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21화 (321/361)

321화 태백 광구

이건 안 좋은 신호다. 한국의 펀더멘탈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현재의 원유값은 배럴당 2달러 10센트.

원유값이 크게 인상하기라도 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두다간 자칫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

문제점을 인지한 강태준은 상공부를 통해 직접 건의하기로 정했다.

결심을 굳힌 강태준은 곧바로 집권당의 이원석 의원을 찾아갔다. 천경물산의 사주인 이원석은 벌써 3선을 넘는 중진 의원이 되어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탄광산업을 일시적으로라도 되살리자고?”

“여기서 에너지 위기가 닥치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지금 에너지 자원 중 석유 비중이 너무 높은 데다 요새 불안하지 않습니까?”

“테헤란 협정을 통해 정유사와 아랍국 간의 이익 분배 합의가 끝나지 않았나?”

“그거야 일시적인 합의일 뿐 아랍국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세계 석유 시장의 주도권이 7대 석유 메이저에서 산유국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자칫 관계가 틀어지면, 아랍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산유국들은 배분을 55%로 나누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석유 이권의 절반 이상을 국유화했고,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 역시 영국 BP사의 자산을 전부 압류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정황을 보더라도 추가 제재가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랍에서 석유를 큰 폭으로 감산하면, 저희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용해야만 합니다. 최소한 저탄량을 늘리든지, 수입선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흠…… 지금 와서 그게 효과가 있을 거 같나?”

“구공탄으로 쓰지 못할 저질탄도 가루로 분쇄해 석유랑 함께 때면 발전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일단 대비를 해야죠. 막말로,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겠습니까?”

“세상에. 전쟁이란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설마 그렇기야 하겠나?”

“지금까지 세 번을 내리 대패했으니 이집트도 이를 갈고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저탄량이라도 최대치로 늘려야 합니다. 혹시 문제가 터질 경우 최소 300만 톤 이상이 추가로 필요해집니다.”

금본위제가 플로팅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석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이원석은 전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OPEC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안을 국회에 상정은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석탄 사업은 사양산업입니다. 증산을 하기 위해선 설비를 개조하고,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 재원은 어디서 확보할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쓸데없는 투자를 늘릴 수는 없어요. 석탄공사의 누적 적자는 무려 100억이 넘습니다. 적자를 융자금으로 메꾸고 있는 상황인데, 부채를 더 키우자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탄량이라도 늘려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거기는 돈이 안 듭니까? 탄은 생각 이상으로 관리하기 힘든 물질입니다. 저장량을 늘리면 필연적으로 유실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경제 기획원 쪽 연료대책본부에서는 연료난의 가능성을 지적했지만, 나머지 관료들 대부분은 투자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해외 주재원들 말로는 중동에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아랍권의 긴장이 고조된다는 건 사실이지만, 전쟁은 어불성설입니다. 사다트는 나세르랑 비슷한 과예요. 그쪽은 공격할 생각이 없어요.”

“그건 섣부른 판단입니다. 몇 개월마다 곧 전쟁을 일으키겠다 공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지지율을 결집을 위한 정치적 쇼지요. 사다트는 허세를 부리고 있어요. 게다가 중동 놈들은 애초에 이스라엘의 상대가 못 되지 않습니까?”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 결과는 3전 전패. 게다가 3차 중동전쟁 때의 아랍이 보여 준 추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아랍은 이스라엘을 목에 가시로 여겼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협박은 공허한 법. 그래서 이집트의 도발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랍권에서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소?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이는데.”

“사우디는 중동에서도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고, 저희 한국은 4대 석유 메이저가 모두 들어간 아람코(Aramco)로부터 석유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아랍국 전체가 단결하지 않는 한 저희가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단계적 지분 이전을 고려하는 만큼 석유값이 크게 올라가지는 않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 군사적인 판단으로 볼 때도 비슷했다.

막상 전쟁이 나도,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우세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던 것. 군인들은 깎아지른 모래 벽과 천연 진지로 구성된 바레브 선을 뚫을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벽을 돌파하는 데만 이틀은 소요될 것이고, 그 안에 충분히 개입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소리였다.

