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성과를 보여주다 (2)
영업본부장의 목소리는 한 것 올라가 있었다.
그의 눈엔 선명한 매출이 보였다. 그냥 제품만 때려 넣으면 되는 상황.
[아~ 진짜 탄복했습니다. 그렇게 팍스버거 콜라보를 밀더니······ 역시 유 실장님 마켓을 보는 시야가 탁월하시네요.]
“아······ 네.”
유 실장은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팍스버거 콜라보가 잘 되길 바랐으나, 리스크에 대해 고려도 했었다.
메인 주력상품에 비해 수량 배분을 확연히 적게 했다. 즉, 베팅을 적게 한 것이다.
[추가 입고 계획이 어떻게 될까요?]
영업 본부장은 본론을 꺼내었다. 물량이 추가로 들어올 것을 기정사실로 가정한 상태로 물었고, 유 실장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마켓 센세이션에요! 최근 1년간 똥볼만 차다가······ 아 하하. 방금 말은 취소.]
매출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한다. 제품 설계를 잘해야 하며, 그 제품을 잘 포장하여 마케팅하고, 좋은 전략으로 영업을 해야 한다.
축구로 치면 영업은 골 넣는 공격수라고 할 수 있는데, 좋은 패스가 들어가야 골 넣기가 쉬워진다.
최근 상품기획은 헛발질하거나, 백패스만 일삼았었는데.
이번에 공격수가 발만 대면 들어가는 스루패스를 찔러넣어 준 것이다.
영업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추가 입고 계획은 제가 확인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전화가 좀 갑작스러웠죠. 어쨌든······ 수량이 이게 다는 아니겠죠?]
“······.”
[다음 주 초면 재고가 다 소진될 것 같다고 보고를 받았어요. 일주일 안에 추가 물량 들어오면 베스트고, 늦어도 이주일 안에는 들어왔으면 좋겠거든요?]
“네? 지금 어떻게 일주일 안에······.”
영업 본부장은 본인이 원치 않는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입고된 지 일주일 됐는데, 이 정도 조짐 예측 못 하셨다는 말씀은 안 하시겠죠. ‘상품전략’ 실장님이신데.]
협조부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영업본부장은 유 실장보다 한 직급 높다.
[물건만 넣어주세요. 우리가 어떻게든 다 팔 테니까.]
유 실장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그 소리는 누가 못 하나. 안 팔리는 제품을 팔 줄 알아야 영업이지. 그냥 갖다 놓으면 팔리는 상품 가지고 생색은······.’
“네,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유 실장님~ 파이팅!]
영업 본부장은 밝은 목소리로 외쳤고, 유 실장은 짜증이 나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네, 그럼 끊겠습니다.”
[아! 잠깐만. 유 실장님.]
“네?”
[팍스버거 콜라보 담당 기획자가 누군가요? 제가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사고 싶은데. 윤 차장인가요?]
그냥 대답하면 되는데, 유 실장은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왠지 꺼려졌다.
[담당 누군지 모르세요?]
그렇다고 담당을 모른다고 하기도 뭐하고, 어차피 알게 될 거 숨기는 것도 이상했다.
“오지혁이라는······ 사원입니다.”
[아······ 처음 듣는 이름이네. 알겠어요~ 수고해요~]
***
“에이~ 젠장. 잘 돼도 지랄이네. 아오, 스트레스 받아. 백 과장!”
유 실장은 전화를 끊은 후, 급하게 백 과장을 불렀다.
“네! 실장님.”
“지금 당장 오지혁이 올라오라 해.”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뭐긴 뭐야! 팍스버거 리오더 때문에 그렇지.”
“그거야 심 팀장에게 바로 지시 내리시면 되지 않나요?”
유 실장은 멈칫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심 팀장이 미덥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팍스버거 콜라보 건에 한해서는 주간보고를 지혁에게 직접 받고 있다.
“아니야. 팍스버거 건은 우리가 직접 챙긴다. 오지혁이 어서 오라 그래.”
백 과장은 그래도 좀 머뭇거렸다.
“중요한 건인데, 심 팀장도 함께 부르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래도 팀장인데.”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 실장은 잠시 고민했다가 말했다.
