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46화 (146/301)

146. 트라우마 (2)

지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치 수도꼭지라도 튼 듯, 계속 눈물이 나는데.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다.

‘TV에 보던 게 진짜였구나.’

상담사와 눈을 마주하고, 몇 마디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확 올라와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 여기.”

상담사는 지혁에게 휴지를 건네었다. 익숙한 듯 건네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잠자코 지혁을 기다려 주었고.

어느 정도 호흡이 가라앉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진행해도 될까요?”

“네.”

후유-

지혁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끔찍한 일이란 건, 지혁 씨가 겪은 경험을 말하는 거겠죠?”

“네.”

세상에 지혁 외에 ‘그 세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경험에 대해서는 의사 선생님 만나면 자세하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혁은 상담사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지금 안 물어보네. 마음의 준비 할 시간을 주는 건가.’

지혁이 대꾸를 안 하자, 상담사는 한 번 더 말했다.

“이건 해주셔야 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마주할 필요가 있거든요.”

“······.”

“힘드신 줄은 압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거예요. 괜찮아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혁은 몇 마디 말에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최면 비슷한 건가? 신기하네.’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몇 가지 질문만 더 드리고 마칠게요.”

“네.”

“지혁 씨가 말한······ 그 끔찍한 경험에 관해서 얘기 나눈 사람이 있습니까?”

“네, 제 아내에게는 얘기해줬어요.”

“뭐라 하시던가요?”

“믿지 않더라고요.”

“왜 믿지 않을까요?”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환상 속에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요?”

“네, 제가 1년 가까이 실종되었다가 돌아왔거든요.”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록했다.

“그럼 실종 기간의 경험이겠네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신 지 얼마나 됐죠?”

“이제 2년 되어 갑니다.”

상담사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셨다고 생각하나요? 아, 증상이 있으신 건 알지만요.”

“······.”

지혁은 괜찮다고.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었다. 다 지난 일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지혁이 그렇게 믿고 싶어 했을 뿐이란 걸,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상담사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기록했다.

‘증상은 심각하나, 자각하고 있음.’

***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지혁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지혁은 전문의를 유심히 보았다.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꽤 미인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명패.

‘정신과 전문의 민세령 교수.’

“비서실장님이시죠?”

“네? 아, 네.”

의사에게 직책을 듣는 게, 좀 이상했다.

“호호. 반가워요. 회장님께서 아끼는 조카라며 잘 봐달라고 하시더군요.”

민세령은 악수를 청했고, 지혁은 그 손을 잡았다.

병원에 와본 적은 많지만, 의사와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해본 건 처음이었다.

“실물로 보니까, 더 멋지시네요~”

중년 여성 특유의 여유로움이 있었고, 지혁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교수님도 아름다우신데요?”

지혁은 말하고 나서,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아, 교수님이라 호칭해도 되나요?”

“호호. 역시 비서실장님이라 센스가 있으시네~ 당연히 그렇게 불러주셔도 되죠~ 제 명패에도 교수라고 쓰여 있잖아요~”

“하하. 네.”

민 교수는 밝았고, 편안했다.

그녀는 상담사가 보내온 차트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우리 편하게 잘 지내봐요.”

‘자주?’

민 교수는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상담 내용 보니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세게 온 거 같은데. 그게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정신적 외상)를 경험해서 발생하는 거거든요.”

“······.”

“여기서 ‘정신적 외상’이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일을 당한 걸 말해요.”

민 교수는 알기 쉽게 천천히 설명해주었고, 지혁은 주의 깊게 들었다.

“이러한 외상들은 대부분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죠.”

“······.”

“누구나 스트레스는 받고 살아요. 하지만, 우리 몸에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능력이 있는데. PTSD는 그 대응 능력을 압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개괄적 설명을 마친 뒤, 민 교수는 한숨 쉬듯 말했다.

“도대체 어떤 경험을 하셨길래 그러실까요~”

“······.”

“혹시 어린 시절에 왕따, 군 복무 중 폭언·폭행, 회사생활 부적응 등 일상생활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데서 오는 트라우마가 PTSD로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거든요.”

지혁은 민 교수의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신입사원 시절에 스트레스 좀 받았었고, 췌장암을 앓으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의 문제는 그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세계’에 대한 징후에만 반응하고 있으니까.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스트레스는 받았었으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과호흡하며 쓰러질 정도까지는······.”

“그렇군요. 흠······.”

민 교수는 차트를 보다가 말했다.

“약 1년간 실종되었다가 돌아왔다는 거죠?”

“······.”

“환상이든 사실이든 좋으니. 지혁 씨가 믿는 그 시간의 얘기를 해주시겠어요?”

지혁이 입술을 깨물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민 교수는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제가 오 회장님 담당 의사지만, 환자 기록은 절대로 비밀유지 합니다. 혹시, 그 부분이 염려되신다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전 지혁 씨 도우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솔직해지시면 돼요. 어려운 거 아닙니다.”

지혁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고, 민 교수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1년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떤 얘기를 하면 될까요.”

민 교수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지혁 씨에게 가장 아팠던, 가장 마주하기 싫은 기억을 얘기해주세요.”

“······.”

“이 또한 치료 방법입니다. ‘노출 치료’라고 해요. 사고 기억에 대한 공포를 덜 느끼도록 하려는 거죠. 그 얘기를 반복적으로 얘기하면서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을 조절하는 거예요.”

지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가장 마주하기 싫었던 기억······.’

