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맥거번 리포트
당연히 이억수는 거품을 물며 날뛰었다.
“아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여기서 벌금을 추가로 때려?”
“아무래도 개기지 말라는 표시인 거 같습니다.”
“이 자식이 그걸 누가 몰라? 대책을 찾아야지, 대책을!! 또 뭐야? 이건!”
“형님. 저쪽에서 잘 생각하라는군요. 억류 기간 동안에 추가로 항구 임대료가 붙을 거라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가 된 이억수는 부들부들 떨었다. 어획물은 몰수당했고, 불법 조업 혐의도 모자라 추가 벌금까지.
정말 눈물 나게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로서는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엇다.
사실 그가 첫 사례였던 것이다.
일종의 시범 케이스로 괘씸죄가 추가된 것이다. 반대로 강태준으로서는 매우 고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발해원양 놈들, 아주 꼬시군요.”
“그 자식 계속 나대다가 그럴 줄 알았지 그래.”
“벌금이 82만 불까지 늘어났다고 하니 밤잠도 못 잘 겁니다.”
간신히 돈을 주고 풀려나긴 했지만 위력은 확실했다. 발해원양이 조져지는 꼴을 본 다른 조업선들도 죄다 몸을 사렸던 것이다. 그렇게 배타적 경제수역(EEZ) 발표 후, 북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56척 가운데 최종적으로 조업을 허가받은 건 꼴랑 6척.
나머지는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 전부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전선 조치를 단행해야 했다.
일명 도너츠 해역이라 불린 캄차카-베링해에 걸친 황금어장이 통으로 소실된 버린 셈. 하지만 오재갑도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했다.
“표정이 왜 그러나?”
“발해가 당하는 꼴을 보니 쌤통이긴 한데 기분이 영 찝찝해서요.”
“뭐가?”
“세상에 국가가 하는 짓이 영 깡패짓이나 다를 게 없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뭐. 세상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겉으로는 젠체해도 원래 국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정당화되는 게 국제관계 아니겠어?”
그러자 광필이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뭘 그런 거 갖고. 차라리 지구평화를 걱정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겠어. 이억수 놈이 망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 아무튼 형님, 정말 선견지명이 대단하십니다. 세상에 거기서 뉴질랜드 해역만 쏙 빠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 그쪽도 하고 싶은데 사정상 당장 못 하는 거지.”
양의 탈을 쓴 열강들은 대놓고 가면을 벗어던졌지만, 뉴질랜드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국제법을 무시할 만큼 강대국이 아니다 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확정은 아니니 그래도 아마 최소 10년은 우려먹을 수 있겠지.’
이미 주요국들이 동참하긴 했지만 EEZ가 정식으로 전 세계 표준이라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EEZ의 전반적인 흐름을 소상히 아는 강태준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북태평양에서 자유 조업이 가능한 곳은 얼마 안 남은 공해 영역뿐.
그마저도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연안해역을 거치지 않고는 들어설 수 없다.
당연히 미국은 통행세를 내라는 둥, 자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둥, 온갖 갑질을 부리며 조업에 훼방을 놓았으니 실적을 내려 해도 낼 수가 없다.
그렇게 조업 실적이 나빠진 발해원양이 주춤하는 사이, 백경수산은 백경건설과 태동 사업부를 합병하며 회사의 덩치를 키웠다.
그렇게 되자 애꿎은 북해도 근방 어민들은 때아닌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몸살을 앓았다. 북태평양 공해를 빼앗긴 조업선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연근해어업밖에 없었다. 이미 뉴질랜드와 이란 근방은 강태준이 꽉 잡고 있으니, 하는 수 없이 북해도 쪽으로 우르르 몰려간 것이다.
해역을 두고 양 선단이 양옆으로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대량의 불청객을 맞이하게 된 북해도 연안 어민들로서는 몹시 달갑잖았지만, 회사의 사활이 걸린 한국 업체들도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어장만 도착한 양측은 끊임없이 기 싸움을 벌였다.
“이런 제길. 바퀴벌레도 아니고, 왜 이쪽으로 밀려오는 건가. 니네 나라로 가!”
“허 거참, 성질 하고는. 누가 좀생이들 아니랄까 봐, 그리 깐깐하게 구나.”
“뭐야?”
“거, 같이 좀 먹고 삽시다. 어이, 거기서 비키슈. 사고 나면 우들도 모릅니다.”
