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53화 (353/361)

353화 지브롤터 해협

새로 등장한 사람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다.

가니우스 의대 1차 준공식에 맞추어 갑작스레 기습 방문한 것이다. 리비아 국가 색이기도 한 녹색의 군복을 입은 채 승용차에서 내리는 카다피 옆으로 경호를 맡은 군부대가 도열했다.

“이거 많이 늦었군. 내가 방해했나?”

“아닙니다. 의장님. 이렇게라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비아인들은 카다피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면서도 몹시 감격했다. 특히 베두인 출신인 기술팀 담당자는 그야말로 황송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복만이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저 양반, 인기 많네요.”

“그러게. 생각보다 나이도 되게 젊구만. 머리숱도 많고.”

광필이는 풍성한 머리칼이 부러운 듯 계속 곁눈질을 멈추지 않았다. 30대 중반의 카다피는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였다. 부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기가 절정에 달해서인지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사람이 타락해서 정육점에 내걸리는 신세가 되다니.’

20대 후반, 고작해야 중위에 불과한 직급으로 쿠데타에 성공했던 영광이 그렇게 바래지다니. 그것이 권력이라는 마물에 삼켜진 결과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강태준을 본 카다피가 성큼성큼 앞까지 다가왔다.

“그쪽이 강 회장인가. 박 대통령에게 말씀 많이 들었소. 수완이 대단한 사업가라지?”

“운 좋게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허허. 겸양은. 내가 여기가 처음이라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군. 안내를 해 주겠소?”

“예. 일단 중앙수술실부터 둘러보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강태준은 기꺼이 안내인을 맡았다. 의과대학에 설치된 병원 수술실에는 무균실과 공기 순환용 특수여과기, 중앙 소독 처리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카다피는 의과대학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 엑스레이 촬영실까지. 설비가 꽤 좋구려.”

“예. 모두 스웨덴에서 가져온 최신 설비입니다. 이쪽 치료실은 코발트 선으로부터 방사능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유리로 되어 있지요. 추후에 당뇨와 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원자력 병동과 방사능 치료를 위해 폐기물 처리 시설도 별도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그거 반가운 소리군. 의사들도 지원해 주겠다고 했지요?”

“예. 세브란스 쪽에서 파견 근무를 할 예정입니다.”

개중 눈에 띄는 부분은, 현재로서는 최첨단으로 된 서류 배송 설비와 외부 조경용으로 설치된 스프링클러였다. 사막과 어울리지 않은 녹지에 카다피의 얼굴이 펴졌다.

“이런 작은 공원이 있구려.”

“아무래도 환자들과 대학생들에게 휴게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녹지는 심신 완화에 도움을 주지요.”

“배수 처리된 물은?”

“전부 재활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그보다 이 돌들은 뭔가? 직접 깎은 건가?”

둥글게 생긴 기암괴석이 참으로 기묘하게 보였다.

“아닙니다. 트로반트입니다.”

“트로반트? 아, 자라는 돌 말인가?”

“예. 아무래도 조경 면에서는 특별한 감각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방문하실 때 보시면 분위기가 꽤나 달라져 있을 겁니다.”

“그거 기대가 되는군.”

트로반트는 빗물을 흡수하면 커지는 돌을 말한다. 식물처럼 실제 나무처럼 내부에 테가 생기기도 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변화를 연출할 수 있는 돌이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고생이 많았겠어. 일전에도 느꼈지만 한국인들은 참으로 근면하더군. 마수리타 숙소를 갔을 때 깜짝 놀랐지 뭔가.”

“인력 외에 아무것도 없는 나라니까요. 성실하기라도 해야 먹고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 인력이라는 것이 이 땅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게 문제지.”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에 속하는 초거대 국가였지만, 인구는 300만이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사막 지형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다 쳐도 지닌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었던 것이다.

“그래도 축복받은 천연자원이 있지 않습니까?”

“개발을 하려면 인력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한국은 우리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듣자 하니 꽤 오랜 기간 지하수 개발에 투자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굴프 쪽과도 인연이 있는 것 같고.”

“예. 원래는 온천 때문에 하던 일인데, 어쩌다 보니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야. 사실 우리도 지하수 개발에 손을 댈 예정이거든.”

