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마음의 소리 (1)
이글거리는 인사팀장의 눈빛을 보며, 지혁은 속으로 웃었다.
‘자기 확신이 참 강한 사람이야. 이 정도로 내가 오너일가라고 철석같이 믿는 거 보면.’
결국엔 인사팀장의 추측이 맞는 게 되어버렸지만, 지혁으로서는 인사팀장이 이런 태도가 참 신기했다.
‘이 사람도 세 번째 눈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제 생각에 결과는 뻔하거든요?”
“뻔한 결과요?”
“네, 개발팀장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에요.”
인사팀장은 눈알을 굴리더니.
“아~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뻔한 결과! 그럼요~ 오 팀장님이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나와야지요.”
인사팀장의 표정을 보니, 설문지 조작이라도 할 분위기였다.
그의 이런 태도가 염려됐다.
“그렇다고 없는 걸 만들어내진 마시고요.”
“아, 이해했습니다. 감쪽같이 하라는 말씀이시죠.”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좀 과한데? 상당히 부담스러운 스타일이네.’
눈치도, 행동도 빠른 사람이 왜 더 올라가지 못하고 팀장에 머물러 있는지. 이제 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니요. 있는 그대로 하라고요. 나온 결과 그대로.”
“아······.”
인사팀장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어떡해? 아,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알아서 하라는 소리인가.’
지혁은 인사팀장의 표정을 읽으며 생각했다.
‘들리는 대로 이해하면 되지. 생각이 참 많네.’
인사팀장이 실수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문지 검토 후에 인사조치 결과가 나오면, 보고하기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주세요.”
“컨펌 받으라는 말씀이시죠?!”
인사팀장은 단어 하나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걸 선택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다는 거였는데.
웬만해선 타인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는 지혁도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아니, 뭐 컨펌까지야······.”
“알겠습니다! 오 팀장님께 보고 드린 후에, 인사조치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과정까지 눈으로 확인 후에 결정하면 문제없겠지.’
“네. 얼마나 걸릴까요?”
“급한 일이십니까?”
“급할 건 없지만, 빨리 결과를 봤으면 좋겠어요.”
인사팀장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금일 중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
***
[개발팀 설문지 결과 보고]
점심을 먹고 왔더니, 인사팀장에게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이건 뭐······ 다음부터 일 시키지 말라는 고도의 술수인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니까, 인사팀장의 의도가 불순해 보일 정도였다.
인사팀장을 찾아가서 얘기한 게 오전 11시쯤이었는데.
지금, 오후 1시에 보고 메일이 왔으면, 점심도 굶고 일했다는 얘기다.
분명 혼자 다 했을 리는 없고······.
“사람 참 미안하게 만드네.”
“누가요?”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 황 과장이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있어요. 부담스러운 분.”
황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묻지 않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그는 이제 지혁의 말투만 들어도 안다. 그가 이렇게 말하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클릭.
지혁은 인사팀장이 보내온 메일을 열었다.
‘뭐야 이게.’
결과는 지혁이 기대한 대로였다.
‘개발팀장 고승윤 차장. 인사조치 필요함.’
하지만 그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메일에 첨부 파일로 들어가 있는 설문조사 내용을 보니.
개발팀장을 지지하는 팀원들도 꽤 있었다.
규탄과 지지가 거의 반반이었는데, 팀장직을 맡으면서 팀원들의 반이 지지할 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것이다.
단적인 예로, 심 부장이 상품기획 1팀으로 있을 때, 그를 지지하는 팀원은 정 차장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인사팀장은 팀원들의 고충만을 잘 버무려서, 개발팀장의 인사조치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내용도 또한 그럴싸했다.
‘이건 아니야.’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정리를 하긴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개발팀장은 지금 자리에 있으면 안 되었다.
조직쇄신을 위해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설문조사와 인사팀장의 의견을 통해 명분도 만들어졌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가슴 속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은 기분.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지혁은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이럴 때 쉽게 결정하면 꼭 실수가 생겼었다.
윤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윤 팀장님. 담배 안 태우세요?]
[지금 갈까? 옥상?]
[네.]
***
지혁이 기다리고 있는데, 윤 팀장이 올라왔다.
“오 팀장~ 자주 보네. 어째 팀 이동하고 나서 더 자주 보는 거 같아.”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요즘엔 옥상 잘 못 오시는 거 같아요?”
“담배 피울 시간도 없어~ 팀장 업무 파악에, 조직쇄신안 준비까지······ 누구 덕분에 건강해지게 생겼어.”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설문조사 인사팀에 보냈고, 좀 전에 개발팀장 조치 결과 나왔어요.”
“그래?”
윤 팀장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결론 내기 전에 나랑 얘기해달라고 했잖아.”
“인사팀 의견까지만 나온 거고 아직 위에 보고는 안 됐어요. 근데 좀 이상하네. 아까도 그러더니, 개발팀장 인사조치에 왜 그렇게 예민해요?”
“······.”
윤 팀장은 불편한 표정을 짓다가, 지혁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서 결과가 뭔데?”
“팀장직에서는 물러나는 거요.”
“······.”
“팀원들 의견 반영으로 결정된 거라, 팀장 자리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지혁은 윤 팀장에게 결과만 말했다.
