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51화 (351/361)

351화 기회의 땅

한국 건설 업체가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선, 정부로부터 진출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리비아 진출에 대해 태클을 거는 세력이 있었다.

다름 아닌 현 국무총리 최한규가 진출 불가 입장을 들고나온 것이다.

“리비아는 미수교국인 데다가 친북 국가입니다. 굳이 많은 아랍 국가들을 놔두고 거기에 투자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리비아와 친교를 맺으면 미국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거기다 외교 공관이 개설되어 있지 않아 신변 보호도 불가능합니다.”

경제 기획 위원회에서는 리비아의 정세 불안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리비아는 도로나 금융 등 공사를 위한 기반 제도가 미비한 데다 문화적 장벽이 상당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부에서 쉽사리 허가를 내지 않고 질질 시간을 끌자 백경그룹에서는 초조해졌다.

“아니,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왜 훼방이야?”

“그러게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라니. 이 사람들 대체 한국인 맞습니까? 이렇게 되면 입찰 참가부터 걱정이네요. 일선 업체들이 전부 로비를 시작한 상황인데, 이래서야.”

이미 벵가지 일대의 신축 공사와 관련해서 발주를 시작한 상황. 그중 강태준이 노리는 가니우스 의과대학 건설 사업의 경우 이미 예비 입찰 단계부터 상당히 공을 들여놓은 상태였다. 허나 1억 달러가 넘는 공사 입찰에 제때 참여하지 못하면, 강태준으로서는 그냥 헛심 빼는 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걱정하지 말게.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일단 박 상무는 현지에 가서 일정부터 조율해 봐.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예? 그러면 정부에서 가만 있지 않을 텐데요.”

“그거야 총리실 의견이지,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잖나? 일단 최종 협상 타결 전까지만 허가받으면 돼.”

강태준은 그냥 밀어붙이기로 했다. 달러가 들어온다고 하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정부로서도 못 이기는 척 사후추인을 해 줄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리비아에 상사주재원을 보낸 강태준은 정부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협력을 호소했다.

“아니, 왜 하필 리비아란 말인가. 강 회장. 이건 아니야. 다른 곳을 알아보게.”

“마수라타 숙소는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그건 중동전이 벌어지기 전이고,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지 않나?”

“리비아는 유전이 풍부하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합니다. 정부 보증이 없어도 좋으니 일단 교두보만이라도 확보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게 쉽지 않다니까. 왜 이렇게 집요한 건가?”

“투자는 멀리 보고 하는 겁니다. 기회임을 인지할 때쯤이면 이미 늦는 법이니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백경그룹에서 총력전에 나섰지만, 총리실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총리실 입장은 여전히 단호했다. 한 번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다음부터 건설사들의 통제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허가권을 두고 기 싸움을 계속하던 중, 낭보가 전해졌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집트-이스라엘 휴전 협상 타결]

이집트로서는 전략적인 선택이었지만, 뒤통수를 맞은 아랍권의 반발은 극심했다.

“여기까지 와서 평화협정이라니. 이건 아랍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집트는 사다트는 영미에 굴복하고 아랍인들을 우롱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일방적인 휴전 결정에 분노한 아랍 국가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집트에 대한 성토에 나섰다.

급기야 아랍연맹(AL)에서는 이집트를 회원국에서 바로 퇴출시키는 등 불쾌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사다트의 입장은 단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정도면 우리는 할 만큼 한 거다. 그럼 우리더러 미국이랑 일대일로 싸우라는 소리냐?”

이집트도 충분히 할 말은 있었다. 원래 중동 전쟁을 시작할 때 이집트가 총대를 메는 대신 다른 아랍 국가들이 전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이집트의 희생에 비해 아랍권의 전비 지원이 너무 부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은 곧바로 범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아랍권 국가 중 가장 극렬하게 나온 곳은 다름 아닌 리비아였다. 범아랍주의를 추구하던 카다피는 사다트의 평화협정을 미제에 대한 굴복으로 규정하고 외교 관계를 일제히 단절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미제 앞잡이를 처단하고 이집트인들을 퇴출하라!”

카다피의 결정은 즉각적이었다. 리비아의 미군 기지 철수는 물론, 건설에 참여 중인 이집트 업체들까지 죄다 퇴출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카다피의 통 큰 결정에 이슬람주의자들은 열렬하게 호응했다.

“와아아아, 카다피 만세!”

“이슬람의 영웅, 아랍의 희망!”

하지만 인력이 극히 부족한 리비아에서 이런 행동은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였다.

제일 문제가 된 것은 무엇보다 건설시장, 리비아인들이 대거 빠지자 건설 시장 전체가 진공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정이 그렇게 변하자 리비아 진출 허가를 두고 정부 관계자 간의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리비아 시장은 완전 공백 상태입니다. 깃발만 꽂으면 사업권이 절로 굴러들어올 판인데 투자를 안 하겠다니, 말이 됩니까?”

“하지만 국제 정세를 살펴야지요. 미국이 경제 제재를 공언한 마당에 한국이 카다피와 협조하는 건 불필요한 트러블을 양산할 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총리. 솔직히 아랍 국가들 중 반미가 아닌 국가가 어디 있소?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손가락만 빨다 굶어 죽어야지.”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뭡니까. 미국이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합니까? 뭐 식민지답게 사대라도 해야 한다, 그런 소리로 들립니다만.”

“김 대표, 말씀이 심하십니다!”

