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58화 (358/361)

358화 조류가 바뀌는 시간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떠들었다.

“무안에 난파선을 인양한다고?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여?”

“내 한 다리 건너서 직접 들은 이야긴디, 그 무안의 난파선 안에 노다지가 가득 들어 있다지 뭐야. 거기에 풍랑에 좌초한 도자기며 해저 유물 같은 것들이 아주 쫙 깔려 있다네.”

“참말인가?”

“그렇다마다. 한몫 잡으면 돈방석이지. 그냥. 지금 백경 주식 한 주라도 사 두게나.”

“난 좀 마음이 걸리는구먼. 보물선이라니 인간적으로 너무 터무니없지 않나.”

“그러게. 혹시 그짓말이면 패가망신 아닌가?”

“이런 좀생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겁이 많아서 뭔 일을 하겠나. 됐네. 나 혼자 사러 감세.”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지만 찌라시를 뿌린 효과는 확실했다. 갑작스러운 호재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날에 끝을 모르고 하락하던 백경그룹의 주가가 다시 반등한 것이다.

그렇게 보물선 펀드가 세간의 주목을 받자, 강태준은 본사 앞으로 기자들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다.

“강 회장님. 보물선 테마주라는 이름으로 증시 자금이 대거 몰렸는데요. 설마 이번 유조선 사태를 덮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근거 없는 어불성설입니다.”

“그럼 수몰된 난파선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궁금해 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강태준이 차분하게 답했다.

“아마도 그럴 거라고 추측하고 있지요. 사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무안 앞바다엔 큰 배가 가라앉았다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니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뢰할 것이 못 되는 거로 아는데요? 하물며 수백 년 전의 일은 와전되기 쉽지 아니겠습니까?”

“하하. 글쎄요. 하지만 중도 서편에서 임자도로 지나는 물길은 예전부터 조운선이 드나드는 길목으로 유명했습니다. 중앙과 호남을 연결해 주는 길목으로써 수출입 창구 역할도 했지요. 그 증거가 바로 이겁니다.”

강태준이 눈짓하자 비서가 상자에서 작은 향로 하나를 꺼냈다. 높이 15센티 정도 되는 작은 향로 모양의 도자기였다. 몸통은 두 부분으로 나뉜 듯, 눈앞의 향로는 뚜껑이 없이 아래쪽만 남아 있었다. 윗부분은 둥근 화로 형태로 몇 겹의 국화잎처럼 장식되어 있었고 은은한 광택이 났다.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근래 들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거지요. 듣기로는 용천요에서 만들었다네요. 우연히 저희 선원 하나가 건져 올렸는데, 이번에 주꾸미를 넣는 주낙에 엉켜서 올라왔다더군요.”

“쭈꾸미…… 말씀입니까?”

“예. 쭈꾸미는 소라나 고둥 껍데기로 잡거든요. 근데요. 청자를 쭈꾸미가 집으로 삼았던 듯합니다. 뚜껑이 없는 게 흠이지만, 보시다시피 모양이 범상치 않지 않습니까?”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워낙 천연덕스럽게 지껄이는 다들 긴가민가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양을 서두르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전에는 확신이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배가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설마 뻘 아래에 이런 유물들이 널려 있단 말씀인가요?”

“그건 파 봐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지금껏 파악한 정보로 볼 때, 갯벌 아래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있으리라는 건 확신합니다.”

이런 좋은 기삿거리를 그냥 두고 볼 언론이 아니었다. 인터뷰가 있은 지 며칠 후, 용천요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남송대 유명한 도자기 산지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식사 중 TV를 보던 황철득이 뭔가를 깨달은 듯 오두방정을 떨었다.

“아니 저거, 구름 문양 저거 뭔가 익숙한디? 마누라. 저거 봐.”

“뭘 말이에요.”

“아 저거. 저거 말이야. 저거 뭔가 우리 집에 있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아 저거, 복실이 밥그릇이랑 디게 비슷하게 생겼네요.”

“아니 이 여편네가. 강 회장이 준 건디, 그걸 겨우 개밥그릇으로 줘?”

“참나. 먼지만 처먹는 거 쓸모없다고 막 쓰라던 게 누군디?”

“내가 그랬나?”

“궁금하면 얼렁 가서 확인해 보든지.”

마음이 급해진 황철득이 물에 말은 밥을 후루룩 털어 넣고 마당에 나가보니, 복실이가 열심히 짬밥을 퍼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 복실이, 고만 처먹고 이리 온나.”

진돗개인지 똥개인지 모를 강아지는 주인이 뭐라 하건 듣는 척도 안 했다.

