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03화 (103/301)

103. 그룹의 중심

선도그룹 비서실.

오 부회장으로부터 인원충원 통보를 받은 후, 세 남자가 모였다.

지원팀장이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요? 외부에서 인원 충당이라니. 비서실은 결원이 생겨도 항상 내정된 인원으로 충원했잖아요?”

의전팀장 장남일 이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도대체 어떤 사이길래, 부회장님께서 직접 인사조치를 지시하셨을까요.”

가운데 앉아서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비서실장 강정철 전무.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글쎄~ 뭔가 사정이 있으시겠지. 우린 주어진 일 하면 돼. 달라질 거 없어.”

의전팀장과 지원팀장은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포근한 외모에 항상 웃는 초승달 눈매.

말투 또한 부드럽고 상냥하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항상 정확하고 간결했다.

비서실장은 인사기록 카드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지혁 차장, 황성준 과장······.”

그의 눈빛이 빛났다.

“오지혁? 이 사람 유명하지 않아?”

비서실 사람들은 듣는 귀가 많기도 했지만, 선도그룹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지혁을 모르는 게 이상했다.

지원팀장이 말했다.

“네, 유명인입니다. 최근 이 친구 덕분에 선도물산이 몇 번 뒤집어졌었죠.”

의전팀장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서 잘해서 경영자까지 올라가지, 여긴 뭐하러 왔대요?”

지원팀장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미래기획실이라면 몰라도, 굳이 비서실을······.”

선도그룹 비서실은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진다.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기획실’.

오 회장 보좌 역할에만 충실히 하는 ‘비서실’

원래는 미래기획실과 비서실이 한 부서로 합쳐져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미래기획실장, 비서실장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의전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잘못 알고 자원한 거 아닐까요? 미래기획실이 나눠진 거 모르고?”

이 말에 지원팀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요.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걸 선도그룹 직원이 왜 모르겠어요?”

선도그룹 비서실은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 특히 미래기획실은 신문 기사에도 자주 오르내린다.

“쓸데없는 추측하지 말라니까~ 그냥 일만 하면 돼.”

비서실장은 의전팀과 지원팀의 TO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의전팀이 얼마 전에 또 사람 나갔잖아?”

“흠!”

의전팀장은 헛기침하고 말했다.

“아무래도 외근도 많고, 신경 쓸 게 많은 일이다 보니.”

지원팀은 몇 년째 인원 구성의 변화가 없는데, 의전팀은 매번 완전한 TO로 반년도 채 가지 못했다.

조직 생활에서 정말 어려운 점은 업무강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의전팀 인원이 계속 바뀌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도물산 상품기획 1팀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장 팀장.”

비서실장은 의전팀장을 불렀다.

“네.”

“내가 알아.”

“······.”

“일 문제 안 되게 하니까, 가만 있는 건데.”

비서실장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무서운 말을 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 거야.”

“······.”

“무슨 말인지 알지? 나도 의전팀이 빡센 거 안다고. 어떻게든 문제만 안 되게 해.”

의전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비서실장은 인사기록 카드를 덮으며 말했다.

“자, 그럼 미팅은 끝났네. 의전팀장은 새로운 팀원들 잘 받고.”

의전팀장은 고개를 숙이며 깍듯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황 과장은 막상 출근길에 나서니 현타가 찾아왔다.

‘아니, 내가 생산을 몇 년 했는데. 그래, 뭐 상품기획이야 연관성이 있으니까 그렇다 쳐.’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경력에 비서실을 간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동안의 내 커리어는 어떡해?’

자진해서 온 것도 아니며, 등 떠밀려 왔다. 그동안 쌓아온 걸 버릴 생각을 하니.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그래도 경력 5년 차의 회사원답게.

아무리 아닌 것 같아도, 묵묵히 출근했다.

“오셨어요?”

선도본관 앞에, 지혁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황 과장은 평소처럼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했고.

지혁은 웃으며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저 이제 팀장 아니에요.”

“······.”

“호칭 조심해 주세요. 저 밉보이게 만들고 싶으신 거 아니면.”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 과장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심하겠습니다.”

“네. 들어갈까요?”

지혁의 말에 황 과장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후우-

손으로 뺨을 몇 번 두들기고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네, 들어가시죠.”

지혁이 앞장서서 선도본관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확-

선도물산의 로비와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선도물산 1층 로비는 협력사 사람들도 많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에 반해, 선도본관은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였다.

공간의 크기에 비해, 사람도 몇 명 보이지 않았다.

황 과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아주 다르네요.”

리셉션은 로비 안쪽 깊숙이 있었고, 지혁은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어머! 어머!

-오지혁 씨 아니야?

-아~ 나 저분 알아.

-진짜 그 사람 맞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도물산에서는 그러려니 했지만.

선도본관에서도 지혁을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맞네~ 그분 맞네~

-TV보다 실물이 더 낫네.

-멋있다······ 유부남이라던데.

-인사하면 받아줄까?

첫 출근날이다. 지혁은 이런 반응이 난감했다.

황 과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 차장님, 이걸 어째요?”

어느덧 리셉션 앞까지 왔고.

지혁의 등 뒤 약 3m 거리에 선도그룹 직원 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리셉션 여직원도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말했다.

“오지혁님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혁은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으나, 리셉션 직원은 지혁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오늘 비서실 발령 받았는데요. 미래기획실 인사지원팀으로 오라고 했거든요?”

