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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83화 (183/301)

183. 건수 (2)

“아, 네.”

“근데, 뭘 굳이 만나자고 하세요.”

카코야끼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자료만 보내시면 되지.”

“······.”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닌데.”

“아······ 그게 선생님께는 간단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인사실장은 그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에 좀 놀랐다.

“저도 일련의 과정을 알아야 만약을 대비할 수 있잖아요.”

카코야끼는 피식 웃고는 인사실장에게 말했다.

“우리 갤러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죠?”

“활동은 별로 안 했지만, 눈팅한 지는 꽤 됐어요.”

“3개월이 꽤 된 건가요?”

인사실장은 흠칫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알지?’

인사실장은 항상 유동닉 ‘ㅇㅇ’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실 올린 글이라 봐야 몇 개 되지도 않고, 눈팅이 대부분이었다.

‘영맨’이라는 닉네임은 카코야끼와의 만남을 위해 급하게 지은 거였다.

근데도, 카코야끼는 인사실장의 활동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얼굴 봐야 하는데, 제가 그 정도도 조사 안 해봤을까요. 어려운 일도 아니고.”

“······.”

“어쨌든, 무슨 제보를 하시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목적은 뻔하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신분이 밝혀질까 봐 염려하시는 거 같은데, 저희 팀이 움직이면······.”

“팀이요?”

“이게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코야끼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화력을 집중하여 흔적도 안 남게 씹어버리면, 선생님께서 염려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서류 봉투를 집은 인사실장의 손에 땀이 뱄다.

‘이거 실수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팀이 있다고 하질 않나, 카코야끼의 눈빛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 혹시 궁금한 게 있는데.”

카코야끼가 인사실장에게 물었다.

“혹시 정치권이신가요?”

“네?”

인사실장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카코야끼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통 이런 제보는 정치 쪽에서 오거든요. 근데, 분위기가 좀 달라 보여서.”

“왜 정치권에서 재벌 2세한테······.”

카코야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시선 돌리기 좋지 않습니까? 대중들은 재벌 2세 얘기에 관심이 많으니까요. 태생부터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는 마음? 상대적 박탈감?······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아······.”

인사실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정치 쪽은 아니고요,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아, 네. 그러시겠죠.”

예상한 답변이라는 듯, 카코야끼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인사실장은 망설이다가, 서류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요즘 장작 넣고 있는 ‘청주공장 할머니 폭행사건’에 대한 자료입니다. 잘 활용하셔서 정의 구현 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정의 구현이요.”

카코야끼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네, 꼭 해야죠. 어떤 자료일지 기대되네요.”

그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인사실장은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러고 사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뭐 내 알 바 아니지.’

“카코야끼님.”

“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수위 조절해주십시오.”

“네?!”

카코야끼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올리며 반문했다.

“정의 구현 해달라면서요.”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장작만 조금씩 넣으시다가, 저희가 신호를 드리면 그때 기름 부어 주십시오.”

“······.”

카코야끼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죠. 제보자 요청이니.”

“감사합니다. 활동비라도 좀 지원하겠습니다.”

인사실장은 확실한 약속을 위해,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려는데.

“꺼내지 마세요.”

카코야끼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받으면 범죄입니다.”

“네?”

“그러면 금품 받고 여론 조작하는 거잖아요.”

“아······.”

카코야끼는 웃으며 말했다.

“저의 순수한 취미활동을 변질시키지 말아 주세요.”

‘순수한 취미활동?’

인사실장은 카코야끼를 희한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냥 미친놈 같았다.

***

카코야끼가 카페를 나간 뒤.

지혁은 곧바로 인사실장에게 다가왔다.

“얘기 잘 됐죠?”

“아, 네.”

“어서 일어나세요.”

지혁은 인사실장의 팔을 잡아끌었는데.

“네? 갑자기 어딜.”

“어디긴요. 저 아저씨 뒤밟아야죠.”

“······.”

“중요한 자료를 줬는데, 아지트가 어딘지는 알아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

“수틀리면 덮쳐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혁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얘기였는데.

인사실장으로서는······.

‘카코야끼는 미친놈인 게 확실해 보이고, 비서실장님도 정상은······.’

주차장에서부터 카코야끼의 차를 따라가며,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눴다.

“어떻던가요?”

지혁의 물음에 인사실장은 대답했다.

“그냥······ 좀 이상합니다.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나.”

“······.”

“동공이 자주 확대되었다가 축소되고, 시선도 제대로 못 마주치더라고요.”

지혁은 이 얘기를 듣고 생각했다.

‘심리가 좀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건데······.’

“꼼꼼히 보셨네요.”

이렇게 묘사할 정도로 관찰했다는 것도 평범한 건 아니었다.

“그냥, 잘 관찰하라고 하셔서.”

인사실장은 신입, 경력, 정직원, 계약직 등 선도물산의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자리에 있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관찰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부터 지혁에게 올인했던 것도 그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일은 잘할 것 같은데. 말씀 주신대로 수위 조절이 관건일 것 같습니다.”

“돈은 안 받는 거 같던데.”

“네,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 그러는 것 같습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 그 소리 들으니 좀 안심이 되네요.”

“네?”

“카코야끼라고 했죠? 완전히 정신 놓고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요.”

카코야끼의 차는 주택가로 들어섰고.

약 20미터 뒤에서 계속 그 차를 쫓았다.

“자주 확인해주세요. 돌발행동하지 않는지.”

“네, 알겠습니다.”

