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오일 쇼크
시리아는 소방펌프를 동원해 모래 벽을 적셔서 무너뜨려 버리는 창의적인 전술을 사용해, 이스라엘이 돌파에만 이틀은 걸릴 거라고 장담하던 바레브 선을 단 9시간 만에 돌파해 버렸다.
쾌조의 진격을 거듭한 시리아군은 사흘 만에 요르단강을 돌파하여 이스라엘의 심장을 타격했다. 이스라엘군의 동원사단이 오기 전에 고지를 넘어 버린 것이다.
믿었던 전차부대는 대전차 미사일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졌고 항공전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의 위력 앞에, 하루 만에 10프로나 되는 손실을 본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모세 다얀이 경고했다.
“국가가 최후의 수단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핵을 조립해야 합니다.”
여리고 미사일을 배치할 것을 주문했지만, 이스라엘에는 안타깝게도 핵을 조립할 시간조차 없었다. 개전 첫날 시리아 라타키아항 부근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시리아군이 발사한 스틱스 미사일에 해군 절반이 개박살난 것이다. 이어 탈림에서의 대패로 인해 제해권까지 빼앗기자 이스라엘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이스라엘군은 전차로 요격에 나섰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제77전차대대는 10 대 1의 수적 열세를 견디지 못해 증발해 버렸고, 수도인 텔 아비브까지 포위당했다.
지상군의 공세 여력이 완전히 소진된 이스라엘로선 더는 믿을 구석이 없었다.
외교적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워싱턴에 나타난 메이어 총리는 맥거번을 붙들고 눈물까지 흘리며 읍소했고, 미국은 군사적 지원을 결정했다. NATO 최전선에 있던 병력을 소환한 미국에서는 엄청난 수송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유럽에서 날아온 F-4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했고 미 해군 항공모함들은 A-4를 잔뜩 싣고 와 이스라엘 근해를 봉쇄했다.
미국의 대규모 공수 작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세계 경제에 오일 쇼크가 발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쿠웨이트 등 산유국들이 중심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서방의 개입에 항의하는 의미로 원유 감축을 지시한 것이다.
원유 생산량을 30% 줄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 석유 수출 금지 조치로 응수한 것이다. 그 여파는 컸다. 배럴당 1.6달러에 불과했던 원유 가격도 3.5달러로 격상되었다.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국가일수록 오일 쇼크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산업과 교통 부문의 연료가 폭등하고, 석유화학 산업이 불경기에 봉착한 것이다. 미국의 산업 생산력은 그새 14프로나 곤두박질쳤고, 수출용 소비재를 중심으로 생산하던 일본은 더했다.
국내의 원자재 부족과 소비재 시장이 위축되면서, 산업 생산성이 20프로 이상 위축되었고, 국내 예상치 못한 원가 급등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부도를 내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한 기업만은 오일 쇼크의 충격파에서 완전히 벗어나 유가 급등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다름 아닌 백경그룹이었다. 오일 쇼크가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석유를 최대한 비축해 두었다가 파동이 발생하자 되팔이로 엄청난 차익을 남겼던 것이다.
“달달하구먼. 아이구야. 유가가 벌써 13달러라는군요. 불과 다섯 달 사이에 여덟 배가 넘게 급등하다니.”
“뭐 달러 가치가 떨어졌으니 당연한 거지.”
“정말 세상일은 알 수가 없네요. 그 약한 시리아군이 해전에서 이겼다니.”
“그러게 말이야.”
전쟁 직전, 시리아 해군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해군에서 개발 중이던 음탐기의 성능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시험평가서도 없고 군에서 요구한 어떤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자, 시리아군은 하는 수 없이 시중에 나도는 최신예 어탐기를 음탐기 대신 장착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전장의 향방을 바꾸어 놓을 줄이야.
당시 이스라엘군은 ECM을 사용했는데, 재머를 이용한 교란 전파는 사실상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해한다고 해도, 레이더는 반사돼 되돌아오는 전자기파를 시간 차를 두고 여러 종류의 주파수로 나눠 쏘면서 방해하는 것뿐이었다
예를 들면, 1GHz 주파수로 5분간 보내다 1.5GHz로 바꿔 보내는 방식으로 수시로 변화를 주는 방식뿐이랄까. 헌데 백경 그룹에서 만든 어탐기는 수중 음향 탐지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역 확산(Spread Spectrum) 방식을 차용한 덕분에 전파 재밍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 직후 이 부분이 뒤늦게 조명되면서 백경 그룹에서 만든 어탐기의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
“시중에 벌써 품귀 현상이 돌아서 가격을 2배 넘게 올려도 잘만 팔린다고 합니다.”
“웃기는 짜장이야, 무슨 지들이 해전이라도 벌일 셈인가?”
“뭘 그렇게 삐뚤게 생각해. 당연한 이야기를. 낚시인들만큼 장비에 민감한 사람들은 없지 그래.”
“이러다 방위산업까지 진출하는 건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러면 좋지 뭐. 눈먼 돈 떼먹는 것보다 좋은 게 어딨나?”
“근데 이스라엘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뭐, 미국이 아주 망하게 둘 리는 없고, 국토를 원래대로 하는 선에서 정리되지 않겠어?”
이번 4차 중동전으로 아랍군은 이스라엘에 설욕을 제대로 했다. 시리아군이 너무 선전한 탓일까. 국체가 보존하지 못할 정도로 떡실신당한 것이다.