“아, 네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혁과 황 과장은 리셉션 여직원의 안내를 듣고, 황급히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지혁이 사라진 뒤에도 직원들의 수군거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

27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안내 표시를 따라서 갔다.

‘미래기획실’

한쪽에 ‘비서실’ 안내표시도 보였지만, 도착하면 먼저 미래기획실의 인사지원팀으로 오라고 안내받았다.

“맞겠죠?”

황 과장은 지혁의 뒤만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틀리면 돌아가면 되죠. 뭐.”

황 과장과는 달리, 지혁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참 대단해. 누가 오 차장님을 첫 출근한 사람으로 보겠어.’

“같은 회사인데······ 꼭 이직한 거 같네요. 건물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고.”

“형태는 이직이 맞잖아요. 같은 그룹일 뿐, 회사가 다르니까.”

“아······ 그러고 보니 퇴직금도 받았네요. 왜 주나 했었네.”

황 과장은 왜 주는지도 모르고, 퇴직금 주니까 받았었다.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회사를 너무 믿는단 말이야. 회사 입장에서야 좋겠지만.’

어느덧 미래기획실에 도착했고.

지혁은 사무실 문 가까이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인사 지원실이 어딨습니까?”

직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지혁의 얼굴을 확인한 후, 곧바로 일어났다.

“오지혁 차장님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만.”

지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 날 아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심지어 이 사람은 직급까지 알고 있네.’

“반갑습니다. 오신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너무 좋네요.”

“네······ 반갑습니다.”

지혁은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얼떨결에 인사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혁은 이동하면서 미래기획실 내부와 이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황 과장과 비슷해 보였는데, 미래기획실에서 40대 이하로 보이는 사람은 이 남자밖에 없어 보였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혹시 인사지원팀이신가요?”

지혁은 이 남자의 신상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아닙니다. 전 미래기획실 전략팀에서 근무하는 차정원 과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래기획실 전체 막내입니다.”

옆에서 황 과장이 중얼거렸다.

“와, 과장이신데 막내······.”

그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여기서 과장은 애기에요. 하하.”

황 과장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 오자마자 애기구나······”

차정원은 지혁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너무 예의 바른 태도가 지혁은 어딘가 거슬렸다.

“네, 또 뵙죠.”

차 과장과 인사를 나눈 뒤, 인사지원팀으로 들어갔다.

***

“누구시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인사지원팀에 들어온 두 남자에게 물었다.

“오늘 선도물산에서 발령받아서 온 오지혁 차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황성준 과장입니다.”

“아~”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지혁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반가워요. 인사지원 팀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그와 눈빛을 마주하고, 악수하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임원이군.’

지혁은 선도물산에서부터 임원 상대를 많이 해봤고, 그들만의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눈빛, 악수 강도, 태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화제의 인물을 만나서, 영광이네요?”

인사지원 팀장은 지혁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혁은 오늘 ‘영광’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들었다.

“두 분은 비서실 의전팀으로 배치되었고요.”

황 과장은 반색하며 물었다.

“엇! 같은 팀입니까?!”

인사지원 팀장은 이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본인 할 말만 했다.

“곧 의전팀장님 오실 거에요. 뭐 궁금한 거 없죠?”

인사지원 팀장은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뭔가 집어서 물어보기도 어려운 상황.

지혁과 황 과장은 질문하지 못했고.

인사지원 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궁금할 게 뭐 있겠어요.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거지. 잠시 앉아서 기다려요.”

“알겠습니다.”

인사지원 팀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약 10분 뒤.

똑똑.

덜컹.

“안녕하세요~”

반삭발 머리의 장년 남성이 들어왔다.

지혁은 본능적으로 그 남자가 의전팀장을 알아차렸다.

‘나이는 50 정도 되어 보이고, 피부와 몸매 보니 자기관리 좀 하는 스타일이네. 성격 좀 까탈스럽겠어.’

의전팀장은 곧바로 지혁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혹시, 오지혁 차장님?”

지혁과 황 과장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의전팀장은 단번에 지혁을 알아봤다.

“네, 맞습니다. 오지혁입니다.”

“반가워요. 의전팀 팀장 장남일 이사라고 합니다.”

‘여긴 팀장급이 임원이군.’

“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잘 지내봅시다.”

의전팀장은 외모는 까칠해 보였으나, 지혁에게 하는 행동은 아주 깍듯했다.

앞으로 함께 지내야 할 직속상사다. 지혁은 그의 이마부터 살폈다.

‘진회색’

속은 새까맣지만 그 어두움을 숨기며, 겁이 많은 회색계열의 사람.

복직하여 지금까지 만난 사람중 선도물산의 윤 팀장이 회색 계열이었다.

다만, 그는 연회색에 가까웠고, 지혁을 만난 후 회색빛은 더욱 흐려져 하얀색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의전팀장은 검은색에 가까운 ‘진회색’이었다.

‘겁이 많은 사람이니, 날 어떻게 할 것 같지는 않지만······ 황 과장님에게 어떨지 모르겠군.예의 주시해야겠어.’

지혁이 우려했던 일은 현실화 될 징조를 보였다.

“자네가 황성준 과장이야?”

의전팀장은 황 과장을 깔보듯 바라봤다. 지혁에게 말하던 태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네! 인사드립니다! 의전팀에 배치받은 황성준 과장입니다!”

의전팀장은 못마땅한 듯 황 과장을 보다가, 뱉듯이 말했다.

“그래, 잘 버텨봐라.”

“······.”

의전팀장은 발걸음을 떼며, 지혁을 향해 말했다.

“저 따라서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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