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50화 (350/361)

350화 중동 진출

“아는 사람이십니까?”

“예. 들어 본 적 있습니다. 마스크가 인상이 좋아서 기억하거든요.”

마치 조각 같은 몸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 최고의 액션 스타가 아닌가. 레니는 크게 반색했다.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네요. 보시는 것처럼, 외모가 개성 있고 호감형 아닙니까? 캐릭터도 확실하고요.”

“어후, 근육이 장난 아니네요. 사람이 밥 먹고 운동만 했나,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갈라진 등 근육을 신기한 듯 살펴보는 복만이의 행동에 광필이가 인상을 썼다.

“좀 과한데, 솔직히 부담스러운 피지컬이군요.”

“하하. 이 정도면 양호한 거죠. 마초적인 게 딱 미국인들이 좋아할 상이거든요.”

“그래요?”

“영어를 다소 못하는 건 아쉽지만, 이 독보적인 개성만으로도 스타성이 있지 않습니까?”

레니는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아무래도 방송인이다 보니 잠재력을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이다.

강태준 역시 차세대 슈퍼 스타를 캐스팅하고 싶다는 데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저야 표정 연기만 제대로 되면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대신 비주얼이 좀 아깝긴 하네요. 임팩트 하나는 엄청난데 그냥 게스트로 소진하기에는 좀 아깝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그렇다고 헐벗고 나올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가능한 방법을 찾아봐야죠. 차라리 피지컬을 활용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레니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예를 들면, 직접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해서 음식 재료를 수집하는 겁니다. 미션을 주고, 그걸 달성하면 재료를 하나씩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오, 원시인처럼 말입니까? 그건 제법 참신하군요.”

“몸이 경쟁력인데 몸을 많이 쓰는 배역으로 어필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맛 표현이야 애드립 잘하는 사람들 데려다 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호오, 느낌이 옵니다. 뭔가 되어 가는 분위기인데요? 한번 윗선에 건의해 보지요.”

근육빵빵 마초남이 앞치마를 입고 요리에 도전한다는 컨셉이라, 혹시 망가지기를 좀 주저할까 싶어 걸리긴 했지만, 소속사에 연락을 넣어 보니 캐스팅은 의외로 수월했다.

아널드 입장에서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니 단발성 이슈몰이로도 괜찮겠다 싶었던 것이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아널드 역시 배역에 대한 선입견이 별로 없었는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백경에서 제작한 첫 리얼리티 쇼 촬영이 시작되었다.

셰프 앤 바바리안(chef and babarian)이란 제목이었다. 헤라클레스, 스파르타쿠스 등 육체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맡은 만큼, 헐크처럼 흥분하면 옷을 찢어 버리는 기믹을 넣었다.

그렇게 바바리안 컨셉으로 시작한 첫 화부터 엄청난 반향을 얻은 파일럿은 연작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발리 근처의 작은 섬에서 촬영된 쇼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펼치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불고기, 튀김 만두, 잡채, 치킨, 김치, 파전 등등 이국적인 음식들과 조각 같은 육체미 컨셉의 마초남의 조합이 어우러져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인기가 너무 높았던 것도 문제였다.

인지도 상승과 함께 아널드의 몸값이 폭풍으로 치솟아 버린 것이다. 거기다 [펌핑 머슬]이 역주행을 찍으며 여기저기 러브콜이 쏟아지는 바람에, 연작으로 기획된 프로그램까지 빠그라져 버린 것이다.

“아니, 고작 3달 하고 땡이라니. 이건 좀 아니지 그래. 한 쿨만 더 찍어 주면 안 되나.”

“그래도 대체할 사람을 찾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나마 처음 찍을 때 좀 많이 찍어 놔서 다행이네요.”

“거참, 어디서 그런 캐릭터를 찾지?”

시청률이 올라 한창 물이 올랐던 레니로서는 김이 샐 수밖에 없는 노릇. 서둘러 섭외를 시도했지만 대역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키 190에 가까운 몸에 거대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었던 것.

캐스팅할 면면들을 확인해 본 복만이가 혀를 쯧쯧거렸다.

“어후, 이게 어떻게 비주얼이 죄다 다 이 모양입니까. 차라리 내가 낫겠네.”

“그거야 다들 지원자가 보디빌더 출신이니 그렇지. 그리고 그걸 네가 말하니까 좀 그렇다야.”