국무회의에서의 대립은 치열했다. 리비아 진출을 반대하던 최한규 총리 측에서는 아직은 사태를 두고 봐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쳤지만, 군부의 핵심인 김필중 라인은 당장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논쟁이 격화되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보다 못한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다들 그만하게. 우리나라는 자주 독립국인데 언제까지나 타국의 지원에 기댈 수는 없지 않나? 지금도 계속 지원액을 줄이고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각하. 섣불리 리비아를 지원하면 한미 동맹에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허허. 돈에 어디 국경이 있던가? 국제관계에선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지.”

“각하,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허허. 임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지. 언제까지나 끌려다닐 수만은 없지 않나. 국방부 장관, 월성 원전은 언제 가동 가능한가?”

“이제 곧입니다.”

“공기를 최대한 단축시키게나. 중수로 가동부터 하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때 확인할 수 있겠지그래.”

대통령의 의중을 깨달은 총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월성 1호기를 중수로로 만든 것은 사용 후 만들어지는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것은 미국을 자극할 여지가 충분했다.

“가, 각하! 자칫 잘못하면 경제 제재까지 들어오는 수가 있습니다.”

“허허. 그 정도 각오도 없이 무슨 일을 하겠나. 이 정도면 최소 항의 표시 정도는 되겠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동맹한테도 할 말은 해야지요.”

한국 정부에서도 미국의 베트남전 철군 일정 단축과 금본위제 폐지 등에 아무런 고지 없이 진행한 일로 쌓인 불만이 누적된 상태였다. 거기다 북한에서 이집트 지원을 빌미로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한 것도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북측의 전력 강화가 가시적인데도 한국의 자체 미사일 개발에는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있으니, 박 대통령으로서는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안보 문제를 미국에만 기댈 수는 없어. 친미든 친소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이용해야 한다.’

10년간 막대한 전비를 투자한 베트남도 버릴 정도면, 동맹 관계도 상호 호혜적 관계일 때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필요가 없다면 버릴 것이 분명하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법.

소련과 미국의 신경전이 팽팽한 지금, 박정명은 내부적으로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국운을 건 도박을 해 볼 참이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달러 확보가 절실했다.

“일단 리비아 진출을 허가한다고 알리게. 일단 시작한 이상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입찰에 성공해야 하네.”

“옙!”

뒤늦은 푸시였지만, 다행히 정부의 지원이 아주 늦진 않았다. 리비아 교육성 측에서도 사전 자격 심사(PQ)에 말석으로나마 끼어들 기회를 준 것이다.

그렇게 사전 심사에 참여한 업체는 70곳, 결국 최종 입찰에 참여하게 된 업체는 백경이 주도하는 한국해외건설공사를 비롯해 프랑스·터키 측 각 1개 업체, 독일·소련계 컨소시엄 1개, 그리고 현지 업체 등 5개국 4개 업체로 압축되었다.

본입찰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곳은 프랑스의 테스크 홀딩스라는 업체로, 리비아에서의 숱한 설계 경험을 가진 대형 건설사였다.

“현지 업체랑 소련 회사는 기술 문제가 걸리고, 독일 쪽이랑은 별로 사이가 안 좋으니 다른 곳은 별로 문제가 안 될 것 같습니다만. 문제는 프랑스네요. 단가가 1억 달러라니 저희보다 2천만 달러나 저렴합니다.”

“덤핑인가. 유럽 회사는 인건비도 훨씬 비쌀 텐데 대체 어떻게 그 가격이 가능하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리비아 측에서도 그걸 근거로 저희 회사에도 입찰가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흠.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볼 수 없나? 십중팔구 페이크 같은데.”

“그게, 아무래도 시간 내에 사안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흠. 그래? 일단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대응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실제 공사에서 2,000만 달러를 깎는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장원영이 한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아! 생각났어. 단가를 낮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네.”

“뭡니까?”

“주철관 대신에 섬유보강 플라스틱 관을 사용하는 거지.”

그 말에, 강태준은 의아함을 느꼈다.

“플라스틱 관이요? 그런 걸로 시공이 가능합니까?”

“가능하고 말고. 요새 플라스틱 관은 꽤 물건이 잘 나오거든. 부식성도 낮고 유연성도 높아서 곡률이 적은 곡선 구간에선 관 연결 부속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시공하기 쉽다네.”

“그건 그렇지만 무게가 가벼워서 뜰 것 같은데요?”

“그거야 부력 방지용 배수 조치를 별도로 하면 되지. 아무리 그래도 석면 파이프나 철 가격보다는 훨씬 쌀 테니, 500만 달러 이상은 세이브할 수 있을걸?”

그렇게 설계를 바꾸어 보니 최종적으로 800만 달러 정도는 세이브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추가적인 비용 격차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더는 안 되겠군. 현장의 박형관 본부장에게 전해. 리비아에 추가 인하는 쉽지 않다고 통보하라고 말이야.”

“예? 그러면 입찰은 아주 포기하는 겁니까?”

“아니. 현실적으로 이보다 낮은 단가로 공사가 가능할 리는 없어. 리비아도 바보가 아니라면 판단능력이란 게 있지 않겠나. 일단 시간을 끌어 보면 어떻게 답이 나오겠지.”

기본에서 옵션을 더해 가며 단가를 올리는 것이 해외 건설사의 상투적인 수법 아닌가. 설계비와 부대 비용을 고려할 때, 프랑스 업체가 한국보다 더 싼 가격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강태준이 절대 불가 입장으로 나오자 리비아 측도 당황했다. 애초에 양자를 경쟁시켜 더 좋은 조건을 가져가려는 게 목적이었을 뿐 처음부터 결정된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프랑스 대외비를 이유로 단가 산정 근거를 명확히 내놓지 않자, 의구심이 생긴 리비아 측에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입찰을 계속 연기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입찰 일정이 늦어지자 이번에는 프랑스 업체에서 손을 내밀었다.

뒤에서 협상을 하자고 거래를 청한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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