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공존할 수 없는 사이 (2)
윤 차장은 문벅스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불안한 듯 사주경계를 하고 있다가, 지혁이 나타나자 놀란 듯 벌떡 일어났다.
“앉아 계시지 뭘 일어나고 그러세요. 저보다 상급자신데.”
“응? 아, 어. 몸에 배서 그래.”
지혁은 윤 차장의 불안한 표정을 살피며 속으로 생각했다.
‘뭔가 알아낸 모양이군.’
“하실 얘기 있으시다면서요.”
“어.”
“말씀해 보세요.”
윤 차장은 일주일 전에 지혁이 했던 것처럼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지혁은 피식 웃고 상체를 탁자 쪽으로 기울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 심 팀장님이 협력사와 관계가 좀 있더라고.”
“그래요?”
“어. 구매업무가 다 생산팀으로 이관되기 전에 오랜 기간 스타덕 백팩 사입하던 업체가 있거든?”
“······.”
“그쪽 사장님이 심 팀장님 신입사원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더라고.”
“흠······ 그럼 심 팀장님이 그 업체랑 거래를 꽤 오래 하셨겠네요?”
“맞아. 10년은 넘게 하셨을걸.”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뭔가 있을 만 하네.’
“근데 그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어요?”
“나도 그 업체와 거래 했었고, 그쪽 경리직원이 나랑 좀 안면이 있거든. 회사 감사 때문에 문의한다고 하면서 심 팀장과 금전 거래된 내역 좀 확인해 달라고 했지.”
지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윤 차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보통 업체들이 ‘감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바싹 긴장하거든. 본인들에게 불똥튈까 봐, 의외로 술술 잘 불어. 거짓말해 봐야 국세청 조사 들어가면 다 나오니까.”
“그렇군요.”
업무 경험이 적은 지혁으로서는 윤 차장이 설명해주니, 그제야 좀 이해가 되었다.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사는 했으나, 오랜 시간 회사 생활한 걸 생각해서 고이 보내주려 했는데······. 이러면 어쩔 수가 없어.’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나 해 드셨대요?”
윤 차장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만 원.”
“······.”
지혁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요?”
“백만 원이라고.”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아저씨가 지금 나랑 장난하나.’
“천만 원도 아니고······ 백만 원?”
“어.”
지혁은 어이가 없어서 윤 차장을 바라봤다.
“거래처와 10년 넘게 거래를 했는데, 백만 원이면······ 그걸 뒷돈 먹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난 전혀 안 받는데?”
“······.”
“협력사에는 밥 한 끼도 얻어먹으면 안 되는 거 몰라?”
지혁은 황당해서 윤 차장을 바라봤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지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억 단위도 아니고······ 심지어 천 단위도 아니야. 뒷조사해서 확인한 게 백만 원이면······ 심 팀장은 표백제 같은 사람이잖아? 그걸 과연 받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생활 한 기간을 생각하면······ 그냥 명절 선물 정도 보낸 내역 아닌가?’
지혁은 이 능구렁이 같은 윤 차장이 헷갈렸다. 정말 이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해서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뭐라도 흠집 내고 싶었던 건지.
윤 차장의 이마를 보았다.
팀원들의 색깔은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었다. 함께 보내온 시간이 있기에 안 봐도 아니까.
‘회색.’
흰색과 검정의 중간 색. 속은 새까맣지만 착한 척하는 양아치 새끼들이 이런 색을 띤다. 다만, 겁은 많아서 권력자에게 굴복을 잘한다.
“그래서. 윤 차장님은 협력사와 식사도 안 드세요?”
“난 안 먹지~ 먹어도 내가 사지.”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윤 차장님 뒷조사해서, 상품기획팀 본으로 삼아야겠어요.”
“하지 마······.”
윤 차장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좀 더 뒤져볼까?”
지혁은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오랜시간 일 했는데도 이 정도인 걸 보면, 심 팀장이 일할 때는 뒤처리가 깔끔한가 보네. 하지만 나와 같은 팀에 있을 수는 없고······ 일단, 조금 더 두고 보자.’