“제가 어때서 저야 순정 마초 아닙니까. 이 정도 뱃살은 애교죠.”

“자뻑하기는. 네가 무슨 마초냐? 돼지 시키지.”

광필이의 핀잔에도 복만이는 전혀 상처받은 기색이 아니었다.

“어허, 루저는 그 입 다물라.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요.”

“뭐야 인마? 이게 진짜, 내가 왕년에 너보다 한 다스는 더 만나 봤어.”

“풋, 그러면 뭐 합니까? 지금 홀아비 신세인데.”

“뭐야? 이 자식이?”

“형도 이제 진지하게 국제결혼을 생각해 볼 나이라고요. 훌렁 벗겨지기 전에 쇼부 보셔야지. 아시겠지만 탈모는 유전입니다, 유전!”

“야. 재수 없는 고만해라. 인마!”

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오재갑이 한심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들같이 싸운다니까요. 근데 이렇게 캐스팅이 어려워서야 좀 곤란한데요.”

“솔직히 비슷한 캐릭터로 끌고 가려면 답이 없지.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벌써 시중에 두각을 나타냈을 테니 말이야.”

“하긴 그렇겠네요.”

강태준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레니, 근데 꼭 보디빌더 출신을 고집할 필요가 있습니까? 차라리 다른 컨셉으로 데려오는 건 어떻겠습니까?”

“다른 컨셉이요?”

“예를 들면, 쿵푸 파이터 같은 거?”

“호오? 쿵푸라니.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홍소복이라고 하나 있습니다. 전문 무술학교 출신인데, 영어 실력은 더 나을걸요?”

마침 마누라가 한국인이라서 한국 음식에 대한 이해도 높고 케미도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니는 곧바로 셰프 앤 쿵푸(Chef and Kung-fu)라는 이름의 차기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했다. 당연하겠지만 처음 반응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니, 아널드가 안 나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소시지에 맥주가 없는 꼴 아닌가.”

“그러게 주인공이 없으면 폐지하는 게 맞지, 갑자기 쿵푸라니? 아주 팬더도 같이 내보내지 그래?”

“어, 진짜로 나오는데요?”

“응?”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1화 방송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변했다.

바람 부는 대나무 숲에서 팬더와 함께 등장한 홍소복은 멧돼지를 정권으로 잡고, 죽순을 손날로 잘라내는 등. 그야말로 무술 달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물론 딸려 나온 팬더는 진짜가 아니고 전부 분장으로 대체했다. 제작비 많이 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구로사와 감독이 특촬용으로 쓰려다 처박아 둔 걸 재활용한 것. 촬영장에 구경을 온 구로사와 감독이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뭐, 혼란하다, 혼란해. 아니, 정말 이렇게 쪽팔리는 걸 찍어야 되나?”

“항상 진지한 것만 찍을 수는 없잖아요. 감독님, B급 감성으로 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싼 티 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강태준은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뚱뚱한데 날렵한 무술인은 지금껏 없었던 캐릭터 아닌가. 사실 비만한 체형이라는 페널티도 병원에 갔다가 얻은 부작용이었던 만큼,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강태준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엄청난 반사신경과 곡예에 가까운 화려한 액션 씬 덕에 비판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아널드의 대타로 나온 홍소복이 전임자 못지않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백경그룹이 주관하는 요리 프로그램은 스타 발굴의 산실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당연히 셰프인 안연복과 스폰서인 백경 식품의 인지도도 급상승했고, 그 반대로 시장에서 아지노모토의 판매량은 급감했다.

유명인들을 앞세운 CF가 대히트를 친 까닭.

놀란 아지노모토 사에서도 뒤늦게 종합 조미료를 출시해 반격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미주 지역은 물론, 아시아권에서까지 홍보 효과가 퍼지자 주요 도시에서의 점유율 격차가 초박빙의 수준까지 줄어들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광필이는 싱글벙글이었다.

“조미료 판매량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네요. 이 추세면 초기 투자비는 금방 회수되겠습니다.”

“다음에는 액상으로 만들어 보자고. 그보다, 한국 쪽은 요새 분위기가 어떤가?”

“뭐, 이번에는 중동 건설 쪽이 핫하죠. 다들 외국에 가고 싶다고 야단법석이니까요.”

