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성공을 위해 (2)
이제 칼라웨이와 스타일별 오더량을 정해야 한다.
통상 상품기획자들은 과거의 데이터에 의지하여 오더량 결정 짓는 경우가 많으나.
지혁은 살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묻고 싶었다.
이 옷을 사고 싶은지.
“정진아, 설문지 다 준비됐어?”
“네! 팀장님!”
우선 ‘팍스버거 콜라보’ 때 했던 고객조사 방식을 그대로 했다.
설문지를 간소화하여 최대한 모수를 넓히는 방식.
“2,000장 맞냐?”
“네! 맞습니다!”
지혁은 손정진에게 명함을 건네었다.
손정진은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알록달록한 명함을 보았다.
‘자동차 할부해드립니다. 무직자, 신용불량자, 파산자, 회생자 가능······.’
식겁해져서 눈이 동그래졌는데.
“이, 이게 뭡니까?”
옆에서 보던 황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정진 씨, 업자 만나러 갈 때 꼭 방검복 입고 가.”
“만나보셨어요?”
황 대리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금빛 이빨을 가진 아주 화려한 분이셔. 어디서 앞니를 많이 깨 먹으셨는지.”
꿀꺽.
손정진은 마른침을 삼켰고.
옆에서 잠자코 있던 지혁이 말했다.
“황 대리님, 장난치지 마세요.”
“사실이잖아요.”
지혁은 손정진을 향해 말했다.
“네가 먼저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 괜찮아.”
“제가······ 왜 위협을 가하겠어요······.”
“그러니까 겁먹을 거 없다고. 사무실 있는 지역이 혼자 가긴 좀 위험하니까, 연락해서 회사로 오라고 해.”
“올까요?”
“돈 버는 일이니까, 올 거야. 그런 사람들이 은근 단순해.”
“알겠습니다.”
손정진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서우면 사수한테 좀 같이 가달라고 하든지.”
잠자코 듣고 있던 윤 차장은 퍼뜩 놀라서 자신을 가리켰다.
“사수? 나?”
기겁하는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왜 나야~ 진짜 자꾸 이럴 거야?”
지혁은 윤 차장 말을 무시하고, 다음 얘기를 했다.
“이번엔 설문조사를 하나 더 할 거예요. 저번에 고객조사 해보니까, 깊이가 부족하더라고요.”
“······.”
팀원들은 모두 지혁의 입만 바라봤다.
“인터뷰를 할 생각이에요.”
***
“현장에서 인터뷰합니다. 셀링 포인트가 뭔지, 고객들이 어떤 니즈를 갖고 있는지, 안 팔린 옷 들은 왜 고객들이 외면했는지 등······.”
“······.”
“물어보고 적용한다. 이게 다예요.”
지혁은 설명을 아주 짧게 했고, 너무 상식적이라 특별할 건 없었다.
정 과장이 손을 들고 물었다.
“대상 매장은?”
“전국이요.”
“저, 전국?!”
생각지도 못한 스케일에 팀원들 모두 동공이 흔들렸다.
‘전국 매장을 돌려면 며칠이 걸릴 텐데.’
‘애들 엄마 혼자 힘들 텐데.’
‘연애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저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혁이 말했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매장에서 할 거고요. 지방은 영업부가 도와주기로 했어요.”
-오~
-역시~
회의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팀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지혁은 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좋아하긴 아직 이른데.”
“······.”
지혁은 화이트보드에 서울 지도를 대략 그린 뒤, 네 등분 했다.
“강북, 강남, 강서, 강동 네 등분으로 나눕니다. 강북은 문 대리님이, 강서는 정 과장님이, 강동은 제가, 그리고 강남은 윤······.”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윤 차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또 나야아~!”
“······.”
“내가 왜 강남이냐고!”
서울에서는 강남에 매장 수가 가장 많다. 강북의 약 두 배 정도.
“나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자꾸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평소 능구렁이처럼 속내를 잘 보이지 않는 윤 차장. 드디어 폭발했다.