“알았으니까, 둘 다 어서 불러.”
내키지는 않으나, 머뭇거릴 시점이 아니었다.
잠시 후.
똑똑.
“들어와!”
심 팀장과 지혁이 들어왔고, 유 실장은 자리에서 대뜸 일어났다.
두 사람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자, 일단 팍스버거 콜라보 건이 대박 조짐, 아니 이미 대박이 났지. 오지혁이 수고했어.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 하기로 하고.”
지혁은 살짝 목례하는 거로 감사를 표했다.
“5 스타일에 3만 장으로 콜라보 7월 구성을 했단 말이야. 이것도 수량 적게 한 건 아닌데, 지금 영업에서 난리야. 지금 속도로는 다음 주 초면 제품 전량 소진될 것 같다고.”
심 팀장과 지혁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주간 판매율 보고서를 상품기획팀에서 만드니까.
유 실장은 심 팀장과 지혁을 번갈아 보다가, 심 팀장에게 말했다.
“심 팀장님.”
“네.”
“다음 주 안으로 동일 수량 입고시킬 수 있나요?”
“네? 다음 주요?”
심 팀장은 동공이 흔들렸다.
“3만 장을요? 에이~ 실장님도 아시잖아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친분을 이용해 유 실장의 질문을 뭉개려 했다.
“어렵다는 거 왜 모르겠어요? 그래도 필요하니까, 의견을 구하는 거죠.”
“······.”
“가능하고 쉬운 일만 할 거면 우리가 월급 받으면서 여기 왜 있습니까? 팀장이라는 분이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심 팀장은 머리를 굴렸다.
‘3만 장을 어떻게 일주일 안에 재입고 시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눈을 힐끗 올려서 유 실장을 바라본 후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땐 고개 숙이고 뭉개는 수밖에 없어.’
“하아······ 죄송합니다.”
유 실장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심 팀장을 바라봤다.
‘갑자기 뭐가 죄송해. 하여간······ 할 말 없으면. 쯧쯧.’
유 실장 또한 지금 오더를 내려서 일주일 안에 재입고 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불가능하다고만 하지 말고, 뭐라도 대안을 제시해 보세요!”
“······.”
“며칠 뒤면 제품이 부족해서 매출 못 올렸다는 소리가 나올 텐데. 내가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심 팀장님은 그림이 안 그려져요?”
지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좀 더 뜸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확인 후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노래 전주에 항상 나오는 시그니쳐 사운드와 같은 멘트. ‘확인 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할 말 없을 때 가장 쓰기 좋으며, 심 팀장이 애용하는 말이었다.
“지금 확인할 시간이 없다고요! 그리고 그 말 좀 하지 마세요! 심 팀장님은 왜 항상 레퍼토리가 똑같습니까?”
참 상항이 미묘했다.
어쨌거나 상품기획팀에서 기획한 제품이 대박 났는데, 왜 혼나고 있는 건지.
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는데.
“오지혁!”
결국 유 실장은 지혁을 불렀다.
“네.”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라운드 티 2만 장 중에 만 오천 장은 다음 주에 입고되고요. 나머지 오천 장은 2주 뒤에 입고됩니다. 5부 팬츠 5천 장은 2주 뒤에 50%, 3주 뒤 50%. 바람막이 점퍼는 3주 후에 전량 입고돼요.”
.
.
.
.
“뭐야?”
유 실장은 방금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다음 주에 입고된다고?”
“전부는 아니고요. 일부요. 이게 최선이에요.”
유 실장은 동공이 흔들리며, 입꼬리가 씰룩 거렸다.
“자네······ 장난하는 거 아니지?”
“전 장난 안 쳐요.”
심 팀장도 기겁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새끼 뭐지.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유 실장 또한 지혁의 말을 섣불리 믿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줄 수 있을까?”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제품 입고된 날 현장에서 판매 반응을 봤고요. 조짐이 보이길래, 그날 바로 리오더 진행 시켰어요.”
“······.”
유 실장은 설명을 들으니 이해는 됐으나, 선뜻 믿기지 않았다.
