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앵그뉴 게이트
공화당 전국위원회 사무실. 돌아온 앵그뉴를 본 비서가 서둘러 옷을 받았다.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그럭저럭 모금이 순조로워서 다행이야. 백경에서 연락 없나?”
“아직은 없습니다.”
“행동이 굼뜨군.”
“걱정 마십시오. 제깟 놈이 뭘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시간은 앵그뉴의 편이었다. 민주당 후보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침몰 중이었고 닉슨의 인기는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은 기정사실인 만큼 수금할 일만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앵그뉴. 그때 그를 찾는 전화가 있었다.
“후보님, 메릴랜드에서 온 전화입니다.”
“오 그래?”
앵그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돈줄이자 건설업자인 제이콥이었다.
“웬일인가. 제이콥!”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사실 공공사업 발주와 관련해서 문의드릴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오 그게 뭔가?”
제이콥이 전한 말은 다름 아닌 재개발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뉴욕 주 일대에 불량주택을 포함한 지역을 일괄 철거하고 지역을 재편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돈냄새가 풀풀 나는군. 슬럼화된 공공 주택지역을 철거하고 새로 건물을 짓겠다고? 규모가 상당하겠군.”
“예. 무려 80만 세대이니 테네시 주 공사만큼 크지요. 다만 좀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그런가?”
“거기 흑인 놈들이 알박기를 하고 나가지 않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주민 동의를 얻기가 좀 어려울 듯싶어서. 아무래도 건설기준을 충족시키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습니다.”
“허허 걱정 말게. 그 정도야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하니. 빈민가 놈들이야 싹 쓸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정말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다만 나도 공짜로 해 줄 수는 없네.”
“그거야 당연하지요. 다만 요새 IRS쪽 계좌동결로 인해 출금이 제한되고 있으니 현찰로 거래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런가. 그럼 내 현금 수거책을 따로 보내겠네.”
잠시 후 거래 장소를 정한 앵그뉴는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공교로운 타이밍에 돈 벌릴 구석이 생기다니.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대화를 끝낸 앵그뉴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그가 알던 제이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전화를 끝낸 위즈가 강태준을 돌아보았다.
“이거, 완전히 속은 거 같은데요. 저 어땠습니까?”
“연기 잘하는구먼. 깜빡 속겠어. 녹취상태는 어때?”
“네. 똑똑히 녹음했습니다.”
“사본 떠서 지역 방송국으로 일괄 송부하자고.”
성대모사가 가능한 블루박스 덕이었다.
앵그뉴 측 전화를 해킹해 녹취를 따낸 것이다. 건설업자와의 은밀한 대화가 담긴 녹취 테이프가 방송국에 송부되자 편집부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현직 부통령 후보의 뇌물 수수 사건이라니. 이게 사실인가?”
“아니 대체 누가 이런 걸 보냈다는 거야? 대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익명의 제보자라고밖에는.”
“이런 그럼 어쩌라는 건가?”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다들 표정이 심각했다.
사건의 파장을 우려한 일각에서 걱정스러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진위 확인이 우선일 듯싶은데요. 잘못하다간 역풍이 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특종을 놓치라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가짜뉴스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생각해서 지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잖아?”
“그…… 그렇긴 합니다만.”
“책임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터트리고 보자!”
공익성이 있으니 충분히 참작 가능한 부분이라는 판단이었다. 뉴욕타임스(NYT) 편집국장이 먼저 총대를 멨다.
[건설업자와의 검은 커넥션. 앵그뉴 후보 뇌물수수.]
[미션, 빈민가를 철거하라. 연방 주택청의 비밀.]
편집국장의 주도 아래 언론에서 발표된 워딩은 지극히 원색적인 톤으로 도배되었다.
현직 부통령 후보가 걸린 언론의 발표에 일각에서는 충격과 공포를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연방주택청(FHA)이 진행한 부동산구획 정책에는 흑인과 백인의 거주지를 분리하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니 흑인은 사람 아니냐. 인간을 개돼지로 아는 거냐 지금.’
‘우리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뿔난 흑인 시위대가 들고일어나자 당황한 공화당 쪽에서는 연방주택청의 부동산 구획 정책은 인종 차별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식지 않았다.
사안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앵그뉴는 물론 자기 파벌인 다미아노 하원의원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았다. 선거에 적신호가 켜지자 앵그뉴는 공보비서를 통해 기자회견을 자청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뇌물수수라니 이건 정치적인 음해입니다.”
“그럼 시티 뱅크로부터 대출 혜택을 준 것은요? 듣자 하니 뇌물수수 혐의로 복역 중인 증언을 막기 위해 금품을 계속 제공했다는 폭로가 있었는데요.”
“그건 엄연히 조작된 정보입니다. 그간 무슨 의혹이 있었다면 벌써 밝혀지지 않았겠습니까. 공직생활만 20년간 한 사람입니다. 저 앵그뉴는 결백합니다.”
앵그뉴는 기자회견에서 녹취록은 전부 조작된 것으로 공금횡령이나 돈세탁 의혹 역시 거짓이라고 읍소했지만 그 주장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빛이 바랬다.
메릴랜드 주 검사에 의해 사건과 관련된 건설업자들이 연이어 구속되면서 앵그뉴가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받았다며 까발려져 버린 것이다.