“됐습니다. 충분해요. 안 하셔도 돼요.”
“왜? 확실하게 해서 결정타를 날려야지. 웬만해서는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기 쉽지 않아.”
지난주에 이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주저하더니, 지금 윤 차장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팀장 되게 하고 싶은가 봐요?”
“응? 아~ 그게 아니라······.”
윤 차장은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지혁은 한 마디 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키는 대로 하세요.”
***
1시간 전.
저벅. 저벅.
심 팀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윤 차장과 지혁이 함께 사무실을 나서는 걸 지켜보았다.
‘저것들이 요즘 너무 가까이 지낸단 말이야. 뭘 꾸미고 있나.’
회사생활 생존능력 만렙인 심 팀장은 분위기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오고 있다는 걸.
최근 윤 차장이 너무 열심히 일했다. 일하는 건지 딴짓하는 건지 정확히 구분은 안 되지만, 전화기를 매일 붙잡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니까.
‘그리고 틈만 나면 오지혁이한테 가서 쏙닥거리고.’
그런 미세한 변화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 간의 관계 변화는 많은 걸 의미한다.
심 팀장은 간혹 자신을 바라보는 지혁의 차가운 눈빛을 기억했다.
확실하게 뭔가 듣거나, 본 것은 없지만.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돼.’
심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품전략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요.]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오~ 심 팀장님. 요즘 진짜 자주 보네요?”
최근 들어, 심 팀장은 상품전략실을 매일 찾고 있다.
일전에 담당 교체 건으로 지혁이 유 실장과 독대를 한 이후로, 이유 모를 불안감 때문에 자꾸 찾게 되었다.
유 실장과 가장 가까운 연대는 심 팀장 본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주하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인사하러 왔다.
“하하. 지난 주말에 어머니 댁 갔다 왔는데, 대만 여행 가셨다가 밀크티를 사 오셨더라고요. 향이 좋길래 같이 한잔할까 해서 가져왔습니다~”
“아~ 그래요? 저 밀크티 좋아하는데.”
“잘됐네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심 팀장은 곧바로 차를 타서 가져왔고, 유 실장은 차향을 맡으며 말했다.
“와~ 진짜 향 좋네~ 고소하고.”
“하하. 그렇죠? 확실히 본토에서 사 오는 건 다르더라고요.”
“그러게요. 아이고~ 고맙네. 심 팀장 덕분에 질 좋은 차도 마시고.”
“하하. 별말씀을요.”
“근데 좀 아쉬운데요? 한 팩도 아니고.”
“······.”
“조만간 이거 사러 대만 여행 가야겠네. 하하.”
심 팀장은 생각했다.
‘하아······ 젠장. 생각이 짧았다. 한 팩을 가져왔거나, 아니면 가져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유 실장은 못마땅한 눈으로 심 팀장을 바라봤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야. 맛있는 거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이래서 주고도 욕먹는 게 더 안 좋다고 하는 것이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 차를 마시다가.
“요즘 오지혁이 생산 공부를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요?”
“네. 한창 기획 일 배워야 하는 시기에, 생산을 배우는 걸 보면······ 그쪽에 관심이 있는 듯합니다.”
“······.”
“생산 팀장과도 관계가 좋아 보이고요. 장악력이 좋은 친구라 거래처 상대도 잘할 것 같고요.”
유 실장은 차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어제는 영업에 관심 있는 것 같다고 하더니, 오늘은 생산입니까?”
“······.”
“심 팀장님도 참 꾸준하시네요.”
심 팀장이 요즘 매일 유 실장을 찾아오는 이유였다. 어떻게든 지혁을 딴 데로 보내고 싶어서.
“팀 이동을 하려면 지금이 좋습니다. 아직 신입에 가까우니, 어줍잖게 배우다가 가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뭘 자꾸 복직한 지 1개월 된 애를 이동시킨다고 그러세요.”
“오지혁 사원의 미래를 위해서 드리는 말씀······.”
“참나.”
