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겨누어진 칼날 (1)
후유- 후유-
비서실장의 숨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했고.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안개 속을 헤치는 것 같았다.
‘뭐지······ 뭘까.’
갑작스러운 간담회.
오 회장 참석.
1만 명 규모의 대강당.
그룹 주요 임원들 모두 참석 대상자.
그런 일을······ 그룹의 비서실장이 당일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간담회······ 그냥 간담회잖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보려고도 했으나.
‘아니야. 그냥 간담회를 선도캠퍼스 대강당에서 할리가 없잖아.’
계속 눈알을 굴리다가.
덜컹!
비서실장은 문을 열고 의전팀장을 불렀다.
“의전팀장!”
“네!”
의전팀장은 한달음에 달려왔다.
“자네 메일 봤나?”
“무슨 메일 말씀이십니까?”
“간담회.”
의전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봤습니다.”
“언제 알았나?”
“지금 알았죠.”
“······.”
“메일 지금 오지 않았습니까?”
의전팀장은 도리어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근데, 무슨 간담회입니까? 뭔데 선도캠퍼스까지 가서 하는 겁니까?”
그는 당연히 비서실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내 질문 다 끝나고!”
비서실장은 소리를 버럭 질렀고.
의전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평소 큰소리 한번 안 내시는 분이······ 갑자기?’
“······.”
비서실장도 소리를 지르고 나서 아차 싶었는지, 곧바로 시선을 내렸다.
그만큼 예상 못 한 상황에 마음이 쫓기고 있는 거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영문도 모르고 날벼락 맡은 의전팀장은 내심 불쾌했다.
“묻는 말 다 끝난 후에 질문을 하라고······ 알겠지? 장 팀장?”
비서실장은 안색을 싹 바꾸고 웃으며 말했고.
의전팀장은 내키지 않는 듯 대답했다.
“네······.”
비서실장은 달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도 몰랐다는 거지?”
“네, 몰랐습니다.”
“간담회 패널이 누군지 알 수 있나?”
메일에 있는 내용 중 가장 거슬렸던 부분.
‘간담회 패널 : 각 계열사 대표 15명.’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근데······ 짐작은 되는데.”
“그래? 누군데?”
비서실장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고.
의전팀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각 계열사 대표면, 대표님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아오, 씨발. 환장하겠네.”
비서실장은 의전팀장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한숨을 푹 쉬며 말했고.
“······.”
의전팀장은 뻘쭘한 나머지 말을 멈춰버렸다.
“직원 간담회인데, 패널로 계열사 대표를 앉힌다고?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비서실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의전팀장에게 또렷이 들렸다.
‘오늘 비서실장님이 매우 다르네. 근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아.’
험한 말 뱉고, 투덜대는 모습을 지금까지 본 기억이 없는데도. 왠지 낯설지 않았다.
“나가 봐.”
“······.”
의전팀장이 인사하고 나가는 중에도, 비서실장은 투덜거렸다.
“젠장 바빠 죽겠는데, 시간 낭비만 했네.”
의전팀장 또한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비서실장님.”
“왜.”
“근데······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뭐?”
“메일 발신자한테 물어보면 간단한 일 아니에요?”
“아······.”
비서실장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의전팀장을 썩소를 날리고.
쾅!
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가버렸다.
***
‘발신 : 오지혁 차장’
비서실장은 그제야 메일 발신자를 확인했다.
메일 내용만 보고 당황한 나머지, 발신자 확인할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오지혁? 젠장, 더 불안해지잖아.’
비서실장은 지혁을 지켜 보고 있었다.
미래기획실 커뮤니케이션팀의 홍 팀장과 접촉하는 걸 확인한 이후로, 더 세심히 신경 썼었다.
별안간 선도물산에 갔다 온 건 외에는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선도물산에서도 옛 동료들과 낮술 마신 거 외에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던 거로 확인했었다.
‘어째 잠잠하다 싶었는데······ 기만이었나?’
비서실장은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찾았고.