-메릴랜드 건설업체 전 임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건설업자들은 그간 플리바게닝을 통해 공화당 선거 캠프에 건설자금을 공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판토 릴 메릴랜드 검찰총장은 애그뉴 부통령 후보가 주지사이던 시절부터 건설 사업과 관련된 청탁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유명 건설업체인 보스위드사와 공생관계에 있었다 폭로했습니다. 또한 인사 청탁과 관련해 충분한 의혹이 있어 수사 중이며, 13만 8천 달러의 상당의 불법 자금을 정기수수했다는 제보를 받고 추가 조사에 착수했다고.
궁지에 몰린 앵그뉴는 위증죄로 기소당할 위기에 처했다. 당황한 앵그뉴는 불법수집증거임을 이유로 녹취록의 진위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렀다.
그간 조용히 묻혀 있던 사건을 수면으로 부상시킨 것이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입주한 워싱턴 D.C. 골든게이트 호텔에서 다량의 도청장치가 발견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추고 있습니다. 경찰은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남성 5인조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으며, 이들은 백악관 보좌관 하워드 휴즈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던 것으로…….
일명 골든 게이트 사건. 당시까지 언론들도 일반적인 선거보도에만 열을 올렸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만큼 가만히 있었으면 문제 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닉슨에 대한 지지는 공고했고 내부총질로 자중지란을 겪은 민주당이 스스로 침몰하면서 후보인 맥거번은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오로지 워싱턴 포스트에서만 이 사건을 줄기차게 보도했을 뿐. 대세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앵그뉴의 자기변호가 역풍을 부르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왓치맨으로 자칭하는 기자 밥 딜런과 칼 번스타인과 함께 조목조목 저격 글을 올려 버린 것이다.
-비밀정보를 제공한 딥 스로트에 따르면, 이번 도청사건은 분명 대통령의 지시가 틀림없다. 절도범들은 분명 불순한 목적으로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했으며, 그 목적은 고장 난 도청기를 교체하기 위해서였다.
체포된 범인들이 오리발을 내밀며 끝까지 일반적인 절도임을 주장한 점.
잡범에 불과한 절도범들을 변호하기 위해 거물급 변호사가 등장했다는 점.
체포된 인물들 중 몇 명이 대통령 재선위원회 실무자인 하워드 휴즈의 연락처가 적힌 수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같은 사무소에 두 번이나 침입했던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되었다는 보도에 백악관 보도담당관이 삼류 찌라시가 만들어 낸 소설에 불과하다 폄하했지만 사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격하게 반발했으나 도청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면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격동에 휘말렸다.
-지금 대통령과 주변 측근 인사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 정도를 넘었어요.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입니다.
결국 법무장관의 주도로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새로운 핵심 이슈가 등장했다. 대통령 부보좌관이 상원 청문회에 나와 골드게이트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녹음된 테이프가 존재한다고 폭로한 것이다.
특별검사가 나서 백악관에 이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백악관은 거부했고 오히려 특검 해임을 종용했다.
특검 임면권자인 법무장관이 이에 반발해 사임했다.
비디오는 결국 공개되지 않았지만 테이프에 대한 의혹은 닉슨의 도덕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법무부 송무차관이 나서 특검을 해임해 버리면서 닉슨은 위기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났지만 비판 여론은 더 심해졌다.
“지금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닉슨 대통령은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린 민주주의에 대해 유례없는 도전을 맞고 있습니다.”
닉슨에 대한 반감은 그때까지 본선에서 일관된 선거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표류하던 맥거번의 캠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민주주의 수호, 독재 금지!
언론인들이 뭉치자 유대계 자본과 흑인들의 지원이 이어지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베트남 반전 위원회를 비롯해 민주당에 힘을 실어 주자 사태는 급변했다.
경선 내내 발목을 잡던 당이 드디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맥거번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당내 원로들과 노동조합들이 지지선언을 발표했고 닉슨에 실망한 공화당원들의 표가 대거 이동하면서 민주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여론조사 판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맥거번 후보가 엄청난 기세로 추격하고 있습니다
-법무장관이 사임했습니다. 선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론의 판도가 바뀌자 답보 상태였던 맥거번의 지지율은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공화당 내 온건 주류들로서는 이미 선택지가 없었다.
닉슨을 선택한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다 죽을 판.
이제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기세가 오른 맥거번 측이 몰아붙였다.
“TV토론을 실시하자!”
“닉슨은 도청 사건에 대해 해명해라!”
급해진 공화당에서는 흑색 선전으로 맞섰지만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도청이 선거기간 내내 발목을 잡으면서 지지율은 점점 하락했던 것이다.
닉슨은 끝까지 TV토론을 거부했다.
그렇게 양당의 팽팽한 가운데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맥거번! 맥거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270표대 263표입니다. 맥거번 후보가 새 역사를 썼습니다.]
치열한 경합 끝, 맥거번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미를 강타했다.
닉슨은 텍사스 애리조나 등 공화당 텃밭에서도 석패했다.
선거인단 표차는 고작 12표. 유권자 투표 결과는 고작 1%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반전의 드라마를 쓴 것이다.
경선을 지켜본 직원들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세상에…… 대통령이 바뀌다니.”
“우리가 터무니없는 일을 해 버린 것 같군요. 형님. 설마 이걸 예측하신 건 아니겠죠.”
강태준은 침묵을 지켰다. 사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설마 이 정도 나비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곤.
처음부터 목표는 앵그뉴를 낙마시키는 것이었지 대통령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원 역사에서 공화당이 선거인단에서 500표가 넘는 득표를 기록하며 압승을 거뒀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
그야말로 역사의 판도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