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17화 (317/361)

317화 간척단 사업

그는 이번에 시공사업단에 파트너로 참가한 장원영이었다.

형과 중동 진출을 놓고 싸우던 그는 미래건설과 결별 후 강산그룹을 세워 토목 분야에서 활약하던 중 강태준의 SOS를 받고 사업단에 합류했던 것이다.

“아니, 부산 쪽 일은 벌써 정리 끝나셨습니까?”

“그럼 이렇게 큰일을 두고 잠이 오나. 마음이 급해야 말이지. 현장 단도리는 내가 다 쳐 놨어.”

가구 수 120호에 불과하던 마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백경그룹의 현장사무소는 3개 분소로 나누어져 건설 중이었다. 제일 규모가 큰 2분소를 중심으로 무려 4,000여 명에 달하는 인부들의 숙소와 함바, 창고들이 즐비하게 세워지는 중이었다.

공사용 자재가 곳곳에 산을 이룬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옆에는 적재함을 개조한 120여 대의 미제 트리쿼터와 양철로 재조립한 GMC를 비롯, 닷지 트럭들이 일대에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모두 베트남전 이후 가져온 중고 장비들이었다.

“보아하니 거의 새거나 다름없더구먼. 저런 걸 그냥 꽁으로 가져오다니, 무슨 조화를 부렸나?”

“하하. 그거야 비밀입니다. 궁금하면 베트남까지 따라오시든지요.”

“뭐야?”

그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두 분, 여기서 무슨 작당 모의를 하고 계셨습니까?”

“내가 병구 자식인 줄 아나? 사람 잘못 봤어.”

“여어, 서남현 세관장님 아니십니까? 여기서 뵐 줄이야.”

“어, 강 회장님!”

특공대 밀수에서 공을 세운 후 승승장구한 서남현은 어느새 세관장까지 승진해 있었다.

경력이 쌓여서인가. 예전의 풋풋함보다 노련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강태준이었다.

“세관원들이 이렇게들 많이 오다니 이거 부담이 크군요.”

“하하 그만큼 정부에서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소식 듣고 놀랐네요. 통 크게 감시정까지 쾌척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불철주야 공익 활동에 애쓰시는 중인데 시민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그것밖에 못 해 드려 죄송하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힘이 될 듯합니다.”

서남현이 바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제 앞바다에는 자재를 실은 100여 대의 통통배와 전마선들이 쫙 깔려 있었다.

거듭 감사를 표한 서남현이 자리를 비우자, 장원영이 농을 했다.

“세상에, 감시선을 이름을 태준호라고 붙이겠다니. 짓궂기도 하지. 이거, 자네 처신 잘해야겠는걸?”

“거참 자꾸. 놀리지 마십쇼. 현장 분위기는 어때요?”

“도떼기시장이지 뭐. 공사 난이도도 그렇고, 어떻게 할지 의견이 분분하지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직접 봐야 알 걸세.”

천막 안으로 들어간 장원영이 거제 일대의 지도를 펼쳤다.

시공서를 읽어 본 강태준의 이마가 좁아졌다.

“사면에 호안을 축조한다고요? 이건 원래 계획과 다른데요?”

“낸들 아나. 윗선에서 그렇게 만들라고 했지 뭔가.”

설계 변경의 이유는 단순했다. 이번 공사로 식량 불균형을 시정하고, 전력 배양의 원천으로 광범위한 농지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매립지는 무조건 아일랜드형으로 만드시오. 공유수면을 메워서 만드는 만큼 계획상 공공시설 용지가 50퍼센트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하오.

사실 장성량 의원으로서는 지역구를 걸고 추진한 일인 만큼, 사업의향서를 제출할 때 예산을 따내기 위해선 다소의 윤색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윗선이 그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고현 일대를 넘어 장평, 사등면 사곡까지 공유수면을 매립해 택지를 조성하겠다는 방향으로 계획이 수정되었고, 급기야 공공시설 용지를 상향 조정하는 한편 공원 규모를 확대하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럼 수로까지 따로 설치해야 되지 않습니까. 시공비가 아마 150억은 넘을 텐데요.”