슬슬 건들어도 영 움직이지 않자 몸이 달아오른 황철득이 그릇을 뺏으려 들었다.

그 순간 복실이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크릉!! 왈! 왈왈!!”

“어후, 놀랐잖아! 이 상놈의 똥개 시키가. 아주 확 삶아 부릴까 보다.”

화가 난 황철득이 부지깽이를 들고 쥐어패려 들자, 복실이가 깨갱거렸다.

소리를 듣고 나온 마누라가 깜짝 놀라 복실이를 감쌌다.

“아니, 밥그릇 확인하랬더니 개를 잡아? 지금 뭐하는 거유!”

끼잉~~ 끼힝!

불쌍한 듯 낑낑대며 고개를 비벼 오는 복실이.

도끼눈을 한 마누라가 흘겨보는 통에 황철득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걍 밥그릇 좀 확인하려구.”

“얘 밥 먹고 있는 거 안 보여유? 참나, 사람이 경우가 없어서는.”

“미안혀.”

“썩 물러가소.”

하지만 그런 해프닝이 생긴 곳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무안 일대 또한 때아닌 도자기 소동으로 시끌벅적해진 것이다. 사실, 이 동네 어민들의 그물에도 가끔 도자기가 걸려 올라오긴 했지만 재수 없다는 이유로 깨 버리는 게 부지기수.

그나마 괜찮은 건 막걸리 한 사발 정도에 바꿔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허나 도자기의 가치를 알게 되자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속출했다.

“아니, 이 양반아. 줘 놓고 뺏는 게 어딨습니까?”

“그건 가치를 몰랐을 때 이야기고. 그만큼 썼으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받은 사람이 임자지요. 도둑놈이라고 신고하기 전에 썩 꺼지슈!”

“뭐라구? 이 호랑말코 같은 자식이!”

파출소가 바빠지던 그때 그러거나 말거나, 백경그룹은 기사회생했다. 물밑에선 20여 개 기업을 추가로 테마주에 묶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이다.

백경그룹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자, 백경과 하청 관계로 묶인 회사들의 주식까지 동반 상승했다. 그렇게 며칠 새 증권가에 유입된 투자 자금은 무려 5,000억 원.

평소 거래량을 아득히 초월하는 액수를 본 강철완이 혀를 찼다.

“허허. 강태준 이놈이, 아주 맹랑한 짓을 하는구먼그래.”

“보물선 같은 게 실제로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백 프로 사기범죄가 분명합니다. 투자자 피해가 커지기 전에 어서 구속수사부터 해야 합니다.”

거품을 문 이억수가 씩씩거렸지만, 강철완은 고개를 저었다.

“워워. 진정하게. 그렇게 흥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아니, 설마 그걸 진짜로 믿으시는 겁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리고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걸 보면 진짜로 난파선 같은 걸 발견했을 수도 있지 않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곰이 재주를 부리면 꿀을 딸 때까진 그냥 놔 두라는 걸세. 사정이 어떻게 되든 우리한테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처음에는 극도로 분노했던 강철완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주무관청에서 허가가 떨어진 만큼, 여론의 추이를 보며 적당히 대응할 생각이었다.

강태준이 실패하면 정부 책임이니 무능을 질타하면 그만이고, 혹시 잘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정부 당국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큰 사건을 연달아 터트릴 거라곤 추호도 몰랐던 것.

증시가 출렁이자 청와대에서는 득달같이 항의해 왔다.

“강 회장, 자네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숙이고 자중해도 모자를 할 판에 이따위 일을 벌여?”

“그 부분은 민정수석께서 판단하실 일이 아니죠. 죄송하다고 고개 숙인다 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저도 살길을 찾는 겁니다.”

“뭐라고? 감히! 자네 미쳤나?”

“각하께 전해 주십시오. 오로지 결과로 입증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따위 연락은 하지 마십시오. 저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뭐라고! 이 되먹지도 못한…….”

뚝!

말이 길어지자, 강태준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 참, 왜 이렇게들 걱정이 많은지. 설마 내가 사기 치고 튈까 봐 그러나?”

“이슈가 이슈니까요. 신 검사장이 어떻게든 출국 금지는 막고 있지만 검찰 쪽도 분위기가 안 좋답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주가 조작과 사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군요.”

“시끄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맨날 뭐 꼬투리 잡을 게 없나 난리 바가지구만.”

투덜거리는 광필이의 말에 뱃전에 선 진중보가 다방 커피를 건넸다.

