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복직자 (3)
그 한마디에 기세등등하던 심 팀장은 그로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욕 한 바가지 하면서 겁 주려 했는데, 지혁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회사 생활 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당신은 쓰레기야.’
상급자한테도 이런 말은 못 들어봤다.
지혁에게 쏟아부으려고 준비했던 모든 말을 잊어버렸다.
‘선빵.’
지혁에게 선빵 맞은 거였다.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말이 있다. 때로는 말이 칼을 대신하다. 현실 세계는 자유롭게 칼부림을 할 수 없지만, 말은 할 수 있었다.
“너······ 너······.”
심 팀장은 화도 나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팀 막내한테 쓰레기라는 소리를 듣다니. 얘가 췌장암 완치하고, 다른 병을 얻어서 온 건 아닐까.’
심 팀장의 눈빛이 돌아오려 할 때쯤, 지혁은 다시 말을 던졌다.
“사람을 부리면 안 되는 쓰레기라고.”
“야 이, 미친놈아. 나 니 팀장이······.”
“나한테 했던 짓 기억하지? 나뿐만이 아니지. 팀원들한테 했던 드러운 짓 많잖아.”
심 팀장의 주특기는 본인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아래 직원을 이용하는 것이다. 공은 뺏고, 과오는 넘기기.
팀장이라는 작자가 책임지는 건 싫어하고.
팀과 자신에게 위기가 생기면, 특정 인원에게 문제를 만들어서 주위를 분산시킨다.
오로지 제 혼자만 살아남는 더러운 생존능력만 극단적으로 발달한 남자. 그게 심 팀장이었다.
이런 인간의 특징.
‘겁이 많다.’
목소리를 크게 해서 자신의 심약함을 숨긴다. 의심도 많고 겁도 많은 심 팀장에게 전략은 필요 없었다.
‘그 세계’에서 별별 놈들 다 상대하면서, 심 팀장 같은 사람은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지혁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겁주면 된다.
“그, 그래서?! 뭐! 증거 있어?”
“증거야 찾으면 되지.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고.”
“뭐?!”
“내가 당한 일인데, 증거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리고 나 만드는 건 자신 있거든.”
“이런 또라이가······.”
심 팀장의 눈알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너 지금 이거 협박이야!”
“맞아. 협박하는 거야.”
“그러니까! 한 번 더 이런 식으로······ 뭐?”
지혁은 심 팀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협박하는 거라고.”
“······.”
심 팀장은 입을 다물고 얼어버렸다.
“당장이라도 보내버릴 수 있어. 하지만 안 보내. 보여줘야 하거든. 당신 같은 인물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
“내가 허락할 때까지 꿋꿋하게 버텨라. 못 버티고 나가버리면······.”
똑. 똑.
그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윤 차장과 정 과장이 과일이 든 봉지와 일회용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
두 사람이 들어오자, 지혁은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심 팀장은 눈두덩을 떨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윤 차장은 재빨리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 왜 이래. 이상한데.’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너무 오래 걸렸죠? 줄서서 받느라. 매장주님이 과일을 많이 보내신거 같더라고요.”
심 팀장은 손도 미세하게 떨고 있었고.
윤 차장은 마른 침만 삼켰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둘이 뭐 하고 있었냐고 물어보기가 뭐했다.
다만, 지혁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지혁도 상태가 안 좋아야 정상인데······.
“팀장님, 어서 미팅 안건 말씀하시죠.”
지혁의 말에 심 팀장은 움찔했다.
“지금 저 있어서 말씀 안 하시려는 건 아니죠?”
꿀꺽.
심 팀장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눈치를 살피다가 윤 차장이 말했다.
“에이~ 지혁아. 삐진 거야? 당연히 같은 팀인데, 당연히 함께 팀 미팅해야지. 오랜만에 없던 사람이 오니까, 그냥 깜빡한 거야.”
“뭘 깜빡해요. 제 자리는 입구 쪽인데요. 다들 제 뒤로 지나쳐서 회의실로 갔으면서.”
“······.”
“윤 차장님은 뻔히 보이는 빈말 좀 하지 마세요. 그냥 따돌린 거지. 왜 자꾸 착한 척이야.”
“척?!”
윤 차장은 눈을 부릅떴고.
지혁은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심 팀장에게 말했다.
“뭐 하세요. 어서 진행 하시라니까.”
심 팀장은 눈을 끔뻑거리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다른 애들 왔으니까, 지랄 한번 해볼까. 근데 얘 완전 도른자 같은데.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건 아닐까?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기엔······.’
지혁은 심 팀장의 눈빛을 읽었고, 한 번 더 확실하게 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장 과장님. 심 팀장님 컨디션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과일 좀 먹고 할까요?”
“응? 어어.”
갑자기 지목당하자, 장 과장은 당황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윤 차장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요. 마침 일회용 접시도 가져왔으니까. 장 과장이 좀 깎아 봐~”
가져온 봉지 안에 든 과일은 사과였다.
“칼이 없는데.”
“주세요. 막내가 깎을게요.”
지혁은 안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고.
세 사람은 기겁했다.
“뭐, 뭐야? 뭘 들고 다니는 거야?”
“제가 사과를 좋아해서, 다과용 칼을 들고 다닙니다.”
지혁은 칼을 이리저리 돌리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보세요. 작잖아요. 겁먹지 마세요.”
오늘 하는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데, 칼까지 드니······.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지혁의 주변에서 약간 뒤로 물렀다.
사사삭-
지혁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스스슥-
순식간에 사과 껍질이 벗겨졌는데, 단검을 어찌나 잘 다루는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감자 깎기 도구로 손질하는 것처럼 손을 여러 차례 움직여 껍질을 쳐내는데.