카다피가 벵가지 주변의 넓은 사막지대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 사막 밑에는 35조 톤의 막대한 물량이 잠들어 있다네. 우리 국민이 200년 이상 쓸 수 있는 막대한 양이지. 내가 새 국기를 초록색으로 정한 것도, 초원의 색깔을 이 사막에 가져다주고 싶어서일세.”

“좋은 꿈이군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거라 사료됩니다.”

“허허. 빈말이 아니야. 정말 그렇게 만들 생각이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 같은 기업가들의 힘이 필요하지.”

카다피가 강태준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승냥이 같은 서방국들 놈들이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리네.”

“꿀이 있으면 날파리가 꼬이기 마련이지 않겠습니까?”

“허허. 날파리 정도가 아니지. 인권의 이름으로 침략을 일삼는 개돼지들 아닌가. 사실 베트남전은 그런 미제 자본주의자들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낸 셈이지.”

“…….”

강태준은 잠자코 침묵을 지켰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하지만 도찐개찐이라고, 독재자를 옹호해 주고 싶은 생각도 없는 강태준이었다. 하지만 제 말에 취한 카다피는 계속 지껄였다.

“그 점에서 박 대통령도 꽤 깨인 사고를 가진 사람 같더군. 국익을 위해서는 누구랑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주의라니 말이야.”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허허. 그게 꼭 말로 들어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보다 공사 단계가 꽤 많이 남았는데, 기성고 대금은 입금되었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입니다.”

“허허. 그럴 줄 알았네. 내가 단단히 일러두지. 이렇게 성의를 보였는데 나도 뭔가는 해 줘야 하지 않겠나?”

“감사한 말씀입니다.”

“아 참, 돌아가는 길에 박통께 드릴 선물도 같이 챙겨 가게나. 양국의 우의를 위한 성의 표시라고 말이야.”

공사장 인부들을 만나 치하의 인사를 나눈 카다피는 기술인들을 불러 각자 벵가지의 집 한 채씩을 선물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말에 준공식장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거수경례를 받은 카다피가 차에 오르자 복만이가 약간 부럽다는 표정을 했다.

“이야, 통이 큰 양반이네. 오일 머니라는 게 참 좋네요.”

“뭘. 제 돈도 아닌데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거지. 아무튼 준비하게. 증발기 제작 일정도 확인해야 하고, 아무래도 한국에 잠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강태준은 서둘러 짐을 쌌다. 미리 이야기를 해둔 대로 갑판 밑에 2백여 개의 상자를 쌓아 두고 어뢰는 그 안에 숨길 예정이었다. 선체 곳곳에 숨겨진 공간은 강태준이 직접 설계를 맡았다.

‘이런 기술을 여기 써먹다니.’

세상일이 요지경이라지만, 국가가 나서 밀수를 주도하라고 시킬지 누가 알았겠는가. 얼마 후, 베일에 싸였던 어뢰의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포신형 구조에 상대적으로 길쭉한 모양을 지닌 어뢰를 보고 복만이가 속삭였다.

“뭔가 생각보다 많이 아담하군요. 좀 뚱뚱하기도 하고.”

“거, 저번에 봤던 로켓처럼 생겼구만. 근데 이건 뭡니까. 폭발 방지용인가?”

“길게 생각하지 말게. 다쳐.”

어뢰는 폭발 방지를 위해 겹겹이 포장을 한 다음, 철판 아래로 콘크리트 타설까지 했다. 공정은 강태준이 직접 지휘를 맡았다. 작업자들은 영도회 출신 중에서도 까다로운 인사 검증을 통과한 이들로만 선발했다.

최종 용접 작업이 끝난 후 한숨 돌린 강태준이 물었다.

“연막용 철광석은 잘 채웠나?”

“걱정 마십시오. 사이드 부분에는 철스크랩까지 빈틈없이 아주 꽉꽉 눌러 넣었습니다요.”

나머지 부분엔 석유까지 가득 실었다. 쇳덩이로 가득한 컨테이너 선박을 본 선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헐, 이거 중간에 진짜 터지면 그냥 흔적도 없이 날아가겠는데요.”

“걱정 마. 이번 건은 내가 직접 운반할 거야.”

대통령으로부터 약조한 일인 만큼, 강태준도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고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카다피가 군함을 보내 호위를 해 주겠다고 했지만 강태준은 에둘러 거절했다.

