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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70화 (170/301)

170. 존재감 (1)

지혁은 백미러로 보이는 황 차장의 푸근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

“하하.”

황 차장은 황당해서 되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웃기잖아요. 왜 이렇게 경직되어 있어요? 둘이 있는데.”

황 차장은 황당한 미소를 지었다가 말했다.

“경직 안 되게 생겼습니까? 오 회장님 다음가는 선도그룹 최고 실력자신데.”

지혁은 최 부회장, 오진원과 뜻을 합친 뒤.

그룹을 빠르게 장악해 갔다.

지분, 자산 등의 실물적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직원 여론과 관계사 대표들의 지지는 확실하게 다졌다.

지혁은 사람의 입만큼 무서운 건 없다고 믿고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명실상부한 실력자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에이~ 띄워주지 마요. 성준이 형.”

“어이쿠. 형이라뇨. 이제 그런 말씀 마십시오. 황송합니다.”

“형 맞잖아요~ 하하.”

“하하.”

두 사람은 함께 깔깔대고 웃었고.

지혁은 빙그레 미소 지은 뒤 말했다.

“이렇게 가식 없이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

“황 차장님. 제가 지금 전투에 돌입했다는 거 알고 있죠?”

황 차장은 백미러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회사에서 지혁을 가장 오랫동안 본 사람이다.

요즘 지혁의 상태가 어떤지 모를 리 없다.

지혁이 말했다.

“그때 생각나네요. 팍스버거 콜라보 설문조사 때문에 인천 갔을 때요. 대출업자 처음 만났을 때, 황 차장이 저 잡아줬었잖아요.”

“······.”

당시에 황 차장은 지혁이 밀쳐서 넘어지는 줄 알고 잡은 거였지만, 결론적으로 지혁이 품에서 칼을 빼낼 뻔한 걸 막아주었다.

그때 황 차장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지혁은 꽤 큰 실수를 할 뻔했다.

“그랬었나요? 제가 왜 잡아드렸었죠?”

황 차장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그 말엔 대꾸하지 않고 말했다.

“혹시 제가 괴물이 되거든, 꼭 말씀해 주세요.”

“네?”

“회사에서 저 막아줄 사람은 황 차장님밖에 없습니다.”

황 차장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님······.”

그는 백미러로 지혁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 무조건 비서실장님 편입니다. 힘내십시오.”

뭉클.

‘참, 말 한마디를 해도······.’

어느덧 회식 장소에 도착했다.

***

-비서실장님!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에헤이. 대표님! 이번엔 제 차례에요.

-거기 언제까지 자리 차지하고 있을 건가요? 좀 돌아가면서 앉읍시다.

중역 회식 자리.

관계사 대표들은 지혁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관심받으려고 노력했다.

임원을 하려면 출중한 업무능력 외에 운과 정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물며 관계사의 대표까지 오른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권력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자들이었고.

그들의 감과 정보를 동원해 최근 조직의 힘이 어느 쪽으로 모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비서실장님. 우리 회사에도 방문하셔서 컨설팅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도요. 얼마 전 선도호텔 방문하신 이후에 좋은 성과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옆에 선도호텔 대표가 있었다.

“보통 컨설팅 온다고 하면 현장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본사 지침만 얘기하거든요. 비서실장님은 달라요.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컨설팅을 해주시더라고요.”

지혁은 별다른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문제를 보는 직관이 어찌나 뛰어나신지.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참 놀랐습니다. 하하. 다녀가신 후에 호텔 매출도 많이 좋아졌고요. 감사합니다. 비서실장님.”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상식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린 거 말곤 없는데요.”

“무조건 본사 지침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옆에 있던 최 부회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비서실장이 얼마 전까지 현장 실무자로 일해서, 감각이 남아있나 봐요. 그렇죠?”

각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고.

최 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비서실장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저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진원도 거들었다.

“맞아요. 저도 비서실장한테 많이 배워요. 비서실장! 컨설팅에 탁월한 능력이 있으신 거 같은데, 차라리 미래기획실로 오는 거 어때?”

지혁이 웃으며 말했다.

“실차장님 아래로요?”

“에이~ 아니지. 내가 배우겠다고 했잖아.”

최 부회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실차장이 날 보내려고 하네? 사람 앞에 두고 너무 하는 거 아닌가? 하긴 은퇴할 때가 되긴 했죠?”

이 말에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고.

지혁도 싱긋 미소 지었다.

그때 선도증권 대표가 한마디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실차장님도 우리 회사 방문하셔서 중요한 거 집어 주셨거든요.”

지혁의 눈썹이 올라갔고, 오진원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요즘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에 관심이 많아서, 경영전략 수립 중인데. 실차장님이 그쪽 방면으로 해박하시더라고요.”

지혁의 시선이 싸늘해졌고.

오진원은 그의 눈치를 보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유, 대표님. 해박하긴요. 그냥 봉사활동 했던 경험으로 한 말씀 드렸던 것뿐인데.”

“그게 실무경험 아닙니까. 큰 도움이 됐습니다. ESG로 기업 이미지 좋게 하려다가 똥볼만 찰 뻔했는데. 하하.”

지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실차장님, 그런 재주가 있으셨어요?”

이 물음에, 오진원은 눈에 띄게 난감해했다.

“재주라니, 아니야. 그냥, 한마디 한 거야.”

다른 대표도 오진원 일화에 대해 한마디 거들려 했고.

“실차장님께서 우리 회사에 방문하셨을 때도······.”

오진원은 얘기가 시작되기 전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저쪽 가서 얘기 좀 나눠야겠네요. 얘기들 나누세요.”

