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해난 사고
[백경 급식 센터 불우이웃 500인 식사 지원, 쌀 100포대 쾌척!]
[백경그룹, 무료 급식 배급 및 봉사.]
“백경이 역시 좋은 회사구먼. 업계 선도 회사라 그런지 뭔가 달라.”
“요새 페이도 꽤 좋다지? 부럽구먼.”
운송 사업과 관련된 미담이 계속 발표되자 운송을 맡은 기사들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고객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사방으로부터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칭찬을 받으니 절로 행동거지가 달라진 것이다.
“뭐 약 먹었나. 왜 이래?”
“이야,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군요.”
회장인 강태준이 직접 주도한 교육의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걸핏하면 운임을 속이는 운전사들, 사소한 일로 쌈박질을 일삼는 싸움꾼들, 술주정뱅이들로 바글바글했던 회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변화였다. 동시에 용화루 쪽에서도 장례나 제사, 회식용 요리 주문이 크게 늘었다.
사업 정상화에 힘입어 6개월 만에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실적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3분기 매출은 44.2% 증가했습니다.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서 56억 원, 순이익은 62% 증가한 31억 원입니다.”
“이대로면 그냥 빚 조기 상환이 어렵지 않겠는데?”
“그러게요. 생각보다 경영 개선 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가장 난제였던 기존 직원들의 퇴직금 문제도 생각 이상으로 스무스하게 처리되었다. 기존의 인력은 그대로 두되, 신규 입사자에게는 새 규정을 적용해 규정을 이원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러면 법원에 회사 정리 절차를 조기 종결 신청하는 게 좋겠군.”
“아니 벌써 말입니까?”
“유상증자를 실시해서 정리채무를 상환하면 되지 않나?”
강태준은 국내외 여러 공항들과 연계하여 정기 운송 서비스는 물론 여행 알선업과 국제화물 알선업 등을 통해 사업다각화에 도전할 참이었던 것이다.
“고속도로 개통 후 육로 운송량이 큰 폭으로 증폭되고 있는 중인 만큼 새마을 운동 붐에 편승해야 합니다. 특히 시멘트 전담 운송 계약을 체결하려면 지금 보유하는 차량 대수로는 어림없지요.”
“뭐 그렇다면야, 그러면 이왕 투자할 거면 렌트카 쪽도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최창렬 사장의 제안에 강태준은 귀를 쫑긋했다.
“렌트카 사업 말씀입니까?”
“아직 렌트카 업체가 없지 않나. 아시아에 임대 대행사를 설립한다면 꽤 괜찮은 벌이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사람들 입장에서는 절세와 경비 처리도 쉽고 월 이용료도 적어서 차량 유지 부담도 적지.”
“그것도 괜찮은 생각인데요. 차량을 구매하기에는 많이 비싸니, 이미지를 좋게 가져가면 충성 고객도 확보할 수 있고요.”
일본 중앙자공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후 백경의 부품 제조 능력은 큰 폭으로 발전했다. 특히 샤프트와 볼 베어링, 반도체 사업을 통해 확보한 서스펜션 제조 기술은 볼브 사에 납품할 정도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솔직히 우리도 엔진 빼고 어지간한 부품은 만들고 있으니, 이제 슬슬 완성차에 도전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차근차근 국산화 부품 비율을 높이면서 시장에서 일종의 교두보로 삼아 보는 게 어떤가 해. 우리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향후 소비자들의 구매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니 말이야.”
“하하. 욕심이 많으시군요. 그래도 완성차 시장이라. 도전이 쉽지 않겠는걸요.”
“내 오랜 꿈이지. 그래. 언제까지나 서플라이 체인 역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은퇴 전에 공장 가동하는 것 정도는 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소망일세.”
최창렬은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자동차 사업이라는 것은 사실 종합금융상품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파생되는 사업도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렌탈 업체와 중고차, 판매, 자동차 리스를 위한 할부금융, 차량정비업, 보험까지. 전부 한 묶음으로 팔 수 있는 것이다.
“뭐. 그렇다면야. 허가부터 받아 보는 게 우선이겠네요. 조만간 우아동 여명통운 마트 내 예약소를 설치할 테니, 한번 진행해 보십시오. 이번에 미쓰시오에서 신규 트럭이 오면 그때 얼마나 배정할지 생각을 해 보지요.”
“자네 그거 정말인가? 약속한 거지?”
“대신 이번 일은 사장님이 전적으로 책임지셔야 합니다. 사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은퇴는 꿈도 꾸지 마십쇼.”
“하하 물론일세. 그거야 당연하지. 나만 믿어 주게나.”
급 화색을 띤 최창렬은 말이 바뀔세라 바로 사업 시안을 제출하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춘삼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야 엄청 좋아하네요.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최 사장님이야 차에 진심이신 분 아닌가. 근데 이렇게 되면 일이 또 늘어날 텐데, 광필이가 한 소리 하겠군.”
“하하, 그거야 늘상 하는 소리죠. 사실은 누구보다 열심히인 분 아니겠습니까? 요새는 일 없으면 오히려 지루해하시더라고요.”
“그런가? 녀석도 참. 솔직하지 못하단 말이야.”
요새 점례랑 다시 핑크빛 무드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터라 강태준으로서는 굳이 일을 늘리는 게 달갑지는 않았다.
‘나도 슬슬 좀 쉬면서 해야지.’
렌트카 허가를 받으면 검수를 핑계로 장기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랄까.