개발팀장을 지지하는 팀원들도 꽤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근데, 윤 팀장은 대뜸.
“그건 안돼.”
“······.”
“개발팀장은 쳐내면 안 돼.”
지혁은 묘한 눈길로 윤 팀장을 바라봤다.
“거참 이상하네.”
“······.”
“생각이 왜 달라졌을까.”
지혁은 윤 팀장의 태도가 이상해 보였다.
“분명 엊그제 저랑 술 마실 때만 해도 개발팀장은 회사에 없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요.”
“······.”
지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내가 윤 팀장을 너무 믿었나? 행동이 자꾸 납득이 안 되네.’
윤 팀장은 지혁의 눈빛을 보고 오금이 저렸다.
“혹시, 제 뒤통수치려는 건 아니죠?”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윤 팀장은 지혁이 자신을 의심하는 듯 보이자, 강하게 부인했다.
지혁에게 그런 인상을 남기면 큰일 날 것 같았다.
“······.”
지혁은 아무 말 않고, 윤 팀장의 눈만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윤 팀장은 이제 손사래까지 쳐가며 소리쳤다.
“아니야! 진짜, 아니야! 오해하지 마!”
지혁이 설명을 구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급해진 윤 팀장은 재빨리 말했다.
“개발팀장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뀐 것뿐이야.”
“왜죠?”
“개발팀의 내, 외부 환경이 좋지 않잖아. 그런 팀을 운영해가려면 개발팀장처럼 강한 성향의 사람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 않으면 개발팀장 자리를 못 버틸 것 같기도 하고.”
“······.”
“그리고 사람이 거칠어서 그렇지, 말은 통하더라. 환경 때문에 방어적으로 변했을 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뭐예요? 그냥 두자고요?”
“어.”
윤 팀장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지금 자리 잘 유지해주면, 일하는 방식 바꾸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어.”
“약속까지 한 거예요?”
“······.”
윤 팀장은 묵음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지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 마음대로 하셨는데?”
“내가 이 일의 주 책임자라며.”
“······.”
“이 정도 결정도 못 해?”
“책임질 수 있으세요?”
지혁은 윤 팀장을 향해 말했다.
“난 개발팀장은 자리에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보는데. 윤 팀장님 의견대로 했을 때 문제 생기면, 책임질 수 있으세요?”
윤 팀장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꺼린다.
하지만······ 대답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임질게. 어떤 식으로든.”
지혁은 예상외의 대범한 답변에 놀랐다.
‘사람이 변한 건가? 이게 본모습이었던 건가?’
윤 팀장의 확신 있는 답변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개발팀장은 홍 대표의 오른발이다.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혁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일단, 알겠어요.”
“······.”
“내 식대로 검증을 해볼게요. 그 후에, 내가 최종적으로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예요. 여지는 없어요.”
윤 팀장은 대꾸하지 않고, 뾰로통한 얼굴로 있었다.
‘내가 오 팀장 명을 받들어야 하는 거야? 말하는 태도가 참.’
“대답 안 하세요?”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고, 생각과 달리 윤 팀장은 본능적으로 재빨리 대답했다.
“아, 알았어.”
***
지혁은 옥상에서 내려온 뒤.
곧바로 개발팀으로 향했다.
윤 팀장이 하는 말을 허투루 듣진 않았다.
그는 경력이 많고, 사람 상대를 많이 해본 사람이다. 그냥 감정적으로 하는 말이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지혁은 개발팀장이 쓸모가 있어 보였다.
‘전투력이 마음에 든단 말이야. 잘만 쓸 수 있다면······.’
개발팀장 같은 사람이 완전히 내 사람이 된다면, 꽤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홍 대표가 그를 오른발로 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덜컹!
지혁은 개발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방문.
벌떡.
개발팀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곧바로 개발팀장을 바라봤다.
그 또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있었다.
“팀장님,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저요?”
개발팀장은 지혁이 왠지 어려웠다.
“무슨 얘기를······.”
“잠깐이면 됩니다.”
지혁은 대답은 듣지 않고, 회의실로 들어갔고.
개발팀장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회의실로 따라 들어왔다.
“앉으세요.”
개발팀 회의실인데, 지혁이 주인처럼 행동했다.
개발팀장이 앉자, 지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개발팀장님 안 계실 때, 팀원들 대상으로 마음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네?”
개발팀장은 당황하여 되물었지만.
지혁은 개의치 않고, 할 말만 했다.
“주요 내용만 읽어드릴 테니 잘 들어보세요.”
[팀장님의 폭언 때문에 힘듭니다. 가끔 실수할 때마다, 이직 전 회사에서 이렇게 했냐고 왜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민감한 얘기를 꼭 많은 사람 앞에서 해야 합니까? 그건 기본적인 에티켓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차를 쓰는데, 뭘 하는지까지 제가 보고할 필요는 없잖아요. 왜 그걸 굳이 묻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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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이어지는 팀원들 불만 사항에.
개발팀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본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이건 가장 많은 의견입니다.”
[저희 팀장님, 업무적으로는 존경합니다. 하지만······ 같은 얘기라도 좀 좋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입니다······.]
지혁의 이어진 말에, 개발팀장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듭니다. 회사는 다녀야 하는데. 다녀야만 하는데······ 정말 오기가 싫습니다.]
결국, 그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