“뭐, 좋게좋게 생각하게. 공사비가 늘어나서 나쁠 건 없잖나? 어차피 우리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금만큼 땅을 받아 가는 셈이니 말이야.”

“씁. 뭐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노후 제방을 축조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본격적인 시공 전에 텐더게이트 설치를 위한 임시 공사부터 시작하기로 한 강태준은 현장 지휘소에 관리 책임자들을 불러모았다. 규모가 생각보다 커진 만큼 본인이 직접 제방 축조 진행을 살피며 현장을 총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농림부는 물론 관청과 지역 수리조합 관계자들이 시공 역량을 예의주시하고 있어.’

총 역량을 간척 사업 체제로 전환하고 본부를 제외한 토건 쪽 직원들을 현장에 투입했다.

“사옥 옥탑에 무전실을 차려서 시간별, 날짜별, 공종별로 현장을 철저히 확인하세요.”

강태준은 일주일에 두어 번씩 현장을 찾았고, 일요일이면 본사 간부들과 함께 즉석 회의를 열어 시공상 문제점을 확인했다.

여기서는 미래건설의 장원영도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시공에 빈틈이 보이면 의문을 해소할 때까지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장원영의 군기 잡기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어서, 준비나 사전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불같은 호통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다름 아닌 국토건설단 사람들이었다. 당최 협박이고 회유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자식들 어디 갔어. 또 태업이야? 아주 말을 제대로 안 들어 먹어요.”

“이놈의 자식들이 진짜. 이런 간단한 것도 못 해?”

“일은 겁나게 안 하면서 먹기는 또 아귀처럼 먹으니 밥버러지가 따로 없어요. 놈들 때문에 시공 능률이 도통 오르지를 않습니다.”

정부 쪽에서 범국가적으로 벌이는 재건 운동의 일환으로 모은 국토건설단은 거창한 이름과 달리 실상 깡패나 건달 같은 놈들을 몰아넣은 집단이었다. 정부는 사회의 골칫거리인 이들을 간척 사업과 댐 건설에 몰아넣어 정책 사업의 국토 예산을 절감하고 범법자들을 교화하려 했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애초에 기술이 없어 단순노동밖에 못 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데다, 통제를 틈타 음주와 싸움질만 벌이기 일쑤였던 것.

심지어 감시를 안 하면 일손을 놓고 태업하는 게 다반사였으니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더니. 참. 아주 대놓고 물을 흐리는군요.”

“조회 때 주지시키지 않았습니까?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이 대해 줄 것이고, 성과를 내면 보너스도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강태준의 말을 들은 현장소장이 한숨을 쉬었다.

“소용없습니다. 싹수가 원래부터 노란 놈들이라, 작업장을 찾아가서 사기를 북돋기도 했지만 안 믿더라고요.”

“이참에 정부에 이야기해서 차라리 짤라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입니까?”

“골통도 그런 골통이 없어요. 함바집에 외상을 떼먹어서 쌀도 들여놓지 못할 지경이라니 도대체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지 말입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녀석들을 맡은 십장들은 하나같이 학을 떼었다. 상명하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이 공사판인 만큼, 말단 현장의 질서가 흐트러지면 사소한 작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가다판의 상례 상 수십 명의 십장에 의해 현장을 움직여야 하는 대형 공사의 경우 이런 태업은 충분히 우려될 만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강태준은 신중하게 처신했다.

“일단 두고 봅시다. 아직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연 10프로 이상의 인플레와 높은 실업률 때문에 공사판을 찾는 실업자들이 수두룩하니 따로 아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정성택을 통해 깡패들을 여러 번 봐 왔던 그로서는 조금이나마 갱생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가족과 떨어진 채 강제로 노역에 투입되어야 하는 마음이 오죽하겠나.

예전에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서일까. 말단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을 각별하게 생각한 강태준은 몰래 함바집 외상을 갚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배려를 모르는 녀석들은 사고 치기 일쑤.

오히려 쉬는 시간만 되면 삼삼오오 뒷담화를 까기 바빴다.

