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적과의 조우 (2)
회의실 안.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윤 팀장과 개발팀장.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개발팀장이 빙글거리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 되게 열일하시네요. 본업도 아닌 일에······ 요즘 회사에서 잘나가시더니, 동아줄이라도 잡으셨나.”
“······.”
개발팀장의 방식이다.
항상 중요한 얘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을 뒤흔든다.
"어떤 동아줄인지 굉장히 궁금하네."
윤 팀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개발팀장은 황소 같은 외모에, 시종일관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윤 팀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별 반응이 없자, 개발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어서 보자고 한 거 아니에요?”
윤 팀장의 무반응은 오히려 개발팀장을 긴장시켰고, 분위기가 넘어왔다고 생각했을 때 윤 팀장이 입을 열었다.
“개발팀장님 보시기에 어때요? 우리 지금 문제가 많죠?”
“네?”
“솔직히 지금 잘되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
윤 팀장 스타일의 돌직구.
지혁이 강하게 때린다면, 윤 팀장은 부드럽게 팩트로 들이밀었다.
“소재 수배 기간 평균 14.5일, 샘플 완료 기간 평균 35일, 전년 대비 신소재 개발률 34%······.”
윤 팀장은 암송하듯이 말했고.
개발팀장은 속으로 많이 놀랐다.
‘뭐야? 저걸 다 외우고 있는 거야?’
개발팀장도 기억 못 하는 개발팀 현황까지 윤 팀장은 술술 말했고.
너무 구체적이고 자신감이 넘쳐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록이 말해주죠. 이 정도면 문제 있는 거잖아요.”
개발팀장은 눈만 끔뻑거렸고.
윤 팀장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인정 못 하시겠어요? 제가 말한 게 사실이 아닌 거 같아요? 도표로도 보여드릴 수 있는데.”
윤 팀장은 노트북을 켜려 했고.
개발팀장은 실제 자료까지 보고 나면,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말을 더듬거리며 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요. 그럴 필요까진 없고. 그래서 결론이 뭐죠? 문제가 많다고 문책하는 건가요? 윤 팀장님이 뭔데?!”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콧구멍에서 김이 나왔다.
개발팀장의 특기. 화력으로 밀고 나가려는데.
윤 팀장은 이번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조곤조곤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의 눈빛이 차가운 칼처럼 변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빨리 정상화 하자구요.”
“······.”
“잘리기 전에.”
***
개발팀장은 눈알이 빠져나올 듯 눈이 커졌다.
윤 팀장의 몇 마디 말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꿀꺽.
그는 마른 침을 삼키고 말했다.
조금 전보다는 목소리 크기가 많이 작아져 있었다.
“당신이 뭔데······그런 말을 하지?”
윤 팀장은 잠시 시간 텀을 뒀다가 말했다.
“같은 회사 동료로서 하는 말이죠.”
“······.”
“어차피 다 힘들게 회사생활 하잖아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윤 팀장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주변 상황을 돌아보셔야 해요. 개발팀장님, 이런 식으로 가면 정말 위험해요.”
“······.”
윤 팀장은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팀장이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
“최장기간 상품기획 팀장을 지냈던 심 부장을 끌어 내렸고, 임원인 상품본부장을 보내버렸어요.”
개발팀장의 눈두덩이가 떨렸다.
“그런 남자가 지금 개발팀장님을 주시하고 있다고요.”
“······.”
“오 팀장을 상대할 자신 있으세요? 제가 같은 팀원으로 지내봐서 아는데.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에요.”
윤 팀장은 지혁의 활약상을 떠올린 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그 사람의 반대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서이기도 하지만, 개발팀장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협조적으로 나오셔야 해요.”
“······.”
“개발팀장님도 회사생활 오래 하셨으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실 거라 생각해요.”
개발팀장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 ‘안위’를 얘기하니, 말이 쉽게 먹혀들었다.
개발팀장은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지혁의 ‘싸한 눈빛’을 떠올렸다.
사람이 아니라, 맹수 같은 느낌.
