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19화 (319/361)

319화 최종 체절

“선단을 구성해서 흙과 골재를 나르라는 말입니까?”

“그건 너무 험한 일인디. 현장까지 나르는 게 보통 흉악한 일인가? 맨손으로 날라야 하는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니 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삯은 십장급으로 챙겨 드리지요.”

관제식이니 군대식이니 하는 비판도 있었지만 속도만큼은 확실했다. 공사가 속속들이 진행되면서,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정부 고위 정책 담당자들이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조속 시공을 독려하는 등 생색내기에 나선 것이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둘 만큼 규모가 큰 공사다 보니 관료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유력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사이비 기자들도 엉겨 붙기 일쑤였다.

“거제시는 불법 허가한 매립 공사를 취소하라!”

“사업주는 즉시 토지 매립을 중단하고 원상복구해라!”

어딜 가나 돈이 들어가는 곳에는 날파리가 등장하기 마련.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촌평화 대책위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추가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며 드러눕거나 공사장을 습격해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공사를 멈추고 원상복구부터 해야 한다며 떼를 쓰기도 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공사장까지 불쑥 방문하는 막무가내도 종종 있었다.

“강 회장 어디 있어! 강 회장!”

“방금 전에 현장 점고 끝내고 옮겨 가셨습니다.”

“아니 벌써? 식사시간 아닙니까?”

현장 직원들이 친절히 안내해 주었지만, 강태준을 만난 행운아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넓디넓은 현장을 돌며 쫓아다니다가 제풀에 지쳐 돌아가는 일이 부지기수.

설마 한 그룹의 회장이 노동자들과 같이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인부들과 섞여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해면 위를 종횡무진으로 누빈 탓.

본의 아니게 불청객을 물 먹인 강태준은 오늘도 공사를 단축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강관 타설 후에 모래 말뚝이 부서지는 경우가 많다고?”

“예. 그뿐만이 아닙니다. 멘드렐의 관입력 때문에 드레인이 절단되거나 뻘이 유입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컨테이너용 FIBC 포대가 좀 남지 않았나. 그거 재활용해서 속을 채워 써 봐.”

강태준은 연약 지반 개선에 필요한 단기 압밀을 위해 별짓을 다 했다. 전방에 복토재를 뿌리고 벨트 컨베이어로 밀어 버리거나, 그것도 모자라 침식 우려가 있는 곳은 일일이 구조물 양옆에 돌기를 넣은 후 양쪽에 끼워 넣기 식의 공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암반이 없는 지질층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 낸 다음, 기초 공사를 하고 파일을 타설하여 침식에 대비하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였다.

배수갑문 공사가 완료되어 내외 수위 차를 조절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무렵, 난관에 부딪힌 수뇌부에서는 최종 체절과 관련해서 밤샘 논의가 계속되었다.

간척 공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물막이 단계에 관한 논의였다.

“이제 곧 장마라 강이나 호수의 수위 변동이 있으니 파이핑 현상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기존 공법대로는 힘들까요?”

“범람 수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공사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커서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최종 체절 구간을 남겨 둔 실무진의 의견이 엇갈렸다. 당시 공사에서 쓰이는 공법은 통나무로 잔교를 설치한 다음 교각에 사석을 투입해 충전하는 방식인 점축식이었는데, 일부에서는 체절 구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사석제의 점고식 축조 공법을 사용하자 주장했던 것이다.

“완전 월류 시까지는 점고식, 그 이후는 점축식으로 시공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충격량은요?”

“강이 만나는 상류와 하류 쪽에 보조 댐을 세워서 임시 배수로를 만들기로 하죠.”

양쪽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결국 교통정리를 한 것은 강태준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막바지 작업에 도착했다.

“이제 이것만 마치면 1차 간척 공사는 완료군요.”

“아직 끝이 아니지 그래. 일단 8, 9월을 무사히 넘겨야 할 텐데 말이야.”

“어여, 참. 너무 걱정 마십쇼. 대조 기간만 넘기면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러면 다행이련만.”

“이 사람아, 그렇게 걱정 마시고 잠이나 좀 제대로 자게나. 무슨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그러다가는 몸 망가져.”

“하하. 일부터 끝내고요.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 않습니까?”

“사서 고생하다 골병들지 말고 적당히 요령도 피우게.”

쯧쯧거리는 장원영의 말에 눈 밑이 검게 변한 강태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홍수로 공사장이 쓸려내려 간 것을 목격했던 강태준으로서는 도저히 그 정도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잔교 설치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으로 물량을 투입해, 마지막 물막이에 도전하기로 공정 계획을 잡아 놓았을 즈음이었다.

우르릉~~~

번개와 호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기를 며칠간. 비가 점점 굵어지면서 공사장 전체가 물에 잠겼다.

[오늘 새벽 일본 동북부 지방에 폭풍 해일이 발생했습니다. 해일의 평균 파도 높이는 약 15미터. 태풍 올리브가 일본 오키나와 해역에서 북상 중이며, 기상청은 오는 8시를 기해 폭풍 해일 주의보를……]

때는 추석 직전, 그렇게 걱정했던 일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파도의 물결이 먼바다에서부터 순식간에 해안가로 밀려들더니, 점차 높아진 파도가 제방을 삼켜 버린 것이다.

