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34화 (334/361)

334화 통운 인수전

수산진흥원 어류연구센터 설립일.

강태준과 박재복 수산청장 포함한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테이프를 끊었다. 수산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경남 거제시와 한국수산대가 협동으로 대구 수정란 방류 사업에 대해서 별도 예산을 확보해 내년부터 국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테이프를 끊은 장성량 의원이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 회장께서 어민들을 위해서 이렇게 발 벗고 나서 주다니. 정말 기꺼운 일일세.”

“그게 어디 저 혼자 공이겠습니까. 국내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서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죠.”

“하하, 사람 겸양은. 각하께서도 흡족해하고 계시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인가?”

“대략 6월 중 종묘 기술을 이전받는 대로 인공 부화장 건설부터 시작해야죠. 다만 본격적인 작업은 아마 내년 초쯤 되어야 가능할 듯싶습니다.”

“뭐, 그 정도만 되어도 빠른 거지. 대충 개발에 얼마나 걸릴 거라 예상하나?”

“최대한 서두르겠지만, 초기 먹이 붙임이 가능한지가 성공의 관건 아니겠습니까. 뱀장어 양식에서 축적된 기술과 이번에 들어올 생산 기술을 병행해서 최대한 단축시켜 볼 생각입니다.”

이미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치어 방류를 성공시킨 것처럼 설레발이 이만저만도 아니었지만, 인공 치어 방류 사업은 양식용인 뱀장어와는 궤가 다르다.

자어의 방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뻘밭과 모래를 섞은 해조장을 조성하고 부화 환경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 작업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진중보 국장님께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부화 자어 및 친어 표지방류 기술 개발을 통한 회유 경로 구명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항만국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거 물론이죠. 제가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요. 그럼 이번 연구 책임자는 누가 할 생각입니까?”

“제 동생인 복만이가 지휘할 예정입니다. 나름 수산업 쪽에 연륜이 있거든요.”

“아, 그거참 믿음이 가는군요.”

당연하겠지만 복만이로서는 금시초문. 오히려 증식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말에 볼멘소리가 나왔다.

“제가 증식부장을요? 아니 형님, 그런 말은 없었잖습니까. 제가 양식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바지사장이라는 거지. 대충 폼 잡고 뭉개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야.”

“거참. 알았습니다. 근데 그럼 대구탕은 매일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질릴 만큼 먹을 테니 걱정 마라, 인마.”

강태준으로서는 어떻게든 도망만 다니는 복만이 녀석을 잡아 두기 위한 계책이었다. 사실 바지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자리를 맡고 어떻게 손만 놓고 있을 수 있겠는가. 강태준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뒤늦게 이원석 의원이 등장했다. 두리번거리던 이원석이 강태준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아, 오셨습니까?”

“당연히 와야지. 우리 강 회장 일인데. 좀 늦어서 미안하구먼.”

“아닙니다.”

“요새 본업에도 충실한 거 같아서 보기 좋구먼. 사람이 변하는 게 한순간인데 우리 강 회장은 한결같아서 좋아.”

“말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일세. 사람이란 게 초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지. 요새는 원준이도 힘들어서 사업 못 하겠다고 하더구먼. 자네는 언제까지 그렇게 달릴 건가?”

“할 수 있는 때까지는 해야죠. 아직 사업이 벌이는 게 재밌기도 하고요.”

이미 돈은 평생 써도 쓰기 힘들 만큼 벌었으니 딱히 돈이 목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일을 벌이는 건 순전히 자기와의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라면 국내 1등을 넘어서 세계를 노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강태준의 패기에 이원석이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직 젊군. 남자가 그 정도 야망은 있어야지. 나도 젊을 때는 자네처럼 혈기 왕성했는데 말이야.”

“하하. 지금도 대단하신데요. 국가를 운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지요.”

“사람 빈말은, 사실 요새 민영화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어서 혹시 관심이 있나 해서 말이야.”

“민영화 말입니까?”

“국영 기업체 중에서 적자율이 높고 운영이 방만한 기업들 위주로 경영합리화를 꾀할 생각인가 보이.”

“정부 소유 주식은요?”

“아마 증권거래소에 매각할 걸세. 아무래도 증시가 아직도 진통이니 이번에 마중물을 넣어 보려는 것 같아.”

사채 동결 조치 이후, 공시 활성화를 위해 강제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시중에서는 여전히 증시에 대해서는 투기성이 짙다는 시선이 강했다. 정부에서는 내자 동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민간자본을 육성하는 한편으로 민영화를 통해 증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다.

“나오는 매물이 뭡니까?”

“총 5개 정도로 예상되고 있네. 여명통운, 민보 철강, 태양기계, 수원중공, 남해교역 이렇게 말이야.”

“다른 건 이해가 가는데 여명통운이 매물로 나온다고요? 여명이면 국내 1위의 통운사 아닙니까?”

“뭐긴 뭐겠나. 백제교역에 투자했다가 제대로 말아먹어서 그렇지. 나랏돈으로 빚 파티를 해서 지금 누적 적자만 150억이 넘네.”

백제교역은 중정에서 밀려난 이후 남형욱을 비롯한 중정 출신들이 합작해 만든 업체다. 정부 차관을 바탕으로 덴마크에서 공수한 여객선을 개조한 8천 톤급 공모선과 1,500톤급 운반선 3척이 베링해에서 연어를 잡기로 계획한 것이 망조의 시작이었다.

