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18화 (318/361)

318화 건설 현장

공사장 관리가 한결 수월해지자 사업의 능률도 많이 개선되었다.

동기 부여라는 것은 사소한 것에서 발생하는 법. 강태준이 다시 말했다.

“앞으로는 품삯 정산을 현금 박치기로 해 주게.”

“네? 전표가 아니라요?”

“아무래도 정산이 빠를수록 좋지 않겠어? 인부들에게는 그편이 더 나을 것 같아.”

전표보다 값을 조금 싸게 주는 대신 정산을 당일치기로 해 주는 것은 서로 나쁠 게 없었다. 사실 하루벌어 하루 사는 인부들로서는 더 선호되는 조건이었다.

더욱이 현금 박치기로 자잿값을 해결하면 자재 구입에도 적용해 싼값에 물품을 들여놓을 수 있어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아낄 곳을 생각했다.

“한 번 사용한 자재도 최대한 재사용하는 편이 좋아. 쓸 만한 자재는 다시 써.”

시시콜콜한 부분이었지만, 공사의 규모가 워낙 엄청나다 보니 절약되는 금액도 보통이 아니었다. 짠돌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태준으로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뭔가 시방 계획과 자재 수요가 맞지 않아. 성토 단면도 그렇고, 조수 침투로 계산이 정말 맞는 것일까?’

건설 전문가라고 하기는 뭐 했지만, 사업가로서의 직감이 경고하고 있다. 간척 공사는 만조 시 해수로 덮이고 노출되는 해양 간사지 위에 제방을 쌓아 조수를 차단하고 내부에 쌓인 물을 자연 배수시켜 육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여기서 수심과 조류의 차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을 경우, 필요 자재량과 관련된 오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비한 사전 조사를 토대로 이루어진 설계는 금세 잡음을 일으켰다. 조수의 흐름과 속도는 물론, 지형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탓에 설치 중이던 방조제의 종점에 힘들게 쌓은 제방이 바닷물에 심하게 깎여내려 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지지력이 약한 토양 탓에 수십 톤의 골재가 떠내려가는 피해가 빈번해지자 결국 강태준도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공사를 계속하기 힘들겠군요. 대회의를 소집합니다.”

강태준은 미래건설 출신 간부들과 8개 하청 회사의 대리인 공종 책임자들을 불러 공사 지속 여부와 시공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설계와 시방이 실제와 동떨어진 것 같은데 맞습니까? 지층 조사도 제대로 된 것 같지 않고요.”

“아무래도 설계가 실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이쪽 지역 대부분은 세사질 토양이더군요. 미약 지반이 생각보다 많고 유속이 빨라 구조물의 규모를 더 크게 잡아야 합니다.”

하청 회사 관리인들의 성토에, 설계와 기술 감리를 맡은 토련과 건설부 관계자는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나름 간척 공사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이 있는 미래건설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강태준이 나섰다.

“지금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니 속 시원히 말씀해 보십시오. 어떻게 된 겁니까?”

결국 토련 관계자가 사정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예전에 추진했던 간척 공사 때 사용하던 도면을 사용해 실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없어서…….”

이 사달은 무조건 빨리 시행하라는 정부 입김에 말려 기본 조사를 졸속으로 처리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간척과 관련된 정밀 조사를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는 소리에 어이가 없어진 강태준이었다.

“그럼 설계도는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일제 강점기 때 세운 2,000보짜리 방조제 축조 단면을 모방해서 만들었습니다.”

“아니 그럼, 아무런 조사도 없이 공사를 강행하게 했다 그겁니까?”

화를 내지 않으려곤 했지만, 자연히 혈압이 솟을 일. 그러나 성을 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화를 삭인 강태준이 조용히 물었다.

“설계 결함이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 얼마나 걸립니까?”

“최소 6개월은 소요될 겁니다.”

강태준은 고심에 빠졌다. 이렇게 되면 사업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공사는 일단 중단하지요. 설계 시방서가 다시 나올 때까지 당분간 공사는 보류입니다.”

“진심이십니까? 그렇게 되면 공기가 엄청나게 늘어날 겁니다.”

“맞습니다. 회장님. 전면 중단보다는 일부는 계속 진행하면서 현실성 있게 수정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대규모 간척을 통한 농지 개발은 자본 회임 기간이 매우 긴 데다가, 경우에 따라선 공기가 무한정 늘어날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칫 잘못해 감독관청에 밉보이기라도 하면 공사 자체를 취소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 단계에 있는 공사를 다시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은 강태준은 물론이고, 백경그룹에도 치명타를 안겨 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강태준은 단호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고쳐서 될 일이 아니에요. 기초 설계부터 잘못되었으니 시정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을 시정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어요.”

강태준은 회의가 끝난 즉시 주무부처인 농림부 관계자에 의견서를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 농림부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결국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도와주기로 했다.

미국의 건설 전문 연구기관에 보내 설계를 두 달 넘게 재검토한 결과, 이들이 내린 결론은 도면상 시공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강태준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된 셈이었다.

결국 FAO와 ICA의 자문하에 전반적인 재설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단 신뢰를 잃은 한국 기술진의 조사나 설계를 무시하고 굴프 사 전문 기술진의 자문을 얻어 재시공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산이 발목이 잡았다.

설계를 마친 결과가 예산은 당초보다 100프로 이상 증가된 360억에 달했던 것이다.

“이거는 너무 액수가 큰데. 국회에서 이 금액을 통과시켜 주겠습니까? 거품을 물 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아니, 지들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도 우리 탓을 한단 말입니까?”