‘단 몇 시간 판매반응보고, 3만 장 리오더를 질렀다고? 발주액으로 24억인데?’
안 그래도 지혁이 좀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진짜로 뭔가 달라 보였다.
‘이걸 돌았다고 해야 하나, 과감하다고 해야 하나.’
“자네······ 만약 리오더 안 나오면 어쩌려고 했어?”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그런 가정은 불필요한 거 같은데요. 리오더 나왔잖아요.”
“하하······.”
유 실장은 실실 쪼개다가 크게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하하하! 대박이네! 대박이야!”
백 과장도 빙그레 웃으며 박수를 쳤다.
유 실장은 지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렬하게 칭찬했다.
“자네, 아주 대단한 친구였구먼. 아~ 이번에 확실히 봤어.”
이번 일로 유 실장은 완전히 지혁에게 탄복했다. ‘희한한 놈’이 아니라 ‘특별한 놈’으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진짜 수고했네. 자네 진짜 큰일 한 거야. 알아?”
“알기는 하죠.”
지혁은 피식 웃으며 어깨에 얹은 유 실장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약속만 지켜주세요.”
“약속?!”
유 실장은 지혁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정판율 70%를 넘기면 승진시켜주겠다는 약속.
지금은 입고 2주 만에 완판이 예상되며, 재입고 제품 또한 완판될 게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정판율 70%는 훨씬 초과달성하고도 남는 상황
“하하하! 약속뿐인가? 그 이상도 가능하지. 마무리만 잘해 봐! 내가 확실히 챙겨줄 테니까!”
지혁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빨간색 성향 사람 답네. 성과를 보여주니 확 달라지는구나.’
“그럼 저 이만 일 하러 가봐도 될까요? 지금 한시가 바쁜 상황이라.”
“응? 어어. 어서 가! 오지혁 화이팅!”
백 과장도 옆에서 함께 외쳤다.
“화이팅!”
두 사람에게는 지혁은 갑자기 나타난 ‘구국의 영웅’처럼 보였다.
***
“오지혁!”
지혁이 상품전략실을 먼저 나간 후, 심 팀장이 씩씩거리면서 쫓아왔다.
“야!”
지혁은 걸음을 멈추었다.
“왜요.”
심 팀장은 엿 먹었다는 생각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 뭐야?! 어!”
“그러니까, 뭐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지혁이라는 것도 잊은 듯, 심 팀장은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쳤다.
“내 뒤통수를 쳐?!”
“······.”
“리오더를 했으면 나한테 보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팍스버거 콜라보 건은 알아서 하라면서요. 언제 뭐 보고 받은 적 있었어요?”
“야! 그래도!”
“귀찮은 건 보고 안 받고, 좋은 건 보고 받고 싶은가 보죠? 생색은 팀장이 내야 하니까.”
지혁의 거침없는 말에 할 말을 잃은 심 팀장은 분노로 온몸을 떨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이번 건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가! 이 새끼야! 하극상도 정도껏 해야지!”
심 팀장은 흥분한 나머지 욕설까지 섞으며 지혁을 비난하였다.
“팀장 건너뛰고, 실장님한테 알랑방귀를 뀌어? 그런 식으로 잘 보여서 어쩌려고! 어?!”
“······.”
“이 미친 새끼야. 내가 그동안 너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았지? 병가 휴가 갔다 와서 불쌍해서 두고 봤던 거야. 개새끼. 넌 두고 봐.”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면서, 두고 보라는 말을 잘한다.
이미 많이 두고 봤을 것이고, 그냥 지금 행동을 취하면 될 텐데.
지혁은 대응하지 않고, 심 팀장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심 팀장은 한동안 비난을 퍼부었고.
“씩- 씩-”
제풀에 꺾여,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심 팀장에게 지혁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다 했어요?”
그의 태연한 모습에서 심 팀장은 뭔가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지혁은 심 팀장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였다.
“제가 경고했잖아요. 주변 좀 살피라니까.”
그 말에 퍼뜩 놀라서, 심 팀장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멀찍이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이 보였는데, 일부는 핸드폰으로 촬영도 하고 있었다.
“직장 내 폭언 폭설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시면 안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