노도처럼 밀려든 물이 제트기 속도와 맞먹는 속도로 이동하면서 제방을 순간적으로 밀어 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

그간 인부들이 쌓은 땀과 노력이 허망할 정도로 엄청난 파도가 쓰나미처럼 공사장 전체를 덮어 버렸던 것이다.

“완전히 끝장났어. 이거.”

“이거 어떡하나. 이거야말로 천재지변이구먼.”

땅이고 뭐고 뒤집힌 채로 초토화된 공사장에, 강태준은 맥이 탁 풀렸다. 그렇게 염려하고 또 염려했건만 결국 자연의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현장이 망가지는 것을 보다 못한 인부들 몇이 돌을 넣어 충전식으로 쌓다가 밑이 꺼지면서 변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실종 사고까지 발생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1차 방조제 공사의 성공 이후 우호적으로 돌변했던 여론도 마치 제철을 만난 듯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패한 거제도 간척 사업, 국고 300억 허공에 뿌려.]

[환경영향평가 없는 졸속 행정 때문, 인명 사고는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

[백경그룹 주가 하락. 오너 리스크 현실화되나]

각지에서 성토가 이어졌지만 강태준은 침묵을 지킬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현장 복구 작업에 발목을 잡힌 동안, 시행청인 건설부에서는 학계 권위자들을 초빙해 심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책 마련을 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토련과 강산건설, 건설부에서 온 공사 관계자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

대책회의는 길어졌다.

나름 공사를 위해 중지를 모았지만 누구도 선뜻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무려 시가로 300억이 물에 잠겼습니다.”

“일단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중간재를 축조해서 부분 체절 방식으로 건설을 재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댐을 다시 세우라는 말이오? 그렇게 하면 비용은?”

“약 100억 정도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이…….”

“이 사람 미쳤나? 지금 나라가 어려운데 예비비까지 끌어모으라는 거요? 자네가 대통령께 직접 보고해 보시든가?”

기술 관료 출신인 건설부 장관의 시선이 멎은 곳은 강태준이었다.

“강 회장, 그렇게 가만히만 있으시지 말고 어디 지금 말씀 한번 해 보십시오.”

몰려드는 시선을 느낀 강태준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지금 단계에서 부분 체절로의 설계 변경은 불가능하다 사료됩니다.”

“뭐요?”

“여기서 다시 설계를 변경하면, 추가 공기가 얼마나 늘어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부분 체절을 한다고 해서 조류의 유속을 견뎌 낸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강태준은 찬찬히 현장의 사정을 설명했다. 쇠말뚝을 박아 가며 설치한 통나무 잔교가 단숨에 뽑히고 50m가 넘는 제방이 조수에 떠내려가는 상황.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폭탄을 이고 가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체절 구간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물살은 점점 거세질 겁니다. 결국 다량의 골재를 한꺼번에 투입해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물길의 흐름을 잡으려면 결국 물량뿐이지요. 돌망태를 차례로 투하할 생각입니다.”

강태준이 제시한 묘안은 단순했다. 풍선배에 돌을 가득 싣고 만조와 간조 사이의 조수의 흐름이 적은 시간대에 배를 가라앉힌 다음. 집중적으로 돌과 흙을 부어 물살을 막겠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신공법에 장관은 반신반의했다.

“아니, 그게 정말로 가능하겠소? 작업이 가능한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 네 시간 정도밖에 안 될 텐데요. 그렇게 하면서 어느 세월에 끝낼 수 있겠소?”

“선택과 집중의 문제지요. 일단 해 보기 전에는 어차피 가능성도 반반 아니겠습니까?”

“아니. 세상에 저런 공법이 있기나 한가?”

“불가능한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한 번에 3톤 이상씩 쏟아붓는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실무진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법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가만히 돌아가는 사정을 들어 보던 장관의 얼굴에 침중함이 어렸다.

“이건 국가사업이요. 강 회장. 만약 안 되면? 그때는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강 회장, 그렇게 단순하게 말씀하실 일이 아니요. 이건 당신 목 하나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때는 저도 책임지지요.”

“장 사장님?”

“충분히 물리적으로 가능한 공법입니다. 성공을 못 한다면 저도 옷을 벗겠습니다.”

장원영과 이혁진 국장까지 자리를 걸고 강태준을 옹호하자 분위기는 뒤바뀌었다.

“알겠소. 거 참. 그럼 맘대로 하시구려.”

시공과 감독 책임자 둘이 한사코 중간 체절 방식을 반대하고 나서니, 장관도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위임한다는 약속을 받아 낸 강태준이 둘에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장 사장님. 이 국장님.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다니 제가 민망하네요.”

“원래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 그리고 혼자 죽는 취미는 없어.”

“그러게. 강 회장이 그렇게 나설 때는 대충 확신이 있어서가 아닌가.”

모두가 강태준의 노력을 지척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인 만큼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 노력에 다들 감화되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해야 되나?”

“전국의 트럭과 골재 수송용 어선을 최대한 끌어모아야지요.”

크레인과 돌망태를 투하할 바지선까지 동원한 총력전.

마지막 체절을 앞두고 강태준은 거의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웠다.

그전에 거의 열두 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4시에 나왔는데, 이제는 시공 관련 서류를 살피고 공정을 확인한 후에야 겨우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곤 했다.

그야말로 인간으로선 하기 힘든 강행군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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