“아우 힘들다. 스벌 무슨 놈의 일이 안 끝나냐.”

“그래도 여기는 딴 데보다 좀 낫지 않습니까. 그나마 사람 대우는 해 주는 곳인데.”

“그러게요. 십장들도 욕질 안 하고 꼬박꼬박 존댓말도 쓰던디요. 밥도 제때 주고, 간식도 챙겨 주고.”

“강태준 회장이란 사람 물건이긴 한 듯해요. 다른 재벌이랑 다르게 사람 냄새도 좀 나고.”

“그래요. 그 인간 대단하던데요. 우들이랑 같이 현장에서 먹고 자고 한다던데.”

“어이, 제동아. 있는 놈들 검은 속을 그리도 모르나. 그 회장이란 놈팽이 우리들 델꼬 얼마나 챙겨 먹는지 알아? 두당 인건비 받아 처먹고 삥땅치려는 게지.”

“하긴. 이유 없이 잘해 줄 이유가 없지 그래.”

그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윗선에 털리는 것이 일상이던 녀석들로서는 평범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잠시 후, 손목시계를 본 노동자 하나가 손을 툭툭 털었다.

“암튼 난 이제 들어가 보겠수.”

“벌써?“

“십장 놈 순시 돌 시간이여. 잔소리 듣기 싫어서. 형님은 안 들어가나?”

“난 소피 좀 보고. 어여 들어가.”

일행이 사라지자 잠시 후 하이바를 내려놓은 노동자가 쭈그리고 앉아 연초를 태웠다.

하지만 곧 쿵 하고 발파 소리가 울리자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에이 시발…… 또 시작인가?”

일하기 싫다는 생각에 오만상을 찌푸리는 녀석. 잠시 서성이던 녀석이 툭툭 발을 털곤 공사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재수 없게도 발파 간 튕겨 나온 돌이 쌓여 있던 자재를 건드렸다.

그러자 겹겹이 쌓여 있던 통나무가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어어!!”

무방비 상태로 얼을 타는 녀석. 때마침 녀석의 몸을 잽싸게 밀치는 손이 있었다.

“어어, 조심해!”

잠시 후 먼지가 걷히고, 자신이 있던 곳을 확인한 녀석은 화들짝 놀랐다. 방금 있던 장소에 큼직한 통나무가 세로로 박혀 있었던 것이다.

쥐포가 될 위기를 모면한 녀석이 파랗게 질린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그에 녀석을 살피는 목소리가 있었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먼지를 털고 옆을 살핀 녀석은 다시금 화들짝 놀랐다. 그를 구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회장인 강태준이었다.

얼을 타고 있는 녀석을 일으키는 회장의 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뒤늦게 보안요원과 비서진들이 달려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들이 강태준을 부축해 일으켰다.

“회장님~~ 피!!! 피가! 이 자식들이, 대체 경호를 어떻게 한 거요!”

“어허, 호들갑 떨지들 마. 별것 아니니까.”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본 직원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차마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입술을 우물거리는 녀석에게 강태준이 손수건을 건넸다.

“이건…….”

“어서 의무실부터 가 보세요. 혹시 다친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보다 이거 위험하네. 비계부터 재설치하고 안전 점검 다시 합시다.”

손등으로 이마의 피를 슥 훔친 강태준이 유유히 떠나는 모습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기할 저도 처벌도 뭣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부터 녀석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던 듯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뭐 잘못 먹었나?”

“왜 저러지. 그러게 뭔가 고분고분한데.”

“뭐 냅둬. 며칠 저러다 말겠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에만 묵묵히 집중하는 직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변화는 단순히 한 곳에서만 일어나진 않았다. 국토건설단 사람들이 더 이상 곤조를 부리지 않게 된 것이다.

마치 순한 양처럼 협조적으로 변한 직원들을 보며 십장들을 혀를 내둘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애초에 사람 대우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국토건설단 사람들로서는 그룹 회장이 나서 직접 자기들을 구했다는 사실에 호감을 갖게 된 것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