“인기가 너무 좋아도 탈이구만. 허허. 유명인의 숙명일세.”

“그게 이런 관심은 사양하고 싶네요.”

“원래 좀생이 놈들이 그렇지.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나?”

“무슨 말씀을. 그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내가 감사할 게 무언가? 어차피 이제 은퇴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한 번쯤은 내 꼴리는 대로 해 봐야지. 그간 강 회장에 빚도 갚아야 하고.”

항만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백경그룹에서는 발굴조사단을 구성해 바다 밑을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투입된 잠수부만 무려 60여 명.

하지만 난파선의 위치를 실측하고 유물을 건져 올리는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는 건가?”

“그게 물살이 너무 강해서 정조 시각 외에는 작업이 힘듭니다.”

게다가 배가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갯골 언저리는 조류가 강하기로 소문난 지역. 평균 유속은 약 2.5노트.

사람으로 치면 빠른 걸음 정도지만 물 안에서 이 속도면 붙잡고 의지할 것이 없으면 그냥 쓸려내려 갈 수밖에 없는 속도였다. 거기다 개흙까지 일어나 시야를 방해하니, 더더욱 제대로 작업이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난파선 위치는 대충 확인한 것 같나?”

“예. 서편 방축리 일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근처에서 화물표를 찾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다행히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물돌이 시간에만 작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작업 속도는 몹시 더뎠다.

물흐름이 없는 상태는 고작해야 10~15분.

6시간마다 조류가 바뀌는데, 유속이 0.5노트 이하인 구간은 이 시각 직후 약 45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잠수부 투입이 가능한 시간은 하루에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지지부진한 작업 속도에 인내심에 한계가 온 강태준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내려가 봐야겠군그래.”

“형님.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이 무슨 이팔청춘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황 서방은 물론, 복만이까지 강태준을 싸잡아 말렸다. 하지만 강태준도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하루에 투입되는 돈이 얼마인 줄이나 아나? 이대로는 배를 건져 올리기 전에 자금이 마르면 우리부터 끝장이야.”

“하지만 형님.”

“내가 머구리도 해 본 사람인데 그것도 못 하겠나? 나도 내 목숨 귀한 줄은 알아.”

강태준이 이렇게 위협을 무릅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실시간으로 배 20척과 잠수부 60명은 물론, 그 외 부대 비용까지 전부 강태준의 사재에서 나가고 있었던 만큼 무조건 단기간에 해결을 봐야 했던 것이다.

결국 별수 없이 맑은 날에 입수하기로 정했지만,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형님, 이번 한 번만이에요. 위험하면 바로 올라오는 거요.”

“내가 애냐? 걱정 붙들어 매라.”

“에휴, 형수님이 알면 날 죽이려고 할 텐데.”

“걱정 마라. 멀쩡히 다녀올 테니.”

어깨를 두드린 강태준이 입수 준비를 했다. 현장의 조류가 빨라 간편한 스쿠버 장비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베테랑 잠수부 두 명이 함께 따라오기로 했다.

물로 잠수해 들어가는 순간, 강태준은 왜 여기가 스페셜리스트들도 꺼리는 곳인지 깨달았다.

물속이 혼탁해서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장난이 아니군.’

이 정도 상황이면 확실히 별수 없을 것 같았다. 갈고리와 철창으로 유물이 있을 법한 곳을 찔러 가며 더듬더듬 위치를 잡아 갔다.

강태준은 잡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온몸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래를 기계적으로 찔러 보던 강태준의 손에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건, 밸러스트 같은 건가?”

하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잠시 밑으로 내려갈까 고민을 하던 강태준이 신호를 주자, 잠수부들이 따라 움직였다. 밑으로 잠수하자 운동장처럼 평평한 완경사로 된 바닥이 보였다.

진흙과 고운 모래가 섞여 있어서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

바닥에 착지한 강태준은 옆머리 기리부를 눌러 적당량의 산소를 빼냈다.

그런 다음 몸을 잔뜩 굽힌 채, 조심스럽게 모래톱을 차고 지나갔다.

바다 밑은 겨울철이라서인지 별로 살아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바위 옆에 희끄무레한 것이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마치 유령처럼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삭막한 겨울 바다를 스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던 중, 문득 유속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옆에 있었던 잠수사들이 서둘러 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이제 곧 올라갈 시간이라는 뜻.

여기서 멈춰야 하나?

조류가 바뀌는 느낌에 강태준이 오른쪽을 돌아본 순간.

강태준은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추었다.

배 한 척이 북서로 뱃머리를 둔 채, 조류와 거의 직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