“오 팀장. 너무한 거 아니야? 일감 몰아주기는 고발 대상인 거 몰라?”
“그건 반대 의미 아니에요? 일감 몰아주는 걸 업체들이 선호해서 그런 거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난 싫다잖아~!”
-크큭.
윤 차장은 소리 지르는데, 다른 팀원들은 웃었다.
“지역 선정에 명확한 기준이 있어요. 절대 제 개인적인 호감도로 한 게 아니에요.”
“뭔데!”
윤 차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월급 많이 받는 순이에요.”
“이런······ 씨······.”
윤 차장은 이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
스타덕 강남점.
인터뷰의 기준을 보이기 위해, 지혁은 팀원들과 함께 왔다.
“그냥 알아서 하면 된다니까요.”
“아, 몰라. 팀장님이 얼마나 잘하나 보게. 기준을 잡아줘야지.”
윤 차장은 회의 중에 지혁에게 심통이 났었고. 인터뷰 모습을 지적하며 팀원들 다 있는 앞에서 면박을 주고 싶었다.
‘네가 현장경험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냐. 인터뷰가 뭐 쉬운 건 줄 알아?’
윤 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혁을 바라보았다.
지혁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성큼. 성큼.
지혁은 매니저에게 다가갔고.
팀원들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지켜봤다.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갑자기 지혁은 품 안에 손을 넣어서 뭔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그때 감사하기도 했고, 현장에서 고생 많으시잖아요. 오늘 저녁에 가족들이랑 고기라도 사드세요.”
지혁이 내민 건 5만 원짜리 상품권이었다.
“헛. 어이구. 이런 거 받아도 되나?”
“같은 회사 직원이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귀찮아하던 매니저의 표정은 곧바로 환해졌고, 윤 차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유가증권을······.’
다른 팀원들도 부담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먹이고 시작하네.’
“저 잠시 인터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어이쿠! 물론이죠. 여기 앉으십시오.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매니저는 일을 놨다.
받은 게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 건 인지상정.
그는 커피를 가져오며, 다른 매니저에게 본사 직원이 왔다며 일을 대신 봐달라고 얘기했다.
두 사람은 매장 한쪽의 간이 의자에 앉았다.
매니저는 집중했다.
“자세히 좀 여쭤볼게요.”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혁은 전년도 워스트 제품 중 점퍼 스타일을 핸드폰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이 제품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죠. 워스트 오브 워스트죠. 그거 파느라 진짜 힘들었습니다.”
지켜보던 윤 차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하필 내가 담당한 상품을······.’
“매니저님 보시기에 왜 판매가 저조했던 거 같나요? 노골적으로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상품 자체가 잘못됐죠.”
윤 차장은 심장이 아팠다.
다른 팀원들도 점퍼는 윤 차장 담당인 사실을 다 알고 있다.
“트렌드인 카키색을 맞추긴 했는데. 요즘엔 이런 밝은 카키 안 입거든요? 색깔부터가 뭐 5년 전 트렌드니까, 고객들의 터치 자체가 없었어요. 그리고 등판에 패치 있죠?”
“네, 꽤 화려하네요.”
“맞아요. 이런 과도한 FG(그래픽)······ 청춘 만화에 나오는 양아치들이나 이런 거 입을까요? 아주 취향이 특이하신 손님들이 아니라면······.”
노골적으로 말해도 된다는 지혁의 말 때문이었을까. 매니저는 거침이 없었고.
그럴수록 윤 차장의 가슴은 쑤셔지는 기분이었다.
“대중성을 생각 못 했네요.”
“맞아요. 그리고 이런 FG를 넣으면 원가도 꽤 높아지지 않나요?”
“높아지죠.”
“원가는 올리고, 판매는 안 되고. 누구 좋으라고 만든 옷일까요.”
현장에서 판매하는 사람이라 그럴까. 불만이 꽤 많아 보였다.
“디자이너랑 담당자는 좋았으려나요. 뭐. 회삿돈으로 본인들 이상을 실현했으니. 아, 혹시 이 스타일 담당하신 거 아니죠?”
