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자원 전쟁
용화루로 도착하자 새끼 요리사들이 밑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자, 나왔습니다.”
대구의 살과 내장을 넣어 끓은 맑은 탕이 먼저 나왔다. 부드러운 대구 살과 백도라지를 넣은 은은한 향이 어우러져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맛이었다.
“반건조로 끓여서 그런가, 감칠맛이 좋군요.”
“뭘 좀 아시는군요. 자자. 많이 드세요.”
대구볼찜에 튀김, 회, 전까지. 대구로 만든 한 상 차림에 눈이 돌아간 일행들이었다. 새벽에 어시장에 나오느라 시장했던 탓일까. 정신없이 식사에 열중한 사람들 사이로 다람쥐처럼 볼 가득 음식을 넣고도 흡입하는 복만이에 강태준이 쯧쯧거렸다.
“쯧쯧, 그 나이에 식탐은 안 잡아가니까 천천히 먹어.”
“맛있어서 그렇죠. 이거 살이 탱글탱글한 게 평소보다 맛이 쥑이는데요?”
“지금이 제철 아닙니까. 어민들은 이번 한철로 일 년을 먹고 사니 그 정도 맛은 되어야지요.”
“오 그런가요?”
북태평양에서 서식하는 대구는 겨울철 해류를 타고 내려오는 물고기로 이때부터 거제도의 밥상은 물 만난 고기처럼 풍성해진다. 흐뭇하게 식사하는 일행을 지켜보던 안연복이 뭔가를 깨달은 듯 손바닥을 쳤다.
“아. 하나 깜빡했네. 잠시만요.”
잠시 주방에 들어갔다 온 안연복이 종업원들과 묵직한 항아리를 들고 왔다. 낑낑댈 만큼 무거운 항아리에 관심이 쏠린 복만이였다.
“요게 뭐시당께요?”
“이게 뭐냐면, 3개월 묵은 약대구입니다. 이번에 담근 건데 한번 드셔 보시죠.”
독에서 통통하게 살찐 대구를 꺼내 배를 가르자, 쿰쿰한 향과 함께 난막 사이로 누르스름한 덩어리가 보였다. 알배기가 가득한 대구에 숟가락을 푹 찍어 맛을 보자 부드러운 향이 입안에 퍼지며 포근하게 혀를 감쌌다.
“이야! 이거 장난 아닌데? 입에 짝 달라붙는구만요.”
“이게 뭐냐. 크림도 아닌데 아주 녹는구먼, 녹아.”
“자자, 이거랑 같이 드셔 보세요.”
옆 시립한 안연복이 껍질을 벗기고 꾸덕꾸덕하게 말린 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앞에 대령했다. 잘 숙성된 대구 살을 한 점 입에 넣자 진한 감칠맛이 오감을 자극했다.
“이거 술안주로 그만인데요? 별미네. 아주 기똥차구먼.”
“그러게요. 이런 게 있었으면 미리미리 좀 알려 주시지 그랬습니까? 세상에 지금까지 이런 걸 모르고 살다니 참.”
“하하. 저도 간만에 만들어 보는 거라서요. 숙성이 잘못돼서 잡내가 나면 큰일이니, 밥상에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런 자리에 술상이 빠질 수가 없지요. 자자!”
강태준이 손짓하자,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상한 것을 하나 가져왔다.
그 정체를 확인한 복만이의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허걱 뭡니까?”
“뱀술이다 뱀술. 자, 한잔들 해. 출장 갔을 때 한 병 가져왔던 거야.”
“우와, 뭐 이거 진짜 뱀술입니까? 신기하게 생겼네.”
뱀을 통으로 담근 담금주가 등장하자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반시뱀이라고 불리는 바다뱀으로 담근 오키나와 특산품이었다.
“왜 이런 걸 먹고 그래요. 으 징그러워.”
“이게 남자한테 참 좋단다 인마. 부부 금실에 직빵이야.”
“진짜요?”
복만이는 싫어하는 척하면서도 넙죽 받아먹었다. 맛은 그럭저럭이었지만 약대구를 안주 삼으니 먹기가 참 좋다. 금세 취기가 오른 복만이가 기분이 좋아진 듯 실실거렸다.
