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서막
“폭행?”
고 차장은 난감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오 부회장이 폭행을 했다고?”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오 부회장 그런 사람 아니야!”
“얼마 전에 청주공장 폭행 건 있지 않았습니까.”
난감했지만, 고 차장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폭행이라고?”
“물리적 행사로 인해 병원 신세를 졌죠. 이게 폭행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
오 회장은 입만 벌린 채,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건 끝난 일 아닌가?”
“······.”
“그걸 지금 문제 삼겠다는 거야?”
“그건 저도 모릅니다.”
오 회장은 미심쩍은 눈으로 고 차장을 바라보았고.
고 차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전 단지 오 부회장이 폭행한 적이 없다고 말씀을 하셔서 상기시켜 드리는 것뿐입니다.”
“······.”
오 회장은 한동안 말없이 고 차장을 노려보았고.
고 차장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보고는 끝났고 이제는 나가도 되지만, 오 회장은 아직 그를 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 차장도 쉽게 나가보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고 차장.”
“네.”
“정확히 뭐 때문에 윤리경영위가 소집되는 건데?”
“죄송합니다. 전 아는 게 없습니다.”
“정말 없어?”
“······.”
두 번째 물음에는 고 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 차장이 왜 모르겠는가. 지혁라인인데.
하지만 오 회장에게 말할 순 없었다.
흡- 휴우-
오 회장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진정이 잘 되질 않았다.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안색도 좀 창백해졌다.
“회장님, 아무래도 이만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오 회장은 이마에 손을 짚고 고민했다.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누구였지?”
“홍지원 팀장입니다.”
“그 사람 불러 봐.”
“퇴근했습니다.”
“뭐?”
“지금 퇴근 시간이 지났습니다.”
“일단 연락해 봐!”
오 회장의 일갈에 고 차장은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켰고.
“전화 안 받습니다.”
“부팀장에게 해 봐.”
잠시 후.
“안 받습니다. 최근 회사 캠페인 때문에 다들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이것들이!”
오 회장은 격노했고.
고 차장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근태 시간을 지키자는 전사적 캠페인을 하고 있어도, 언론사 기자를 상대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팀은 항상 퇴근이 늦었다.
그런데, 서로 맞추기라도 한 듯 오늘은 모두 일찍 퇴근하고 자리에 없었다.
또한, 고 차장은 해당 보고서를 퇴근 시간에 맞춰서 가지고 왔다.
뭔가 이상함을 오 회장이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회장님, 차 대기 시키겠습니다.”
“······.”
“혹시 내일 윤리경영위 참석하기 곤란하시면······.”
오 회장은 고 차장의 말을 끊었다.
“무슨 소리야. 무조건 참석해야지.”
***
다음날.
지혁은 평소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홍 팀장님? 접니다.”
[예! 비서실장님, 안녕하십니까]
“어디세요?”
[회의 준비 중입니다.]
“네. 어제 회장님 안 만나셨죠?”
[네. 지침 주신대로 어제 커뮤니케이션팀 전원 칼퇴근했습니다. 6시 좀 넘어서 고 차장님에게 전화 왔었는데. 퇴근 이후에 회사에서 오는 전화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네, 잘하셨습니다.”
홍 팀장은 지침을 잘 수행해주었고.
지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회의실에 계신 건가요?”
[네. 회의실입니다.]
“도착한 임원들 계십니까?”
[음······ 지금 세 분 앉아계시네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늘 보고 자료에 관한 내용은 회의 시작 전까지 조금도 흘리면 안 됩니다.”
[아, 안 그래도 선도증권 대표님께서 도대체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셔서, 세팅 끝나고 말씀드린다고 했는데.]
“절대로 얘기하면 안 돼요.”
지혁은 정색하여 말했다.
“지금 어설프게 행동하면, 홍 팀장님도 위험해집니다. 누구도 믿으면 안 돼요.”
[······.]
