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혁명의 불길
난파선 발견 현장은 증도에서 4㎞가량 떨어진 해역.
침몰 지역을 파악한 강태준은 다음 정조 시간이 되자 곧바로 잠수부들을 대거 투입했다.
수색을 마치고 위로 올라온 잠수부에 강태준이 서둘러 물었다.
“배 길이는? 얼마나 되나?”
“추정 상 대략 30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부식된 부분이 많아서 예상보다 조금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꽤나 큰 범선일지 모른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진중보가 물었다.
“호오. 그렇게 큰 배라니, 그거 희소식이군. 그럼 고려 배인 건가?”
“아니요. 그건 아닐 듯싶습니다. 당시 고려에서는 용골이 있는 배가 없었거든요. 아마 중국에서 건조한 무역선이 풍랑으로 난파한 것 같습니다.”
추가 조사 결과, 배의 정체는 평저선이 아닌 첨저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대양 항해에 적합하게 밑이 뾰족하게 갈려 있다는 건 가치 있는 상품을 싣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증거.
연이은 희소식에 임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당장 크레인선을 빌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를 와이어로 묶어서 수중 크레인으로 단숨에 올리면…….”
“워워. 너무 서두르지 마. 원래 유물 인양은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법일세. 수백 년도 더 된 물건이 와이어를 견디겠나? 바닷속에서 분해해서 조금씩 올려야지.”
“예? 그럼 어느 세월에 건집니까?”
복만이가 볼을 부풀리자, 진중보가 허허롭게 웃었다.
“하하. 원래 발굴이라는 건 찬찬히 시일을 두고 이뤄지는 거야. 원래 일반 배를 인양하는 데도 수개월은 족히 걸린다네. 게다가 이런 유물은 보존 처리 후 복원까지 생각하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리지.”
“그럼 이런 건 얼마나 걸린다는 겁니까?”
“어디 보자, 소형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목선치고는 그래도 덩치가 꽤 있으니, 대략 30년?”
“에엑? 그렇게 오래요?”
“배가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잖은가? 그래도 뭍에서 발굴하는 것보다는 기간이 짧은 거야.”
강태준이 진 국장을 두둔했다.
“그래. 진 국장님 말이 맞아. 무리하게 올리려 했다간 다 삭아서 부러질 테니 주의해야지.”
“허어, 성질 급한 인간은 답답해서 돌아가시겠군요.”
“하하. 걱정 마라. 일단 선창 밖에 널브러진 유물부터 건져 내면 되니까. 본격적으로 인양하기 전에 개흙부터 걷어 내자고.”
찾을 때까지는 상당히 조바심을 냈지만 이제는 신중할 시간이다. 괜히 서둘렀다 인명 사고라도 나면 큰일 아닌가. 얼마 후, 불룩 솟아오른 에어백과 함께 나무 상자가 올라오자, 통통배에 탄 선원들이 학깃대로 하나씩 물품을 건져 올렸다. 그걸 본 복만이가 뿌듯해했다.
“이거 에어백을 대량으로 가져온 보람이 있네요.”
“그러게.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군 그래.”
원래는 볼브 쪽에 납품하려다 대차게 말아먹은 불량품들이긴 했지만 의외로 쓸모가 있었다.
흡인 호스로 진흙을 빨아낸 다음 상자를 열어보자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도자기들이 가득 들어 있다. 유려한 빛깔의 연적을 조심스럽게 꺼낸 복만이가 황홀한 표정에 휩싸였다.
“이거 장난이 아니네. 딱 보기에도 엄청 비싸 보이는데요?”
“비싸겠지. 그거 하나에 최소 집 열 채는 족히 나올걸.”
“어, 진짜요?”
구름에 용무늬가 그려진 접시에, 학이 그려진 청자매병. 해태를 형상화한 연적과 표주박 모양의 백자까지 죄다 휘황찬란한 것들로 그득했다.
하나하나가 보물급 유물로 보이는 물건에 이리저리 살펴보던 광필이가 물었다.
“그런데 이거 적어도 수백 년은 된 물건 아닙니까? 바닷속에 잠겨 있던 게 이렇게 멀쩡할 수 있습니까요?”
“뭐겠나? 다 머드 덕분이지.”
상자 밖에는 굴이나 따개비 같은 조개껍질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뻘이 공기 유입을 막아 준 덕에 내부의 보존 상태는 매우 훌륭했다. 심지어 밸러스트로 오해했던 상자 안에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동전들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물량에 복만이가 혀를 내둘렀다.
“이 선박 주인이 엄청 부자였나 봅니다. 돌 대신 동전으로 무게중심을 잡다니.”
“인도까지 원양 무역을 했을 정도니,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그 시절에 인도까지 항해가 물리적으로 가능했습니까?”