"전 아니에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듣는 윤 차장의 고개가 점점 숙여지고 있었다.
“똥을 싸지르기만······ 하아, 아닙니다. 좀 과했네요. 얘기하다 보니 감정이 올라와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에 매니저는 한 번 더 불을 뿜었다.
“현장을 한 번이라도 와봤다면, 옷을 이따위로 만들지는 않을 텐데······ 디자이너 문제인지, 기획자 문제인지. 어쨌든, 이상 실현 말고 팔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괜한 사람 개고생시키지 말고.”
말을 뱉고 나서, 매니저는 불안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조금 순화해서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염려 마세요. 어떻게 전하든 똑똑한 분이니, 찰떡같이 알아들을 겁니다.”
윤 차장은 치욕스러움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옆에서 정 과장이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니까, 오 팀장한테 왜 엉기셨어요.”
“뭘 엉겨~!”
정 과장은 지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까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는 거 같아. 이런 식으로 깔 수도 있구나.”
문 대리가 옆에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 까는······ 일명 '빌려까기'라고 할 수 있죠.”
정 과장과 문 대리 또한 지혁과 매니저의 대화가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들도 상품기획자이기에.
“요즘 고객들이 어떤 옷을 많이 찾습니까?”
워스트에 대한 피드백은 충분히 들었고, 트렌드에 대한 매니저의 의견을 구했다.
“친환경이죠.”
“리사이클 제품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예전엔 특정 손님들만 찾으셨는데, 요즘은 많이 대중화된 거 같아요.”
“아······.”
“나이스 매장에 가보면 리사이클 소재 컬렉션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요즘 다른 브랜드들도 그런 테마로 한 섹션 정도는 구성하거든요?”
“흠······ 대중성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또한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스타덕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경쟁하는 유일한 국내 토종 브랜드인데······ 트렌드에 좀 둔감한 것 같아요. 어쨌든, 최근 들어 고객님들이 많이 찾으십니다. 저희는 보여드릴 리사이클 제품이 없고요.”
“네.”
매니저의 말을 들으며, 지혁은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리사이클······ 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지. 어디선가 많이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인터뷰 중이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후 얘기를 더 나누었고. 인터뷰는 끝이 났다.
얼마 전 품평회는 30분 만에 끝내더니, 매장주 인터뷰는 1시간 가까이했다.
지혁이 돌아오자, 정 과장이 물었다.
“오 팀장, 목 안 말라?”
“네, 전 거의 듣기만 했는 걸요.”
윤 차장이 옆에서 아는 척했다.
“인터뷰 좀 하던데? 하지만, 진짜 인터뷰는 고객과 해야 하는 거야.”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고객과 이렇게 길게 대화할 수 있어요? 상품권 10만 원짜리 준다면 해줄지도 모르겠네요.”
“······.”
지혁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불특정 다수의 의견은 손정진이 맡은 설문지로 가고요. 깊이 있는 의견은 매니저 인터뷰로 갑니다.”
지혁은 시계를 본 후 말했다.
“지금 바로 각 담당 지역으로 이동할게요. 인터뷰 종료까지 이틀 드립니다. 제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사무실 복귀는 없어요.”
정 과장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워, 원하는 수준이 뭔데?”
“뭐······ 지금 제가 한 것 정도?”
팀원들은 질리는 표정이었으나, 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자, 바로 시작하시죠.”
***
고객조사를 통해 발견한 ‘리사이클’ 트렌드를 적용하여, 6 스타일로 리사이클 섹션 구성을 했으며.
설문지와 인터뷰를 통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스타일은 빼버렸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고.
검증하고 또 검증하고.
그렇게 9월이 가고. 10월이 가고.
‘홍썬 라인’은 차곡차곡 준비되어 갔다.
첫 제품 입고는 1월.
이제 11월이 되었고, 일부 스타일은 철통 보안 속에 생산 투입까지 완료했다.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나 싶었는데.
11월로 접어든 어느 날.
황 대리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지혁을 찾아왔다.
“오 팀장님······ 저 좀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