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실리콘 제련 공정
먼저 포문을 연 건 미국 측이었다.
“국내 판매 물량은 얼마 안 되면서 컬러 TV를 대미 전략 수출 상품으로 지원한다니. 이건 너무 말도 안 되지 않소? 게다가 한국에서는 미국 생산 업체에 비해 헐값으로 판매해서 시장을 교란하고 있소이다.”
“그게 저희의 전략입니다. 만약 금액으로 따지고 드신다면, 이건 자유 경제의 원칙에 반합니다. 수출물량의 30% 이상이 물량 규제와 관세장벽을 받고 있는 마당에 추가 제재라니.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일본과 독일산 TV도 같은 규제를 받고 있소. 한국만 거기서 빠지겠다는 겁니까?”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과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입니다. 한국은 선발 개도국으로서 GSP 수혜 품목에 대해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개도국의 상품에 대한 특혜 관세 제도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싸웠다. 백경을 비롯한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항의에 미국도 한발 물러섰다.
당시 한국이 OMA 협정에 따른 쿼터 제한을 막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신 앞으로 2년간 추이를 보아 수출용 TV에 대한 자율 규제를 재논의하고, 이미 해상 수송 중이거나 수출 통관된 것은 기정사실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협의가 이루어졌다.
바로 통상 보복의 잔뜩 긴장했던 한국 대표단은 굉장히 안도했다.
“조건이 생각보다 온화하군요.”
“천운이지요. 세이프가드 논의가 통과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미 하원에서 이미 미국 공산품이 수출품과의 경쟁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경우, 대통령이 해당 국가로부터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하는 통상법 제정안이 부의되어 있었다.
이런 슈퍼 301조를 포함한 강도 높은 통상 규제법이 바로 통과하지 않은 것은 도청 사건으로 인해, 대통령의 권력 남용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있었다. 게다가 닉슨 게이트 여파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한 탓에 의회가 마비되다시피 해 추가 제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태준은 만족하지 않았다.
“안심할 것은 못 됩니다. 유예를 받은 것뿐이지, 언제든 다시 쟁점화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아마 미국도 내부가 정리되면 다시 규제 강화를 논의할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에서도 컬러 TV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밖에요. 국내 판매도 하지 않으면서 컬러 TV를 대미 수출용으로만 푸는 상황에선, 그쪽에서도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논란의 불씨를 잠재우려면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했지만 관료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일세. 우리나라는 국민 소득이 낮고 소득 간 계층 격차가 큰데, 벌써 컬러 방송이라니. 각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걸세.”
“지금처럼 경기가 불안정할 때, 사람들도 마음을 달랠 구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전자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지리한 설득 끝에 강태준의 의견이 통과되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실질적인 선진국 때리기에 나선 것과 당시 전자업계를 대표하던 화정, 정호, 동원, 오린 등이 연쇄 부도의 위기에 몰렸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면 TV 수상 방식은 어떻게 하지요?”
“미국에 주로 수출하니, 미국 표준이 좋지 않겠소? 게다가 이미 보급되어 있는 TV로도 시청할 수 있으니 그쪽이 더 낫겠지요.”
논의 끝에, 정부에서는 컬러 TV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차로 교육 방송에서 컬러 방송을 시험 시행하기로 했다. 미국 웨스팅 하우스의 Tcom 시스템을 도입해 컬러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산 전자제품 수출이 늘어나는 것과 발맞추어 전자제품 공장이 많이 입주한 한국의 구미 단지에서도 반사이익을 보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로컬 L/C 개설이 무지하게 복잡해서 어느 업체나 제품을 판매하려고 해외 수속을 받는 것이 매우 번거롭고 인력 소모가 많았는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전자 부품을 일괄로 사들여서 수출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던 중, 강태준이 짐짓 놀란 것은 시그네틱스, 오토모빌 등 한국에 직·합작 형태로 진출한 반도체 공장들이 꽤 많이 진출해 있다는 점이었다. 강태준은 IC 회로 수급을 위해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남실업을 방문해 제품 제작 시연을 보였다.
“다들 일을 참 열심히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여기 여공들은 다들 눈이 좋고 손들이 아주 정밀하지요.”
마침 다이본딩 작업 시연이 진행 중이었다. 이 작업은 순금 프리폼 조각이 용해되면 칩을 핀셋으로 잡아 현미경을 보면서 용해된 금 위에 수 초간 문질러 헤더 위에 칩을 용접하는 것을 말했다.
조그만 금 조각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정확히 붙이는 것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숙련된 여공들의 작업은 일종의 묘기나 다름없을 정도.
습도와 온도를 정확히 통제하기 위해 여러 집진 장비를 들여놓은 점도 인상 깊었다.
“기술력이 대단하군요. 근데 조립만 하는 건 좀 아쉬운데요.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건 생각해 보신 적이 없습니까?”
“아이구야. 말씀은 좋지만 그건 어렵지요. 반도체는 전략 품목 아닙니까. 기술 이전을 해 주는 기업이 없는데 그만한 전문가는 어떻게 구합니까?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죠.”
“송충이가 솔잎만 먹긴 하지만, 다른 것도 먹으면 더 크게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말씀은 좋지만. 조립 사업도 충분히 국가에 이바지하는 일이지요.”
은근하게 의견을 타진해 보았지만, 인남은 무리하게 확장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남실업은 반도체 조립 품목으로 수출액만 4,000만 달러를 넘어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은 업체였으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였던 것이다.
