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38화 (338/361)

338화 구조조정

특히 통운창고 주변에서는 부정하게 빼돌린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매일같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현장 직원들 중에는 매일같이 술을 퍼마시느라 외상값으로만 수백만 원을 빚진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관리직 기능직 할 것 없이 비리로 점철된 회사의 모습에 강태준은 두통이 이는 것을 느꼈다.

“심하군. 이런 회사가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게 기적이구만.”

“정부 지원이 없었으면 진작 망했겠군요. 형님. 이건 가만 놔두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게. 아무래도 대수술이 필요하겠어.”

강태준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기가 직접 운영하기보다 일선의 사장급 인사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직접 메스를 들고 수술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지배 주주에 등극한 강태준은 통운의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출사표를 내걸었다.

“여명통운은 50년 역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만, 우리 백경 그룹이 인수한 이상 회사의 경영 정상화는 필연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오랜 기간 소비자와 함께 구축한 신뢰와 전국적인 물류 인프라가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니, 통운 식구들은 모두 안심하고 영업에 종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영화 이후 첫 정기주총에서 강태준은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는 한편, 곧바로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다. 전체 직원의 42%에 달하는 낙하산들과 관리직 사원들을 단번에 정리해 버린 것이다.

전례없는 규모의 구조조정 발표에 모두 벙찐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막 사람을 자를 수가 있소이까?”

갑작스러운 통보에 일자리를 잃은 임원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다들 한따까리 하는 인맥을 통해 들어온 인간들인 만큼, 이 좋은 일자리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언론은 물론 정·재계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왔고, 본사 앞에서 시위대가 난립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렇게 되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해고된 직원들이 극렬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동안 누릴 만큼 누려 왔으면서 너무 양심이 없네요. 이의를 제기하는 건 자유지만, 관리자로서 제대로 일을 못 했으면 책임도 제대로 지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회장님. 개인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뭐,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으면 합당한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이유가 적절하다면 인용할 의사가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 관리 부실과 횡령 부분에 대해 철저히 소급해 책임을 묻겠습니다.”

순순히 옷을 벗고 나간다면 더 들쑤시지 않고 끝나겠지만 시끄럽게 떠들 경우에는 아주 볼장 다 보게 해 주겠다는 으름장이었다. 강태준에게 탱자탱자 놀기만 하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밥버러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뒤가 구린 임원들 대부분은 입 한 번 벙긋하지 않고 조용히 나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일부 녀석들은 이런 조치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슬며시 친한 의원들을 보내 제동을 걸었다.

“강 회장, 아무래도 여론이 나빠지면 정부 측면에서 정치적 부담이 큽니다. 구조조정도 좋지만 고용 승계도 필요하지 않겠소? 속도 조절이 필요할 거 같소이다.”

“죄송하지만 그건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아니 강 회장. 이 일은 시끄럽게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통운 빚이 200억 빚을 탕감받으려면 강 사장도 어느 정도는 고용 승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지요.”

“죄송하지만 건실해야 할 회사가 적자를 보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연명하는 기업이라면 차라리 망해 버리는 게 낫습니다. 빚을 그대로 안고 가더라도 조기에 이 악습을 뿌리 뽑는 게 낫습니다.”

협박 아닌 협박에도 불구하고 강태준의 의지는 확고했다. 회사가 정상화되려면 초기에 환부를 도려내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 암이 커지면 구조 개선이 어려워지기 때문.

강태준은 회사 소속이 아닌 지프 8대를 별도로 구매해, 인수에 가담했던 요원으로 구성된 감사반을 편성했다. 운송라인을 돌며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로 하기로 한 것이다.

“기사들의 정상 운행 여부를 확인하고 실적을 기록해 일일 보고하라고 하세요. 트럭에 미터기 대신 타코그래프 게이지를 부착해서 운행 시간을 추적하도록 합니다.”

“그럼 인원 공백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실제 임시직으로서 업무를 대행해 오던 사람들 중에 고과가 좋은 사람들 위주로 선발하세요.”

강태준의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곧장 전국의 모든 점포와 창고를 모두 순회를 돌며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도둑질을 막기 위한 규제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물류 창고 앞에 건달과 깡패는 얼씬도 못 하게 하십시오. 만약 한 번이라도 도난과 부정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는 법적인 책임을 묻겠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저희 힘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솔직히 저희가 정상적으로 운영을 하려고 해도 주변의 압력이 많아서 쉽지 않습니다.”

강태준의 개선 요구에 현장 직원들은 난색을 보였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기 때문이었다.

통운이 유통하는 시멘트와 곡식은 시중에서 이미 현금처럼 통용되는 물건이다.

창고를 화수분으로 주먹패들과의 협박과 유착관계로 인한 유출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버거운 상대였다. 거기다 현지인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어 처벌도 까다로웠던 것. 그러나 강태준도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 경비업체 쪽에서 방첩대원들을 파견할 테니까요. 앞으로 창고는 각자 지점마다 직영으로 운영할 예정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창고를 직영 체제로 전환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필요시 저희도 물리력을 동원할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강태준은 경비대원들을 각지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 부산의 용역 조직까지 별도로 동원해 이중 삼중의 방어망을 구축했다. 통운 주변을 오가는 깡패들은 평소와 같이 통운 창고에 와서 삥을 뜯으려 어슬렁대다 검은 옷을 입은 어깨들이 번을 서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어, 뭐야. 이 자식들.”