‘오지혁 차장.’
통화 버튼만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될 것만 같은 기분.
‘아니겠지. 아닐 거야.’
비서실장은 잠깐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신호음이 한참 이어졌지만.
전화 받지 않았다.
‘뭐야, 왜 안 받아.’
초조하게 신호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딸깍.
[여보세요?]
지혁이 전화를 받았다.
“어~ 오 차장~ 나야~”
[누군데? 왜 반말이지?]
‘헛······.’
비서실장은 당황했다.
‘내 번호 저장 안 되어 있나?’
그러고 보니, 서로 통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난 전화냐? 형 바쁘다. 끊는다.]
‘아무리 모르는 번호라 해도······.’
비서실장은 불쾌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차장. 나 비서실장이야.”
[비서실장이라고? 이름이 뭔데?]
지혁은 쉽게 믿지 않았고.
비서실장은 한숨을 쉬고, 최대한 차분히 말했다.
“나 강정철 전무야. 그룹 비서실장.”
[아이고, 비서실장님. 안녕하세요. 전혀 몰랐습니다.]
“참~ 자네는 말이야. 아무리 모르는 번호라고 해도 오 차장이라고 불렀으면, 상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야지. 안 그런가?”
[실례했습니다. 요즘 쓸데없이 전화 거는 놈들이 많아서. 어떤 새끼는 지가 경찰서장이래요.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꿈틀.
비서실장의 이마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겠지? 좀 긁는 거 같은데.’
[근데 어쩐 일이세요?]
“어, 아침에 자네가 보낸 메일 봤는데.”
[어떤 메일 말씀이시죠?]
“간담회 말이야. 갑자기 뭔가? 내가 왜 몰랐지?”
[꼭 알아야 합니까?]
“뭐?”
피식.
수화기 너머로 지혁의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지시사항입니다. 진정성 있는 간담회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요.]
“내가 알면 진정성이 떨어지나?”
[몰라서 물으세요?]
비서실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몰라서 묻냐’는 말.
지혁에게 두 번째 들었다.
[비서실장님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 사전에 알면 진정성이 떨어질 수 있잖아요. 음흉하신 분들 많아서.]
“······.”
[뒤에서 뭔 짓을 할 줄 알고.]
비서실장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자네 자꾸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 거 같은데.”
피식.
또 웃음소리가 들렸다.
비서실장은 한 소리 하려다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하아······ 그래.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 간담회 패널 명단부터 보내 봐.”
[싫은데요?]
“뭐?!”
[좀 전에 제가 하는 말 뭐로 들으셨어요? 회장님 지시사항이라고요.]
“그래서 안 알려주겠다고?”
[못 알려주죠.]
결국, 비서실장은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 새끼야. 닥치고 빨리 안 보내?!”
[하하.]
피식거리던 웃음소리가 이제 큰 웃음으로 바뀌었다.
“웃어? 이게 아주 미쳤네. 야! 오지혁!”
[끊어야겠다.]
“······.”
[욕 듣는 거 싫어하거든.]
흥분한 나머지 비서실장은 말을 더듬었다.
“너, 너 어디야! 이 새끼야!”
[어디겠어요. 간담회장이지.]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화성까지 꽤 멀어요. 늦지 않도록 회장님 모시고 어서 출발해요.]
“명단 보내라고 이 새끼야!”
뚝.
뚜. 뚜.
지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비서실장은 서둘렀다.
지혁과의 통화로 확실히 깨달았다.
위협이 다가왔다는 걸.
“지원팀장!”
“네, 비서실장님.”
“회장님 선도캠퍼스로 몇 시에 출발하시지?”
“절대 늦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요. 차 막힐 거 대비해서 곧 출발하려 했습니다.”
“젠장 늦을 뻔했네.”
지원팀장도 이런 비서실장의 모습이 생소했다.
‘항상 차분하시던 분이 왜 이러시지? 다급해 보이는데.’
