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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51화 (151/301)

151. 욕심을 가져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혁은 황당했다. 방금 얘기를 못 알아들어서 묻는 게 아니었다.

“자네도 연일 오 씨 아닌가?”

“······.”

“왜 욕심을 안 가져? 오 부회장은 아니라며? 그럼 가질 만하잖아?”

‘나보고 오 부회장 자리에 앉으라는 건가?’

그런 생각, 전혀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처음 이 일을 계획할 때는 그런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회사에 다녀보니 선도그룹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한 회사였고.

오 회장과 가까워질수록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지혁은 오 회장의 친자식이 아니니까.

“괜히 하는 소리 아니야.”

최 부회장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비서실에 오기 전부터 자네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었고, 오종원 이사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특별하게 지켜보고 있었어.”

“······.”

“내 나름대로 자네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어. 아마, 자네라면 느꼈을 거로 생각하네만.”

최 부회장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불안한 부분도 없진 않아. 너무 급진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 물론 오 부회장의 급진적인 성향과는 달라.”

“······.”

“올바르고 필요한 일을 할 때 급진적이라는 의미야. 즉, 안정감이 좀 부족하다는 거지.”

지혁은 이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서 강 전무 보낼 때부터,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었군.’

“그런데, 자네를 볼수록 장점이 훨씬 더 커 보이더군. 점점 단점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말이야.”

“······.”

“뭐, 한 편으로는 이 세상에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딨겠나 싶기도 하고.”

지혁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근데, 부회장님께서 최선으로 생각하는 대안이 지금 불가능해서, 절 생각하신 게 아닌가요?”

“뭐?”

이 말에 그의 표정이 굳었다.

“킹메이커를 자처하시는 거 같은데, 저를 후보군으로 넣어주신 건 감사해요. 어쨌든 인정해주신 거니까.”

“······.”

“하지만, 꿩 대신 닭이 되는 건 싫습니다.”

최 부회장은 지혁을 무섭게 바라봤고.

지혁은 멈추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가능성이 적은 일에 기운 빼고 싶지 않습니다. 전 오 회장님의 친아들이 아니니까요.”

“······.”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저 또한 대안이 없다는 걸 느껴서 의지가 생긴다면.”

지혁은 최 부회장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제가 손을 뻗겠습니다.”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는 건 별로라서요.”

최 부회장의 표정이 흔들렸다.

선도그룹의 백전노장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

‘잠깐······ 방금 대안이 있다는 것처럼 얘기한 거 같은데?’

최 부회장은 지혁이 한 말들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자네도 혹시, 오 부회장 다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아직 없지만, 가능성을 두고 있는 사람은 있습니다. 많은 분이 찾고 있고, 지지하는 사람이요.”

최 부회장은 눈이 번쩍 떠졌고.

지혁은 그의 이름을 말했다.

“오진원.”

“무슨 소리야. 그 친구는 행방이 묘연······.”

지혁은 최 부회장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뭐?!”

최 부회장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백방으로 알아봐도 찾을 수 없던 사람을 어떻게······,’

지혁은 최 부회장의 눈빛을 읽고,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댁 가족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만났나?”

“아니요.”

“왜?”

“오 부회장이 물어보는데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인데,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알려주겠어요?”

“······.”

“차일 거 뻔히 보이는데, 들이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하.”

최 부회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오혜빈이야?”

지혁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하여간 눈치는 진짜.’

“네.”

“······.”

“대화 중에 오진원 얘기가 나왔는데, 안부 연락받았다며 잘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연락처를 안다는 소리네?”

“네.”

최 부회장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오혜빈이 생각이 바뀌었나 보군. 원래는 오 부회장을 지지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

“말을 거역하고 알려주지 않을 정도면······.”

정적이 흘렀다.

최 부회장은 생각에 빠져있었고.

지혁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진원······ 만나게 해주세요.”

“······.”

“왜 생각 없다는 사람을 그렇게 붙잡으려고 난리를 치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최 부회장은 고개를 들어 지혁을 보았다.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지혁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결정을 하게 되겠죠.”

“······.”

“오진원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지혁의 눈에서 안광이 쏟아졌다.

“가장 어려운 길을 가게 되겠죠.”

***

최 부회장은 지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술병은 아직 반도 안 비어 있었고.

안주도 대부분 남겨져 있다.

바싹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얘기를 나누느라, 입에 뭐 넣을 정신이 없었다.

“그렇단 말이지.”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최 부회장은 지혁의 뜻을 분명히 알아들었다.

오진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본인이 직접 나설 수도 있다는 것.

선도그룹에 인생을 건 최 부회장으로서는 지혁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최 부회장의 눈에는 적격한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알았어. 만나게 해주지.”

“······.”

“이른 시일 내로 일정 잡아서 알려줄 테니까······.”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자신 있게 말씀하시네요. 오혜빈이 완강해 보이던데.”

“내가 오 회장댁과 몇십 년을 알고 지낸 사인데. 그 정도 구워삶아서 정보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지.”

“그렇군요.”

중요한 얘기를 끝냈다 싶었는지, 최 부회장은 한숨을 쉬며 술잔을 비웠다.

“오진원을 만나면 어느 쪽이든 방향이 정해지겠군.”

이 말에 지혁도 싱긋 웃었다.

“그런데, 비서실장.”

“네.”

“만약 자네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오진원을 만난 후,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 부회장은 오진원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지혁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고.