“굳이 그렇게 사서 의심 살 일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방첩대원을 포함 개인적으로 고용한 무장 경비 인력만 30명이 넘는다. 거기다 중정 요원들까지 포함하면 돌발 상황에도 충분히 맞대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벵가지항을 떠난 강태준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부산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중간 기착지 없이 그냥 직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군용 물자를 가득 실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배는 지중해를 넘어 해협으로 향했다.

“지중해라 그런가. 날씨가 참 좋군요.”

“그러게. 베링해랑 비교하면 선녀구먼. 유럽 놈들은 참으로 복 받았어.”

폭발물을 실은 배는 느릿하게 항해를 계속했다. 다행히 해협까지 오는 동안 날씨는 청명하고 맑았다. 구름이 살포시 낀 날씨에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가운데, 강태준은 병에 든 녹색 올리브를 한 알씩 집어먹었다. 그걸 본 오재갑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맛있습니까, 형님? 엄청 떫고 시던데?”

“분위기 아니냐, 분위기.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몸에 엄청 좋다 하더라고.”

쓰고 신 것이 뭔가 괴랄한 맛이긴 했지만, 올리브의 올레오칸탈 성분은 몸에서 염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다. 이제 강태준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만큼 요새 스쿠알렌과 함께 열심히 챙겨 먹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 사이, 복만이는 중정 요원들 사이에 섞여 같이 화투를 치며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배까지 타는 걸 보니 공무원도 쉬운 일이 아니구만.”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습니까. 박봉에 애까지 키우려면 생명 수당도 악착같이 받아 내야죠.”

“허이구. 은퇴하고 이쪽 와서 일해 보는 건 어떻겠소? 우리 쪽이 페이가 꽤 센데?”

“오, 정말요?”

“사대보험에 퇴직금도 빵빵합니다. 물론 우리 형님이 좀 까다롭긴 합니다만. 원래 핏줄 좋다는 게 뭐겠소. 그래.”

자연스럽게 융화된 녀석이 격의 없이 시시덕대는 꼴을 보니 사뭇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저것도 재능이지, 재능.”

“그렇게요. 영업이 천직인데. 게으름만 덜 피워도 참 믿음직할 텐데 말입니다.”

예전에 약속한 게 있으니 아주 대놓고 부려 먹지는 못하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꽤 쓸 만하다. 살살 달래서 써먹을 방도를 고민하던 그때, 조타실에서 신호가 왔다.

“레이더 반응이 있습니다. 군함 한 척 우현에서 접근 중. 속도 22노트.”

“함종은?”

“초계함입니다. 로열 네이비 같은데요?”

새로 나타난 군함은 1,800톤급짜리 영국 해군 소속 원양 초계함이었다. 빠르게 접근한 초계함에서 화물선에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로열 네이비, 적재 화물과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선명은 해연호고, 목적지는 부산항입니다. 철광석과 석유를 수송 중에 있습니다.”

“검문을 실시할 예정이니, 잠시 정선해 주십시오.”

일방적인 통보에 선원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어떡하지요? 이거?”

“괜찮아.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고. 평소대로만 행동해.”

잠시 후, 검시관들과 해군 관계자들이 고속정을 타고 건너오자 경례를 붙인 강태준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민간 상선에 단속이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며칠 전 스페인 남부 알헤시라스로 가던 화물선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단속이 강화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참, 알겠습니다.”

선박에 오른 검사관은 안전 저해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화재 예방 및 인명 구조 장비 여부까지 꼼꼼히 확인하며 창고를 뒤지던 중 우연히 용접기로 이어 붙인 자국이 눈에 띄었다.

“여긴 뭡니까?”

“아 그게, 예전에 선원들이 창고로 쓰던 곳이라서요.”

강태준이 둘러대는 말에 눈이 가늘어진 검사관이 바닥에 코를 대었다. 잠시 바닥에 냄새를 킁킁대던 검시간이 희미한 신나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확인해 봐야겠군요. 하사, 용접기 가져오게.”

“아니. 이건 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 배는 개인 사유물인데, 이런 식으로 개인 재산을 훼손하는 건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강태준이 항의하자 상황을 지켜보던 방첩대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검사관과 같이 탄 영국 군인들이 표정을 굳혔다.

“물러서십시오.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저희도 무력 행사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험악해지자 서로 눈짓을 주고받던 요원들이 벨트를 만지작거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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