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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67화 (167/301)

167. 자살골 (2)

몇 주 전.

오 부회장은 선도전자 청주공장을 방문했었다.

분기마다 현장 방문을 하는데, 그는 성격이 급진적이어서 그렇지, 본분엔 충실한 사람이었다.

한여름. 날이 꽤 덥고 습해서 짜증 지수가 높은 날이었으나.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정문 앞에서부터 피켓을 든 사람들이 오 부회장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 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희생!

- 진상규명위 구성하라!

공장 근로자 중 병을 얻은 사람들에 대한 시위였는데.

명백한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사측에서는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았으나, 근로자들은 보상해달라는 입장이었다.

오 부회장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들 앞을 지나갔다.

‘대단하다. 그 정성으로 일을 하지.’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다.

어딜 가나 보이는 사람들이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뚫린 귀는 어쩔 수 없었다.

-살인마!

-오 부회장은 살인마다!

-내 딸 살려내라!

오 부회장은 힐끔 봤는데, 한 아주머니가 영정사진을 들고 있었다.

‘대표이사면 다 책임져야 하는 거야? 왜? 천국 가는 것도 책임지라고 하지?’

-살인마!

피켓 시위자들은 오 부회장을 따라오며 소리쳤고.

더운 날씨 탓인지, 오늘따라 좀 신경이 쓰였다.

-무능한 오 부회장은 물러나라!

-오 회장님은 이렇지 않았다!

오 부회장의 얼굴이 천천히 붉어졌고.

조금씩 게이지가 차오르고 있었다.

옆에서 수행 중인 비서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주변 경계를 철저히 했다.

꽤 경력이 있는 시위자들이기에, 분위기 파악할 줄 알았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던 오 부회장이 오늘따라 자신들의 말을 신경 쓰고 있음이 느껴졌고, 더 목소리를 크게 냈다.

-살인마!

-무능한 살인마!

-선도전자에 오진양은 필요 없다!

부글부글.

오 부회장은 크게 심호흡했고.

옆에 있던 비서가 말했다.

“부회장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

“걸음을 빨리하시는 게.”

“내가 왜?”

“······.”

“내가 왜 걸음을 빨리해야 하는데? 뭐 죄지었나?”

그때.

흔들리고 있던 오 부회장 성질에 비수가 꽂혔다.

-비서실장님이 훨씬 낫다!

-오지혁 실장님 아래서 일하고 싶다!

그 순간.

오 부회장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 개새끼들이······.”

오 부회장. 결국 꼭지가 돌았다.

***

비서실장 오지혁.

최근 오 부회장에게 가장 거슬리는 이름이었다.

회장 비서실과 지주회사인 선도물산을 오 부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한 남자.

그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던 오 부회장으로서는 지혁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왜 그 자식 이름을 여기서도 들어야 하지?’

최근에 지혁과 비교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비교조차 되는 게 오 부회장은 너무 싫었다.

게다가, 비교하면서 오 부회장의 부족한 면을 부각하고 있으니······.

지금 피켓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하고 있었다.

-욕하지 마라!

-직원이 하수인이냐! 욕하지 마!

-나도 욕할 줄 알아! 개새끼야!

오 부회장은 시위자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저 인간들이 오늘 뭘 잘못 처먹었나.”

“부회장님. 무시하고 들어가시죠.”

오 부회장은 한숨을 쉰 후, 이를 갈며 다시 건물 안으로 향했는데.

-비서실장님은 직원을 존중할 줄 안다!

-당신은 그룹에 있으면서, 도대체 한 게 뭐야!

-선도전자 대표이사! 교체하라!

꿈틀.

또 지혁의 이름이 들리자 멈칫했고.

시위자들은 그럴수록 더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대표이사! 교체하라!

-비서실장님! 와주세요!

-오지혁! 오지혁!

심지어 지혁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약점을 집중 공격당한 오 부회장은 더 참기 힘들었고.

결국, 그의 급진적인 성향이 나왔다.

“이봐.”

“네.”

오 부회장의 부름을 받은 수행비서가 대답했다.

“다 치워버려.”

“네?!”

“저놈들 다 치워버리라고. 정문 밖으로.”

시위하고 있는 그들도 엄연히 선도전자의 직원들이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비서실 직원들이 머뭇거리자.

“내 말 이해 못 했어? 치우라고.”

“······.”

“말로 안 되면 그냥 밀어.”

“부회장님. 그건 좀······.”

-오지혁! 오지혁!

-오진양은 사퇴하라!

시위자들은 계속 소리 지르고 있었고, 오 부회장은 열받아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시 불이행?”

“······.”

그때, 얼마 전까지 회장 비서실에서 의전팀장을 하던 추 이사가 오 부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추 이사!”

“네!”

그는 좌천당하다시피 부회장 비서실로 온 거였고,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었다.

“저기 좀 정리하세요.”

“······.”

“기회 두 번 안 드려요.”

지리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추 이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젊은 비서 몇 명 대동하여, 시위자들에게 다가갔다.

“나가세요!”

-어딜 나가! 내 회산데!

-어? 어?! 지금 밀었어!

추 이사는 오 부회장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기회는 두 번 안 준다.’

추 이사 또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가라고!”

추 이사는 과격하게 밀치며 앞장섰고.