“어어, 이 자식들이 아주 돌았나? 안 멈춰! 이 개자식들…….”
“변침, 변침하라!!”
쌍끌이 어선들은 물러서지 않고 한번 그어놓은 예망 코스대로 밀어붙였다. 기겁한 북해도 어선들이 몸을 피했다. 북해도 어민들 역시 단결력 하나는 어디 내놔도 손색없었지만, 충돌을 각오하고 육탄돌격을 하는 배들과 정면으로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50년대와 반대로 한국 어선들은 이제 노후화된 일본 어선에 비해 덩치도 크고, 조업 능력도 월등했다. 거기에 워낙 떼거리로 몰려온 터라 쪽수에서도 밀렸던 것이다.
북해도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자 일본에서는 뒤늦게 EEZ를 선포했고,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통상 보복으로 다시 이만승 라인을 꺼내 들며 양국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그전에 맺었던 한일 어업 협약은 모호한 감이 있었기에, 양측의 정부에서는 자율 규제를 이유로 경비정을 보내 위력시위를 하며 으르렁거렸다. 제주도 근방에 일본 순시선과 경비정의 충돌이 잦아지자 피를 보는 건 어민들이었다.
[북해도 어장은 공해가 아니라 영해다. 日, 어업권 침탈 좌시하지 않아.]
[제주 해역 5톤 싹쓸이. 불법 조업 일본 어선 나포!]
하루가 멀다 하고 조업 사고가 기사로 올라오는 통에 정신이 사나울 정도였다. 신문을 보던 광필이가 투덜거렸다.
“또 개판 오 분 전이구먼. 기 싸움도 한두 번이지. 매번 왜 이러나?”
“물타기 하는 거지. 요새 선거가 얼마 안 남았잖나. 일본에서도 사회당 문제로 난리니, 이참에 관심을 돌리겠다는 뜻 아니겠나?”
“세상 참 험하네요. 다들 양보라는 게 없지 그래. 미국놈들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갑자기 EEZ를 선포하지 않나. 이제는 갑자기 건강식을 먹겠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건강을 챙겼다고.”
“뭐긴 뭐겠나. 맥거번 리포트 때문이지. 대통령이 소신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따라가는 것 말고는 별수 있나?”
“그래도 1절만 해야지. 이건 너무하잖습니까? 늘상 하던 대로 햄버거나 처먹지,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규제를 하겠다고.”
“허허. 이번에는 그게 아니야. 사실 늦은 감이 있지 않나. 미국에서는 인구의 1/4이 비만에 성인병 환자가 되었다고 하니 그쪽도 심각하게 생각할 법도 하지.”
최창렬이 점잖게 핀잔을 주었다. 1960년대에는 300억 달러밖에 들지 않던 의료비가 1975년에는 1,200달러가 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미국 식약청(FDA)에서 세계 내로라하는 전문가를 초청해 대대적인 역학 조사를 벌였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맥거번 리포트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근래의 성인병은 모두 너무 잘 먹어서 생기는 병으로 이걸 바로잡으려면 식습관을 바꿔 다시 1세기 전의 건강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맥거번은 대통령 당선 전부터 직접 역학 조사를 지휘한 데다 애초부터 주된 영양학 쪽에 관심이 매우 컸던 만큼, 미국인의 식생활 개선을 통한 건강 상태 회복을 정권의 핵심 안건으로 밀어붙였다.
-식사에는 양보다 질이 중요합니다. 이제 육류와 유제품, 청량음료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정크푸드를 퇴출하고, 채소와 곡물 위주의 식단을 편성합시다.
연방 정부에서는 건강식품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개혁은 과감했다.
60년대 저소득층의 식료품 구입을 지원하기 만든 푸드 스탬프 제도를 손보고, 각 주에서 학교 급식 프로그램이 정상 가동될 수 있도록 지원 기금을 편성한 것이다. 거기에 학교별 로컬푸드 구매 촉진을 위한 금액 또한 지원하면서 건강한 음식으로 급식을 바꾸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취지는 좋았을지 몰라도, 문제는 식품 산업에 대한 영향이었다. 당장 가공식품류와 청량음료 등을 만드는 식품업계의 타격이 매우 컸던 것이다.
수익 급감에 위기감을 느낀 식품업계는 극렬하게 저항했다.
“국가가 누가 뭘 먹든 무슨 상관인가. 그건 내 자유지!”