개발팀장이 아무리 안하무인에 개차반이지만, 어쨌든 팀장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생각할 줄도, 상황 판단도 할 줄 안다.
그는 윤 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협조하면······ 전 안전한 건가요?”
“물론이죠. 일하겠다는 사람을 내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윤 팀장은 망설이지 않고, 약속해주었다.
지혁의 속뜻과는 다르게 말이다.
***
“좋습니다. 그럼 제가 뭘 협조해드리면 되죠? 지금은 문제점만 말씀하셨는데.”
“문제의 근본은 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윤 팀장이 구상한 ‘일하는 방식 바꾸기’에 대해 설명했다.
개발팀장은 한동안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고.
윤 팀장의 얘기가 끝난 후 물었다.
“그러니까 핵심은, 영역을 완전히 나누고, 서로 관여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그거 예전에 안 해봤던 거 아니에요. 제한 사항이 많아요.”
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죠. 당연히 그럴 만 하죠.”
“제한사항의 핵심이······.”
개발팀장이 말하려는 걸 윤 팀장이 가로챘다.
“책임 소재죠.”
개발팀장은 생각했다.
‘물렁물렁하게 봤는데. 윤 팀장이라는 사람도 보통이 아니구나. 꽤 철저하네.’
“네 맞아요. 책임 소재.”
“······.”
“디자이너가 의뢰한 대로 우리는 움직였는데, 결과물이 그들의 의도와 다를 수 있거든요. 컨펌 단계를 거쳐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말하다 보니, 개발팀장은 다시 걱정이 앞서서 목소리가 또 커졌다.
“그때 가서 디자이너들이 문제 삼으면, 우린 어떻게 하나요? 다 우리 책임이잖아요?”
“······.”
“그 부담을 우리가 다 떠안고, 일하는 건 도저히 엄두가 안 나네요.”
윤 팀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의도한 것과 결과물이 다를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요.”
“네.”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빨간색을 의뢰했는데, 파란색이 나올 수도 있나요?”
“네?!”
개발팀장은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고의적이지 않다면, 그런 실수는 말이 안 되죠.”
“그러니까요.”
윤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의 명백한 실수라면 책임을 져야겠죠.”
“······.”
“하지만 느낌적인 느낌.”
윤 팀장은 윙크하며 말했다.
“디자이너들 잘하는 거 있잖아요. ‘노란색이 쨍해 보여요.’ ‘파란색이 우울해 보여요.’ 뭐 이런 거.”
이 말에 개발팀장도 피식 웃었다.
“그런 건 책임질 수 없죠. 그 정도 차이는 실수라고 볼 수 없는 거예요.”
“좋아요.”
개발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근데, 디자이너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
“클레임을 요구하고, 저희 보고 책임지라며 몰아세운다면요?”
***
“그럴 때 책임지라고 리더가 있는 거죠.”
지혁은 팀원들과 대화 중이었고.
팀원들 또한 개발팀장과 동일한 질문을 했다.
“회사가 방향을 정했고, 그 방향에 맞게 직원들이 일했다면. 결과에 따른 책임은 응당 회사가 져야 합니다.”
“······.”
“이 안이 최종 결정되면, 모든 책임은 본부장님과 대표님이 지실 거예요.”
특유의 무미건조한 말투로 얘기했고, 개발팀원들은 그래서 더욱 지혁의 말에 신뢰가 갔다.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도 조직쇄신안에 세세히 넣을 거니까. 여러분은 걱정하지 말고 일만 하시면 돼요.”
-상식적으로는 맞는 말씀이지만, 항상 지나고 나면······.
그 사이 경영자가 바뀔수도 있고, 이슈가 지나고 나면 경영자들은 딴소리를 하기도 한다.
“뭘 말하는지 아는데. 절대로 발뺌 못 할 겁니다.”
“······.”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약간 낯 간지럽지만, 지혁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했다.
“제가 누군지, 최근 6개월간 뭘 했는지 아시죠?”
“······.”
“믿고 따르세요.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다.
선도물산 사람들이 다 알 정도의 그가 해낸 일들.
