행 사건은 오 부회장이 덮으려 했었고, 그래서 너튜브에 올랐었음에도 소수의 사람 빼곤 몰랐었다.
특히, 할머니를 힘껏 밀어버리는 부분이 영상에서 반복 편집되었는데.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너무 했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저건 단순히 사고가 아니야.’
오 부회장은 미동도 없이 보기만 했고.
옆의 추 이사는 그가 돌발행동하지 않을까 계속 살피었다.
홍 팀장이 영상을 바꾸며 말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한데요.”
오 부회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게 다가 아니라고? 또 있어?’
“유행으로 번지는 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뇌리에 남아야 하죠.”
클릭.
다음 게시글은 오 부회장이 할머니를 패대기치는 모션만 따서, 각종 사진에 붙여넣은 거였는데.
딱지를 패대기.
빨래 패대기.
마른오징어 패대기.
오 부회장이 별의별 것을 패대기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짜깁기 한 거였다.
재밌는 게 아니라, 우스운 것.
조롱이었다.
“이런 식의 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언론으로 퍼질 조짐이 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홍 팀장은 다음 영상을 클릭하며 말했다.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인데요. 요즘 인기 많은 ‘소울풀좌’의 래핑을 개사해서, 남성분이 더빙했거든요.”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
갑자기 8비트 나이트 댄스곡이 흘러나왔다.
“소울풀좌는 다들 아실 겁니다. 네버랜드의 나일강 익스프레스 직원이죠.”
곧이어, 씹덕 향이 물씬 풍기는 요상한 남성 목소리의 래핑이 흘러나왔다.
『머리 밀립니다. 옷도 뜯깁니다.
어리면 밀립니다. 여자라서 밀립니다.
할머니라서 더 밀립니다.
패대기치는 겁니다. 치는 겁니다. 막 치는 겁니다.
미는 겁니다. 밀리는 겁니다. 미는 겁니다. 밀리는 겁니다.
강한 자는 두고~ 약한 자만 민다~
밀리고 또 밀리는 피켓 들면 확 밀리는 여기는 선도전자 청주공장.』
『직원이라면~ 여자라면~ 할머니라면~ 피켓 든다면~ 시위한다면~
막 밀리는! 여기는 청주공고로공공장
엄마 아빠 아들 따님 다다 밀립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다다 밀리는 겁니다
형부 처제 처형 처남까지 다 밀리는 안 밀릴 수 없는
오진양이 밀고 나는 그냥 밀리네
아 슈아 아 슈아 아 슈아 아슈 아아아』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화면이 꺼졌다.
8비트의 흥겨운 리듬 속.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었고.
재밌는 영상이지만,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심각한 분위기 속에 딱 한 사람.
지혁만이 숨죽이고 웃고 있었다.
***
“이상 발표 마칩니다.”
정적이 흘렀다.
수고했다는 말도, 박수도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선도그룹의 중역들은 표정이 어두웠다.
앞으로 어떤 암울한 일이 벌어질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간,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쉽게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표를 듣는 내내 부끄러웠다.
지금은 선도그룹의 직원이라는 것만으로도,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룹 윤리경영팀 팀장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홍 팀장, 발표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윤리경영팀장은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홍 팀장님께서 발표해주신 내용이 사실로 보이긴 하지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거짓과 과장이 많아서, 사실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실확인······.
이건 절차상 하는 말이었다.
분명 영상에 오 부회장이 할머니 패대기치는 게 떡하니 보였는데.
어떤 사실확인이 더 필요하겠는가.
복제인간도 아니고.
윤리경영팀장은 오 부회장을 불렀다.
“부회장님?”
“······.”
“영상에 나온 사람. 본인 맞으십니까?”
“하아······.”
오 부회장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고.
윤리경영팀장은 더 확실하게 묻지 못했다.
선도그룹 이인자.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이 회사의 오너를 어떻게 몰아붙이겠는가.
확실히 잘못된 일이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
하지만, 회의실에는 정적만 흘렀고.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회장님.”
그때.
차가운 눈빛을 가진 남자가 오 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그룹 비서실장 오지혁.
그는 오 회장을 지목했다.
“한 말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 회장은 지혁이 불러도, 먼 곳만 보고 있었다.
지혁은 잠시 기다렸다가.
“만약 불편하시다면, 그룹 비서실장으로서 회장님을 대신하여 제가 의견을 내도 되겠습니까?”
오 회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라.”
그의 눈빛이 매서웠는데.
오 부회장과 지혁 중 누구를 향한 눈빛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커뮤니티 반응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퍼지고 있지 않습니까?”
“······.”
“오진양 부회장님께서 그간 쌓아온 내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밀치는 모습은 종종 보여 왔으니까요. 제가 봤을 때는 습관 같아요.”
오 부회장은 회사 내에서도 누군가 앞을 가로막으면, 말도 없이 옆으로 밀어버렸었다.
특히, 사람이 많은 회의 자리에서 입장하거나 퇴장할 때 그랬는데.
그래서 임원들은 지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납득이 되었다.
“어쨌든, 지금은 이 사안만 볼게요.”
오 부회장을 뚫어지게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요약하자면, 대표이사가 직원 가족을 폭행한 일이거든요.”
“야! 무슨 폭행이야! 그게!”
오 부회장은 흥분하여 소리쳤고.
회의실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폭행이란 말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마라! 살짝 밀친 게 폭행이야? 어?!”
추 이사는 오 부회장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부회장님.”
흥분한 오 부회장과 달리 지혁은 침착했다.
“그게 폭행이 아니면 뭐예요?”
“뭐라니?”
“할머니 만진 거예요? 그것도 폭행일 텐데. 성격은 좀 다르지만.”
“뭐?! 이 미친······.”
오 부회장이 흥분하여 소리 지르려는데, 지혁이 앞서 말했다.
“폭행 여부에 대해 판정이 필요하면, 경찰서에 확인해 보면 돼요.”
“······.”
“그러실래요?”
꿀꺽.
입술을 깨물고, 꽉 쥔 주먹이 떨렸지만.
‘경찰’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오 부회장은 지혁에게 큰소리칠 수 없었다.
지혁은 고개를 돌려, 오 회장을 바라봤다.
“회장님.”
지혁이 불렀지만, 오 회장은 여전히 시선을 먼 곳에 두고 있었다.
“대표이사가 직원 가족을 폭행했고, 대중이 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
“이를 묵인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아니, 그래선 안 됩니다. 더욱이 오 부회장님은.”
지혁은 오 회장을 몰아붙였다.
“공정과 정직을 중시하시는 회장님의 아들이니까요.”
“······.”
“직원들이 실망합니다.”
“후유······.”
오 회장은 깊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오지혁.”
이제야 그는 지혁을 바라봤다.
“진짜 원하는 게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