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보상과 정리 (2)
[다음은 팀장급 승진 및 포상이 있겠습니다. 먼저 특별승진자입니다.]
강당에 모인 직원들은 모두 짐작했다.
누가 단상으로 올라올지.
두 번 연속 특진을 하는 사람.
특진이라는 것 자체가 선도물산에 잘 없었고, 더욱이 연달아 특진하는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런데······.
스크린에 뜬 문구를 보고, 직원들은 기겁했다.
'오지혁 팀장 : 대리 -> 차장.'
두 계급 특진.
사회자도 순간 헷갈렸다.
‘실수 아니야?’
[아, 잠시만요.]
손안에 들고 있는 시트와 스크린의 내용을 번갈아 확인했다.
‘맞는데? 진짜 바로 차장으로 간다고?’
사회자는 단상 한쪽에 서 있는 인사담당자를 보았고.
그는 사회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맞는 거였다.
[네,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오지혁 팀장님 앞으로 나와 주세요.]
지혁은 특유의 큰 걸음으로 단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직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미쳤나 봐.
-말도 안 돼······,
-대리가 어떻게 한 번에 차장이 돼?
-난 지금 대리만 4년째인데······.
복직하고 3개월 만에 대리 승진.
그 후로 6개월 만에 차장이 되었다.
결과만 본다면 직원들이 놀랄만하다.
그러나, 지혁은 특진을 하기 전에, 근 10년간 선도물산에 없었던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정도 보상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거였다.
-저 사람이 좀 특출나긴 하잖아.
-회사 다니면서 한 번도 내기 힘든 히트상품을 연달아 냈는데.
-하긴 업계를 떠나서, 대한민국에 이슈가 될 일이었으니까.
-해낸 것에 비하면 뭐······ 이 정도 특진이 대단한가?
-회사에서는 뭘 해서라도 잡고 싶겠지. 제대로 보상 안 해줬다가, 딴 데 가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흠. 그래도······ 많이 부럽다.
지혁은 대표이사 앞에 섰다.
“축하하네.”
대표이사는 임명장을 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곧 보게 될 거라는 얘기 안 하나?”
이 물음에 지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빨리 안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
대표이사는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으나.
지혁은 대꾸하지 않고, 직원들을 향해 돌아서서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직원들은 일제히 큰 박수를 보내었다.
-우리 팀장님! 멋지다!
-오 팀장님! 파이팅!
그 중 박수 소리를 뚫고 나오는 고성이 있었는데.
황 과장과 손정진이었다.
목소리 크기가 일당백이었다. 흡사 콘서트장에서 팬이 가수에게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팀장님! 사랑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지혁은 재빨리 검지를 입 앞에 가져갔다.
“쉿-”
지혁의 사인에 두 남자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옆에 선 사회자가 웃으며 말했다.
[소감 한 말씀 하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 하고 싶은데······.”
사회자는 어서 하라고 손짓했다.
지혁은 마이크를 잡고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다들 고생이 많으신데, 저만 이렇게 되니 좀 민망하네요. 지난번 승진식 때는 제가 좀 건방지게 말씀을 드렸었죠.”
강당 안에는 지혁의 목소리 외에는 정적이 흘렀다.
“회사 생활을 할수록, 근무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리스펙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모든 회사원 화이팅입니다.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짧은 얘기였지만, 울림이 있었다.
-저분 좀 멋지다.
-사람이 묵직한 맛이 있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으니까, 감동이 와.
-뭐야······ 나 왜 뭉클하니.
그 이후 상품기획 1팀의 팀 포상까지 진행했고.
팀 단체 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행사는 종료되었다.
***
상품기획 1팀은 들떠 있었다.
특진에 팀 포상까지.
게다가 모든 직원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항상 팀 전체가 점심 식사를 같이하는데.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 이번에 특진한 정 차장이 헤벌쭉한 얼굴로 말했다.
“정진!”
“네! 차장님!”
“차장? 하하. 그거 듣기 좋네. 넌 근데 왜 그렇게 기분 좋아 보이냐?”
“네?”
“다 개인 포상 하나씩 받았는데, 너만 못 받았잖아. 괜히 좀 미안했거든······ 근데 표정이 밝아 보여서.”
다른 팀원들도 궁금했는지 손정진을 바라보았으나, 지혁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손정진은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저는 그 어떤 상도 부럽지 않은 큰 포상을 받았습니다.”
“어?”
“받고 싶은 사람에게 받는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은 없죠.”
정 차장은 문 대리를 향해 물었다.
“얘 뭐라는 거예요?”
“글쎄요······.”
지혁도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짜식이, 부담스럽게.’
손정진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 선물은 평생을 간직하며,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야, 적당히 해.”
결국, 지혁이 한마디 했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다른 팀원들은 무슨 소리인지 궁금했으나, 지혁이 그만하라고 하니 더 묻지 못했다.
사무실 도착.
자리에 앉은 후, 지혁은 컴퓨터에 뜬 알림창을 확인했다.
[메시지 : 인사팀장]
‘팀장님~ 연봉계약서 쓰러 오셔야죠~’
지혁은 시계를 봤다.
점심 시간을 막 지난 시간.
배부를 땐 업무 집중이 잘 안 된다.
어차피 해야 할 거. 지금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 지금 갈게요.’
지혁은 인사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다른 승진자들을 불렀다.
“윤 부장님, 정 차장님 지금 인사팀 같이 가시죠. 아, 정진아. 황 과장님도 지금 인사팀으로 오시라 그래.”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인사팀 앞에서 상품기획 승진자들은 황 과장과 만났다.
“여어~ 황 과장~”
정 차장이 장난스럽게 그를 불렀고.