“우리 정보망에 의하면, 아랍 국가들은 절대로 단결하지 않을 겁니다.”

군부의 호언장담에 결국 추가적인 탄광 개발 논의는 유야무야되었다.

이원석은 그 소식을 곧장 강태준에게 전했다.

“그래서 탄광 육성은 결국 못 할 것 같다고요?”

“지금보다 저탄량을 20만 톤 정도 더 늘리기로 결정이 나긴 했네만 뭐, 생색내기 수준이지 그래.”

석탄 산업법 개편은 논의조차 못 했고, 조성 사업비 가운데 무연탄 해상 및 오지수송비와 갱도 굴진 보조에 그쳤다는 소식에 광필이가 툴툴대었다.

“정부 놈들은 제정신입니까? 이런 무사안일주의라니 꼭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나?”

“되었어. 법안은 요강만 정하고 구체적인 부분은 시행령에 위임하게 되어 있으니 실제로 예산이 집행되더라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그래서 어쩌려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행동해야지.”

애초에 정부의 대응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경각심을 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소정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강태준은 지체하지 않고 석탄 탄광 수급에 나섰다.

강태준이 처음 방문한 곳은 한국에서 가장 큰 탄광지대인 태백산 지구. 태백산은 생산되는 탄의 90프로가 매장되어 있는 곳이었다. 도계읍을 방문하자마자 광업권 인수부터 타진했다.

“계도 공업소를 말입니까?”

“거기는 탄질이 꽤나 좋다고 들었거든.”

도계읍 상덕리는 천여 명의 근로자가 상시근무하는 곳이다. 함백산층 아래 위치한 탄광에는 약 30~50m 지점에 부존량이 많고 그 밑에 하탄도 광량이 양호해, 2000년대에도 계속 운영했던 민영탄광이기도 했다.

‘나중에도 이름이 들릴 정도라면, 계속 수익성이 난다는 거겠지.’

반면 강태준의 매수 타진에 탄광업자는 매우 반가워했다. 간판도 없이 탄을 캐던 쫄딱 구덩이까지 합하면 40여 개가 넘게 부설되어 있어 광구 권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생각보다 헐값에 광구 매매에 성공하자 강태준은 곧바로 다음 광구도 매입했다.

“생각보다 싸군. 근처의 다른 녀석들한테도 광구를 매입하게.”

“여기 전부 말입니까?”

“일단 핫바지 업자들도 다 긁어모아야지.”

거미줄처럼 엮인 광구의 특성상 혹시 모를 소유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경동 탄광 확보로 교두보를 확보한 강태준은 탄광업체들을 불러모아 회합을 가졌다.

“싸리재 쪽으로 터널 공사를 앞당기자는 말씀입니까?”

“삼척지구에 있는 석탄을 운송하려면 일단 운송비부터 줄이는 게 맞습니다. 태백산을 가로질러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철도 부설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강태준이 가장 급선무로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운송비 개선이었다. 석탄값은 생산 원가에 수송비와 관리비를 가산한 금액으로 결정되는데, 수송 능력의 한계 때문에 부산과 마산, 목포 등 항구도시 주변의 수송은 선박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해상수송비가 철도보다 운송비만 2~3배가 들었던 점이 문제였다.

산지의 석탄을 철도로 수송한 후에 배로 옮겨 싣고 하역을 한 다음 다시 트럭 수송을 하는 탓에, 자연히 시간과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

수송이 아무리 힘들어도 도착지의 석탄값은 일괄 처리되니, 수송비가 많이 드는 지역에는 자연히 기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건 탄광사가 고스란히 적자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 때문에 난공사인 정암터널 공사를 앞당기는 일이 시급했다.

“태백선을 일찍 개통할수록 수송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보다 민간이 할 부분은 최대한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철도 부설은 정부 소관인데요. 저희가 개입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무슨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까. 정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우리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봐야지요. 여럿이 모여서 분담한다면 부담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통 크게 건설비를 쾌척한 강태준의 설득에, 망설이던 다른 업체들도 하나둘 동참했다. 다행히 통리역과 심포역 간에 있는 인클라인 시설을 철도 노선으로 바꾸어 놓은 직후 운송량이 무려 8배나 획기적으로 개선된 전적이 있었기에, 다들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지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강태준은 서독 파견 광부들을 모아 지혜를 모았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장비를 기계화합시다. 광업 생산량을 높이려면 기계화가 제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쵸크를 도입하는 게 어떨까요?”