그러나 딴생각도 잠시, 본사에서 비서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회장님, 백제교역에서 큰일이 터졌습니다.”
“무슨 소린가?”
“베링해에서 운행 중인 원양어선이 조난당했다 합니다.”
“뭐라고? 담보물이 상하면 곤란하니 욕심부리지 말고 조기 회항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아무래도 조업 욕심을 내다가 그만…….”
원양어선의 조업 환경이 그리 녹록한 곳은 한 곳도 없지만, 베링해는 최악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한겨울에는 해상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내려가고 연안이 수시로 얼어붙은 곳 아닌가.
베링해역에서 연어 조업을 허가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조업 대상을 킹크랩으로 바꾸어 조업이 늦어졌는데 본전이라도 회수할 욕심에 서두르다 일이 터진 것이다.
“일단, 뒤에 스케줄 취소하고 그쪽부터 가지.”
사고 대책 본부인 부산시 서구로 도착하니 이미 선사인 백제교역에서는 사고대책반을 꾸려 사태 파악과 수습에 나섰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선원 가족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통화하면서 곧 부산 간다고 했는데……. 어떡해요, 우리 명훈이 아빠?”
“아직 결론이 난 것이 아니니 기다려 보세요.”
고작 돌이 지난 아이를 업고 온 기관사의 부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회사 측이 공개한 수색 작업이 어떻게 진척되는지 귀를 기울이며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지사 사고대책반과 부산해양경찰청에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현지 상황을 확인하던 백제교역은 강태준의 방문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면목 없습니다. 회장님, 저희도 잘해 보려다가…….”
“일단 책임은 나중에 묻지요. 거두절미하고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조난 후에 태동산업을 비롯한 인근 선박들이 사고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자사 선박에게 사고 해역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사고 지역은 어딥니까??”
“여기 캄차카해 근방입니다. 수신을 받은 것이 한참 전이라 현재 인근을 지나는 선박 등을 통해 위치를 파악 중인데, 기상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요.”
무선국 전산실에 가 보니 전문 수신음과 확성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먼바다에서 조업 중인 어선들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취합되고 있었지만, 가만히 죽치고 앉아 기다리는 것은 강태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답답해서 미치겠군. 당장 현장에 가 봐야겠어.”
“아니, 지금 베링해까지 날아가시겠다고요? 거기는 지금 직행선이 없어요. 더치 하버까지 최소 세 번은 갈아타야 합니다.”
“일이 터졌는데, 가만히 있어서야 쓰나. 사람이 실종되었는데 시신이라도 수거해야 하지 않겠나?”
돈도 돈이지만 선장으로서의 동료애가 발동했다고 할까.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제일 빠른 항공편을 잡아 더치 하버에 도착하자 이미 현지에서는 사고 수색이 한창이었다. 외교부는 사고 발생 즉시 대책반을 구성해 캐나다 총영사관 등 현지에 있는 공관을 통해 관계 기관에 수색과 선원 구조 작업을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사고 선박으로부터 신호가 새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아직입니다. 사고 해역 인근에서 조업 중인 어선들이 모두 구조 작업에 동참하고 있지만, 바람이 초속 27m가 넘고 파도가 너무 높아서 수색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항공기가 출동하기 어려워 일단 사고 지점의 위치를 파악하기 지난하다는 말이다. 이미 수십 척의 경비정들과 어선들이 수차례나 조업 예정지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허탕을 치고 물러난 춘삼이가 불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거, 설마 이미 침몰한 건 아니겠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비상 위치 지시용 무선 표지 설비(EPIRB)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조난 신호는 발생했지만 수신소에서 접수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러면 아직 생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발생한 신호 자체가 해경에 접수되지 않는 경우는 없으니 조난 신호 발생 기기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희망 사항일 뿐 실제로 확률은 희박하다. 초조해진 강태준은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원양어선을 현장에 급파하고 현장 구조 상황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았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날씨도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해당 어선의 상황은 조난 신호가 아니라 회항한 인근 선박이 선사에 상황을 전달하면서 겨우 알려졌다.
“이틀 전에 원양어선을 마주친 적이 있다고요?”
“예. 멀리서 확인했을 뿐, 정확한 정보가 아닙니다. 일단 육안으로 확인한 정도라는군요.”
위치는 엉뚱하게도 원래 조업 예정이었던 장소로부터 30여 마일이나 비껴간 곳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당장 구조대를 파견해야지 뭐를 망설이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지금 출동하기는 어렵습니다. 날씨도 안 좋고 바람이 더 강해졌습니다. 거기다 지금 그쪽 일대는 유빙이 돌아다녀서 더더욱 쉽게 접근할 수 없어요. 지금 수색 중인 배들도 굉장히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아니 씨발, 하루가 급한데 그럼 바다에서 죽으라는 말이요?”
점잖은 오재갑이 화를 냈을 정도지만 항의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며칠간 북동풍이 불면서 해류를 따라 빙하가 이동하고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다들 안절부절못했다.
“젠장, 이러다가 침몰하면 어쩌려고.”
“열 내지 말고. 그건 차라리 좋은 신호야. 최소한 기능이 아주 망가져서 표류하는 건 아닐 테니까.”
“배는 멀쩡해도 유빙에 빠져서 못 나오고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덩치가 있으니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항구 쪽에 당장 연락해 보게. 혹시 빌릴 배가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천운이 닿았는지 벤 켐프 소속 탐험용 쇄빙선인 메릴랜드 호가 알래스카 놈 항구에 정박해 상업 운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