“어이쿠. 정 차장님 오셨습니까. 하하.”
두 사람은 서로를 툭툭 밀치며 장난스럽게 불렀다.
파견근무를 꽤 오래 했기에, 황 과장은 상품기획 팀원들과 친하다.
황 과장은 윤 부장을 다정하게 불렀다.
“윤 부장님~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어.”
“······.”
평소 장난기 많은 윤 부장만 표정이 어둡고 대답도 시큰둥했다. 이럴 때 가장 너스레를 떨어야 할 사람이 이러니 이상했다.
황 과장은 괜히 뻘쭘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들어가시죠.”
지혁은 앞장서서 인사팀에 들어갔다.
***
“어서 오십시오~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인사팀장은 사무실 정 가운데 서서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고.
양옆에 인사팀원들이 도열하여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휘이익!
-축하드립니다!
-선도물산에 새 역사를 쓰셨습니다!
지난번 연봉계약 하러 올 때도 환대를 받긴 했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혁도 좀 놀랐으나······.
같이 온 사람들이 느끼기엔 놀라는 정도가 아니었다.
-인사팀 왜 이래?
-다들 약 먹었나?
-많이 이상한데?
윤 부장과 정 차장은 선도물산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
연봉계약서는 매년 쓰지만, ‘계약’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연초에 기계적으로 사인만 할 뿐이었다.
연봉계약을 하러 인사팀에 온 것도 처음이고, 이런 환대는 더더욱 처음이었다.
인사 팀원들의 연이은 환호성을 듣다가.
지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인사팀장님, 부담스럽네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인사팀장은 팀원들을 자제시킨 후, 지혁과 함께 온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근데, 왜 혼자 안 오시고.”
“다 같이 승진한 사람들인데, 뭘 따로 옵니까? 업무처리 빨리 하시라고 모아서 왔어요.”
“아······ 네.”
인사팀장은 이렇게 살랑거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고 싶지 않았었다.
“연봉계약은 비밀 유지를 해야 하니까요. 한 분씩 차례대로 회의실로 들어오시죠. 누구 먼저······.”
지혁이 말했다.
“제가 마지막에 할게요. 아무나 먼저 하시죠.”
“그럼 나 먼저 할게.”
쾅!
윤 부장은 굳은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정 차장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오 팀장, 윤 부장님 왜 이러시는지 알아? 기분이 내내 안 좋아 보이는데.”
“글쎄요. 곧 알게 되겠죠.”
잠시 후, 연봉 계약을 마친 윤 부장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나 먼저 가도 되지?”
“네.”
윤 부장은 계약서를 들고 먼저 인사팀을 나갔고.
그 이후 차례대로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오 팀장님~”
마지막 지혁 차례.
“네.”
“들어오세요~”
덜컹.
지혁은 회의실로 들어가 인사팀장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인사팀장이 웃으며 말했고.
지혁 또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오랜만이에요.”
“승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팀장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
“우선 계약부터 하고, 얘기 나눌까요?”
“그러시죠.”
“보시고, 궁금하신 사항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지혁은 대충 훑어보고는 말했다.
“지난번 계약서와 동일하죠?”
“네~ 연봉만 달라졌어요.”
지혁은 연봉만 확인 후, 바로 사인하려 했는데.
'연봉 : 8,120만 원'
“우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연봉이 8천이 넘는다고?!’
지난번 대리 승진 때는 이렇게까지 놀랍진 않았다.
두 계급 특진에 차장 직급에 따른 연봉.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대리였던 지혁이 느끼기엔, 8,120만 원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다.
“왜 그러시죠? 너무 적습니까?”
인사팀장은 지혁이 실망해서 그러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저희도 더 올려드리고 싶지만, 회사 내규가 있어서······.”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산이 있으실 텐데, 이깟 8천만 원에······.’
인사팀장은 지혁이 오너일가일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제, 그 믿음은 사실이 되었지만.
‘하여간, 있는 사람이 더 한다더니.’
인사팀장은 눈치를 살피다가.
“너무 불만족스러우시면, 저희가 다시 한번 상급자와 협의를······.”
사사삭-
지혁은 대답 대신 바로 사인을 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지혁은 돈 쓸 생각에 입이 헤벌쭉해졌다.
‘다음엔 하와이 말고 어딜 가볼까.’
“와~ 승진 좋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빨리 올라가야겠어요.”
인사팀장은 지혁의 격양된 모습에 약간 당황했다.
“네? 하하. 승진이 중요하십니까. 어차피 뭐······.”
지혁은 인사팀장이 말끝을 흐리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지난 연봉계약 때, 인사팀장의 ‘오 회장님 잘 지내시냐’는 물음이 지혁으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오너일가에 관심 갖는 계기를 만들었었다.
문득, 지혁 또한 인사팀장에게 머릿속을 뒤흔들고 싶은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네. 오 팀장님. 앞으로도 건승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 잘 부탁해요.”
“······!”
지혁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인사팀장님 잘하고 계십니다. 제가 앞으로도 잘 지켜볼 테니까.”
‘헛! 사인이다! 드디어 드러내시는 건가!’
눈치 빠른 인사팀장은 눈을 희번득거리며 크게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혁이 인사팀을 나가기 전.
인사팀장은 다시 한번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지혁은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한 번 더 격려해주었다.
“그래요. 수고해요.”
팀원들은 가까이서 이 희한한 광경을 지켜봤다.
***
퇴근 시간이 다 되어 지혁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내일은 정오까지 한강 공원으로 출근하세요.”
"웬 한강 공원?"
팀원들이 황당한 눈길로 바라보자.
“포상 회식 받았어요. 내일 영업팀과 함께 시간 보내기로 했으니까.”
지혁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늦지 않게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