“쵸크요? 그게 뭡니까?”

“일종의 포크레인 같은 겁니다.”

탄층에 갈고리를 고정했다 걸고 잡아당기면 석탄층이 무너지면서 탄을 채취하는 채굴법이었다. 벨트 컨베이어가 설치된 기계 하측에 석탄이 자동으로 적재되면 몇십 개씩 횡렬로 연결시킬 수 있으니 갈고리 한 번으로 수십 미터를 갉아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효율이 좋다는 겁니까?”

“쵸크가 전진하는 사이, 위에서 석탄은 벨트 컨베이어로 떨어져 탄차에 실려 나갑니다.”

“그럼 다 판 곳은요?”

“석탄을 파 버리면 철제 빔을 연장해서 똑같은 작업을 하면 되지요. 설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설치만 하면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서독으로 파견을 나갔던 광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의 석탄 채취법은 인력 위주의 노가다로, 경사진 갱도를 통해서 탄층에 도달하면 착암기로 구멍을 뚫고 폭탄을 넣어 폭파시키는 방식을 썼다.

이 방식은 인력을 사용하는 중노동인 데다가 갱도 끝에 자연통풍이 불가능해 파이프를 통해서 공기를 주입시켜 줘야 하기 때문에 통풍장치가 고장 나면 끝장이었다.

거기다 탄상 중 있는 갱도에서 발파 작업을 하면 한 번에 석탄을 안전하게 채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탄질이 저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쵸크를 도입하지요. 그 전에 터널 벽에 설치된 갱도 지주부터 전량, 철제 빔으로 대체하십시오. 막장의 경사를 없애야 합니다.”

“예? 그러면 공사 규모가 엄청 커질 텐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이에요.”

강태준은 쵸크 도입에 앞서 생산 갱도의 안전설비를 강화에 힘을 쏟았다. 60년대까지 국내에 쓰던 갱목은 목재량이 부족해지자 콘크리트로 만들곤 했는데, 콘크리트 지주는 탄성이 없어 측면에서 충격을 받으면 쉽게 부서져 사고가 났다.

돈은 생각보다 많이 들었지만, 효과는 경이적이었고. 광원 한 명이 열 사람 몫을 하니, 자동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채굴하면 일 년에 30만 톤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발파 사고가 줄어들면서 탄량이 늘어난 것은 좋았지만, 이번에는 탄질과 관련된 문제가 터졌다.

”탄질이 불량하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무연탄의 발열량이 4,700kcal 정도인데 채굴 과정에서 폐석이 혼입되어 발열량이 줄어드는 경우가 잦다고 합니다.”

보통 5,000kcal 이상은 되어야 시중에 유통할 수 있는 만큼 품질 저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강태준은 바로 탄광업자를 호출해 이유를 물었다.

“탄질 문제가 빈발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그게, 선탄 작업을 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선탄 작업이라는 게 뭐길래 사람이 부족합니까?”

“직접 눈으로 벼럭을 골라 내는 작업이지요.”

당시에는 선탄부가 손으로 이물질을 골라 내는 방식을 썼는데, 개광 초기부터 대부분의 광업소에서 이 방식을 활용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강태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일이 눈으로 말입니까? 그게 제대로 보이긴 합니까?”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이 그래서요. 가능하면 기계로 대체하려 윗선에 건의해 보긴 했지만 묵살을 당해서.”

“이유를 알았으니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바꿉시다.”

대응은 신속했다. 곧바로 선탄장을 증축한 후 와셔 박스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이 손으로 선별하기 힘든 중괴탄의 경우엔 중액법도 도입했는데. 비중이 높은 용액에 채굴탄을 넣으면 잡석은 침전하고 석탄은 액체 위로 떠오르는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방법을 개선하자 탄질도 향상되었다.

열효율이 500~600kcal가량 증대되면서 고질의 탄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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