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54화 (354/361)

354화 어뢰의 정체

일촉즉발의 순간. 선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자 강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형님! 이건!”

“물러서게.”

다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그대로 명에 따랐다. 하사가 용접된 철판을 뜯어 내자 이번에는 콘크리트 막이 나타났다. 군인들이 망치를 들고 오자 방첩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하 진짜, 당신들,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요. 우리가 범죄자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디까지나 업무차 확인하는 겁니다. 거기서 비켜서세요. 잘못하면 다칩니다.”

망치를 들고 온 하사가 있는 힘껏 콘크리트를 때렸다. 타설한 콘크리트까지 제거하고 마침내 공간이 나타나자, 검사관의 표정에 희열이 어렸다.

드디어 뭔가 건수를 잡았다 싶었던 것.

그러나 비트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냄새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우욱!”

“이게 뭔 냄새야?”

텅 빈 공간에는 흰색의 암염 덩어리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구린내에 기겁한 사람들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이건 뭡니까. 대체?”

“냄새 제거용이죠. 예전에 청어 보관 창고로 쓰던 곳이라서요. 청소를 몇 번이나 했는데. 아무리 해도 통조림 터진 냄새가 안 사라지는 바람에 청소 아주머니들도 두손 두발을 들어서 하는 수 없이 출항 전에 폐쇄했지 뭡니까?”

“이건 뭐, 우욱!!”

오기가 생긴 검사관이 안까지 들어가 봤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수르스트뢰밍 냄새가 진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냄새에 군인들도 수 분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참을 속을 게워 낸 검사관이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설마 더 조사할 게 남았습니까?”

“이제 됐습니다. 그만하지요.”

몇 번이나 속을 게워 내서인지 얼굴이 핼쑥해진 검사관이 고개를 젓자 강태준이 선심 쓰듯 말했다.

“사실, 오늘 대어를 잡아서 저녁에 요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같이 식사라도 하심이…….”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우웁!”

속이 메스꺼워진 검사관이 다시 한번 게워 내더니 도망치듯 고속정을 타고 본선으로 떠났다.

깨진 콘크리트를 치우는 방첩대원들을 둘러보며 복만이가 투덜거렸다.

“아우. 난장판일세. 군인들이 참 예의도 없군요. 좀 대충이라도 치우고 가든지 하지.”

“그래도 뭐,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나?”

“그러게요. 멍청하기는.”

강태준과 시선을 교환한 복만이가 클클거렸다. 사실 이 지역은 애초에 걸릴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 둔 것이다. 오재갑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설마 또 이런 일은 없으면 좋겠군요.”

“인간적으로 사람이 두 번 걸리지는 않겠지. 액땜했다 치자고.”

소식이 전해진 건지, 다행히 그 뒤로는 별도의 검문이 없었다. 해협을 지난 배는 부산까지 순항했다. 중간에 풍랑을 만나거나 엔진이 맛이 가는 등 사소한 사고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양호한 항해였다. 부산항을 코앞에 둔 복만이가 콧노래를 불렀다.

“룰루루루루루…….”

“뭐가 그렇게 좋냐.”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못 본 지 벌써 몇 달입니까?”

“아주 공처가 납셨네.”

“우리 마누라가 요리를 엄청 잘하거든요.”

“그래도 안 선생만큼은 아니겠지 그래.”

“에이. 아무리 바깥 밥이 맛있어도 집밥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우리 애기들 꼬물대는 거 보는 게 얼마나 귀여운데요.”

연년생으로 순풍순풍 낳아서인지 벌써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복만이다. 잠시 그 모양을 떠올리던 강태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너 같은 녀석이 아버지라니. 솔직히 상상이 안 되는구먼.”

“형님도 이제 슬슬 애 하나는 놓아야죠. 후계자가 얼마나 중요한데 말입니다.”

“임을 봐야 별을 따지. 유하도 많이 바빠서.”

“너무 늦기 전에 한둘은 놓읍시다. 결혼식도 삐까뻔쩍하게 하고. 살림 차리고 언제까지 미룰 수야 없잖아요. 뭐, 형님이 안 놓겠다 하면 저야 좋지만.”

“아니, 그거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

“천년만년 회장 놀음 하실 건 아니잖습니까. 뭐 수틀리면 조카한테 물려주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크크.”

그 말에 강태준은 어이가 없었다. 이죽거리는 표정에 슬며시 학깃대를 만지작거렸다.