사업적으로 현실적인 접근이긴 했지만 강태준은 문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웨이퍼 페브리케이션 작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강태준이 조립 공정을 보며 관심을 가진 것은 원료로 쓰는 실리콘 생산 부문이었다. 웨이퍼는 실리콘 단결정 기둥을 성장시켜 만든 실리콘 원반이 원재료다. 그렇다면 실리콘을 직접 만들어 조립하면 훨씬 경쟁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임원 회의를 소집한 강태준이 의중을 밝히자 다들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실리콘 제련 공정을 도입하자고요?”
“실리콘은 그 쓰임새가 다양하지 않나. 특히 전자 산업을 키워 나간다면, 앞으로 그 비중이 정말 많이 늘어날 거야.”
“그렇지만 그건 차원이 다른 규모의 사업인데요. 거기에 선진국들이 하는 사업을 과연 쫓아갈 수 있겠습니까?”
“정밀 가공 분야 같은 건 그간 선진국이 쌓은 노하우 때문이라도 차이를 단기간에 좁히기 어렵겠지만, 반도체는 누구에게나 생소한 분야가 아닌가? 특히 실리콘의 원료인 규사는 한국에도 풍부한 물질이잖아.”
다들 게임 산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의 위력을 경험해서인지, 반도체 사업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재갑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전국의 규석 분포부터 조사해야겠군요.”
“전 그럼 협력업체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간 사업을 연이어 성공해서일까, 백경그룹 사람들은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백경그룹과 달리, 실리콘 조립업체 사장들은 협조에 소극적이었다.
“하이구야. 그건 현실을 모르는 말씀입니까. 실리콘 단결정이라니…… 그 공장이 얼마나 돈이 드는지 아십니까? 공장 설치에만 무려 5,000만 달러입니다.”
“실리콘 원료 자체 수급이라…… 정말 좋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산 공장 구축이나 연구개발(R&D)을 위한 투자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 다들 기겁한 것이다. 오성이나 미래 같은 대기업에도 타진해 봤지만 상당히 부정적.
특히 이재무는 매우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허허. 강 회장, 실리콘 단결정 공정에 고작 5,000만 달러? 그건 어림없는 소리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공정 설립에만 필요한 비용일 뿐이지. 운용비에 로비 자금까지 포함하면 그 세 배가 들어도 이상하지 않아.”
메탈 실리콘 공장을 가져오려고도 진작에 시도해 봤지만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며 포기했다는 말이다. 미래그룹에도 사업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반응은 비슷했다.
“아무래도 국가 기간 산업이라는 이유로 헌납할 가능성이 있어서 투자가 저어된다는군요. 저번에 데이고 나서 좀 몸을 사리나 봅니다.”
“결국 합자 회사 설립이 답이지. 외자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수밖에 없겠군.”
국내 협력사는 텄으니 자력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협력사를 어떻게 데려오는가였다. 기존에 있던 회사들이 딱히 관심을 보일 만한 메리트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설유하가 말했다.
“그러면 컨벤션를 열어 보는 건 어때요?”
“컨벤션?”
“수출 촉진 박람회를 통해 바이어들을 한번 몰아 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관심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겠어요?”
국제 전시회 성격을 띤 한국 전자전을 하자는 이야기에 강태준이 턱을 괴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FIC에서 그걸 주관한다고 하니 일정 잡기는 어렵지 않겠군.”
“근데 바이어들이 우리나라 제품만 보러 과연 오겠습니까?”
“그걸 왜 걱정해. 일본 전자 박람회가 끝날 때쯤 잡으면 돌아가는 길에 보고 가겠지.”
진흥기관으로 승인받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국정밀기기센터(FIC)에서 전자공업 육성과 중공업 육성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던 만큼 자기가 자기를 승인해 주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전시 산업 육성을 위한 행사인 만큼 거기까지는 쉬웠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전시를 덕수궁 앞 석조전에서 한다고 하니 미술계 원로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석조전은 축조 목적 자체부터 미술관으로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석조전 자체는 본래 취지에 맞게 미술의 전용 공간으로 될 수 있게 해야 마땅합니다.”
당시 미술계 원로들은 석조전 서관만 활용하는 덕수궁 미술관을 동관까지 인수해서 미술관으로 개관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박람회가 흥행이라도 해 버리면 자칫 석조전 동관을 국립미술관으로 활용하는 안이 좌초될까 과민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문화부 문화정책부 국장과 박물관장은 물론 예술원 분과 위원단, 궁중유물전시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등이 총동원되었다.
“골치 아프네요. 그거 전시회를 하고 나서 수리 복구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번에 불량품 전시회 때 시연한답시고 불까지 내서 그런 거 같아.”
“그러면 차라리 저희 회사 앞마당은 어떻습니까? 앞을 전시회장으로 쓰면…….”
“미쳤냐. 한 번 자리를 내주면 계속 여기서 하려 할 텐데. 나중에 거절하기 골치 아파져.”
장소 섭외를 해 봤지만 전자박람회의 규모가 걸렸다. 최소 7~80개 업체가 출품할 공간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쓸 만한 공간은 다른 일정이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던 것.
동대문 종합상가와 산업진흥회 안까지 박람회 안건이 계속 표류하자 고민 끝에 강태준이 결단을 내렸다.
“차라리 경복궁 앞마당을 빌려서 개최하자고.”
“경복궁 앞이요? 그럼 야외에서 비라도 오면 골치 아파질 텐데요. 실내 공간도 협소하고.”
“그거야 코니탑을 쓰면 되지.”
코니탑은 합성 섬유에 염화비닐을 양면 코팅한 고정식 어닝으로 기계류 덮개나 안전 소재용, 창고용 천막 등으로 쓰이는 물건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규모였다. 천경물산에 의뢰를 하자 이원준은 귀를 의심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