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본능 (2)
[노동자는 봉이냐?]
[외면하지 마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목소리로 외치는 구호는 뚜렷하게 들렸고.
오 회장은 이런 일들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입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지혁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 초록색 점퍼를 입고, 눈이 반쯤 돌아간 한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있어서,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육감이 극도로 훈련된 지혁에게는 이런 위협은 눈에 쉽게 띄었다.
‘아무래도 저 양반 사고 칠 것 같은데.’
멀찍이서 가만히 지켜보던 지혁은 오 회장과 그 초록 점퍼 사이로 이동했다.
“오 차장! 어디가?”
의전팀장은 지혁과 황 과장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만 보라고 했었다.
지혁이 그 지시를 무시하고, 경호팀 사이로 들어간 것이다.
“멈춰!”
지혁에게 신조가 있었다.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지혁은 초록 점퍼가 돌발행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체구도 작고, 사람들 틈에 있어서 경호팀은 그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혼란함 속에서 갑자기.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야 이, 개새끼들아!”
초록 점퍼는 깨진 술병을 들고, 오 회장을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사각지대.
경호팀의 손이 닿지 않는 빈틈이었다.
찰나의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오 회장의 눈이 커져갔다.
경호팀은 입을 벌리고 사람들 틈에서 튀어나온 초록 점퍼를 멍하니 바라봤다.
초록색 점퍼의 남자가 깨진 술병을 들고 오 회장의 얼굴을 향해 휘두른 순간.
퍽!
한 남자가 나타나 한쪽 팔을 들어서, 깨진 술병을 막았다.
“씨발, 술 냄새.”
지혁이었다.
그는 깨진 술병을 뺏어서 던져버린 뒤, 막았던 팔을 뻗어서 초록 점퍼 남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낮술 처먹고 어디 와서 지랄이야.”
지혁의 눈에 살기가 등등했고.
초록 점퍼는 너무 겁먹어서 소변을 지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몸이 점점 올라갔다.
“캑캑”
지혁은 목을 움켜쥔 그대로 남자를 들어 올렸고, 피가 통하지 않아 초록 점퍼의 얼굴은 점점 새빨개져 갔다.
숨넘어갈 듯, 밧줄에 목 매단 것처럼 몸을 바둥거렸다.
“오 차장! 어서 놔! 뭐 하는 거야!”
의전팀장 외침.
찰칵! 찰칵!
깨진 술병에 찍혀 피가 흥건한 왼팔.
그 손에 목을 잡혀 허공에서 바둥거리는 초록색 점퍼 남성.
기자들은 특종이라며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었다.
“오 차장!”
지혁은 오랜만에 피를 보니, 들끓는 기분도 있었지만.
사진 속에 아버지와 오 회장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적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자꾸 신경 쓰였다.
‘어딜 감히······.’
지혁은 오른 주먹을 꽉 쥐었고, 망설이지 않았다.
빠각!
뼈 부딪히는 소리를 끝으로.
털썩.
초록 점퍼를 놔주었고, 그는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
선도물산.
윤 팀장은 상품기획 1팀을 찾아왔다.
“헬로우~”
그의 인사 소리에 상품기획 1팀 전원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윤 팀장은 다른 팀이지만, 상품기획 1팀은 그를 여전히 같은 팀원처럼 대한다.
정 차장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선배님~ 어쩐 일이십니까.”
윤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정 팀장 잘하고 있나 보려고 왔지~”
윤 팀장은 악수하며 말했다.
“팀장 된 거 축하해.”
“감사합니다.”
지혁이 있을 때 실질적인 팀장 역할을 하던 정 차장은 이제 정식 팀장이 되었다.
지혁의 선도본관 첫 출근날이, 정 차장이 팀장으로 임명된 날이었다.
“오지혁이 없어도 괜찮네~ 꽉 찬 분위기구먼.”
“······.”
반갑게 웃으며 윤 팀장을 맞던 팀원들은 지혁의 이름을 듣자, 금세 침울해졌다.
