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20화 (320/361)

320화 주유종탄

강태준은 솔선수범해서 현장 지휘에 나섰다. 물막이 시도 때마다 조수의 흐름이 거세지면서 시공한 물량의 상당수가 유실되고 파행을 거듭했다. 강한 바람에 배가 연쇄 충돌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강태준은 굴하지 않았다. 야밤에 졸음운전을 한 토차에 치일 뻔해 물에 빠졌던 날에도, 횃불까지 들고 밤샘 작업을 독려했던 것이다.

“이거 무슨, 조수가 끝도 없이 밀려오네요.”

“일단 배를 가라앉히고 돌을 차례로 투하하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좌초할 뻔한 것도 여러 번. 조수간만의 차가 7.6미터가 넘고, 집채만 한 바위가 흔적도 없이 쓸려나가는 상황이었지만 노력은 집요했다.

쉴 새 없이 돌을 퍼부어 대기를 얼마나 했을까, 거센 조류가 기어이 기세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마지막 체절이 끝나고 방조제의 양 끝이 이어지자, 등뼈처럼 기다란 방조제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내지르며 서로 얼싸안았다.

“해냈습니다. 해냈어요!”

“다들 수고했어! 고생 많았네.”

완공을 끝낸 공사장에선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졌다. 교차로 투입된 인원만 무려 10만 명, 백경 그룹이 이번 간척 공사를 통해 확보한 지역은 무려 2,000헥타르가 넘었다.

“이제 개답만 마치면 새 땅이 들어오겠네요.”

“농토 개량 사업은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죠. 우 박사님. 제염 준비는 문제없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일단 지하 수위가 높고 투수성이 낮은 지역의 경우엔, 배수로를 만들고 염분 용탈 속도를 최대치로 높여서 실토 사용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생각입니다.”

추가로 대임을 맡은 우순해는 의욕을 불태웠다. 이제 간척이 완료되었으니 갈대, 나문재 등 염해에 강한 내염성 식물을 대량으로 심을 예정이었다. 갯벌을 개량해 만든 토지는 염분 함량과 양분 결핍으로 식물이 자라기 힘든 만큼 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으로 변할 때까지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복만이가 입을 벌렸다.

“무려 5년이라. 생각보다 까마득하군요.”

“그러게, 나처럼 급한 사람은 체하겠구먼그래.”

“뭐, 그 정도는 빠른 거지요. 1차로 조성 완료된 용지는 일단 시험포로 쓰고, 농업특화단지 겸 조사료 재배지로 활용합시다.”

강태준의 사업 포트폴리오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간 백경 그룹은 소소하게 토건 사업을 영위해 오고 있었지만, 시공 능력 평가 순위나 자산 규모에서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산건설과 함께 대형 공사를 마치면서 나름 신뢰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았고, 현장 관리에 필요한 임원진과 세부 공종에 따른 전문 경영인들을 확보하는 부수 효과를 얻었다.

가문리 도로 확장 공사, 저수지 설치 공사 등 큼직한 공사들을 따낼 수 있을 만큼 사업의 스케일도 커진 것.

자신이 붙은 강태준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슬슬 해외 무대로의 진출에 대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국가 정책기조 역시도 같은 방향이었는지, 대통령 역시 연말 기자회견을 통해 해외 진출을 위한 사업 분야를 피력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소득 1,000달러와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중화학 공업 육성이 필요합니다. 지금껏 노동집약적인 소비재 중심의 수출과 제조업이 기반이 되었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중화학공업이 중심이 될 것이 분명하며.]

중공업 드라이브로의 변화에는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영향을 주었다. 베트남전 철수와 함께 북한에서 정찰선 납치 사건까지 터지자, 일각에선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인이 스스로 전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새어 나왔던 것이다.

“미국엔 영원한 적이나 친구도 없고,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키신저의 말에 한국은 대경실색했다.

“베트남만 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랑도 결별하겠다고?”

“지금 그건 전우를 헌신짝처럼 버리겠다는 말 아니오?”

안보에 극도로 민감한 한국 정부는 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전임자인 닉슨이 주기적으로 철군 드립을 날려왔던 터라 단순히 언론 플레이로 들리지 않았던 것.

맥거번이 선을 그으면서 양국 사이의 긴장은 다소 누그러들었지만, 앙금은 계속 남았다.

애초에 한국 정부에서는 군 병기 장비 물자에 관한 기술 자료 교환 부록에 합의하고도 미국이 기술 이전을 미루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사실 내로라하는 경제 관료들은 이제 한국이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섰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서느냐, 아니면 중진국에서 멈추느냐.

중화학 공업에 투자하는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산.

다만 중화학 공업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인 만큼 리스크도 크다.

다행히 강태준에게는 잃어버린 실탄을 충전할 기회가 있었다.

[샤크 어택 흥행 돌풍!!]

[역사상 가장 시원한 상어 영화가 온다!]

백경 그룹이 간척 사업에 고군분투하는 사이, 북미에서 개봉한 샤크 어택이 그야말로 영화관을 휩쓸고 있었다. 개봉 주부터 12주간 경쟁작들을 압살하며 영화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벌어들인 대흥행작이 된 것이다.

영화는 원작 소설에서 많이 각색되었지만, 평가는 찬사 일변도.

블록버스터로서 역사를 새로 쓴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극장 수입을 독식했고, 출판한 책도 증쇄를 거듭하며 누적 판매 4,000만 부를 넘겼다.

무려, 북미에서만 2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두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잭팟을 맞은 영화사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표정 관리를 못 할 만큼 싱글벙글했다.

“21세기 팍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샤크 어택 2를 찍는 게 어떠냐는 소리가 나오는데요?”

“샤크 어택 2? 뭐 상어가 토네이도 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화라도 만들라는 건가?”