“이 밑에 깔린 자단목이 원산지가 인도거든. 보통은 불상 등을 깎는 데 쓰는 고급 목재지. 그 당시에 원양 무역선을 운용할 재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하긴. 이역만리에서 고려까지 올 정도면. 근데 이거 정리는 어쩝니까? 동전만 몇십 톤은 나올 것 같은데?”
사실 유물을 건져 올린다고 작업이 끝이 아니다. 아무리 보존 상태가 좋다기로서니 수백 년 넘게 묵혀 있었던 것들인 만큼, 필요에 따라선 접합 복원을 하거나 강화 처리를 하는 등 할 일이 산더미였던 것이다.
그러나 강태준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니, 그걸 왜 우리가 직접 하나?”
“그럼요?”
“전문가들을 불러야지. 아마 지금 소식을 듣고 똥줄이 타고 있을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 서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회장님!! 지금 항구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왔습니다.”
강태준의 예측대로였다. 백경에서 호출하기도 전에 소문을 들은 전국의 고고학자란 고고학자들은 죄다 몰려온 것이다.
학자들은 합류하자 작업 속도는 배로 빨라졌다. 인양이 성공하자 놀란 언론에서도 대대적인 보도를 하며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백경개발에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유물들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인양된 건 도자기 및 공예품 약 2천여 점으로, 무게는 약 5톤에 달합니다. 해저에는 이 열 배가 넘는 양의 유물이 갯벌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추가 인양까지 최소 7~8년이 소요될 것으로……
[무안 보물선의 현 가치는 얼마?]
[해저 유물 인양 본격화, 최소 1조 원 이상으로 추정돼……]
그러나 방송국을 찾은 강태준의 답은 단호했다.
“1조는 무슨, 적어도 수십조는 되겠지요.”
“세상에, 그게 정말입니까?”
“추정되는 유물의 양만 2만 점 이상인데, 이중에선 국보급 유물들도 많아요. 거기에 균형을 맞추는 용도로 사용된 동전만 20톤 이상일 거라 파악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발굴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호오, 그 말씀은 앞으로 더 대단한 게 나올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거야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만 해도 이미 문화재청 수장고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니까요.”
인터뷰가 계속되자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가 슬쩍 질문지를 바꾸었다.
“잠시 민감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강 회장께서 엄청난 발견을 하신 건 맞지만, 해저에서 발견된 유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 겁니까?”
“글쎄요. 해저 발굴 유물로는 이게 국내 첫 사례라 문화재보호법상 제대로 된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국제관례에 따르면, 침몰선은 최초 발견자가 소유하는 게 원칙입니다.”
“아, 그렇군요.”
“미국의 경우, 탐사 허가를 받은 개인이 소유권을 취득하거나 조건에 따라 탐사회사와 정부가 인양 물품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반분하는 경우도 있지요.”
“흠. 규정은 없지만, 국내에서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기는 좀 무리가 있으리라 보이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과하게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디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리스크를 지고도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지요. 저 역시 이번 탐사에 사재를 있는 대로 털어 넣은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절한 보상이 있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인터뷰 직후에는 인양한 물건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잠시 도자기뿐 아니라 배에 실린 물건들은 무척 다양했다. 은제 등잔과 청동 추, 주전자, 발, 접시, 청동거울, 악기, 자물통, 주석정 등등. 종류도 다양할뿐더러 다들 가치가 상당한 유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보물선과 관련된 각종 만화나 서적이 연이어 출판되었고. 언론에서는 뻘 속에 묻혔던 나무배의 형태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며 보물선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사이, 한쪽에서는 보물의 구체적인 처리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아니, 유물들이 바닷속에 잠자고 있는 동안, 해경은 대체 뭘 한 건가?”
“해경의 임무는 인명 구조나 환경오염 방지입니다. 가라앉은 버린 배를 꺼내는 것은 업무분담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아니 그걸 변명이라고 해?”
민정수석 비서관의 질타에 해무청장이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진땀을 뺐다.
다들 상황을 타개하려는 기책으로만 생각했지, 설마하니 진짜로 보물선이 인양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불쌍할 정도로 난타당하는 해무청장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철완이 나섰다.
“지금 책임 소재를 무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다만, 유물의 가치가 몹시 큰 만큼 지금부터라도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해야 마땅하다 사료됩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 그렇다면 문화재의 귀속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나?”
“당연히 국가에 귀속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가의 지배권이 미치는 영해에서 보물이 발견되었으니 그건 당연히 국가 소유지요. 문화재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발굴을 이유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한다는 건 불합리하다 봅니다.”
“그렇다고 인양에 들인 공을 무시할 수도 없지 않나. 그냥 밀어붙이는 건 법치국가가 할 짓이 아닐세.”
대놓고 깡패처럼 뺏는 것은 아니지 않나. 솔직히 민정수석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백경에 투자한 사람들이 제법 있는 터라 여론이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강철완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방법이 있지요. 당연히.”
“그게 뭔가?”