“아전인수를 기본기로 탑재하신 분들이 많아서, 애초에 사업 계획서를 제대로 읽어 보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럼 직접 듣는 것보다는 제3자를 통하는 게 어떨까요. 유엔 산하 ECAFE(국제 협력국 기술원조기금) 쪽으로 접근합시다. 그쪽이 수정 보완을 하라고 말하면 국회도 쉬이 거절하기 어렵겠지요.”

“아, 그거 묘안이군요. 어차피 개발 원조를 받는 입장에선 함부로 입을 열기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추후 강태준은 1개월간 정밀 조사를 하면서 국내 기술진과 합동으로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국 정부로서 거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국회에서 격한 구두 공방이 벌어지긴 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 부담을 가져서일까. 국회는 증액 예산 자체를 삭감하지 않고 순순히 통과시켰다.

그렇게 설계와 시방을 재검토하며 공사가 멈춰 있는 사이, 강태준은 공사 전반을 검토하고 대수술에 들어갔다.

“이거,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구만요.”

“그러게. 세상에 증기 동력 기관차라니, 지금까지 이런 걸로 운반을 했다는 건가?”

강태준이 살펴본 현장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골재를 축조 현장까지 운반하는 과정마저 생각 이상으로 원시적이라는 점도 충격이었다. 발파를 마친 석산에서 채굴된 방대한 양의 흙과 돌을 1입방미터가 조금 넘는 손수레에 실은 다음 협궤 레일에 올렸다.

그런 다음 일제 강점기 때 하던 그대로, 소형 증기 동력 기관차에 연결해서 축조 현장까지 나르는 방식을 썼는데, 이 과정에서 인력과 시간 손실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석산과 공사 기점에의 거리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지만 현장 사이에 레일을 까는 것도 일이었고, 하도 험하게 쓴 탓에 레일이 공사 진행 중 닳아 없어지는 일도 잦았다. 덕분에 증기차가 멈추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협궤 레일은 어차피 소모품이니 되는 대로 수매하게. 고쳐지면 그냥 수리하지 말고 바로바로 바꿔 끼워. 그리고 연료는 카보나이트로 교체하도록 하게.”

“카보나이트? 천연 코크스 말입니까?”

“그래, 화석연료 수급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야지.”

미국이 데탕트 노선으로 선회했다고 해도 아직 냉전적인 긴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욱이 금본위제 폐지 후, OPEC에서는 미국의 저유가 정책에 대해 지속적인 불만을 계속 표해 왔다.

화약고가 된 중동에서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는 나비효과를 경험한 강태준으로서는 꼭 자기가 생각한 대로 역사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공사에 직격탄을 맞을 일은 피해야지.’

혹시나 해서 오일을 부지런히 비축해 두고는 있었지만 충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대체재로 선택된 것이 바로 천연 코크스였다. 카보나이트는 지속성은 떨어지지만 순간 화력은 더 좋았고, 무엇보다 전시 필수물자에 속해 잉여 자원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전국을 수소문해 레일을 수급하고 부족한 것은 일본 쪽에서 수입했다. 하지만 강태준은 곧 다른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간척지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이었다.

항구와 가까운 곳이면 상관없었지만 육로로는 마땅한 길이 없는 장소에까지 골재와 사석을 그것도 손실 없이 운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바지선으로 나르는 건 어렵겠습니까?”

“아마 힘들 겁니다. 수로가 너무 좁고 길이 험해서 잘못하면 침몰할 수도 있어요.”

푹푹 빠지는 지형인 관계로 덤프트럭도 들어가기 힘들다고 했다. 뜻하지 않은 복병에 골머리를 앓던 강태준이 복잡한 마음으로 현장 주변을 서성이는 사이, 남아 있는 아이들이 병정놀이를 하는 것이 보였다.

‘잘들 노는군.’

부모가 일을 나간 탓에 학교에 나가기 어려운 어린아이들만 집에 남아 있다고.

작은 어촌 마을이 흩어져 있는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해안가에 정박한 배들이 눈에 띄었다. 꽤나 오래 사용하지 않았는지 꽤나 먼지가 쌓여 있었다. 새벽같이 나가서 불철주야 어로 활동에 종사해도 모자를 판에 저렇게 방치해 둔 배를 보자 뭔가 기시감이 든 강태준이 현장소장에게 물었다.

“저 배들은 어째서 쉬고 있습니까?”

“그게…… 우리들 때문입니다.”

“우리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설마 공사가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회장님. 오히려 반대입니다.”

눈썹을 추켜세운 강태준에 난처해진 현장소장이 서둘러 사정을 설명했다. 다들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었지만, 어업보다는 당장 현금을 즉석에서 받아 쥘 수 있는 노동일을 선호한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바닷일이란 게 험하고 위험하지 않습니까. 무동력선을 타고 가서 조난당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지요. 게다가 저희 공사장은 품삯도 후한 편이니까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을 빼면 거의 7~8할이 넘게 지원했으니 휑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는 소리에 강태준은 어이가 없었다.

“현장 인부로 자원한 지역민들이 그 정도로 많다고요?”

“많죠. 어린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이쪽 일에 지원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해안가에 세워져 있는 배 대부분이 무동력 목선이었다. 특별히 수심이 낮은 곳에서도 파도에 잘 적응하도록 항아리처럼 가운데가 불룩하게 나온 모습이 풍선처럼 생긴 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해안에 방치해 둔 배를 활용해서 골재를 운송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고깃배를 말입니까?”

“그래요. 보아하니 수심이 낮은 곳에서도 잘 움직이게 생겼네요. 조류 흐름에도 잘 적응하지 않습니까? 한번 해 봅시다.”

공사가 재개되기 무섭게 강태준은 풍선배의 주인들을 일일이 불러 모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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