“어이쿠. 이 발칙한 녀석을 봤나. 야, 그게 형한테 할 소리냐? 엉?”

“생각은 자유 아닙니까. 아, 설마 그걸로 때리려는 겁니까?”

“야, 이 자식, 너 일루 안 와!”

선교 위까지 도망 다니는 복만이를 쫓아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졌다.

숨을 돌린 강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거 밥 먹고 운동만 했나. 뒤룩뒤룩한 게 발은 더럽게 빠르네.”

“하하. 형님도 이제 나이가 있으시니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부산 가시면 좀 쉬엄쉬엄하시죠.”

오재갑의 말에 강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쉴 때가 아니지 그래. 그보다 철광석 가져오면서 이란 쪽 분위기는 확인해 봤나?”

“예. 경제 사정에 비해 생각보다 치안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더군요.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곳곳에서 시위대도 심상치 않았고요.”

석유 가격의 상승으로 이란의 재정 수익은 크게 증가했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분배가 문제였다. 더욱이 팔라비의 세속주의 정책과 탈종교화에 힘입어 왕가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했고, 반왕정 시위가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중이었다.

“돌발 사태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계속 살펴봐야 해.”

“설마 그러겠습니까?”

“왕의 건강도 별로 좋지 않으니 촉매만 있으면 사건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야. 유조선은 보냈나?”

“예. 저희 후속으로 금방 들어올 예정입니다.”

“그래, 이런 때일수록 현물을 최대한 많이 비축해 두는 게 좋아.”

이번 일만 끝내면 강태준도 여유를 두고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제항에 도착했을 즈음, 축 가라앉은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미리 접선을 약속했던 군함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강태준으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원래 여기서 접선책이 회수하기로 하지 않았나?”

“글쎄요. 저도 잘…….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안 되겠군. 일단 배부터 내려야겠어.”

계속 해상에 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항구에 먼저 짐을 내리기로 했다. 그렇게 크레인으로 미리 가져온 철광석과 석유부터 하역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럽게 등장한 김요한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이구야. 회장님, 여기 계셨군요. 큰일 났습니다! 큰일!”

“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그래.”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괴한에게 피습을 당하셔서 지금 국가 비상사태입니다.”

“아니, 그런 걸 왜 지금에야 알려 주는 건가?”

“그게 위에서 보도 지침이 내려져서요. 언론에서도 지금 쉬쉬하는 중입니다.”

유사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까. 엠바고가 풀린 것은 그날 오후였다. 아나운서가 비보를 알렸다.

-지난 시각 2시 박 대통령께서, 한국전력공사와 공동으로 실시한 월성 원자력 시범 운전식에서 군인 복장을 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서거하셨습니다. 폭탄 테러 직후, 피신하던 박 대통령은 김원책 비서실장에 의해 군병원에 이송됐으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운명한 것으로……

갑작스러운 서거에 놀란 외신들도 사태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한국 사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이슈였다. 애초에 한국은 냉전의 최전방에 있으면서도 정치가 안정되어 있는, 꽤나 실속 있는 발전도상국으로 비쳐져 왔던 것이다.

미국은 곧바로 유감 성명을 내고 시해 사건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연루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상황이?”

“정황상 북한의 테러 행위로 의심된답니다. 그것 때문에 중정부장까지 잡혀 가서 계엄사에게 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는군요.”

대통령 시해로 인해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대통령 권한 대행과 함께 정국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권력 공백은? 누가 메꾼다던가?”

“차기 권력은 일단 최한규 총리가 승계하고 당분간은 권한 대행 체제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엄 선포도 조만간이겠군. 언제인가?”

“아마 삼 일 뒤일 겁니다. 소문에 의하면, 아무래도 부분 계엄령이 내려질 듯합니다.”

“전국이 아니라 부분이라고. 어째서?”

“그게.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고 할까요. 대통령 권한 대행의 의지라는군요.”

강태준의 표정이 구겨졌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지게 되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전권을 맡지만, 계엄령이 일부에만 내려지면 국방부 장관이 통수하니 권력의 누수는 필연적이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썩 좋은 선택이 절대 아니었다.

“이 험한 때에 굳이 그런 행동을 그러면 합동수사본부장은 누구로 선정되었다고 하나?”

“강철완입니다. 아마 계엄사령관도 겸직할 듯싶습니다.”

“아니 그 대머리가? 어째서?”

“아무래도 군부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고.”

“아우, 젠장할. 미치겠구만.”