지혁은 인사실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승진하신 지 얼마 안 되셔서 바쁘실 텐데. 수고가 많으시네요.”

“어유! 아닙니다! 비서실장님께서 특별임무를 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하하.”

인사실장은 큰 소리로 웃었고.

지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시켜주십시오. 무엇이든 자신 있습니다!”

‘아······ 하여간 부담스러워.’

그때, 카코야끼의 차가 멈췄고.

지혁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차에 계세요. 집 주소는 제가 미행해서 확인할 테니까요.”

“계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어설프게 하다가, 걸리면 골치 아파집니다.”

지혁은 차에서 내렸다.

***

선도전자 화성 캠퍼스 부회장실.

오 부회장은 추 이사와 함께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참, 일 얘기는 안 하고, 요즘 이게 뭐 하는 건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지혁의 이름을 계속 거론하며 생각해야 하는 게 짜증 났다.

추 이사는 그런 오 부회장을 달랬다.

“일은 비서실장 건 다 정리된 후에 챙기셔도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업무능력은 워낙 탁월하시니까요.”

부회장이 모두 한 일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10여 년 전, 그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선도전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 사업에서 큰 약진을 이루었다.

“힘드시겠지만 집중하셔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래······.”

똑똑.

[이형주입니다.]

추 이사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침 오네요.”

덜컹.

이형주는 오 부회장실로 들어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 어서 와요.”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지금까지 지혁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준 건, 딱 한 번 있었는데, 이형주는 그 일을 맡아준 사람이었으니까.

“앉아요.”

“네.”

추 이사는 대뜸 이형주에게 물었다.

“요즘 비서실장님 어때요?”

“잘 지내십니다.”

이형주는 미래기획실에서 근무하며, 추 이사의 지시를 받아 근거리에서 지혁을 관찰하고 있다.

“뭔가 특별한 움직임은 없어요?”

미래기획실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지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는 없었다. 특히, 오 부회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오 부회장님이 회장님 자제분이시다 보니, 실력으로 승부 보는 게 유일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력?”

그의 말에 오 부회장과 추 이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네. 업무능력을 보여서 부회장님과의 실력 차이를 보일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걸로 회장님께 어필할 생각이고요.”

추 이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으나.

오 부회장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웃기고 있네. 회사 경력이 얼마나 된다고. 회장님 수발이나 드는 주제에, 뭐? 실력으로 어쩐다고?”

오 부회장은 이형주로부터 전해 들은 지혁의 발상 자체가 기분 나빴다.

“그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요?”

추 이사는 내용보다도 출처에 더 집중했다.

이형주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말했다.

“제가 비서실 의전팀장인 윤현성 부장과 예전에 한 팀에서 근무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차 한잔하다가 얘기 들었습니다.”

“그 사람, 비서실장 라인 아니에요?”

추 이사는 눈을 빛내었고.

꿀꺽.

이형주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그런 얘기를 아무한테나 쉽게 한다고?”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지만.

이형주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답변했다.

“저와도 그 못지않은 인연이 있습니다. 이번 블러인드 건에서도, 비서실장의 공식 사과 전에 윤 팀장과 사전 접촉이 있었고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일도 잘 풀렸으므로, 원만히 지내고 있습니다.”

“흠······.”

오 부회장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추 이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틀린 말 아니잖아. 너무 예민하게 듣지 말고, 우리 식사나 같이합시다.”

오 부회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고.

추 이사도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

후유-

이형주는 짧은 한숨을 쉬고, 지혁의 지시를 떠올렸다.

‘이 차장님, 시선 분산해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이형주는 지혁이 정확히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모른다. 그런 얘기까지 해주진 않으니까.

다만, 지혁은 이형주에게 이기는 편에 서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었고.

이형주는 지혁의 뒤에 서기로 했다.

***

며칠 뒤.

최 부회장은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하여간, 어려운 건 꼭 날 시켜. 도대체 누가 실장이고, 누가 실차장인지······.”

‘부회장님, 아무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말리셔야 하지 않을까요.’

오진원에 등쌀에 못 이겨, 최 부회장은 비서실장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형이 돼서 그 정도 얘기도 못 해? 쯧쯧.”

지혁이 하도 기를 죽여 놓은 상태라, 오진원은 지혁을 피하려 했다.

똑똑.

최 부회장은 노크한 뒤, 바로 비서실장실로 들어갔다.

“어? 부회장님.”

“다행히 있었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를 맞았다.

최 부회장은 견제해야 할 가족도 아니고, 선도그룹에서 인정하는 최고 실력자였기에 항상 예의를 갖췄다.

“어쩐 일이세요?”

“어,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최 부회장은 문을 닫은 후, 앉지도 않고 말했다.

“지금 자기가 꾸미는 일, 관두자.”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폭과 다를 게 뭐야.”

피식.

지혁은 쓴웃음을 짓고는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런 게 실전 경험이 있느냐의 차이인가.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총 쏠 때 되면 망설이는 게······.”

“자네 지금 뭐라고 그랬나?”

“언제는 저 보고 욕심 좀 가지라면서요.”

“······.”

“욕심을 가졌고, 쟁취하려고 수를 쓰는 건데, 뭘 망설입니까? 인제 와서 마음이 약해졌어요?”

지혁의 말에 최 부회장은 멈칫했다.

“제가 회장 되길 바라는 게 맞긴 한 겁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최 부회장은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쳤지만.

지혁은 개의치 않고 차갑게 대꾸했다.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어요.”

그는 핸드폰을 켜서 최 부회장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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