“선도증권 대표님이 자꾸 캐물으시면, 비서실장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하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지혁은 시계를 본 뒤 말했다.
“저 지금 전철역에서 막 나왔거든요. 10분 뒤면 도착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뚝.
전화를 끊고, 지혁은 걸음을 빨리했다.
‘마지막이 중요해.’
마지막 집중력 부족으로 잘 준비해온 일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위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쓰리고 이후 피박처럼 말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크게 한번 뜨고.
발끝에 힘을 줘서 힘차게 걸었다.
선도본관 정문 도착.
‘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 부회장.
지금은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물에 들어온 먹잇감을 보는 건 반가운 일이니까.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막 차에서 나온 오 부회장에게 다가가 인사했고.
오 부회장은 흠칫 놀라서 지혁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뭐냐?”
“출근 중이죠.”
“걸어온 거야?”
“이 세상엔 대중교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고.
오 부회장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옆에 있던 추 이사가 지혁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추 이사님?”
지혁은 빙글거리며 말했다.
“이동하신 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거 같던데.”
“······.”
“최근에 제가 좀 탄복했습니다. 인재를 빨리 알아보지 못했던 게 아쉽네요.”
뼈 있는 칭찬이었고.
추 이사는 고개만 살짝 숙이고, 묵묵히 지혁의 말을 들었다.
오 부회장은 지혁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아.”
지혁을 바라봤다.
“너 무슨 꿍꿍이냐?”
“네?”
“오늘 자리 네가 만든 거 아니야?”
“아닌데요.”
지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홍 팀장이 초대하지 않았나요? 저도 오늘 회의 참석자로 가는 건데.”
“······.”
“저도 궁금합니다. 주인공께서 무슨 일을 벌이셨기에 위원회 소집이 되었는지.”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뭔지는 몰라도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죠. 그게 공정 아니겠습니까?”
혈압이 올라서 오 부회장의 얼굴이 벌게지려는데.
추 이사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부회장님. 가시죠.”
***
오 부회장 집무실.
선도본관에는 오 부회장의 집무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어젯밤, 추 이사의 연락을 받은 후, 왠지 모를 불안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회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집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추 이사에게 물었다.
“얘기 들은 게 전혀 없다고?”
“네. 참석자와 윤리경영위 회의 소집이라고만 전해 들었습니다.”
“회의 안건은 청주공장 할머니 폭행 건이 맞고?”
“네······.”
“그게 무슨 폭행이라고. 어차피 합의 다 하고 끝난 일을.”
추 이사는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 이슈의 출처가 커뮤니케이션 팀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하게 연락을 돌려봤지만, 아무도 받지를 않더라고요.”
“흠······.”
지금 회의실에서 준비 중인 홍 팀장을 찾아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답답하네.”
오 부회장은 머리를 굴리다가.
“혹시 할머니 밀쳤던 영상이 밖에 돌고 있는 건 아닐까?”
“저도 혹시나 해서, 어제 너튜브 뒤져봤는데,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그럼, 뭐 회의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네.”
오 부회장은 피식 웃었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가 날 어쩌겠어. 건방진 자식.”
“부회장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추 이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고.
오 부회장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래? 갑자기.’
“은연중에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
“위기라는 걸요.”
오 부회장은 추 이사의 말을 부인하지 못했다.
“실체를 알 수 없기에 더 위기입니다. 이건 분명 계획된 일이에요.”
“그럼 어떡하라고. 겁먹고 있으라는 건가?”
추 이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신 바짝 차리시고, 감정을 자제하셔야 합니다.”
“······.”
“냉정하게 말씀드려서 지금은 한번 맞고 지나가야 할 상황 같은데······.”
불쾌함에 오 부회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떤 압박이 들어와도 말을 돌리십시오.”
“······.”
“나중을 기약하듯 애매모호하게 답변하시고, 딱히 할 말이 없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혹은 모르겠다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오 부회장은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해? 죄지었어?”