“오늘 회장님 에스코트는 내가 할 테니까. 자네가 2호차 타.”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오 회장이 타는 차를 1호차라 부르며, 비서실은 2, 3호차. 경호팀이 4, 5호차를 탄다.
비서실장은 곧바로 회장 집무실로 올라갔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비서실장. 웬일이야?”
“출발하실 시각입니다.”
‘음?’
비서실장이 에스코트하러 온 게 의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오 차장이 말한 게 혹시 이건가?’
지혁은 오 회장에게 극비리에 진행되는 간담회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그날 눈에 보일 거라고 했었다.
비서실장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했고, 분위기도 매우 달랐다.
‘흠······ 아니겠지.’
오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가세.”
“네, 회장님.”
1호차 안.
오 회장은 뒷좌석에, 비서실장은 운전자 조수석에 앉아 있다.
“자네와 함께 차 타고 일정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
오 회장은 부드럽게 말했지만, 비서실장은 그런 얘기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회장님.”
비서실장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얘기하게.”
“지금 가는 간담회 말입니다.”
“······.”
“왜 저 모르게 진행하셨습니까?”
오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모르게?’
사전에 그 어떤 개입도 차단하기 위해, 비밀로 했을 뿐. 특정인만 모르게 진행한 게 아니다.
질문의 뉘앙스가 이상했지만, 오 회장은 왜 비밀리에 진행했냐는 뜻으로 받아들기로 했다.
“왜. 그러면 안 되나?”
“······.”
“문제 될 거 없잖아? 그냥 간담회잖아?”
비서실장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정말······ 그게 다입니까?”
“그럼, 그거 말고 무슨 이유가 더 있을까?”
오 회장은 이런 비서실장의 태도가 생각할수록 이상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게.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
삭.
비서실장은 고개를 뒤로 돌려 오 회장을 바라봤다.
좀 전에 말하던 분위기와 다르게 활짝 웃고 있었고.
‘뭐야······.’
오 회장은 섬뜩함을 느꼈다.
“하고 싶은 말 없습니다~ 그냥~ 전 다른 직원들보다는 좀 더 빨리 알고 싶은데. 못 그래서 아쉬운 거죠. 비서실장 아닙니까?”
“그래?”
비서실장은 전방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눈 좀 붙이십시오. 도착할 때쯤 말씀드리겠습니다.”
***
헉. 헉.
1호차가 선도캠퍼스 대강당 앞에 도착하자마자, 비서실장은 의전팀에 오 회장을 맡긴 후 A-13 동을 향해 달려갔다.
“젠장, 전화는 왜 이렇게 안 받는 거야.”
‘시간이 얼마 없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철저히 계획되어 있고, 자신을 향해 칼날이 겨누어져 있다는 걸.
서둘러야 했다.
지금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은 오 부회장밖에 없었다.
A-13동 24층.
비서실장은 부회장실을 향해 뛰어갔고.
“어머, 안녕하······.”
비서실장은 리셉션 인사도 받지 않고, 오 부회장실을 향해 돌진했다.
덜컹!
“부회장님!”
오 부회장은 바이어와 미팅 중이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뭡니까?”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세요!”
“보면 몰라요? 미팅 중이잖아요.”
헉. 헉.
비서실장은 가쁜 숨을 내쉬었고.
오 부회장은 그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다, 당장 오지혁이 막아야 해요!”
“오지혁?”
“빨리요!”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요?”
“저도 몰라요!”
오 부회장은 황당해서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데, 일단 막으라고? 이 양반이 뭘 잘 못 먹었나······.’
“부회장님! 저 못 믿으세요? 빨리요.”
“그러니까, 빨리 뭘 하냐고요.”
헉. 헉.
“오지혁한테 전화해서 당장 멈추라고 하세요.”
오 부회장은 바이어에게 양해를 구한 뒤.
내키지 않지만 일단 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아······ 참나.”
두- 두-
신호음이 갔고.
얼마 되지 않아, 전화를 받는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수신이 거부되어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뭐? 수신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