정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당분간 우리 팀 금기어에요. 지혁이 이름은 얘기하지 마세요.”
“그래? 다들 잘 지내는 거 같은데.”
“겉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죠.”
정 팀장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랄까요. 사라지니까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지네요. 지혁이는 같이만 있어도 든든한 게 있었거든요.”
윤 팀장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선도물산 ‘지혁 라인’의 좌장이었고, 지혁이 뜻이 있어서 부서이동 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허전하고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앉으세요. 커피 한잔 드릴게요.”
“그래. 손정진!”
윤 팀장의 부름에 손정진은 벌떡 일어났다.
“네!”
윤 팀장은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가서 케이크 좀 사 와라. 달달한 것 좀 먹자.”
“알겠습니다!”
잠시 후, 손정진이 케이크를 사 왔고.
상품기획 1팀 전원과 윤 팀장은 회의실에 모여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뉴 페이스는 안 와?”
윤 팀장의 물음에 정 팀장이 대답했다.
“황 과장 자리 한 명만 받으려고요.”
“왜?”
정 팀장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지혁이 빈자리를 채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혁이 얘기하지 말라면서, 본인이 하고 있네.”
윤 팀장은 웃었다.
“오늘이 선도본관으로 첫 출근날 아니야?”
“맞아요.”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첫 출근 후, 업무 파악 중일 거라고 생각했다.
“잘하고 있겠지?”
이 물음에 손정진이 크게 대답했다.
“우리 팀장님은 당연히 잘 하실 겁니다!”
윤 팀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 지혁이는 물론 잘 하겠지만······ 거기 쉽지 않데. 동기한테 얘기 들었거든.”
“······.”
“업무 강도가 엄청나다고 하던데. 임원들이 수두룩해서, 신경 쓸 것도 많고.”
정 팀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저도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거기 장난 아니더라고요. 걔는 굳이 왜 거길······.”
정 팀장도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음?”
잠자코 핸드폰을 보고 있던 문대리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
침착한 성격의 문 대리가 큰 소리를 내니, 일제히 그를 바라봤고.
정 팀장이 물었다.
“왜 그러는데요?”
“아, 아니······ 오 팀장님이 속보에 떴는데요?”
“뭐?!”
윤 팀장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오 팀장이 속보에 왜 떠? 뭐 사고 났어?”
“사고는 사고인데······.”
“뭔데! 어서 줘봐!”
문 대리는 핸드폰을 건네었고, 윤 팀장, 정 팀장, 손정진은 일제히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모았다.
-대······박.
-얘 뭐야, 진짜.
-아니, 이제 신문에 이런 식으로 나와?
핸드폰 화면에는······.
지혁이 웬 남자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아래에.
[비서실 직원, 오 회장을 구해내다.]
***
선도서울병원.
지혁은 VIP 병실에서 치료 중이었다.
깨진 유리병이 팔에 꽤 깊이 박혔고, 그 상태에서 힘을 준 덕에 상처가 가볍지 않았다.
다친 팔로 성인을 들어 올렸었으니······.
하지만 지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 이 정도로 입원을 시키고 그래.’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며, 다친 팔도 움직이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니까.
의전팀장이 난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입원한 것이다.
똑똑.
의전팀장이 들어왔고.
누워있던 지혁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의전팀장은 묘한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몸······ 괜찮아?”
“네, 괜찮아요.”
“팔 안 아파?”
“좀 따갑죠. 뭐.”
의전팀장은 붕대로 칭칭 감긴 지혁의 팔을 봤다.
“유리병이 깊게 들어갔다던데?”
“팔 움직이잖아요. 그럼 괜찮은 거예요.”
“······.”
의전팀장은 지혁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고통을 못 느끼는 사람인가?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닌데.’
“오 차장.”
“네.”
“나 좀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물어봐도 되나?”
“물어보세요.”
“입사하기 전에 뭐 했어?”
“······.”
“혹시 뭐 특수부대나, 해외 파병 같은 데 다녀온 거 아니야?”