“글쎄요. 그러면 골치 아파지겠는데요.”

최 부회장은 피식 웃으며 지혁의 빈 잔을 채워줬다.

“그룹 비서실장이랑 미래기획실장이 한판 붙어야 하는 상황이 오진 않겠지?”

“와~ 생각만 해도 짜릿한데요. 빅매치 아닙니까?”

“하하.”

최 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와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저도요.”

진심이었다.

최 부회장은 선도그룹에서 유일하게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권력의지 외에는 그와 맞설 명분도 없었으며.

솔직히 이길 자신도 없었다.

사원으로 시작해 부회장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오 회장과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이 말이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습니다.”

지혁이 웃으며 말했고, 최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다.

***

이틀 뒤.

최 부회장은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다.

호텔 라운지 레스토랑이었는데, 손님은 거의 없고 한적했다.

또각. 또각.

한적한 가운데, 유난히 구두 소리가 크게 들렸고.

고급스러운 금색 장식이 있는, 비교적 짧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최 부회장 앞에 나타났다.

“부회장님~ 안녕하세요.”

오혜빈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고, 최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겼다.

“어이쿠~ 어서 와. 잘 지냈어?”

“호호~ 네~”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했다.

“와~ 이게 얼마 만이지?”

“음~ 한 3년 만인 거 같은데요? 저 대학 졸업하고 잠깐 들어왔을 때 뵈었던 거 같은데.”

“그렇네. 그 정도 되었겠다. 근데, 낯설지가 않아~”

“호호. 그러니까요. 여전히 멋지시네요. 아~ 20년만 젊으셨어도.”

“하하!”

최 부회장은 오혜빈의 농담에 큰 소리로 웃었고.

오혜빈도 싱긋 웃었다.

“만나는 사람은 있어?”

“박사과정 중이고,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연애할 시간은 만들 수 있는데~”

최 부회장은 웃으며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괜찮은 남자가 없네요? 지혁이가 참 멋지던데. 왜 그런 사람은 친척 동생으로 나타날까요. 난 연하도 괜찮은데.”

“게다가 그 친군 결혼도 했잖아.”

“그러니까요~”

오혜빈은 깔깔대며 웃었고.

최 부회장도 큰 소리로 웃었다.

두 사람은 3년 만에 만났어도 어색함이 없었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진원이한테 연락이 왔었다며?”

최 부회장은 자연스럽게 본론을 꺼내었고, 오혜빈은 웃으며 말했다.

“누가 그런 얘기 해요?”

“그냥 우연히 들었어.”

“하여간, 부회장님 정보력은 대단해~”

최 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진짜야? 정말 진원이한테 연락이 온 거야?”

오혜빈은 최 부회장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 부회장님 미련을 못 버리셨나 봐요.”

“······.”

“아직도 진원 오빠 기다리는 거예요? 후계 정리 끝난 지가 몇 년째인데.”

“그러게. 이미 다 끝난 일인데, 혜빈이는 왜 오 부회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을까?”

오혜빈은 젓가락질을 하다가 순간 멈칫했고.

최 부회장은 그런 작은 모습도 캐치하고 있었다.

“자세히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뀔 수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해. 친분만으로 그룹 회장 자리를 맡길 순 없는 거니까. 그렇지?”

“······.”

오혜빈은 이 말에 부인하지 않았다.

지지 대상이 바뀐 게 맞으니까.

그녀 또한 그룹에 관심이 많았으며, 적절한 시점에 선도그룹에 입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관찰할수록, 오 부회장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특히, 최근에 미국에서 피치사와의 특허 소송 관련된 일을 알게 된 후, 더 확신이 들었다.

‘큰오빠를 아끼지만, 회장 자리는 아니야.’

“저한테 뭘 원하세요?”

오혜빈은 싱긋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원이를 만나게 해줄래?”

“······.”

“꼭 만나야만 해. 몇 년을 찾아다녔어.”

계속 해맑게 웃던, 오혜빈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부회장님, 저 한 가지만 물을게요.”

“그래.”

“진원 오빠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면······ 상처받지 않게 할 수 있어요?”

“······.”

“다 내려놓고 물러난 사람이잖아요. 작은 가능성에 기대하게 만드는 건 잔인한 일이에요.”

“······.”

“대답해 주세요.”

후계 다툼에서 이미 물러난 사람.

가능성이 적다면 시작을 말라는 얘기였다.

그만큼, 현재 오 부회장의 위치는 너무 견고했다.

최 부회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솔직하게 말했다.

“장담은 못 하겠어.”

“······.”

선도그룹에 인생을 건 남자. 최 부회장은 오랜 시간 동안 절치부심해왔다.

“하지만, 자신 있다.”

많은 준비를 해왔고, 나름 뒤집을 자신이 있었다.

“흠······.”

최 부회장의 대답을 들은 뒤.

오혜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켜서, 스피커 통화를 걸었다.

드르륵-

신호음이 갔고.

꿀꺽.

최 부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 오빠. 나야.”

[어, 그래. 혜빈아. 밥은 먹었니?]

오진원은 대뜸 식사부터 했는지 물었다.

“어, 식사 중이야. 오빠는?”

[난 아직.]

“오빠, 사실은······.”

오혜빈은 최 부회장을 바라봤는데.

그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혀 있었다.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오진원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저 최재훈입니다.”

최 부회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고.

[······.]

수화기 너머 정적이 흐르다가,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건강하셨죠?]

“네······.”

[부회장님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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