지혁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

‘그 세계’ 3년 차.

췌장암의 고통도 사라지고, 허리도 펴진 상태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지혁! 이것 좀 맡아줄래.”

평상시처럼 전투를 앞둔 어느 날.

팀원 중 한 명이 지혁에게 편지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

“나 죽으면 아내한테 좀 전해달라고.”

“죽은 다음에 이런 거 남겨서 뭐 해.”

“남겨진 사람에게 기다리지 말라는 인사 정도는 전해야 하지 않겠냐?”

“······.”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니까, 이 정도는 하자. 너도 뭐 있으면 줘봐.”

지혁은 그 남자의 편지를 받으며 말했다.

“내 사람들은 이곳에 없어서. 네가 먼저 뒤지면 전해는 줄게.”

“차갑긴. 어쨌든 고맙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날 전투 중에 죽었다.

전투가 끝난 뒤, 길 한쪽에 쓰레기 버려진 듯 널브러진, 여기저기 난도질당한 남자의 시신을 보았다.

지혁의 시선엔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여기선 일상인 일이었으니까.

손에 든 편지를 보며 생각했다.

‘약속은 지켜야겠지.’

그 남자가 묵는 곳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더니.

아내는 죽어 있었고.

“엄마~ 엄마~”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그 옆에서 울고 있었다.

“제 몸 간수도 못 하면서 애는 왜······.”

지혁은 그 팀원이 아이까지 있는 줄은 몰랐었다.

“엄마~!”

목청이 터지도록 우는 아이에게 지혁은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받아라.”

“······.”

“네 아빠가 전해달라더라.”

글을 모르는 나이지만, 더 자라면 알게 될 거라 싶었다.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생과 사가 쉽게 넘나드는 세계에서는 여성과 아이가 가장 위험하다.

‘한 달을 못 넘기겠지.’

아이의 운명을 알고 있지만, 지혁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둘이 함께 죽는 것보다는 혼자 죽는 게 나으니까.

지혁은 뒤돌아 가려는데.

“엄마~ 엄마~”

그 아이는 계속 엄마만 불렀다.

‘엄마.’

지혁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없이 엄마 손에서 자랐다.

‘엄마’만 찾는 아이의 외침이 지혁의 몸을 잡아끌고 있었다.

“엄마~!”

지혁은 결국 걸음을 멈추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

뒤돌아서 소리쳤다.

“야! 따라와!”

그렇게 아이를 거두었고.

지혁은 아이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불편했다. 신경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키운다는 것.

그건 이 삭막한 세계에서도 지혁을 웃게 했고.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함께 다닌 지 6개월쯤 된 어느 날.

탕! 탕!

아지트를 포위한 적에게서 총소리가 들렸다.

“젠장, 총은 어디서 났대.”

‘그 세계’에서의 총은 현실 세계에서의 전투기와 같다.

그만큼 압도적인 전투력을 소유한 것과 같았으며, 총과 총알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 해당 캠프는 무적이 된다.

다 죽지 않으려면 총 든 사람을 제압해야 했고.

그러려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미친놈이 나서야 한다.

에이원 캠프원들은 지혁을 바라봤고, 그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혁은 옆에 바싹 붙어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저씨,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기다려.”

“응.”

“움직이지 말고. 벽 뒤에만 바싹 붙어 있어.”

“응.”

탕!

그때 또 총소리가 들렸고, 아이와 함께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팅- 팅-

벽에 총알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아저씨······.”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아이의 이마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웃는 얼굴로.

“으아······.”

지혁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성을 질렀다.

“으아악-!”

***

주르륵-

얘기를 끝마친 지혁은 몸을 떨면서 울었다.

한겨울 메마른 고원 위에 혼자 놓인 것처럼.

계속 몸을 떨었다.

“전 아이가 무섭습니다.”

지혁은 떨면서 말했다.

헉- 헉-

기억의 잔상이 강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지혁 씨, 여기 보세요.”

민 교수는 한 손으로는 지혁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은 검지를 펼쳐서 지혁의 눈앞에 두었다.

“제 손가락 따라서 눈을 좌우로 움직이세요.”

“······.”

“아무 생각 말고 손가락만 보는 겁니다.”

지혁은 손가락을 따라서 좌우로 안구운동을 하였고.

호흡이 진정될 때쯤에 멈추었다.

“지혁 씨, 주변을 보세요.”

민 교수는 지혁의 양팔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여긴 ‘그 세계’가 아니에요.”

“······.”

“기억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혁은 아무 말 없이 휴지로 눈가를 훔쳤다.

***

약 처방은 받지 않았다.

다만, 정기적인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여, 약속을 잡고 나왔다.

‘참 신기하네.’

상담 몇 마디 했다고, 가슴 속에 억눌렸던 게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뒤,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걷기만 했다.

계속 거리를 걸으며,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려 했다.

활발할 사람들.

연기 없는 맑은 하늘.

시체가 없는 깨끗한 거리.

‘그래, 여기는 ‘그 세계’ 아니야.’

그리고 다음 날.

훨씬 가뿐해진 마음으로, 지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뭐해? 늦겠어.”

“잠깐만.”

수아는 오 회장 집에 간다고 열심히 치장 중이었다.

“어머니 모시고 가려면 서둘러야 해. 회장님 지각하는 거 싫어하셔.”

지혁은 수아를 채근했고.

“알았어! 가! 가!”

오 회장이 지각을 싫어한다는 말에.

수아는 헐레벌떡 현관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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