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상식적으로 (2)
지혁은 대표이사의 달라진 태도를 보고 속으로 웃었다.
‘높은 자리 올라간 사람들 공통점이지. 하여간 윗사람 눈치는 엄청나게 봐.’
이런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속기 중이냐’라고 황 과장에게 물어본 거였다.
지혁이 말했다.
“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렸나요?”
보험료 인상이 최선이냐는 질문.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흠!”
대표이사는 헛기침하고 생각했다.
‘최대한 알아듣지 못하게 얘기해줘야지.’
이럴 때는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게, 전문용어 써가며 얘기해야, 질문이 적어진다.
“보험료를 0.8% 인상할 계획인데, 이는 전년도 1.4%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인상 폭입니다. 보험료 인상 0.1%가 영업이익률에 미치는 영향은 두 배 이상인 걸 고려하면,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인상 폭을 줄인 겁니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손해율은 잠깐 떨어진 건 사실입니다. 다만, 국민 두 명당 차 한 대의 시대라는 얘기 들어보셨을 거고, 손해율은 매년 상승하며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또한 유배당 상품의 구성을 더 높이고 있으므로, 무배당 상품을······.”
대표이사는 알기 듣기 어려운 얘기를 길게 했고.
황 과장은 속기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손해율은 뭐고, 유배당, 무배당은 뭐야. 아우 어지러워.’
타닥. 타닥.
말이 길어질수록 황 과장은 속기하기가 버거워졌고.
지혁은 대표이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결국 멈췄다.
그리고, 이제 짜증이 올라와서 조금씩 본모습이 드러나려 했다.
“말장난하세요?”
“네?”
“직원들한테도 고객에게 상품설명 할 때 그런 식으로 하라고 가르칩니까?”
“······.”
“묻는 말에 대해 간단하게 답해주시면 되지, 뭘 그렇게 쓸데없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
“제 질문을 이해는 하신 겁니까?”
대표이사는 눈을 끔뻑였다.
‘질문이 뭐였더라.’
한동안 본인 얘기 쏟아내느라, 질문의 요지도 잊어버렸다.
“아, 그냥 전략실장님이랑 대화할까. 했던 말 또 하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지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나, 다 들릴 정도였고.
대표이사는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졌다.
“보험료를 이런 식으로 일괄 올리는 게 맞냐고 물었잖아요.”
“아······.”
“유배당 무배당이 왜 나옵니까? 그런 얘기는 선도화재 직원들끼리 회의할 때나 하시고.”
대표이사는 황급히 다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했다.
‘손해율이 올라갈 게 예상되어 보험료를 인상하겠다는 거잖아. 그게 뭐가 문제지.’
“자, 제가 그냥 하나씩 물을게요.”
“네.”
지혁은 대표이사에게 물었다.
“작년 손해율 따져서 보험료 인상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손해율 떨어졌죠?”
“네, 일시적인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묻는 말에 간단하게 답해주세요.”
“흠! 네,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보험료를 인하하는 게 맞겠죠?”
“그게······ 맞기는 하겠죠.”
대표이사는 눈을 끔뻑였고.
지혁은 못을 박듯이 얘기했다.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될 논리 같은데요.”
“······.”
대표이사는 전문가로서 얘기했고, 지혁은 고객의 눈높이에서 상식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매출이 중요해도 정정당당하게 가야 하지 않을까요?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
***
대표이사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지혁의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걸 이제야 느낀 것이다.
“그럼······ 다시 준비해서 보고드릴까요.”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여기서 해결하죠. 오늘 미팅도 겨우 잡은 거잖아요.”
계속 일정이 맞지 않아서 2번을 연기하고 겨우 만난 자리였다. 결국, 오 회장은 나오지 못했지만.
지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보험료가 매출 비중에 절대적이죠?”
“대부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올해 예상 손해율은 작년과 같지 않다고 보시는 거고요.”
“네, 지금 시장 상황이 그렇습니다. 인원 제한 등 팬데믹 상황이 대부분이 풀리고 있으니까요. 개인용 자동차 이용량만 봐도······.”
“잠깐.”
지혁의 눈빛이 반짝였다.
“개인용이요?”
“네.”
“이용량을 세분화할 수 있겠네. 작년에 모든 용도의 차량의 손해율이 떨어진 건 아니죠?”
“잠시만요.”
대표이사는 전략실장에게 확인해보라고 했고, 전략실장은 노트북을 열어 확인한 뒤 곧바로 말했다.
“영업용 차량의 손해율은 악화되었습니다. 전년에 개인용과 업무용 차량은 이동량이 적었지만, 대신 택배 등 화물이 많아지면서 영업용 차량 이동량이 늘어나서······.”
지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영업용 차량 보험률만 인상하면 되지 않아요? 개인용은 낮추고요.”
“아······.”
“그리고 상황에 따라 보험률은 재조정될 수 있다고 고지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대표이사는 묵묵부답이었고.
전략실장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시장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기에, 미리 고지만 한다면 고객들도 이해해 주실 것 같은데요.”
황 과장의 타자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지혁이 하는 얘기는 알아듣기 쉬우니, 속기가 어렵지 않았다.
지혁은 명확하게 정리해주었다.
“올해 개인용, 업무용 차량의 보험률은 낮추고, 영업용만 인상. 손해율이 큰 폭으로 변경될 시 보험률은 재조정. 이렇게 정리하시죠? 어떻습니까?”
업무 보고하러 왔다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까지 해주는 상황.
지혁의 의견이 적당하며 맞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대표이사는 떨떠름했다.
‘내가 한 수 배운 거야? 이 초짜한테?’
대표이사는 수긍하고 싶지 않아서, 직접 대답하는 대신 전략실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비서실장님 말씀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이사는 가자미눈을 떴다.
