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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90화 (90/301)

90. 대가리

[내 집무실에서 보세. 지금 바로 갈 테니.]

한 전무는 지혁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집무실에 도착하여 들어가니.

덜컹.

“안녕하세요.”

지혁이 먼저 도착하여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전무는 빨리 걸어왔더니, 숨이 좀 가빴다.

“무슨 일인데?”

“숨부터 돌리시죠.”

“뭐, 사고 터진 거 아니지?”

한 전무의 말에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터진 거 아니고요. 터트려 보려고요.”

“뭐?”

가벼운 얘기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 옮겨야 해?”

아무리 한 전무의 집무실이고, 두 사람만 있다고 해도 회사 안이다.

누가 어떻게 들을지 모른다.

“아니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주제가 뭔데?”

지혁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대가리요.”

“?!”

한 전무의 눈이 커졌다.

‘대가리’는 그들 사이에 홍 대표를 지칭하는 은어였다.

회사 내에서 얘기할 때는 고유 명칭 쓰는 걸 피했었다.

“방법을 찾은 거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한 전무는 고개를 갸웃했다.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리스크가 꽤 큽니다.”

“······.”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얘기해 봐. 도대체 뭔데 그래.”

지혁은 이 일을 생각하게 된 경위부터 얘기했다.

“일주일 전에 재우 인터내셔날 인사팀장이 절 찾아왔었습니다.”

“재우? 왜?”

“저 스카우트 하려고요.”

“흠······ 수락한 건 아니지?”

지혁은 이 물음엔 답하지 않고,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제가 잘 응하지 않자, 대가리가 문제가 많다고 얘기하면서 이런 회사에 계속 있어야겠냐고 설득하더라고요.”

“······.”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그 인사팀장을 조사해 봤습니다.”

“조사했다고? 어디까지?”

“전 사람 조사할 때 할 수 있는 건 다 합니다.”

“······.”

“전무님께서 제 뒷조사하실 때, 흥신소에 의뢰하셨던 거 같던데. 그 정도 수준이라고 보시면 돼요.”

한 전무는 헛기침하고, 화제를 전환했다.

“흠! 그래서? 조사해보니 어떻던가?”

지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재우 인터내셔날 인사팀장이요.”

1층 로비에서 봤던 불도저 같은 그 남자의 인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비리 적발하는데, 전문가입니다.”

“비리?”

“네. 재우 인터내셔날에서 여러 명 날렸더라고요.”

***

“아······.”

한 전무는 지혁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인사팀장의 말이 빈말이 아닐 것 같다는 얘기잖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러니까 파헤쳐 볼 의미가 있다는 얘기지?”

“네.”

“근데, 대가리가 과연 비리를 저질렀을까? 내가 몇 년간 샅샅이 뒤졌는데도, 그런 건 없었는데.”

지혁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내부에서는 안 보이는 일이 외부에서는 쉽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

“실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에요. 재우 인터내셔날 인사팀장이 밖에서 우리 회사를 관찰하다가, 뭔가를 발견했을 가능성 있어요. 게다가 그쪽 방면에 전문가시니까.”

“근데, 우리 회사를 왜 관찰했을까?”

“그야,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래······.”

꽤 가능성이 있는 일.

결정적인 비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아무리 홍 대표라도 어쩌지 못한다.

대기업일수록, 경영자 비리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하다.

‘만약 진짜로 뭔가 발견이 된다면, 게임 체인저가 되겠지만.’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집안일을 외부 사람과 상의해야 하는 거잖아.”

“그렇죠.”

“그것도 최대 경쟁사와 말이야.”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 다니다 보면.”

지혁은 한 전무가 우려하는 것들을 이미 고민했기에 곧바로 대답했다.

“대가리가 눈치챌 수도 있고, 그러면 상당히 곤란해지겠죠.”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그를 주시하는 것만큼 그 또한 우리를 신경 쓰고 있을 거라고. 역공당할 수도 있어.”

‘기회가 온 것 같긴 한데 말이야······.’

그건 확실히 느꼈지만, 한 전무는 망설여졌다.

“······.”

집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한 전무는 이리저리 동공을 움직이며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지혁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잖아요.”

“······.”

“상대방이 틈을 안 보이면, 틈을 보이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혁은 망설이고 있는 한 전무를 푸시했다.

“그리고 경쟁사면 어때요? 이기는 게 중요하죠. 승리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자원은 다 쓰는 거죠. 문제 안 되게 지혜롭게 잘 쓰면 돼요.”

그래도 한 전무는 쉽게 결정을 못 했고.

지혁은 아무래도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갑자기 가라앉은 지혁의 목소리에 한 전무는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일부러 대가리 안 치는 거 아니죠? 이 균형을 유지하려고.”

“무슨 소리야!”

한 전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진심으로 홍 대표를 싫어한다.

지혁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으나, 그의 결심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자극하는 거였다.

“합리적 의심 아닙니까? 지금 선도물산에서 거의 이인자 위치신데, 위험 감수 할 필요 없잖아요. 지금만으로도 떵떵거리며 잘 사실 수 있으실 테니까요.”

“······.”

“저한텐 솔직하셔도 돼요. 사람이 그런 거죠 뭐.”

살짝 비아냥대듯 말했고, 결국 한 전무는 발끈해서 지혁의 말을 멈추었다.

“그만.”

“······.”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해.”

한 전무 또한 지혁이 이렇게 말하는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오 팀장.”

“네.”

“자신 있어?”

이 물음에 지혁은 피식 웃었다.

‘자신 있냐고? 질 게 뻔한 싸움을 왜 하겠어. 생존이 목적인데.’

지혁은 그 세계에서 칼을 뽑았을 때는 무조건 끝장을 봤었다.