이와 비슷한 질문을 선도물산에서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니요. 육군 병장 출신이에요.”
“그럼, 뭐 사설 경호업체나 용병 뛴 것도 아니고?”
“인사기록 카드 보시면 아실 텐데. 저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했어요.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셨는데요.”
지혁의 대답을 듣고 나니, 의전팀장은 더 혼란스러웠다.
‘근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오랜 경험에서 나온 반사적 행동이 아니면······ 불가능한 건데.’
의전팀장은 위협을 감지하고, 동물처럼 오 회장 주변으로 따라붙던 지혁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맹수처럼 초록 점퍼 남자를 제압하던 모습도.
지혁이 물었다.
“그 남자는 어때요?”
“초록 점퍼?”
“네.”
지혁은 그 남자 얼굴에 주먹 빵을 하나 먹인 후에 내려놓았다.
“혹시 죽은 건 아니죠? 목을 노려 친 건 아니니까.”
꿀꺽.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지혁을 보며, 의전팀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미친놈이야. 또라이라고 하더니, 그게 아니라 미친놈이었어.’
“안와골절. 전치 4주.”
“아······ 혹시 실명된 건 아니죠?”
“약간 가능성 있대.”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관자놀이 아랫부분 노렸으니까.”
“······.”
“마지막에 이성을 차렸으니까 망정이지. 하마터면 불구 만들 뻔했네.”
의전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지혁을 멍하니 보다가, 한마디 했다.
“이성을 차렸으면 때리지 말았어야지.”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받은 건 돌려줘야죠.”
의전팀장은 생각했다.
‘이제 나갈까. 단둘이 있으니까, 괜히 무섭네.’
“뭐 하는 사람이래요? 선도그룹 노동자예요?”
“아니, 무슨 연대라고 하던데. 선도그룹 사람은 아니야. 술 취한 상태였고.”
“흠······.”
“그런 사람 많아. 앞으로 자주 볼 거야. 다음부턴 이렇게 과민 대응할 필요 없어.”
똑똑.
문 드리는 소리와 동시에.
“아이고~ 지혁아!”
“자기야!”
어머니와 수아가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
어머니는 지혁을 때리며 소리쳤다.
“아이고! 이 녀석아. 네가 경호원이야?! 어!”
수아도 한마디 했다.
“회장이 테러당하든 말든 자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의전팀장은 두 여자에게 혼날 것 같아서, 인사도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아유, 어머니. 그만 좀 때리세요. 저 환자예요. 하하.”
“웃어? 웃어?!”
어머니는 더 때렸고, 수아는 꼬집었다.
“하하, 참나.”
지혁은 아프지만 즐거웠다.
그래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잠시 후, 두 여자는 진정했고.
어머니가 말했다.
“팔 괜찮은 거야?”
“네.”
지혁은 움직여 보이며 말했다.
“그냥 흉터만 좀 생기겠죠. 괜찮아요.”
수아가 볼멘소리로 물었다.
“흉터 생긴 게 별일 아니야?”
지혁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흉터는 훈장이지. 당연한 소리를.”
수아는 대답 대신 한 손가락으로 머리 옆을 빙빙 돌렸다.
어머니가 물었다.
“오늘 여기서 자야 하는 거니?”
“회사에서 그러라고 하네요. 전 가도 될 거 같은데.”
“어휴······ 그래도 회사가 좋아서 다행이지.”
지혁이 묵은 병실은 VIP룸으로, 집보다 더 좋았다.
“나도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
수아의 말에 지혁은 눈썹을 살짝살짝 올리며 신호를 보냈다.
“웰컴이지. 자고 가.”
수아는 손사래를 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덜컹!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의전팀장이 소리쳤다.
“오 차장! 회장님 오신다.”
“네?”
“갑자기 문병 오셨어. 지금 막 병원 입구로 들어오셨다니까, 옷 단정히 입고 있어.”
지혁은 당황한 얼굴로 어머니를 보았고.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