강철완의 이야기를 들은 민정수석은 제법 그럴싸하다 여겼다. 그로부터, 며칠 후 포상금 지급과 관련된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백경그룹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이게 뭐야? 발굴 시 포상금은 최초 신고한 유물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한 점당 최고 한도를 5,000만 원 범위로 한정한다고?”
“아니, 유물 평가액을 이따위로 산정하다니 말이 됩니까. 게다가 규정을 소급 적용하겠다니. 우리보고 고작 그거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분노한 임원들이 한마디씩 하자 오재갑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에서 지침이 떨어졌는데, 발굴 절차상 하자가 있었으니 보증금을 추가로 내라고 합니다.”
“얼마를 내라는데?”
“대략 500억이요.”
“500억?”
“예. 보증금을 내지 않으면, 당장 발굴 허가를 취소하고 인양할 권리를 박탈하겠다는군요.”
그 말에 다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니,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어쩌라고? 우리가 다 해 놓은 걸 그냥 홀랑 먹어치우겠다는 건가? 깡패 새끼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건 정부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대로 빼앗기는 건 너무 억울합니다.”
다들 성토하는 분위기였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강태준은 태연했다. 이미 윗선에 밉보일 대로 밉보인 만큼, 정부가 깽판을 칠 거란 건 충분히 예측 범위 내였던 것이다.
“걱정 말게. 방도가 있으니까.”
“무슨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돈 나올 구멍이 있으니.”
얼마 후, 백경그룹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팬텀 펀드를 비롯한 대규모 해외 해지펀드에서 해외전환사채(CB)를 사 보물선 인양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입금 소식을 듣기 무섭게 백경그룹의 주가가 폭등했고, 강태준은 곧장 바다 건너 전화를 걸었다.
“정말 고마워요. 유하 씨!”
“고마운 건 로이한테 전해요. 이번에는 그쪽이 소로스를 설득했으니까. 로이 아니었으면 아예 만나 주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럼 그쪽한데 정말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당신도 조심해요. 항상 응원하고 있으니까.”
자금 경색이 풀린 강태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까지 확보한 자금은 3억 달러.
이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실탄을 확보한 강태준은 곧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얼마 후 증권가를 통해 찌라시가 돌았다.
[예인선의 진실, 유조선 침몰 그 원인은 어디에?]
[군 내부의 불온 세력, 쿠데타 가능성 농후.]
갑작스러운 의혹 제기에 화들짝 놀란 군부 측에서 바로 수사에 나섰지만, 자금의 수혜를 듬뿍 받은 황색 언론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서슬 퍼런 군부가 윽박질렀지만 전국의 잡지사를 죄다 틀어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야권까지 움직였다.
“정부는 백경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멈춰야 합니다. 이번 일의 배후에는 모종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에게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저 거제의 아들, 김공삼이 이번 유조선 사건의 전모를 명명백백히 밝히겠습니다!”
백경그룹에 투자한 소액 주주들이 의혹 제기의 선두주자들이었다. 야권의 중진이자 민주화의 선봉장인 김공삼까지 합세해 의혹 규명에 나서자 계엄사령부 쪽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최 대행은 요지부동 답이 없고,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정부에서는 대체 왜 꾸물대는 거야? 당장 강태준 그놈 모가지를 날려 버려도 모자랄 판에.”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강철완의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강철완이 전전긍긍하건 말건 상황은 그렇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못했다.
“그게, 해외 유수의 헤지펀드들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답니다. 백경그룹을 부당하게 탄압할 경우 국내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겠다는군요.”
“허어, 일개 기업인 따위가 정부에 협박까지 한다는 건가?”
“아무래도 현 정부의 재정상태가 여의치 않은지라…….”
눈치를 보던 노우태가 말끝을 흐렸다.
오일 쇼크에 대통령 유고라는 사태까지 연이어 겪으며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급격히 하락했다.
정치적 불안 요소로 인해 차관까지 죄다 끊긴 마당이니 정부로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철완이 끓는 속을 달래는 중. 그때 보좌를 맡은 대위 하나가 무언가를 전달했다.
“사령관님, 지금 사령부 근처에서 이런 삐라가…….”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 아래, 머리를 조리개 삼아 계란을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그림이었다.
훌렁 벗겨진 머리로 연신 땀을 흘려 대는 꼴이 누군가와 흡사하지 않은가.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당장 차 준비시켜! 무안으로 간다!”
“뭘 어쩌시려는 겁니까?”
“당장 강태준 그놈을 요절내야지. 그 빌어먹을 장사치 놈의 대가리에 총탄을…….”
노우태가 황급히 말렸지만 이성을 잃은 강철완은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 하지만 흥분한 강철완이 막 지프에 탑승하려는 그때, 긴급하게 달려온 보좌관이 서둘러 앞을 막아섰다.
“사령관님! 긴급 호출입니다. 지금 당장 청와대로 가셔야 합니다.”
“뭔가? 갑자기.”
“국가 비상사태입니다. 지금 이란에서 혁명이 터졌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