“이런 게 소소한 행복이구만요. 근디 이거 쫀득한 게 맛있네요. 우리 마누라한테도 싸 줘야겠는데. 요거 항아리째 가져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아주 많이 담가 놨으니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오, 감사합니다. 마리아가 좋아하겠네.”
그 꼬라지가 눈꼴 사나웠는지, 광필이가 칫 하고 고개를 돌렸다.
“거 완전 공처가 다 됐구먼. 근디 미국 사람도 그런 거 좋아하나.”
“엄머, 이 형님이 무슨 무식한 소리를. 바칼랴우 모릅니까? 스페인에서는 요 대구로 만드는 요리가 무려 1,000가지도 넘습니다. 피시 앤 칩스도 대구 요리 아닙니까?”
“그건 인마. 영국 요리고.”
“아무튼 외국에서도 엄청 많이 먹는다고들 하더라고요. 아닙니까, 형님?”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중요하지 인마. 그거 때문에 전쟁도 하는데.”
“엑, 전쟁이라굽쇼?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그려. 요새 또 아이슬란드랑 영국이랑 대판 붙었잖아. 연안경비대와 해군 함정까지 동원되었다는데 영국 배들이 경비정을 냅다 들이박는 바람에 침몰할 뻔했다는구먼.”
“아니, 무슨 중세도 아니고 20세기에 식량 전쟁을 해요?”
“그만큼 대구가 밀처럼 핵심적인 식량 자원이란 거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사실 아이슬란드에서는 50년대부터 시작해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영국과 신경전을 벌였다. 사실 이런 대구를 둘러싼 싸움은 덴마크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었는데, 그건 대구가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아이슬란드 수역에서 대형 대구의 수가 급감하고, 오일 쇼크로 경제가 그야말로 파탄이 나버린 것도 제재의 원인 중 하나. 오일 쇼크로 인플레이션이 무려 50퍼센트에 무역 적자는 1억 5천만 달러를 넘겨 버렸던 것이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되자 아이슬란드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어업 전관 수역을 200해리로 확대하는 성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린 것이다. 광필이가 혀를 찼다.
“에라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0해리에서 200해리라. 양심 없는 놈들이네요.”
“그쪽은 국민 생존권 문제니 어쩔 수 없지 않겠어? 이쪽처럼 대구 한 철 장사로 한해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무척이나 민감한 문제지. 덕분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라더군.”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이란 게 있는데 그딴 억지가 받아들여질까요?”
“NATO 기지를 철수하라는 배수진까지 친 상황이니 아마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군그래. 아이슬란드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거지.”
“거 깝깝하구먼요. 그렇게 나쁜 선례가 생기면 우리 쪽에도 그다지 좋지 않은데.”
“그래도 어쩌겠나. 세상일이란 게 원래 사람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거지.”
강태준은 묵묵히 술잔을 들이켰다. 사실 강태준도 대구 전쟁의 향방에 대해 내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캐나다, 노르웨이는 물론 미국, 소련 같은 강대국들 역시 국익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만큼 판결의 방향에 따라 충분히 후속 조치가 발효될 여지가 높았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긴 했지만, 식량 문제에 대해 관심이 큰 맥거번의 성향으로 볼 때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강태준의 판단이었다.
실제로도 맥거번의 주된 관심사는 식량 안보와 영양학 쪽으로 이미 70년대 초에 국민의 식사 개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영양문제특별위원회를 만든 전적이 있었다.
여기서 나온 맥거번 리포트는 영양불균형 문제를 재고하고 미국인의 식습관을 개선함으로써 전반적인 의료비 절감에 큰 족적을 남겼다 평가받는다.
‘인류가 지금의 식생활을 버리지 않으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사람이 식량 안보를 포기할 리가 없지. 결국 EEZ가 현실화되면 원양어업 업계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각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이 늘어나 공해가 줄어드는 것은 원양 조업에도 치명적인 일.
한국의 원양 업계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남의 일로 치부했지만 강태준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감지하고 있었다.
“맥거번의 관심이 큰 만큼 아마 영양위원회 쪽에서 조만간 리포트를 내놓을 거야. 내 예상으로는 리포트가 발표되는 시기에 맞춰 뭔가 극적인 조치가 벌어질 것 같군.”
“그럼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겠군요.”