비상계엄 선포로 언론은 죄다 사전검열을 받았고, 전국 대학에는 휴교령이 때려졌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통행 금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망하자 물밑에 잠자고 있었던 민주화 세력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한국의 민주화로의 이행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본 것이다.

“언제까지 군부의 독주를 보고 있어야 합니까. 지금이야말로 국민이 일어설 때입니다.”

“옳소!! 유신 타도! 독재 철폐!”

시위대가 사방으로 몰려나오자, 군부에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저, 시국이 어느 때인데, 이런 짓거리를. 빨갱이 놈들 다 때려잡아”

계엄사령부에서 시위대를 때려잡으며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소요는 그치지 않았다. 야권 인사들까지 일제히 지지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계엄령이 제때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사정은 나았겠지만, 실권을 지닌 장 차관들이 원전 사태 때 다수 비명횡사해 버린 관계로 중간에 조율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중간에 중재에 나섰다면 좀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미국은 한국 사태를 그냥 관망하기만 했다. 쿠바와 베트남 사태에서 호되게 당한 교훈이었다.

‘자칫 잘못 개입했다 역풍이 불면 그때는 골치 아파진다.’

베트남전에서 대차게 말아먹은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꽤나 소극적으로 변했다. 섣부르게 개입을 했다 반미를 부르느니, 차라리 얌전히 관망하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 권력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치인과 군부의 개싸움이 시작되었다. 육군 참모총장이던 정환승과 대통령 시해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강철완이 시시각각 대립했던 것이다.

“아이구, 개판이구만. 김필중 총재라도 와야지 뭐라도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지금 해외 순방 중이니, 사태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돌아오기 어렵겠지.”

해외에 차관을 빌리러 간 사이 일이 터진 만큼, 김필중으로서도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귀국이 가능한지도 미지수였다. 권력 구도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최한규 쪽 인사들이 입을 모아 입국을 반대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 들어오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보세창고 구석에 놓인 어뢰를 보며 광필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 저 애물단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게. 정부도 이렇게 대책 없이 나오면 안 되지요. 일을 시켰으면 물건을 제때 받아 가기라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강태준이 중정 요원에게 물었다.

“윗선에 보고해서 빨리 수거할 수는 없습니까?”

“회수와 관련된 사안은 기밀이라서……. 죄송하지만 저희도 운송 외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허. 거참. 아무리 그래도 손발이 맞아야지. 이걸 우리 보고 어쩌란 거요?”

난감한 것은 파견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죽어 버린 데다 중정부장까지 싹 물갈이되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껏 박정명이 일을 추진한 방식으로 볼 때, 현 정부에서 이런 극비 작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저걸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혹시 폭발이라도 하면 큰일인데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일단 전문가를 불러와야겠어.”

“전문가라니. 누구 말입니까?”

“어뢰라면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있지 않나.”

표면 연구소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강동기라면 어뢰 개발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을 터.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일단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만큼, 중정 요원들도 거기까지는 반대하지 못했다. 마침 한국에서 반도체 조립 공장 설립안 때문에 자주 드나들고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호출할 수 있었다.

“아니, 대체 뭘 보라는 말씀이신지.”

“그냥 와 보면 아실 겁니다.”

강태준이 천막을 걷자, 보관하고 있던 어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동기는 말문이 막혔다.

“이건 대체…….”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몰라서. 염치 불고하고 모셨습니다. 주변에 어떻게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자초지종을 설명한 강태준이 도움을 청했다. 면밀하게 어뢰를 살펴본 강동기는 뭔가를 깨달은 듯 갑작스레 침음성을 흘렸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잠시, 사람을 좀 물려 주십시오.”

강태준이 눈짓하자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다. 강동기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작아졌다.

“이거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일단은 저희 빼고는 없습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강동기가 뜸을 들였다. 잠시 후, 힘들게 입을 열었다.

“강 회장님, 제 말을 명심하십시오. 저건 절대로 일반 어뢰가 아닙니다.”

“일반 어뢰가 아니라니 그게 또 무슨 소립니까?”

“이미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미니트맨 시스템이라는 미국의 ICBM 연구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제 전문 분야인 임베디드 컴퓨터 설계에 국한한 것이긴 하지만 덕분에 미사일 설계나 어뢰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지요. 그리고 저런 구조를 택하는 무기는 제가 알기로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체가 뭐라는 겁니까?”

“아마도…… 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순간, 강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얼어붙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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