유 실장은 심 팀장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콧방귀를 뀌었다.
“항상 마지막은 이 얘기네.”
“······.”
“오지혁 사원 미래는 나중에 걱정하셔도 됩니다. 차 잘 마셨어요.”
“네······.”
오늘도 심 팀장은 소득 없이 상품전략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믿고 있었다.
‘두드리면 열린다.’
***
심 팀장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본 후 손을 닦으려다가.
“엇?! 인사팀장님!”
세면대 앞에서 인사팀장을 만났다.
상품기획팀은 10층에 인사팀은 11층에 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인사팀장도 반갑게 인사했고, 심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 바쁜 인사팀장님을 여기서 보내~ 잘 지냈어요?”
“하하. 네, 요즘 바쁘시죠?”
심 팀장이 직급 상관없이 가장 깍듯하게 대하는 곳이 인사팀이다.
예의 바르게 존중해주니, 당연히 인사팀 또한 심 팀장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아~ 바쁘죠~ 요즘 F/W 기획 시즌이잖아요.”
“하하. 그렇죠.”
심 팀장은 살짝 눈치를 보고는 운을 띄었다.
“바쁜 거야 회사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복직한 직원 때문에 좀 힘드네요. 자꾸 말썽을 일으켜서.”
인사팀장은 단번에 누굴 얘기하는지 알아차렸다. ‘연일 오 씨’ 오지혁 사원.
화장실을 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래요?”
“네~ 복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게 얼마나 일 욕심이 많은지. 깜냥도 안 되는 게 자꾸 중요한 일을 맡으려고 해요. 게다가 팀 분위기가······ 상급자를 너무 무시하듯 대하고 하극상이 하늘을 찌릅니다.”
“하극상?”
“네!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지가 무슨 로얄패밀리도 아니고······ 사원 주제에 얼마나 상전 노릇을 하는지. 걔가 말하는 걸 들어보셨어야 해요. 싸가지도 그런 개싸가지가······.”
심 팀장은 인사팀장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막 복직한 사원이 그런 태도를 보일 수가 없지. 설마 설마 했더니······.’
인사팀장은 지혁을 특별하게 보고 있었기에.
“계속해 보세요.”
인사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더 들으려고 하자, 심 팀장은 신이 나서 지혁의 뒷담화를 열심히 까기 시작했다.
“아~ 진짜. 걔 말하는 거 녹취해서 들려드려야 하는데. 진짜 상 또라이가 따로 없다니까요? 신입 교육을 다시 보내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물류 팀으로 이동을 시키던지. 걔 때문에 팀 분위기도 안 살아나고, 사고만 쳐서······"
"그래요? 최근에 중요한 콜라보 건 해내지 않았어요?"
"그거야~ 얻어걸린거죠. 걔 한 거 없어요. 근데, 인사팀장님이 어떻게 그걸?"
인사팀장은 대꾸하지 않았고, 심 팀장은 지혁 흉 보는 걸 이어갔다.
"어쨌든,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오지혁이 이동시켜달라고 유 실장님께 건의드리고 있는 중이에요. 이것말고도 말씀 안 드린거 많아요.”
“······.”
“인사팀장도 힘을 실어주시면 참 감사하겠는데.”
멍하니 듣다가 인사팀장이 반문했다.
“뭘요?”
“팀 이동시키는 거요.”
인사팀장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건 그분이 결정하실 일이지요.”
“네?!”
심 팀장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황당해하는데. 인사팀장은 굳은 얼굴로 묵례 후 화장실을 나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아······ 네. 수고하세요.”
인사팀장이 나간 후, 심 팀장은 세면대에서 손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뒷담화를 하면 맞장구를 쳐줘야지. 사람 민망하게.”
쏴-
손을 씻었는데.
덜컹!
어디선가 칸막이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었나?’
약간 놀라긴 했으나, 심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이쿠! 깜짝이야!”
세면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지혁이었다.
심 팀장은 동공이 튀어나올 만큼 눈이 커졌는데.
지혁은 피식 웃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닦으며 말했다.
“얘기 잘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