오재갑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강태준이 다시 술을 홀짝였다.
“뭐 아직까지는 괜찮겠지. 대충 올해 말부터 외해 쪽으로 조업 구역 조정이 가능한지 운을 띄워 보라고. 너무 호들갑 떨면서 티 내지는 말고. 눈치 빠른 놈들이 알면 많이 성가셔질지도 모르니깐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러자 복만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먼요. 듣자 하니 여기도 그렇던데. 요새 거제산이냐 가덕산이냐 놓고 시비를 많이 벌인답니다.”
“참말로 쓸데없는 걸로 헛심 빼는구만. 출신이 뭐가 그리도 중요하다고.”
“사실 작전사 때문이죠.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원래 가덕도 쪽 조업지 일부를 작전 수역에 넣어 버려가지고 그쪽 일대에서는 조업을 못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어망이냐 호망이냐를 두고도 싸운답니다.”
대구를 잡는 방법이 다른 두 어업인들의 다툼은 최근부터였다. 대구가 몇 년간 가물어 제대로 잡히지 않게 되자 보다 못한 정부에서 1월경 대구 체포 금지 기간을 두어 호망 어업인만 대구 조업을 할 수 있게 정했는데, 법을 어기고 몰래 잡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차별의 이유는 방식의 차이에 있었다. 호망어업은 커다란 그물에 가둬 산 채로 대구를 잡지만, 반대로 호망어업과 달리 자망어업은 어군 통로에 네트 모양의 긴 그물을 쳐 놓고 고기를 그물코에 꽂히게 해서 잡는다.
호망으로 잡으면 작은 새끼 정도는 살려서 돌려보낼 수 있으니 어족 자원 보호가 가능하지만, 자망으로 잡히면 그물에 걸린 채 죽는 경우가 태반이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 인간적으로 노가리는 놔줘야지. 양심 없는 새끼들 같으니라고”
“근본적으로 물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겠지. 치어를 키워서 방류하는 쪽으로 말이야.”
“치어 말입니까?”
“그려. 지금부터라도 양식 기술을 길러야 하지 않겠나? 어족 자원이 고갈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지.”
뱀장어 양식으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는 중인 만큼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럼 이번에도 우리가 직접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이번 종묘 배양 사업은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자력으로만 투자하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겠어? 학교 쪽이랑 연계하는 게 더 바람직하겠지.”
대구 양식은 뱀장어와 다르게 기술이 완벽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은 만큼,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강태준은 대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신용우를 만나기 위해 한국수산대를 찾았다.
어느새 총장직에 오른 신용우는 백발이 성성해진 모습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강군 아닌가. 이게 대체 얼마 만인가?”
“아직 정정하시군요. 자주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하. 허튼소리. 사업 잘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래, 바쁜 사람이 무슨 일인가?”
자리에 앉은 강태준이 간략한 취지를 전달하자 신용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치어 방류 사업을 말인가? 아직까지 조업량엔 큰 문제가 없지 않나, 굳이 벌써부터 투자할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해야죠. 지금이야 대구가 잘 곧잘 잡히지만, 이 속도로 계속 잡아 대다간 조만간 자원 고갈이 현실화될 겁니다. 인공 종묘 생산을 활성화해서 파국이 오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강태준이 굳이 학교를 방문한 것은 한일청구권 협정상 아직 못 받은 차관분에 대해 기술 지원을 요청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흠. 하지만 대구 종묘를 대량으로 배양하는 기술은 일본도 아직 갖고 있지 않아. 일본도 구체적인 연구는 걸음마 단계인 알고 있네.”
“그래도 한국보다는 구체적인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수온에 따른 이료 배합과 바이러스성 질병에 대한 방역 대책에 관해 자료를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뱀장어와는 궤가 다른 물고기니까요.”
사실상 찔러 보기 수준이지만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신용우 역시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하면 시작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는 있겠군. 알았네. 일단 수산청 쪽에 문의를 해 보지. 일본과 산학협력이 가능한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경남도랑 거제시 설득은 제가 맡지요.”
수산청 쪽에 문의를 넣어 보자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애초에 박 대통령은 농어촌 전화 사업을 비롯해, 자신의 지지 기반이기도 한 농어촌 지원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수산청 입장에서도 어족 자원을 늘린다는 취지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