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돌아와라, 부산항에
잠시 후, 경비정에서 브리지에서 무사히 탈출하게 되었음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치직…… 여기는 코스트 가드. 탈출을 축하한다. 이제부터는 본 경비정이 더치 하버까지 인도하겠다.”
“감사하다.”
코스트 가드의 호의를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엔진 슬로 어해드. 코스 정침하고 코스타호를 따라간다. 당직은 철저히 하도록 해라. 30마일 단위로 보고해라.”
“예. 선장님.”
강태준이 기관장에게 치하를 건넸다.
“기관장 수고했소. 덕분에 무사통과했으니 절반 이상은 그쪽 공입니다.”
“아닙니다. 선장님께서 잘 인도해 주신 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 항해사, 백제교역 본사로 전보 부치고. 기지장에게 초사 상태가 어떤지 바로 확인하라고 하게.”
“옙.”
강태준은 그제야 식은땀에 등이 축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풍이 오기 전에 무사히 최악의 상황을 빠져나간 것에 대한 안도감이랄까.
자정이 넘었을 무렵, 강태준은 항구에 도착한 강태준은 초사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서 봉합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서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가족들은 어떻게 했나?”
“급행 편을 보내서 다들 이쪽으로 오게 했습니다.”
“잘했네.”
백제호 선원들은 하선 후,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건강검진을 받았다. 배 상태를 최종 점검을 하는 사이, 항공편을 통해 도착한 가족들이 병원을 찾았다.
“오빠! 오빠!!”
“아니, 미선아!!”
동상 치료를 받고 있던 김 선장이 얼떨떨한 모습으로 아내를 맞았다.
김 선장의 품에 안기며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아내의 모습에, 선장이 민망한 듯 말했다.
“아이참, 사람들이 보는데. 선장 사모 체면이 있지.”
“죽는 줄 알았다구.”
“어이구, 울보. 무슨 큰일이 있다고. 내가 불사조라고 하지 않았나.”
무심한 듯 토닥거리면서도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선장이었다. 딸을 안은 채로 부둥켜안은 항해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의 울먹거리는 그 광경에 강태준은 코끝이 찡했다.
항공편으로 달려온 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눈물의 상봉이 끝나자, 정신을 차린 김 선장이 그 자리에서 자리를 잡았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회장님. 절부터 받으십시오.”
“아니. 무슨.”
말릴 새도 없이 따라 큰절을 하는 선원들에 강태준이 민망해했지만, 선원들은 그걸로 부족했는지 연신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 빚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회장님이 안 계셨으면 저희 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참. 다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러면서도 강태준은 내심 뿌듯했다. 쇄빙선을 빌리는 대가로 넘긴 비용만 80만 불이 넘었지만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속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돈 벌길 잘했군. 잘했네.”
“저도 뭔가 울컥하네요.”
광필이를 돌아보니, 한참을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부어 있었다. 물기가 남은 눈가를 본 강태준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야. 너 우냐? 갱년기도 아닌게?”
“아니 형, 여기서 갱년기가 왜 나옵니까? 사람이 무드 없이.”
“인마. 장가도 안 갔는데 벌써 조절 안 되면 큰일이야. 호르몬 문제가…….”
“아, 형님!”
띠띠띠~~~~
그때, 시끄럽게 울려 대는 전화기 소리에 투닥거리던 둘은 말을 멈췄다.
춘삼이가 전화를 받기 위해 들어가더니 잠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위성통제실에서 온 연락이라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받기엔 좀…….”
“아, 내가 받지.”
하지만 잠시 후 전화를 받고 나온 오재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까까진 흐뭇하고 온화했던 얼굴이 무섭도록 침통하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아, 무슨 일이야.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러게. 무슨 일이길래 그래?”
재촉하는 광필이에 오재갑이 말문이 막힌 듯 신음을 흘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오재갑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 놀라지 마십시오. 방금 전 같은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태동산업 선망선이 침몰했다고 합니다.”
“뭐?”
강태준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침몰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피항 전에 추가 조업을 하다가 태풍을 만났나 봅니다. 교신 상황이 알려졌을 때는 이미 많이 급박했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갑자기 SOS가 뜨더니, 교신이 끊겼다고 합니다.”
백제교역에서 수색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어로 작업을 재개했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전보를 서둘러 확인해 본 강태준은 정신이 매우 아찔해졌다.
맨 앞에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선장은 다름 아닌 양재문이었던 것.
설마 양재문 같은 베테랑이 이런 사고에 휘말릴 줄이야. 강태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생존자들은? 아무도 없나?”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기지와 다시 교신해 보게. 사고 위치부터 확인해 봐.”
강태준은 지체 없이 국장을 불러 해난 구조센터와 연결해 달라고 했다. 뚜뚜 소리와 함께 연결음이 들리자 바로 보이스를 낚아챘다.
“여기는 메릴랜드, 사고는 언제 일어났습니까?”
“지금으로부터 30분 전입니다.”
기지에 ETA까지 말해 놨다는 건 별로 멀지 않다는 소리. 강태준이 시간대를 가늠했다.
“구명보트가 탈출했다면, 아직 구조할 시간이 있겠군요. 레이더로 본선 사고 위치 컨택 가능합니까?”
“옙, 가능은 합니다.”
“바로 알려 주십시오. 우리도 돕겠습니다.”
그 사이, 수면 위에서는 엄청난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같은 시각 태동 3호에서 탈출한 선원들은 모터보트에 의지한 채 실낱같은 희망에 기댄 채 표류하고 있었다.
우르르응~!
“날씨가 아주 미쳤군.”
눈보라가 가득한 바다 위는 지옥의 살풍경이나 다름없다. 산처럼 가파르게 변한 파도가 휘몰아치자 얼어붙은 물방울이 면도날처럼 볼을 때렸다.