“저거 갑자기 왜 저래?”

까만 옷에 검은 베레모, 선글라스까지 쓴 것이 누가 봐도 심상찮아 보이는 외모다. 동작에 절도가 있는 경비원들의 행동에 깡패 두목이 멈칫하자 부하 중 머리 좀 쓴다는 녀석이 슬며시 귀엣말을 했다.

“아, 저거 이번에 통운이 민영화가 되었다지 않습니까. 사장이 바뀌더니 구조 개편을 했나 봅니다.”

“민영화? 그게 뭐냐?”

“그게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기 경비까지 새로 들여왔답니다.”

가방끈이 짧은 두목이 바로 성질을 냈다.

“인마, 어려운 말 쓰지 않고 그래서 뭐야.”

“아. 원래는 국가 거였는데 이제는 민간에서 운영하게 되었다고요.”

“그래. 그럼 뭐 별로 바뀐 거 없구먼. 어이 꺽쇠. 니가 가 봐라.”

“옙!”

두목의 명령에 제일 흉악하게 생긴 덩치가 호기롭게 나섰다.

양 볼에 곰보 자국이 난 것이 제법 흉악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야. 어여. 여기가 어디라고! 인사비는 내야 되는 거 아닌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짧은 대담이 오갔다. 잠시 후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문답무용으로 말을 나누던 꺽쇠가 인상을 쓰며 주먹을 치켜드는 순간, 갑자기 폭삭 주저앉으며 목을 꺽꺽거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니킥으로 얼굴을 직격당한 녀석이 대(大)자로 뻗어 버렸다.

“엉? 뭐야? 뭐가 일어난 거야?”

“저, 저 여기로 오는뎁쇼? 저 자슥들?”

깡패들은 수적 우위를 믿고 호기롭게 맞섰지만, 고작 몇 분 만에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다들 주먹질로는 한가락씩 했다는 놈들이었지만, 그거야 동네 싸움 이야기.

전쟁에 참가해서 실전을 겪고 나온 베테랑들을 상대론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혀, 형님. 이거 안 되겠는데요?”

“야, 후퇴한다. 전략상 후퇴다!”

새파랗게 질린 두목이 피신을 하려고 했지만, 도망가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경비대원들이 삑 하니 호루라기를 불자 사방에서 덩치 수십 명이 나타나 건달들을 에워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잡혀간 건달들은 경찰 조사를 받고 사이좋게 철창신세를 졌다.

그렇게 전국의 창고 앞마다 비슷한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현장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작업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감시반을 파견해 사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한 후 강태준이 현장과 점포를 찾아 직원 간 일대일 면담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대질 절차를 거쳐 비리 상태와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해 최저 등급을 받으면 즉시 퇴사 조치를 하는 대신,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확인되면 파격적인 포상과 승진이 주어지는 등 상벌을 확실히 했다.

“그래도 원 스트라이크 아웃은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관행으로 해 온 일도 있지 않습니까?”

일각에서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강태준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잘못된 관행은 악습이죠. 우리 회사에 관행 같은 건 없습니다. 그리고 사원들의 능력은 평가에 고과를 매겨 철저한 능력주의에 따라 적용할 것이니, 이 부분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강태준은 자기가 말한 것을 그대로 지켰다. 한 지점의 경우, 전 직원 60명 가운데 1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당하여 남은 1명의 임시직 직원이 지점장으로 승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럼에도 잡음이 나오지 않은 것은 이중 삼중으로 확실하게 증거를 잡고 철저한 감사를 통해 검증한 후 따로 자술서와 도장까지 받아 갔기 때문이었다.

강 회장이 떴다 하면 다들 긴장을 탔지만, 애초에 직원들이 대처할 방법은 별로 없었다. 아무리 알아보려고 해도 강태준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리 방문 일자를 알면 대비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사실인즉, 강태준은 일부러 움직이는 동선 자체를 랜덤으로 정했다. 당일치기 랜덤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쉴 새 없이 오가며 세 번이나 같은 곳을 재방문한 적도 있을 정도.

그렇게 물갈이를 당하고 나니 해이했던 현장 인력들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새로운 경영진이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각 지점에서는 회장이 언제 다시 방문할지 몰라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반대급부도 상당했다. 매일같이 전국을 도는 강행군을 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상당했던 것이다.

덕분에 비서진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아이구. 요새 우리 회장님. 뭐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저승차사랍니다. 저승차사.”

“그건 좀 서운한데. 차라리 암행어사라고 불러 주지. 너무하는구먼.”

“그게 그거죠. 아무튼 여기서 식사부터 하시고 움직이시죠.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여기서 식사까지 거르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춘삼이가 미리 준비한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이동 시간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챙길 겨를이 없다 보니, 안연복이 세트로 미리 싸 준 것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