하지만 아랍 지도부는 현실상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별로 크지 않았고, 각 지역 간 긴장을 막기 위해 오히려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그래서인가 승자인 아랍군은 꽤나 너그러운 조건에 종전에 협의한 것이다.
미국의 중재하에 아랍의 국경은 제3차 중동전쟁 이전과 비슷하게 돌아갔다. 시리아의 경우 골란 고원을, 이집트 역시 시나이반도를 돌려받았다. 뒤늦게 참전한 요르단 쪽에서도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 서안지구를 일부를 돌려받고 유대인 자치주를 만들기 위해 협의한 것이다.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는 중동의 맹주로서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수에즈를 되찾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전쟁 종결에 반대하는 전쟁주의자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기뢰를 부설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등 산발적인 반항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전후에도 전쟁의 후유증은 계속 이어졌지만, 한국의 사정은 역사보다 훨씬 양호했다. 빠르게 친아랍 노선으로 전환해 사우디로부터 빠르게 최혜국 대우를 받은 것도 그렇고, 연탄업체들과 힘을 합해 연탄을 크게 비축해 둔 탓에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이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나는 동안, 강태준은 전자 사업 분야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아니, 흑백 TV를 오일 쇼크 종전 가격으로 그냥 판매하자고?”
“점유율을 높이기에는 지금이 최적의 시점 아니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성운사를 제칠 시기예요. 어차피 조만간 흑백 TV는 보급 포화를 맞을 테니, 악성 재고가 남기 전에 빠르게 정리해야죠.”
지금 일본은 변동 환율제가 발표되어 하루아침에 원가가 평가절상된 상황이다.
구입 부품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는 업체들로서는 원가 상승 압박이 큰 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판매를 전담하는 오성의 이재무는 자못 소극적이었다.
“흠…… 그래서 수익성이 있겠나?”
“우리 회사는 국산 부품율이 높지 않습니까. 관세와 공과금 등을 감안하면 종전 가격을 유지해도 손해가 아닙니다. 손실분은 다른 분야에서 메꾸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이재무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동의했다. 과연 강태준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외환 사정 덕에 가격을 유지할 수 없는 브라운관 회사들로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TV의 점유율이 늘어나던 중 잡음도 높아졌다.
“TV 튜너의 접속 불량 문제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는군요.”
“채널 문제라니 갑자기요? 이유는?”
“그걸 아직 모르겠습니다. 생산 라인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늘어난 클레임에 차대응은 당황했다. 노동자들의 숙련도도 높아지고, 장비를 최신으로 유지해 불량률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였기에 갑작스러운 불량률 급증의 LDB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태준은 뭔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소비자 측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그럴까요?”
“일단, 문제가 발생한 가정들을 방문해서 전수 조사를 실시해 보지요.”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결과, 답은 정말 단순한 곳에 있었다. 에너지 파동으로 일반 가정에서 연탄을 연료로 쓰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튜너의 접속 불량이 늘어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연탄가스가 기계식 튜너의 접속 단자를 부식시킨다고요?”
“네. 아무래도 최근 연탄식 온돌 보급이 급증하면서 발생한 문제 같습니다.”
“허어. 그래서 온돌이 설치된 곳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으로서는 2,200세대 정도 됩니다.”
“그럼 해당 지역 TV 보유자들에게 연락해서 정비사들을 파견하세요. 그리고 튜너 제조 회사에 연락해, 지금 생산부터는 접점을 금도금하도록 하십시오.”
강태준은 곧장 판매 중인 회사 상품을 전량 리콜한 뒤, 연결 접점을 금도금하고 ‘금빛 회로 TV’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그런 노력에 소비자들도 호응했다.
한국에서의 TV 점유율이 10프로 이상 높아진 것이다. 빠른 성과에 고무된 강태준이 다음 목표에 돌입했다.
“차기 양산 모델부터는 완전 국산화를 목표로 가 봅시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언제까지나 TV 하청으로 먹고살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특허야 미국에서 빌려오면 그만이니, 이번에 제대로 해 보지요.”
TV사업부의 호재와 자립화를 발판 삼아,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에서 NTSC 방식 기본 특허를 가져오고 실리콘 밸리에서 자금과 인력을 많이 확보했으니, 충분히 자력으로도 개발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화이트 밸런스 공정만 국산화하면 이제 다 해결된다.’
강태준이 사실 지금까지 TV 국산화를 못 한 것은 지긋지긋한 측정기 때문이었다. 검사와 조정에 측정기를 만들지 못한 탓에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일본에서 이 측정기를 조달하려고 하니 일본 쪽에서는 자기네 독자로 개발한 것이 아니고 TV 생산 업체들과 공동 개발한 것이라고 하며 차일피일 승인을 미루었던 것이다.
일일이 각 회사를 찾아다니며 승인을 받고 TV 서비스 센터에 배포된 매뉴얼을 입수하고, 캐나다 CSA 규격 승인까지 정말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거칠 것 없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백화점 업무를 맡은 광필이가 급하게 전보를 부쳐온 것이다.
“형님, 지금 급히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덕수궁 앞에서 불량품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답니다.”
“아니, 홍보도 아니고 불량품을 대체 왜?”
알고 보니 상공부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은 공산품을 하나씩 불량품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이게 엄청난 대히트를 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의 울분을 토할 기회.
매스컴들이 연일 특집을 꾸려 가며 보도할 정도로 이슈화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