‘뭘 그렇게 강하게 긍정하냐? 기분 나쁘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혁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본사로 돌아가서 주신 내용 참고하여, 참모들과 검토 후 필요하면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일 미루는 거 싫어합니다. 이 자리 끝나면 회장님께 한 번만 보고드리고 싶어요. 같은 사안에 대해서 두, 세 번 보고하고 싶지 않습니다. 명백한 일을 뜸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컨펌 받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네?”
“대표님이 선도화재 최종 의사결정권자 아닌가요? 지금 정하시면 될 거 같은데.”
“······.”
대표이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5분만.”
“네.”
대표이사는 전략실장과 함께 노트북을 보며 대화를 나눴고, 지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잠시 후.
대표이사는 지혁을 불렀다.
“비서실장님.”
“네.”
“정리해주신 안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수치를 확인해봤는데, 괜찮겠네요.”
“네, 그럼 회장님께도 그렇게 보고 올릴게요.”
회의가 끝날 무렵이 되니, 대표이사는 지혁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단순한 낙하산이 아니구나. 하긴, 회장님이 아무리 가족이라도 엄한 사람 비서실장 시킬 분은 아니지.’
대표이사는 지혁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졌다.
“언제 선도화재 한번 방문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회사 소개도 드리고, 식사 대접도 해드리고 싶은데.”
지혁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네, 기회가 된다면요.”
황 과장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보며 생각했다.
‘마치, 오너가 대표와 대화하는 것 같네. 역시 우리 오 실장님.’
회의 시작할 때만 해도 염려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했던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었다.
***
회의가 끝나고, 선도화재 일행이 돌아간 뒤.
황 과장은 지혁에게 다가와 말했다.
“실장님~ 수고하셨어요. 예전에 뭐 보험 알바 했었어요? 어쩜 그렇게 잘 아세요?”
“······.”
지혁은 대꾸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봐왔기에, 황 과장은 이제 표정만 봐도 안다.
‘뭔가 고민 중이구나.’
황 과장은 기다렸다.
“황 과장님.”
“네?”
“방금 선도화재 대표가 얘기한 것들 속기록 빠짐없이 했죠?”
“네.”
“저한테 다 보내주세요.”
“아······ 그걸 쓰시게요?”
황 과장은 마지막에 화기애애하게 끝나서, 부정적인 내용의 속기록은 덮어둘 줄 알았다.
“네, 색이 안 좋네요. 비즈니스적으로도 문제 있어 보이고.”
‘색? 그게 뭔 소리지?’
황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성향’이 안 좋아 보인다는 뜻이라 생각했고 더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지혁은 다음날 오 회장에게 선도화재 대표이사와의 미팅에 대해 보고했고.
일주일 뒤.
선도화재 대표이사의 교체설이 돌았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비서실장과의 미팅 이후 발생한 일이란 걸 알고 있는 최 부회장.
그는 지혁을 새삼 다시 봤다.
‘문제를 볼 줄 아네.’
선도화재 대표는 예전부터 문제가 많았고, 최 부회장이 눈여겨보던 사람이었다.
적절한 시점에 오 회장에게 건의하여 대표를 교체하려 했었는데, 지혁은 단번에 보내버린 것이다.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오래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데.’
황 과장에게 보고 받기로, 그날 감정적인 언쟁은 없었다.
미팅 이후에 지혁이 비즈니스적으로 판단하여 오 회장에게 직언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능력이 출중한 걸 넘어서, 뭔가 좀 이상하단 말이야.’
그리고 선도화재 대표 교체설 외에, 특별한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정기 승진]
1) 황성준 팀원 : 과장 -> 차장
“황 차장님~ 축하드려요!”
비서실 직원들 모두가 황 차장을 축하해 주었다.
원체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라, 비서실에 온 지 얼마 안 됐어도 황 차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감사합니다~ 특히 오 실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황 차장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실장님, 저랑 차 한잔하실래요? 감사 인사 드리고 싶은데.”
윤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승진 턱을 그렇게 넘어가려고?”
“아니요~ 승진 턱은 나중에 따로 해야죠. 지금은 실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황 차장이 나한테?’
잘 없는 일이었기에, 지혁은 바로 황 차장을 따라 나갔다.
황 차장은 카페에 오자마자, 최 부회장과 있었던 일에 관해서 얘기했다.
“진작 말씀드린다는 걸, 계속 타이밍을 놓쳤어요. 죄송해요.”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괜찮아요. 흉볼 일 전한 것도 아닌데요.”
“그렇죠? 휴~ 다행이다.”
황 차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앞으로 저 어떻게 할까요?”
지혁은 싱긋 웃고는 말했다.
“그룹 이인자의 명령을 어기면 되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왕이면 더 좋게 얘기해주시고요~ 하하.”
지혁이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날 꽤 신경 쓰고 있군. 좋은 징조야.’
***
다음 날.
“안녕하십니까.”
여느 때처럼 일일 보고를 위해 지혁은 회장실로 들어왔다.
“그래~ 오 실장. 좋은 아침.”
“어?”
오 회장이 평소와 달랐다.
지혁의 놀란 눈을 보고 오 회장이 말했다.
“뭘 그렇게 놀래? 모자 안 쓴 게 그렇게 이상한가?”
오늘 오 회장 머리 위에, 항상 쓰던 중절모가 없었고.
대신 풍성한 새하얀 머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머리숱이 많으시네요?”
“하하. 대머리라서 모자 쓰고 다니는 줄 알았나?”
지혁의 눈은 오 회장의 이마에 꽂혀서,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생각보다 많이 놀라는데? 내가 중절모를 좋아해. 오랜만에 모자 안 쓰니까 어색하군.”
오 회장 이마에서 보이는 색.
지혁의 동공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