지혁은 그런 오진원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주시하고 있는데.

덜컥.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오 부회장이 나타났다.

***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관계사 대표들은 오 부회장의 등장을 불편해했다.

오진원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관계사 대표들은 그를 따랐었다.

흔들림 없는 후계자이며, 그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그랬던 것인데.

오진원이 나타난 이후.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지혁이 급부상하고 있다.

관심받을 때 잘했어야 했는데, 이미 인심을 잃은 오 부회장은 관계사 대표들에게 환영받기 어려웠다.

‘쟤가 왜 저기 앉아 있어?’

오 부회장은 들어오자마자, 상석에 앉은 지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장 윗사람이 앉아야 할 가운데 자리에 최 부회장이 아닌 지혁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자신만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최 부회장은 무슨 꿍꿍이인 거지.’

오후 중역 회의에서 오 회장의 의도를 모를 사람이 아님에도, 지혁을 두둔하는 이견을 냈었다.

그때도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 모인 자리에서도 상석을 양보한 모습을 보니, 의아함이 더 강해졌다.

“부회장님, 오셨어요?”

지혁이 오 부회장을 부르며 정적을 깼다.

“회장님은요? 함께 오시는 거 아니에요?”

“회장님은 피곤하시다고, 오늘 참석 안 하신다더라.”

“아, 네.”

지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회장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자리가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하하.”

자신의 앉던 자리를 내주었다.

상석의 자리를 내주었으나, 쓰던 자리다.

‘적의 의지는 싸우기 전에 끊어 놓는다.’

지혁의 전투는 이미 예전부터 시작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 계속 오 부회장을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면, 허점을 노출하며, 기회를 못 보기 때문이다.

‘먹던 자리에 앉으라고? 이 자식이 미쳤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회식 자리는 싸늘해졌으며.

오 부회장의 눈에 점점 핏발이 서고 있었는데.

지혁은 피식 웃고는 종업원을 불렀다.

“아주머니! 여기 자리 좀 깨끗이 치워 주세요.”

종업원은 지혁이 앉던 자리와 그 옆의 오진원 자리를 치워 주었고.

지혁은 가운데 자리를 가리키며 오 부회장에게 말했다.

“부회장님. 앉으시죠.”

“흠. 그래.”

오 부회장이 앉은 뒤, 지혁은 바로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저 옆에 앉아도 되죠?”

“······.”

오 부회장은 지혁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사람 좋게 웃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지혁에게서 위압감을 느꼈으며, 그의 말을 거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해라.”

“하하. 네. 부회장님이랑 술 한잔해야겠네요. 이렇게 제대로는 처음이죠?”

지혁은 오 부회장의 술잔을 채워주었는데.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말했다.

‘안 마시면 뒤진다.’

***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법.

아무리 지혁이 웃으며 대해줘도.

오 부회장은 이 자리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편했다.

‘왜 불편하지. 왜 불편할까.’

가시방석 위에 앉은 기분이었고.

지혁이 따라주는 술이 마시면 안 되는 독주 같아 보였다.

“부회장님, 어서 드세요. 안주 좀 가져다드려요?”

지혁은 음식까지 집어 주려 했고.

오 부회장은 진심으로 싫었다.

‘음식은 좀 편하게 먹자. 불편한 건 술이면 족해.’

“아니야. 됐어. 내가 가져다 먹을게.”

“앞접시 주세요. 멀잖아요.”

지혁은 오 부회장 자리에 놓인 앞접시를 들었고.

“아, 됐다니까!”

오 부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고.

술자리 분위기는 싸해졌으며,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회식 자리에서도 지랄이네.

-너튜브 영상 잘 찾아보면 회식 자리에서 실수한 영상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오 부회장 스스로도 순간 소리 지른 것에 놀랐다.

하지만 사과는 하기 싫었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내버려 둬.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하하. 알았어요.”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들었던 앞접시를 오 부회장 앞에 다시 두었다.

최 부회장은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지혁의 계산된 행동이란 걸 눈치채고 있었다.

‘하여가 독해. 저런 심리전은 어디서 배웠을까.’

새삼, 지혁과 같은 편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오 부회장이 편하게 식사 좀 하려는데.

“모두 주목해주세요!”

화들짝.

오 부회장은 숟가락을 들려다가 지혁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오늘 회장님께서 안 계시니, 부회장님께서 대표로 건배 제의하시겠습니다.”

“······.”

부회장의 건배 제의라는 말에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다.

오 부회장도 내키지 않았으나, 이건 명목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할까.’

분명 필요한 일을 하는 건데도, 지혁이 조종하는 대로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 하나에 자꾸 깜짝 놀라는 자신도 싫었다.

모두의 이목이 쏠렸으나.

오 부회장은 꿈쩍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고.

“부회장님?”

지혁은 오 부회장을 향해 눈짓했고.

오 부회장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젠장, 언젠 좀 먹으라며.’

회식 장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피곤했다.

술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하는 것 같았다.

“뭐 하세요? 다들 기다립니다.”

지혁이 관계사 대표들을 향해 술잔을 올리자, 모두 따라서 술잔을 들었고.

오 부회장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지혁은 오 부회장 귀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건배사 멋지게 한번 해보시죠.”

“······.”

“차기 회장님.”

부릅!

오 부회장은 눈을 부릅뜨고 지혁을 바라봤다.

분명, 표면적으로 아양이지만.

속뜻은 협박이었다.

꿀꺽.

오 부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지혁의 속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놈이구나.’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확실히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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