“부회장님.”
추 이사는 그를 힘주어 불렀다.
“부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저도 잘 압니다만.”
다른 사람 말 더럽게 안 듣는 성향을 말하는 거였다.
“이번엔 제 말을 꼭 따라주셔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위기입니다.”
“······.”
오 부회장의 표정은 누그러졌지만, 알겠다며 대답하진 않았다.
***
선도본관 대회의실.
지혁은 먼저 자리해 있었는데.
평소 분위기와 좀 달랐다.
시종일관 입꼬리에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매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잔뜩 벼린 날카로운 칼 같았다.
선도물산 시절, 칼춤 추던 오 팀장의 모습이었다.
덜컹.
문이 열리고, 오늘의 주인공 오 부회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뒤에 추 이사가 따랐다.
“추 이사님이 들어와도 됩니까?”
지혁은 곧바로 제재했다.
걸림돌이 될만한 건 처음부터 떨어뜨려 놓고 싶었다.
오 부회장이 말했다.
“내 비서로서 들어오는 건데, 문제 있어?”
추 이사도 입을 열었다.
“회의 서기도 있는데요. 저도 그런 존재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팽팽한 분위기.
회의 시작 전부터 지혁과 오 부회장과 신경전을 벌였고.
다른 임원들도 개의치 않는 모습에, 지혁은 한 걸음 물러났다.
“두 분······ 정말 한 몸 같네요. 한 시도 떨어지질 않아.”
지혁은 한 마디 깐족거렸고.
오 부회장은 쌍심지를 켰다.
“이 자식이······.”
“부회장님, 앉으시죠.”
옆의 추 이사가 그를 말리며 자리에 앉혔다.
[회장님 입장하십니다!]
문밖에서 고 차장의 외침이 들렸고.
벌떡!
회의실에 모인 전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 뚜벅.
80세 고령의 노인.
발걸음은 힘찼고, 눈빛은 또렷했다.
그의 위엄에 모두 머리를 숙였으며.
오 회장이 자리에 앉은 후, 한참 뒤에야 참석자들은 자리에 앉았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빨리 시작하게.”
스크린 앞에 선 홍 팀장은 오 회장을 향해 묵례한 뒤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미래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 홍지원 팀장입니다.”
참석자들은 그녀에게 집중했다.
“우리 팀에서 온라인 유력 커뮤니티인 ‘인사이드 갤러리’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발견했고요. 언론사로 퍼지면 그룹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어, 그룹 윤리경영팀에 문의했고. 지침에 따라 윤리경영위 소집하여 처리방안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오 부회장은 시종일관 똥 씹은 얼굴이었고, 참석자들은 심각했다.
“외부 커뮤니티에 대한 소개가 필요해서, 홍보팀장인 제가 발표해야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바로 화면 보시겠습니다.”
픽!
[인사이드 갤러리.]
“지금 보시는 건 캡처된 화면이 아니라, 지금 접속한 화면입니다.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중심지로 불리는 커뮤니티 1위 사이트로, 10~30세가 주 이용 연령자여서 임원분들은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이후, 인사이드 갤러리를 잘 모르는 임원들을 위해 간략한 설명을 하였고.
“인물과 관련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일들은 인사이드 갤러리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곳엔 다양한 주제별 커뮤니티가 있는데요.”
픽!
화면이 바뀌고.
[재벌 2세 마이너 갤러리]
“오늘 회의에서 주목할 커뮤니티입니다. 일단, 지금 올라와 있는 게시글 보시면요.”
아직 제목만 보일 뿐인데.
『오진양은 양아치인가 개새끼인가.』
『부모 잘 만난 게 자랑임? 그것도 능력임?』
『할머니한테 힘 자랑하냐? 그렇게 막 밀쳐도 돼?』
『대한민국은 계급사회라는 걸 잘 보여준 것임.』
『위아래도 없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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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오 부회장은 입술을 덜덜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