사실 아예 근거도 없지 않은 것이 한해 3만에서 4만 톤가량을 조업해 절반은 통조림으로, 나머지 냉동 처리한 필레트는 미국과 일본 등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했었다.

연어는 톤당 단가로 참치의 2배가 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니 성공만 했다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은 미국 정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거 저번에 발해 쪽에서 시도했다 나가리 되고 끝난 이야기 아니었습니까?”

“그게, 자기 딴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지 뭔가. 로비를 무지하게 했나 보이. 실제로도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네.”

백제교역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저번 실패를 거울삼아 벤 캠프 출신과 미국 어류 위원회 소속 고위공직자들을 영입해 전방위 로비를 펼쳤고 덕분에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던 것이다.

그렇게 미 국무성 수산 담당 대사한테 구두 약속까지 받아 낸 상황. 그런데 안타깝게도 닉슨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이 모든 노력이 한여름 밤의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거 내가 일타 쌍피를 해 버린 건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은 셈.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었다니, 강태준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점유율도 높고 펀더멘탈 정도는 제법 건실하니 정상화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 외에도 정치자금 등 여러 가지로 엮여 있다는 게 중론이야. 지금 정부로서는 이번 일이 게이트로 비화되기 전에 손절해 버릴 모양인 것 같네.”

“아 그렇다면야, 이렇게 빨리 처리하는 것도 좀 납득이 가네요.”

“아무튼 표면상으로는 만성 적자랑 방만 경영 탓에 지표가 별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꽤 좋은 업체일세. 이만한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이 정도 매물은 흔치 않아.”

대통령 특별지시로 진행되는 사안인 만큼 민영화는 거의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마침 통운 쪽 일로 조직 개편이 필요한 찰나 좋은 기회라 생각한 강태준은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육상운송망을 보유한 여명통운은 앞으로 굵직한 개발 사업을 주로 수행할 예정인 강태준에게 꽤나 매력적인 매물로 보였다. 임원들에게 의견을 묻자 의견이 많이 갈렸다.

“뭐, 제 생각에는 통운이야 좋긴 하지만 빚이 150억짜리 회사를 인수한다는 건 조금 생각해 볼 문제 같습니다.”

“전 반대입니다. 일단 인수 후에 구조조정을 하려면 잡음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내부적으로 운수 쪽을 키우면 될 일이지, 굳이 리스크를 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광필이 쪽에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채무야 정부와 딜해서 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건설 원가에 포함되는 물자 조작비를 생각하면 꼭 손해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근거가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성장세가 크지 않았지만, 이미 앞으로는 다릅니다. 육상 운송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지금 빠르게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임원들의 의견은 6 대 4 비율로 갈렸다. 일반적인 일단 통운사 자체는 탐나지만 빚도 많고 덩치가 커서 부담스럽다는 입장이었다.

“오재갑 사장의 생각은 어떤가요?”

“항공과 달리 육상 운송은 운용상 부담도 적은 만큼 극단적인 손실이 발생할 여지도 적으니 물류 쪽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인수 가능하다고 사료됩니다. 문제는 적정 인수 가격이겠죠.”

“경쟁사라 염두에 둔 곳이 있습니까?”

“아마 천진그룹 정도가 인수에 관심이 있겠지만, 아마 실제로 인수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쪽에서는 이미 항공사를 인수하는 데 여력을 다 소진했으니까요. 대충 자금력을 가진 회사는 오성과 미래, 청우 정도인데 그렇게 따지면 경우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질 거예요. 경쟁사가 생기면 그냥 놔둘 리가 없으니까요.”

역시 인수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다른 회사들의 동향이다. 인수합병은 경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마찰이 발생하기 마련. 업계 안팎에서는 천진그룹이 여명통운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오성 역시 이번에 백경그룹에게 반도체 선두를 뺏긴 후에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백경이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실제 인수는 안 해도 잔뜩 경쟁을 부추기며 경쟁을 과열시키는 방식으로 분탕질을 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수는 포기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렇다 해도 이런 탐스러운 먹잇감은 포기할 이유는 없지요.”

“그러면?”

“안 걸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일단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극비로 사들입시다.”

일단 강태준으로서는 증권 시장에서 통운주를 비밀리에 사 모으려면 팀이 필요하다. 명동증권 총무부장 출신이자 거래소에서 매매 담당역을 했던 최재민 팀장, 그리고 매도와 매수를 지시할 연락 증거금 제출 담당역으로 유명욱 비서, 그리고 일선에서 업무를 나눌 최욱기 등 실무진을 포섭했다.

브레인을 구축했으니 이제는 극비 작전을 펼치기 위해 입이 무겁고 충성심이 높은 요원들이 손발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강태준은 자택 지하에 별도로 비밀 전화 회선을 깔았다.

“일단 연락은 비밀 회선으로만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더는 누가 내립니까?”

“내가 지휘할 겁니다. 각자 증권사를 돌아다니면서 주문을 내십시오. 그러다가 임무대로 타이밍에 맞게 매수 주문을 내고 되팔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다른 사람에 맡길 수는 없으니 책동전을 벌여 주식을 야금야금 늘려 가면서 지분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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