같은 시각, 한국은 중동 진출 붐으로 건설업 열기가 뜨거워져 있었다. 알룰라-카이바 고속도 공사를 시작으로 해외 건설이 활기를 띠며 부도 직전에 놓였던 경제에도 활력이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아그룹, 신 도하 호텔 건설, 수주 성공]

[미래그룹, 바레인, 수리조선소 공사 완공, 역대 최대의 프로젝트 성공!]

겨우 오일 쇼크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정부였지만, 외환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매일같이 훈령을 보내서 입찰 성공을 독려했다.

정부가 대놓고 밀어주는 만큼, 월남 특수로 성장한 백경그룹 역시 중동 진출에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거 월남처럼 돈 냄새가 풀풀 나는데요.”

“그러게. 우리도 이제 슬슬 추가적으로 해외 공사를 타진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우리도 해외 진출에 지분이 없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해외 건설 지원을 위해 출범한 해외 건설 주식회사(KOCC)는 해외 건설 촉진법에 의해 수권자본금 35억 원, 불입자본금 20억 원으로 설립된 회사였다.

설립을 위해 총 30개 건설사가 각기 6,000만 원 이상을 출자했는데, KOCC는 정부의 신용보증을 받은 다음 5,000만 달러 이상의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건별로 회원사에 하청을 주어 수익을 배분했다.

그전의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실적이 없어 지불 보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렇게 정부가 직접 나서서 판을 조성한 것은 신뢰를 얻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건설사를 낀 백경그룹도 거액의 출자금을 내고 편승한 회원사 가운데 하나였지만, 아직은 간만 볼 뿐, 실제로 진행한 공사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 실탄도 좀 챙기고, 숨통이 트였으니 우리도 슬슬 발동을 걸어 봐야지.”

“그럼 이번 목표는 어딥니까. 사우디? 쿠웨이트?”

“전 이란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친서방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자유롭다는군요.”

“솔직히 팔라비는 좀 그렇고. 여기가 좋겠어.”

강태준이 지도 위의 한 나라를 쿡 찍었다.

“아니, 설마 리비아요?”

“에이, 형님. 거기는 관광비자도 없는 나라 아닙니까?”

“앞으로 꽤나 크게 될 거야. 미국과 이집트 간 휴전 협상이 거의 완결 단계 아닌가. 그게 타결되면 카다피가 이집트 업체들을 죄다 내쫓을 게 분명해.”

맥거번 취임 직후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중동 전쟁의 후속 처리였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친소 국가들이 지뢰밭처럼 포진된 아랍권의 적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스라엘의 숨통을 붙여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미 정서가 강한 아랍권은 체질적으로 유대인과의 양립이 불가능하다.

민족 구성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이 다른 이스라엘이 옆동네서 나대는 꼴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범아랍주의를 표방하는 카다피라면 그렇게 나오고도 남겠네요. 중동 건설 쪽 비중이 큰 이집트 업체들이 빠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백이 생기겠군요.”

“근데 정말 사다트가 미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일까요? 욕을 먹을 게 뻔한데.”

“이집트 입장에서는 실속 없는 맹주 놀음을 하면서 강대국과 척을 지는 것보다는 체면만 차리고 이권을 챙기는 게 나을 테니까.”

아랍권을 대표해 대전쟁을 치른 이집트는 4전 만에 이스라엘과의 설욕전에 성공하고 대승을 거두었지만, 출혈에 비해 아랍권의 전비 지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현실주의자인 사다트는 미국과 계속 척을 지는 것보다 그냥 적당히 빠질 테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강태준이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리비아 대수로 공사!

유전 탐색 중 우연히 찾아낸 35조 톤의 지하수를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식수와 공업용수로 공급하고, 이 물로 농업을 진흥해 관개 공사를 펼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태반이 사막 지대인 리비아에서 파이프관을 매설해 해안 지역까지 물을 송수하려면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재가 필요한 법.

추산할 경우, 총공사비는 무려 250억 달러. 1, 2차 공사비만 해도 100억 달러가 넘는 거액이다.

사실 강태준이 굳이 포항유전이니 뭐니 하며 국내 유전 개발의 가능성에 설레발을 쳤던 정부의 뻘짓에 어울려 준 이유가 여기 있었다.

‘민심을 얻으려면 반대파가 많은 벵가지 지역부터 끌어들일 게 분명하니까.’

그간 온천공 팀을 유지하는 데 꼬라박았던 투자비를 회수할 때가 된 것이다.

“박형관 상무를 불러오게.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할 테니.”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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