적 앞에서 칼을 빼 든 이상.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거니까.

지혁은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다. 그건 지금까지 칼을 빼 들었을 때 적의 숨통을 끊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끝장 봅니다.”

자신 있냐는 물음에 지혁은 이렇게 대답했다.

“후-”

한 전무는 배 아래 쪽부터 깊이 숨을 몰아쉰 후, 말했다.

“그래, 진행해.”

***

[여보세요?]

[재우 인터내셔날 인사팀장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류광환입니다. 어디십니까?]

지혁은 행동이 빠르다.

한 전무의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전화했다.

[선도물산 오지혁입니다.]

[엇!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하하!]

류 팀장은 큰 소리로 웃으며 좋아했다.

[와~ 드디어 오 팀장님 번호를 알아내네요. 혹시 다른 사람 핸드폰으로 전화 거신 건 아니죠? 하하.]

[그런 짓까진 안 해요. 인사팀장님이 보이스피싱은 아니잖아요.]

[네? 하하. 농담도 참~]

지혁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잠깐 좀 뵐 수 있을까요?]

[어이쿠! 그럼요! 얼마든 지요! 언제 어디서 뵐까요?!]

시계를 본 후 말했다.

[근무 시간엔 바빠서요. 퇴근 후에 저녁 같이 드시는 거 어때요?]

[좋습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육해공 중에 뭘 선호하시는지만 알려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참고로 전 육군 출신입니다만. 하하.]

그의 농담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전 활어회 좋아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식당 주소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밤 8시.

지혁은 류 팀장이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고급 횟집이었고, 이름을 대자 밀실로 안내해주었다.

드르륵-

“어이쿠~ 어서 오십시오.”

류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지혁을 맞았다.

“제가 너무 갑자기 뵙자고 했죠?”

일주일 만에 오후 4시에 전화해서 그날 저녁에 보자고 했으니.

당황할 만도 했지만, 류 팀장은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전 오 팀장님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함 버리지 않고, 간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지혁은 류 팀장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회사 인사팀장이랑 스타일이 비슷하네. 인사팀장들은 원래 이렇게 부담스러운가.’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미모의 직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메뉴는 제가 알아서 시켰습니다.”

순식간에 식탁 위에 음식이 가득 채워졌다.

“코스 요리는 감질 나잖아요? 쫙 깔아놓고 취향껏 드시라고 시켰는데. 괜찮으시죠?”

“네.”

류 팀장이 꽤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혁 또한 코스 요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이렇게 대접해 드려도 괜찮은 거죠?”

“네?”

“간혹 뭐 회사 규정 때문에 일정 금액 이상은 대접 못 받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아, 그런 거 전 신경 안 씁니다. 저한테 현금 주실 것도 아니잖아요?”

“네?”

“왜요. 주시게요?”

류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달라는 소린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하하. 요즘 그러면 큰일 나죠~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지혁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류 팀장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술은 안 하십니까?”

“한 잔 주세요. 회식 자리는 아니니까.”

“아, 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가.

류 팀장이 슬그머니 얘기를 꺼냈다.

“오늘 저 보자고 하신 건······ 우리 회사에 관심이 생기신 거겠죠?”

“네?”

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내가 너무 급했나.’

류 팀장은 황급히 웃으며 말했다.

“아~ 하하. 아닙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채용 얘기는 나중에.”

“아~ 그 말씀이셨구나.”

지혁은 잔을 털어 넣고 말했다.

“회사에는 관심 없는데?”

“네?”

“전 인사팀장님께 관심 생겨서 보자고 했어요.”

“······.”

류 팀장은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 뭔 소리야. 나한테 관심이 왜 생겨?’

“그래서 오늘 식사는 제가 사려고요. 많이 드세요.”

지혁은 그러면서 류 팀장의 빈 잔을 채워주었고.

류 팀장은 얼떨결에 잔을 받았다.

이런 식의 예상 밖의 행동으로 정신을 빼놓았고.

류 팀장은 점점 말리고 있었다.

***

꽤 시간이 흘러, 식탁 위에 많던 음식들이 어느새 반 이상 비워져 있었다.

“지난번에 저랑 헤어질 때 하셨던 얘기 있죠.”

“무슨 얘기요?”

류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뭔가 말실수 한 게 있었나 싶었던 것이다.

계속 혼란스럽게 하는 지혁 덕분에, 그는 여유를 잃은 지 오래였다.

“우리 회사 대표님께 문제가 있다고······.”

“아~ 네네.”

류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혁의 묵직한 음성이 그를 불렀다.

“인사팀장님.”

“네.”

“저 좀 보시죠.”

“네?”

류 팀장은 술잔에 두고 있던 시선을 지혁에게 옮겼고, 그의 눈빛에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류 팀장은 그룹의 인사팀장이며, 채용부터 직원 관리까지. 많은 사람을 상대해 봤다.

하지만 이렇게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같은 눈빛은 처음 마주해봤다.

마치 지혁의 동공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대표님께 문제 있다는 거······ 빈말로 한 말 아니죠?”

“······.”

“진짜 뭔가 있는 거죠?”

꿀꺽.

류 팀장은 침을 삼켰다.

‘이걸 어째야 하나······.’

머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인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정신과 육체를 지혁의 눈빛에 꽉 잡혀버렸다. 사실대로 대답 안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어서 대답하세요. 중요한 일입니다.”

“······.”

류 팀장의 손에 땀이 흥건해졌고,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듯 대답해 버렸다.

“네, 선도물산 대표님, 확실히 문제 있습니다.”

“비리겠죠?”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네.”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알만큼은 압니다.”

그제야 지혁은 눈빛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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