그 모습에 다른 비서들도 용기를 내어 따랐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방아쇠가 한번 당겨지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선도전자 청주공장 정문 안.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

-밀지 마!

-어?! 지금 쳤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입술에 피 흘리는 사람.

여기저기 셔츠 단추가 뜯어지고.

비서실 직원들의 머리가 헝클어지며.

엎드려서 우는 사람도 보였다.

청주공장 정문 안은 순식간에 개판이 되었으나.

그래도 오 부회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눈이 돌아가 있기 때문이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짜증은 있는 대로 났고.

오늘따라, 시위자들이 오 부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

게다가, 추 이사는 자기 자리가 걱정되어서인지 유독 과격하게 진압했다.

사고는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일어난다고 하는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고.

지혁으로선 행운이었다.

“이놈아!”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 할머니가 오 부회장에게 다가가 소매를 잡았다.

“우리 딸 살려내! 살려내라고!”

“······.”

비서실 직원들은 다른 시위자들과 육탄전을 벌이느라, 오 부회장을 신경 못 쓰고 있었다.

“살려내! 이놈아!”

“이거 놔요.”

오 부회장은 짜증 섞인 얼굴로 짓이기듯 말했다.

“살려내라고!”

“이거 놔!”

실랑이를 벌이다가, 오 부회장은 거칠게 팔을 뿌리쳤고.

할머니는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오 부회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소매에 더러운 거라도 묻은 듯 털고 있는데.

-여사님!

-정신 좀 차려 봐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 부회장이 뿌리쳐서 쓰러진 할머니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오 부회장은 시선도 안 두고 있었는데.

-이상해! 숨을 안 쉬어!

-할머니! 할머니!

-심폐소생술 할 줄 아는 사람!

혼잡하던 분위기가 차분해지면서, 시위자들은 할머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비서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할머니 주변으로 모였고.

오 부회장은 그때서야 본능적 직감이 들었다.

‘엿됐다.’

-구급차 불러! 어서!

-빨리요! 빨리!

시위자들이 우왕좌왕하는 중에, 오 부회장이 나섰다.

“모두 멈추세요.”

그리고 가까운 비서를 불렀다.

“이봐, 빨리 할머니 모시고 병원으로 가.”

“네? 구급차는······.”

“그럴 시간이 어딨어?! 내 차로 가! 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비서 두 명은 할머니를 들쳐서 재빨리 정문 앞에 세워진 오 부회장 차로 옮겼다.

사람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멍하니 있었고.

오 부회장이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회사 내부의 일은 내부적으로 처리합시다.”

“······.”

“할머니 건강은 제가 직접 챙길 테니까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지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겁니다.”

오 부회장은 이 와중에 내부 단도리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들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된 후.

오 부회장은 바로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는 다행히 정신을 차렸고.

그녀가 불만을 표하지 않을 만큼, 오 부회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상해주었다.

그는 순간 이성을 잃어서 행동했었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네.’

오 부회장은 잘 마무리되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어디선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는 카메라가 돌고 있었으니까.

***

지원팀장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회장실을 나왔다.

‘아오, 빡세. 힘들어서 혼났네.’

오 회장은 너튜브 영상을 보다가 너무 격분한 나머지 중지시켰으나.

감정을 추스른 뒤,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길길이 화내고 난리를 쳤으며.

지원팀장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도, 회장실에서 벌서는 것처럼 그 화를 받아주었다.

그는 회장실을 나온 뒤 1층으로 먼저 내려갔다가, 비서실이 있는 27층으로 올라왔다.

오 부회장 관련된 일에는 항상 조심하라는 지침을 받았었고.

그래서 바로 비서실장실로 가지 않은 것이다.

똑똑.

[들어오세요.]

덜컹.

지원팀장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지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원팀장님이 수고가 많네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건데요.”

지혁은 빙그레 미소 짓고는 말했다.

“궁금합니다. 반응 어떻던가요?”

지원팀장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좋습니다.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꽤 흥분하셨었습니다.”

지혁은 우려 섞인 얼굴로 말했다.

“말씀 잘하셨네. 그거 조심해주셔야 해요. 일이 확실히 끝나기 전까지 회장님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

“무슨 일을 하든, 회장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세요.”

꿀꺽.

지원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무섭다. 무서워. 오 회장이 그렇게 잘해줬는데. 목적을 위해 그분 건강을 생각하다니.’

지혁은 목표 지상주의자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반칙 따위는 없었으며, 어찌 됐든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였다.

전투에 돌입한 이상, 그에게 승리 말고 다른 관심사는 없었다.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럼 오 부회장 곧 호출되겠네요?”

지원팀장은 질리는 얼굴로 생각했다.

‘이 와중에 웃기까지 해?’

“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좋네요.”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이제 다음 단계를 진행해야겠지.’

지원팀장은 가만히 있다가 지혁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

이 물음에, 지혁은 가만히 뒤로 돌았다.

‘헉, 뭐야.’

지원팀장은 그의 눈빛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걸······ 왜 물어보죠?”

“네, 아, 아니. 그냥 뭐 도울 게 있을까 싶어서······.”

지원팀장은 지혁의 눈을 마주하며,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도 무서웠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그가 알던 지혁으로부터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 같았다.

“지시받은 일에만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혁은 다시 뒤돌아서며 말했다.

“수고하셨고요. 이제, 나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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