순식간에 짧게 깎여진 껍질이 수북이 쌓였다.
윤 차장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입원 중에 칼 가지고 놀았나?’
서걱. 서걱. 서걱.
지혁은 이쁘게 사과를 네 등분 한 후.
쾅!
칼로 사과를 하나를 꽂아서, 심 팀장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많이.”
“······.”
심 팀장은 머뭇거리다가.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
선도 빌리지 A동 옥상.
심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옆에 윤 차장도 있었는데, 그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
“오늘 내내 안색이 안 좋으셔서.”
흡- 휴우-
심 팀장은 대답 대신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어냈다.
“지혁이 때문에 그러시죠?”
‘지혁’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심 팀장은 멈칫했다.
“내가 그런 새파랗게 어린놈 신경이나 쓸 것 같아?!”
“······.”
“싸가지 없는 새끼. 죽다 살아와서 눈에 뵈는 게 없나.”
윤 차장은 곁눈질로 그런 심 팀장을 바라봤다.
‘신경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내심 궁금했던 걸 물었다.
“아까 둘이 있을 때 무슨 얘기 한 거예요?”
“······.”
“분위기가 많이 이상해 보이던데.”
순간 심 팀장은 고민했다.
‘그 자식이랑 비밀로 하기로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냥 말해 버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감히 사원이 팀장한테.’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윤 차장은 심 팀장이 얘기하기 싫어하는 줄 알고, 화제를 돌렸다.
“지혁이 걔 칼 쓰는 거 장난 아니던데. 혹시 특수부대 같은데 나왔나? 아세요? 팀장님은 인사기록 카드 보실 거 아니에요.”
‘칼’ 이라는 단어에, 심 팀장의 고민은 사라졌다.
‘일단, 얘기 안 하는 게 낫겠어.’
심 팀장은 지혁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버렸다. 칼에 사과를 꽂아서 건넸을 때는 지릴 뻔했다.
“야 이 새끼야. 인사기록 카드에 어느 부대 출신인지 까지는 안 나와. 에잇! 짜증 나게!”
심 팀장은 신경질적으로 담뱃불을 꺼버리고 먼저 내려갔다.
얼떨결에 한 방 맞은 윤 차장은 심 팀장이 사라진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 나한테 지랄이야?”
***
토요일 오전.
지혁은 수아와 함께 짐을 챙겼다.
오늘 어머니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올 계획이다.
“부끄러워? 그냥 대중교통으로 갈까?”
캠핑카 앞에 서서 수아가 말했다.
웬만한 일에 눈도 깜빡 않는 지혁이지만, 캠핑카를 자가용으로 끌고 다닌다는 건 좀 쉽지 않았다.
어머니 집은 경기도 용인 외곽에 있는데,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이 큰 차를 세울 곳은 있을까?”
수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글쎄, 그건 가봐야 알지.”
“······.”
지혁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수아는 먼저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비싸게 주고 샀어. 이럴 때라도 써야지.”
“······.”
“이걸로 출퇴근할 수는 없잖아. 어서 타.”
지혁은 피식 웃고는 탔다. 이번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
지혁이 운전을 하고 그 옆에 수아가 앉았다.
“근데, 왜 안 팔았어?”
“······.”
“나 병간호 때문에 샀던 차 아닌가?”
“······.”
“팔고 좀 작은 거로 사서 타고 다니지.”
수아는 지혁을 향해 말했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고, 네 흔적이 있는 차니까.”
“······.”
“이걸 어떻게 팔아.”
수아와 지혁 사이에 또 스파크가 일었다.
지혁은 심호흡을 했고, 캠핑카 뒷자리에 간이침대가 보였지만.
“안돼. 주변에 사람 많아. 운전해.”
수아는 지혁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흠. 어쩔 수 없지.”
지혁은 앞만 보고 운전하다가 물었다.
“근데, 아까 이 차로 출퇴근할 수는 없다고 했잖아. 진짜 출근할 생각을 해본 거야? 아님 농담인가?”
“미쳤어? 농담이지~”
“그렇지?”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재밌었어.”
“뭐야, 재밌으면 그냥 웃어. 너 로보트니?”
“하하하.”
어머니 집에 가는 길.
지혁은 현실 세계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크게 웃어 봤다.
***
용인의 어머니 집.
외딴곳에 단독주택으로 있어서, 주변에 공터가 많았다.
차가 들어서자, 어머니는 캠핑족인 줄 알고 쫓아내기 위해 밖에 나와 있었다.
“어이쿠!”
근데 캠핑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영락없이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었다.
“지혁아~!”
“어머니.”
“아이고~ 이놈아!”
와락!
어머니는 지혁을 꼭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어머니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몸을 떼더니.
찰싹!
지혁의 어깨를 때리며 말했다.
“앞으로는 위험한 짓 하지 마라. 얘기 다 들었어.”
“네.”
“병도 완치됐다고?”
이 말에는 수아가 대신 대답했다.
“네~ 어머님. CT 촬영했는데, 아무 이상 없데요. 완치 판정받았어요.”
“어이구~ 이게 웬일이라니.”
“호호. 네, 기적이에요. 기적.”
어머니는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네 아버지도 췌장암으로 보냈는데, 너까지 그렇게 돼버리니······ 부모 탓인 거 같아서 내내 불편하고 미안했는데.”
소매를 눈가를 찍어내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내 아들 얼굴 떳떳하게 볼 수 있겠어.”
지혁은 그런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이 어딨어요. 어머니, 어서 들어가요. 배고파요.”
“오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