“콜라를 먹지 말자니,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빨갱이나 할 법한 발상 아닌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가 먹으라고 했나? 다 큰 성인이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지. 게다가 우리가 주에 내는 세금이 얼만데, 너무 말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네추럴이라니. 이 세상에 진짜 네추럴이 어디 있나? 그렇게 따지면 석기시대 사람은 더 오래 살았어야지.”
배알이 꼴린 콜라 회사에서는 네추럴 코크라는 이름의 제품까지 출시해 조롱하기까지 했고, 위기감을 느낀 식품업체들은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로비에 들어갔다.
푸드 스탬프에 목메는 하루살이 족들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했다.
“햄버거! 씨발, 우리가 초식동물이냐? 난 이런 풀떼기 말고 햄버거가 먹고 싶어!”
“가공식품을 먹지 말라니. 누구는 먹고 싶어서 먹나. 일하느라 조리할 시간도 없는데, 그럼 우리는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냐?”
“신선식품을 누가 안 먹고 싶나. 근데 우리 집엔 냉장고도 없다고!”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푸드 스탬프 제도에서 최소 30프로 이상을 신선식품 구입만 가능하다 한 부가 조항이었다. 정부의 의도는 순수했지만 원래 미국인들은 체질적으로 강제하는 걸 몹시 싫어하는 만큼, 옳고 그름을 떠나 반발은 매우 극렬했다.
급기야 저소득층 중 일부가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한 위헌 소송까지 제기하는 등 대대적인 저항에 나섰다. 폭동이 날 기미까지 보이자, 연방 정부에서는 서둘러 해당 조항을 삭제하고 진화에 나섰지만 파급력은 여전했다.
해당 리포트에 충격을 받은 유럽에서도 자연식을 추구하자는 네추럴 푸드 붐이 일었던 것이다. 그중 리포트에서 중점 위해 요소로 본 것은 다섯 가지 백색 식품으로, 흰설탕과 흰소금, 흰밀가루, 흰화학조미료, 흰쌀이었다.
당연히 식품 사업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백경 역시 타격을 안 받을 수는 없었다.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백경그룹의 캐시카우였던 MSG와 설탕 수입이 반 토막이 났으니, 재무를 맡은 광필이 입장에서는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여튼 간에 산 넘어 산입니다요.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하나가 문제니.”
“또 또 툴툴대지 말고, 해결책을 찾을 생각을 해야지. 자, 안 이사. 그거 가져왔어요?”
“예. 여기 있습니다.”
안연복이 강태준에게 가져온 것은 뭔가를 빻아서 말린 듯한 분말이었다.
킁킁 냄새를 맡아 본 광필이가 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건 뭡니까? 빵가루는 아닌 거 같고, 뭔가 생선 냄새가 나는데. 어분 같은 겁니까?”
“천연 조미료야. 내장을 뺀 멸치를 볶은 다음 다시마랑 표고버섯, 새우 우린 물을 섞어 동결건조한 거지.”
“그게 현재 파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먹어 보면 알겠지. 한 상 갖다 주게.”
강태준은 안연복을 시켜 간단하게 된장찌개를 끓여 보도록 했다. 잠시 후 된장찌개가 끓자, 조심스럽게 국물맛을 본 광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찹찹거렸다.
“어때?”
“오, 뭔가 깔끔한 게 고급스러운 맛이 나는데요? 그냥 MSG보다 좀 뭐랄까, 업그레이드된 맛인 것 같습니다.”
호의적인 반응에 노기철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게 핵산계 조미료를 아미노산계 조미료와 혼합해서 그렇지요. 마른 표고버섯, 다시마, 새우를 넣고 건새우와 무를 넣고 졸인 다음 가루화하는 거죠. 감칠맛도 사실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거 아세요?”
“오 그렇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감칠맛을 내는 성분은 MSG, IMP, GMP 3종류나 됩니다. 예를 들면 글루탐산(MSG)은 다시마, 김을 비롯한 해조류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성분입니다. 반대로 이노신산(IMP)은 멸치나 쇠고기 같은 생선과 육류에 구아닐산(GMP)은 말린 버섯의 향을 떠올리면 됩니다요. 글루탐산 용액에 IMP나 GMP를 용해시키면 맛의 시너지 효과가 크거든요…… 근데 여러분 듣고 있는 거죠?”
“음, 잘 듣고 있어요. 계속 말씀하세요.”
제 말에 취한 노기철이 떠들건 말건, 이미 된장찌개 맛에 취한 사람들은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