그런 지혁이 확신 있게 말을 하니, 의심스러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개발팀원들은 설문지를 더 솔직하게 적을 수 있었고.
작성된 설문지를 수거한 후 지혁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나오셔도 돼요.]
잠시 후.
덜컹.
회의실이 문이 열리며, 개발팀장과 윤 팀장이 나왔다.
지혁은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윤 팀장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고, 개발팀장은 들어갈 때와는 달리 차분해진 얼굴이었다.
‘얘기가 잘 됐나 보군.’
윤 팀장은 개발팀장에게 말했다.
“일정 잡는 대로 연락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개발팀장은 지혁의 눈치를 한번 본 후, 윤 팀장에게 말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세요.”
지혁은 인사 후에 먼저 사무실을 나갔고, 윤 팀장도 곧 뒤따라 나왔다.
덜컹.
윤 팀장이 지혁에게 다가와 물었다.
“설문지는 잘 받은 거야?”
“네.”
“내용은?”
“몰라요. 익명으로 받는데, 저희가 확인하면 안 되죠.”
윤 팀장은 약간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바로 인사팀에 넘기려고?”
“네.”
“팀원들이 팀장에 대해서 어떻게 썼을지 모르는데.”
지혁은 윤 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걸 왜 윤 팀장님이 신경 쓰세요?”
“······.”
“규정대로 가는 거지. 왜요. 뭐 문제 있어요?”
그리고 지혁은 윤 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윤 팀장은 개발팀장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오 팀장이 어떤 생각인지 몰라. 지금 급한 건 아니니까. 상황을 좀 지켜보자.’
“아니야. 그럼 인사팀에서 의견 나오면 나한테 먼저 알려줘.”
“왜 그래야 하죠?”
“내가 이 일의 책임자잖아.”
지혁은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그리고 물었다.
“같이 갈래요? 지금 바로 인사팀 갈 건데.”
“오 팀장은 참 텀이 없다. 안 지쳐?”
윤 팀장은 이른 아침부터 개발팀장을 상대하고, 어려운 일에 집중했더니 기운이 다 빠졌는데.
지혁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난 이번엔 좀 빠지게 해줘······.”
“그러세요.”
인사팀에 가는 건 혼자가 편했기에 더 권하지 않았다.
***
인사팀.
똑똑.
“안녕하세요.”
지혁을 확인한 인사 팀원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인사팀장이 워낙 깍듯하게 지혁을 대하니, 팀원들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최대한 예의를 차리게 된다.
“인사팀장님은요?”
“회의 중이세요.”
“아, 그래요?”
지혁은 빈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려는데.
덜컹!
“안녕하십니까! 오 팀장님!”
앉기도 전에 회의실에서 인사팀장이 튀어나왔다.
“아, 네. 안녕하세요. 회의 마저 하고 나오셔도 되는데.”
누가 봐도 급하게 회의를 종료한 듯 보였다.
‘내가 온 줄 어떻게 알았지.’
지혁은 자신이 온 걸 알고, 재빠르게 나온 인사팀장이 신기했다.
“아닙니다~ 어차피 중요한 회의도 아니라. 하하.”
회의실에서 젊은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나왔다.
“근데, 어쩐 일이십니까?”
인사팀장은 상냥하게 물었고.
“꼭 일 있을 때만 와야 하나요?”
“하하!”
인사팀장은 당황하여, 일부러 큰 소리로 웃었다.
“일없이 와 주시면, 더 환영이죠~”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상품본부 조직쇄신 관련해서, 평판 안 좋은 팀 내부 설문조사를 했거든요. 검토 좀 해주세요.”
“아······.”
인사팀장은 지혁이 건넨 설문지를 받아들며 생각했다.
‘오 팀장님의 첫 지시.’
그는 설문지를 꽉 잡고 의지를 불태웠다.
‘나 아직 젊어. 열심히 한번 해보자.’
사십 대 중반의 인사팀장은 눈에 불꽃이 일었고.
지혁을 향해 또박또박 대답했다.
“열과 성의를 다하여, 최선을 다해 검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