“오, 그거 괜찮을 거 같은데요? 오즈의 마법사 같은 분위기도 나고.”

그러자 복만이도 은근히 부추겼다.

“형, 그러지 말고 한 편 더 쓰지요. 형님. 호프만 씨도 은근 부추기던데요.”

“굳이. 커리어에 똥칠하는 건 사양이야. 차라리 고질라나 킹콩이나 다시 찍으시라고 하지. 나는 그냥 원 히트 원더로 만족하련다.”

더 흥미 없다는 말에 광필이가 중얼거렸다.

“아니, 형님!! 그 무슨 섭섭하신 말씀을! 향후 태어날 2세를 위해서라도 저작권을 남겨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인마, 지금 누구 놀리나 이게. 흰머리 안 보여? 그전에 나부터 뒈지겄다.”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습니다요.”

“거, 쓸데없는 소리 말고. 구매하라는 원료 비축 상태는 어떤가?”

무역부를 전담하기로 한 쪽에서 보고를 올렸다.

“석유는 사우디 VLCC 통해서 대량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헌데 올해 연탄 수급은 이번에도 어려울 것 같네요.”

“연탄이 또 왜?”

“이미 공급 물량이 동났다네요.”

“돈이 있어도 못 산다니. 그게 무슨 되먹지 않은 소리야.”

“뭐긴 뭐겠어요. 정부 정책 때문이죠. 주유종탄이라나 뭐라나. 채탄량이 몇 년 새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이니 어쩌겠습니까. 서울에선 연탄 아궁이까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라. 다들 석유 곤로로 바꾸는 추세랍니다.”

“아니 벌써? 바꾼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니까요. 이게 다 개념 없이 오락가락하는 관료들 탓이지, 누구 탓이겠습니까?”

몇 년 전 한파가 일찍 닥쳐 연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정부에서는 물가 인상률을 8% 선에서 동결시킨다는 방침 하에 연탄 가격 통제에 나섰다.

하지만 그런 정부의 압박은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왔다. 비현실적 고시가격이 되려 판매에 위축을 가져온 것. 한 장에 15원짜리 연탄을 8원에 묶어 버렸으니, 누가 손해 보면서 팔겠는가.

무연탄이 현지에 쌓여 있는데도 실제 소비자들은 연탄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고, 외곽에서는 연탄 가격이 고시가의 세 배가 훨씬 넘게 치솟는 암거래가 성행했다.

수요와 공급의 차이로 인해 대량으로 얼어 죽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다음 해, 정부는 연탄 생산을 늘리라 주문했지만, 이번에는 저질 탄광이 무더기로 폐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급 과잉 덕이었다. 전처럼 석탄 파동이 나야 그나마 현금 거래가 되는데, 재고가 급속히 늘어나자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겼고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해 파산한 업체들이 속출한 것이다.

사재기로 석탄값이 널뛰기를 하며 톤당 3000원이 넘어 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견디다 못한 정부 각료들은 석탄 산업 위주의 정책을 바꾸자 건의를 올렸다.

“국내 무연탄만으로는 향후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의 절반도 감당 못 합니다. 국내에 잔존한 탄은 대부분 저급의 무연탄광이고 양도 적지요. 50년도 못가 고갈될 자원에 투자하는 건 멍청한 짓입니다.”

“맞습니다. 각하, 앞으로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트랜드입니다.”

산업 합리화 측면에서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탄광업은 그 특성상 큰 규모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데다 한국은 지형상 한 곳에 대량의 석탄이 집중 매장된 경우가 드물다. 거기다 탄층이 굴곡되어 있어 채취가 어려운 점도 문제였다. 원가가 상승하고 좋지 않은 운송 사정까지 겹치자, 석탄이 더 이상 가성비가 좋지 않은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러던 와중 중동에서 싼값의 석유가 무더기로 나왔다. 그래서 정부는 무연탄 위주의 난방 연료와 발전소를 죄다 벙커시유로 대체하는 등 유류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개편했고, 가정에서도 석유곤로와 석유 보일러가 속속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벌써 연탄이 바닥났다는 게 말이 되나?“

“국영기업과 대기업에 유류로의 대체를 의무화하고, 다방이나 접객업소에까지 기름 사용을 강권하고 있으니까요.”

“역시 추진력 하나는 세계제일이구먼.”

혹시나 싶어, 강태준은 구체적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삼척의 탄광촌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실무진을 만난 강태준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했다. 67년 이후, 5년 만에 전체 갱도의 2/3가 폐광 상태에 빠졌다는 소리. 생산 산원의 300만 톤 이상이 체화되어 버린 관계로 저질탄 탄광은 거의 다 폐광 상태라는 소리에 심각성을 절감한 강태준이었다.

“그래서 한 해 가용 가능한 석탄 생산이 얼마나 됩니까?”

“대략 820만 톤 정도입니다.”

“820만 톤이요? 공급량이 딸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이월분으로 220만 톤 정도는 밀어 쓸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탄광 산원이나 저탄장에 있는 것을 긁어 내면 얼마간은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심되는 수치가 전혀 아니다. 발전소에 유류 공급이 부족해지면 무연탄이라도 떼어야 하는데, 오일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전국의 발전소가 멈추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오재갑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총 에너지 대비 공급 석유 비중이 68프로라니. 이건 심한데요?”

“그러게요. 여기서 외부에서 타격이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이건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군.”

경각심을 느끼게 한 것은 역시 산업상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점. 원 역사에서의 석유 비중이 대략 50프로 선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의존도가 너무 높지 않나.

더 문제인 것은 연탄에 대한 정부의 소홀함이었다.

산업화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된 덕에 연탄과 연소기구에 대한 연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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