바람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휘날리자, 도저히 배를 통제할 수 없었다.
보트에 탄 선원들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신이시여! 이제 우리 다 죽나 봅니다.”
“모두 정신 차리게. 우린 안 죽어! 용기를 잃지 마라!”
기도를 읊조리는 선원들은 절박했다. 로란도 위치가 튀는 상황에 구조대가 올 확률은 희박했다. 그렇게 보트가 이리저리 표류하는 사이, 같이 탄 구조 보트 하나가 파도에 삼켜졌다.
“해인아!!”
“저러다 다 죽겠어. 끌어올리게!”
애타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악을 썼지만 송규익은 도리어 차분해졌다. 이미 경험이 많은 송규익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여기가 내 묏자리인가?’
망망대해. 도저히 빠져나갈 곳이 없다.
절망감이 엄습해 오는 그때, 어디선가 타타타타 소리가 들렸다.
-여기 생존자! 생존자 발견!
놀랍게도 구조 헬기가 유빙을 뚫고 나타난 것이다. 곧이어 전속으로 달려온 쇄빙선의 등장에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생존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자. 대기 중이던 선원들이 서둘러 물에 빠졌다가 건져 낸 녀석을 먼저 주물러 주었다.
여전히 추운지 덜덜 떠는 송규익에게 모포를 건넨 강태준이 물었다.
“송 이사,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유빙을 피하려 급속 로링을 하다가 갑판에 물이 차 버려서. 덕분에 기관실까지 물이 스며들었습니다.”
송규익은 파랗게 질린 입술로 또박또박 말했다. 무려 6,500톤급, 아무리 현이 높은 대형선이라지만 옆으로 선 배에 물이 당기니, 갑자기 흘러들어온 해수가 어창과 기관실로 흘러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그럼 양 선장님께서는?”
“다들 내리기 전까진 절대로 내리지 않겠다고 하셔서, 마지막 하선을 확인하시고 배와 운명을 같이하셨습니다.”
대략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거 같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광경에 강태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시겠습니까?”
“일단 철수하고 나중에 수색을 계속하기로 하자. 안되면 통대구라도 건져야지.”
도저히 이 날씨에서는 구조를 속행할 수 없었기에, 강태준도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바다는 고요해졌다. 본선 옆에서 다시금 재수색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플로트나 떠다니는 로프를 건지기는 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사흘 동안 수색 작업을 이어 갔지만 여전히 허탕이었다. 나머지 표류하던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지만, 흔적도 찾지 못한 것은 양재문과 선원 몇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수색이 계속되던 중, 기지에서 교신이 울렸다.
“크로스 가드가 수색 작업을 종료하겠다고 합니다.”
“벌써 말인가?”
더 이상은 의미 없다는 판단이었지만 기지장이 통사정을 했다.
“남은 가족들이 애원을 합니다. 하루만 더 연장해 주십시오. 아니, 반나절만 더 가능하겠습니까?”
“알았네.”
이미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비통함을 아는 만큼, 강태준은 수색을 조금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아무 효과는 없었다. 그렇게 이틀째가 되던 날 강태준은 수색을 포기하고 갑판으로 전원을 집합시켰다. 모두가 뱃전에 일렬로 선 채로 사고 지점을 바라보며 묵념을 올렸다.
‘잘 가십시오. 양 선장님.’
사고 지점에 도착한 채 기적을 울리면서 배는 조용하게 주위를 선회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 이상은 강태준도 어쩔 수 없었다. 기지장에게는 수색의 종료를 보고하고 유족에게도 위로의 전보를 보냈다. 기지로 도착하니 분위기는 침통했다.
“이거 태동산업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랍니다.”
“사장이 연이어 운명하셨으니. 허…… 참. 무슨 마가 낀 것도 아니고.”
태동산업으로서는 배를 잃은 것도 모자라 사장까지 잃었으니, 경영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녹록지 않게 되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사진들이 동반 사퇴하면서 사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겠지. 형수님은 좀 어떠신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례도 조촐히 치르겠다고 조문도 거절하셨다는군요.”
“그래. 아무래도 양 사장님 댁을 찾아가 봐야겠군.”
강태준은 주소를 들고 양재문의 아내가 사는 집 주소를 찾아 나섰다.
집 안에서는 쇼팽의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건반을 누르는 음이 너무 슬프게 들려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강태준입니다.”
“삼촌?”
“아니, 성은이냐?”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아이 하나가 맨발로 뛰쳐나왔다. 강태준을 맞이해 준 것은 양 선장의 딸이었다. 그간 자주 선물을 주고받았기에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삼촌!!!”
양재문의 딸은 강태준을 부르며 목 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그 뒤로 수척해 보이는 양재문의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푸석해 보였지만, 표정만은 의연했다. 강태준이 자리를 잡고 앉아 울먹이는 모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늦어서…….”
“그러지 마세요. 강 회장님은 최선을 다하셨지요. 사실 남편이 자주 말했어요. 우리 강 사장 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사실 오일 쇼크 이후로 하루도 숙면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양재문은 경영 문제로 밤새 고통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마지막 항차에 출항을 나가기 전에는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수술까지 받았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무리하게 조업을 나간 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숙연해진 강태준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세상에, 그 정도까지 힘드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그이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바다 사나이는 바다에서 죽어야 한다고 본인 입으로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니 마지막에 후회는…… 없겠죠.”
덤덤하게 말을 잇던 부인이 끝내 참았던 눈물을 훔치며 끅끅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저히 감정이 복받쳐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강태준은 그저 위로해 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참을 울고 진정한 부인이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그쪽에게 남긴 유언장이에요.”
강태준이 조용히 봉투를 뜯어 보니 고이 접힌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