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세무 조사
점수 내기를 위해 홈 버전을 밤새 플레이하던 청년 하나가 사망해 버린 곳.
부검 결과 청년은 심혈관 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마약까지 복용하고 있었다.
사인은 돌연사. 게임 도중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심정지에 이른 것이다.
경찰에서는 사고사로 수사를 종결지었지만 논란은 식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주, 청소년 게임중독에 골머리.]
[게임중독. 지나치게 흥분하면 생명을 앗아 갈 수 있어.]
곧장 비디오 게임에 관련해 물고 뜯고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메릴랜드 주의 핸더슨 의원이었다.
“게임 중독은 개인과 한 가정 차원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미치는 악재가 지대합니다. 미성년자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가 필요합니다!”
미국심리학회는 도박과 비디오 게임과의 연관성을 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정치인들이나 학부모단체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사회적 격차를 조장하는 게임 산업을 규제해야 해요. 게임이 인종처럼 또 다른 차별을 낳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메릴렌드 주에서는 지난달에만 204건의 도박 범죄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비디오 게임이 경품을 이용한 확률성 도박에 악용되고 있습니다.”
사안이 커지자, 앵그뉴 부통령 후보까지 나서 비디오 게임이 사행성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며 훈수를 두기까지 했다.
-비디오 산업 역시 핀볼과 준하는 수준의 제재가 필요합니다.
급기야, 핸더슨 의원이 미성년자가 비디오 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기했고, 양당 정치인 간에 토론회까지 열렸다.
“이건 엄연히 수정헌법 1조 위반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전입니다.”
“통제가 불가능한 미성년자들을 상대로는 다소의 강제적 조치가 필요할 수 있어요. 반복적인 게임을 통해 뇌 구조에 자극이 늘어나 충동조절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게임이 학업성취도를 저해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요? 오히려 이건 교육적인 게임이지요. 물리학 법칙을 배울 수 있으니 궤도계산을 배울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정적인 화면을 오래 보는 것은 시력에도 좋지 않아요.”
“그게 통제한다고 될 일입니까?”
쓸데없는 논쟁이라 폄하하는 말도 없지 않았지만 여론이 쏠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오재갑이 난처한 듯 중얼거렸다.
“웃기는 놈들이군요. 경제가 꼬라박는 시점에 쓸데없는 토론이나 하고 자빠졌으니…….”
“아무래도 베트남전 때문이겠지. 이거 여론에 물타기 하는 거 같은데.”
“뭐 그러려니 합시다. 어차피 잘 팔리기만 하면 되었지 무슨 상관입니까. 덕분에 판매량이 폭증했는데요.”
“아니야 이건 좀 뭔가 싸한데.”
판매량이 증가한 건 사실이지만 강태준 입장에서는 영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시선 돌리기라고 쳐도 타이밍이 너무도 공교롭지 않은가. 이슈메이킹이 판매에만 도움이 되면 상관없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
외국 놈이 돈을 너무 많이 버는 걸 고깝게 여길 인간들이 널려 있을 마당에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르는 건 좋지 않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고 할까. 곧바로 문제가 터졌다.
설인모에게서 긴급 타전이 도착한 것이다.
“큰일 났네. 회계사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미 국세청에서 우리 회사에 관해 소환장집행명령을 요구했다는군.”
“예?”
세무 조사가 뜰 것이라는 소식에 회사에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급하게 불려 나온 광필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우리 회사가 세무 사찰 대상이 되었다고요? 어째서?”
“공제 불가 항목과 관련해서 착오가 있었는지 전달이 제대로 안 된 거 같아요. 아무래도 공장 부지 구입시 다운 페이가 문제 돼서 이면계약서가 오갔는지 여부를 의심하고 있는 거 같아요.”
법률 자문으로 참석한 설유하의 답변에 강태준이 차분히 물었다.
“이해가 안 가네요. 그건 주정부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걸로 아는데 은행에서 융자받은 금액이 남아 있으니 문제없다면서요? 대출 심사 때 거듭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절세 혜택이 확실한지 이 부분에 대한 입증 서류가 필요하다네요. 게다가 게맛살을 공급받은 음식점 가운데 현금흐름이 미심쩍은 곳이 몇 곳 포착된 정황이 있다는군요. 출납 관계상 흐름 문제가 있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나이트백 문제 때문이에요.”
기존에 웨일 마트는 프렌차이즈 계약에 근거해 시티 뱅크 시카고 글렌뷰 지점과 거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점 확장과 관련해 야간입금이 어렵다 해서 계좌를 바꾸던 중 금액상 일부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고작해야 1,500달러밖에 안 되는데요?”
“꼬투리를 잡기에는 충분하죠. 일단 저쪽에서 대출 규정을 위반했는지부터 검토할 예정이라 하니 회계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할 거 같아요.”
“설마 현장 조사가 들어올 거란 말입니까?”
”본격적인 세무감사를 시작하진 않았을 테니 에이전트 면담까진 여유가 있을 거에요. 다만 일단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금부터 제대로 출처를 밝혀야 할 것 같아요.”
문제는 신고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점이었다. 미 국세청의 신고 대상은 일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의심 가면 다 내놔! 수준의 주먹구구식이었던 것이다.
폭탄을 맞은 직원들 역시 관련 서류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
“젠장. 내 1,127달러가 어디 간 거야? 이봐 버니! 계산서 어딨어. 어딨냐고?”
“놀런,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저번에 술값 준다 팁으로 뿌려 놓고는.”
“그럼 어쩌나?”
“뭘 어쩌긴 어쩝니까. 없으면 그쪽 사비로라도 메꾸던지.”
“뭐야?”
지출 증빙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곡성이 터져 나왔다. 단순 인건비만 계산한다면 모르겠지만 수입원과 공제 사항은 물론 부동산과 주식 등 엮여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손볼지 몰랐던 것이다.
수십 명이 넘는 회계사들이 밤샘 업무를 했지만 제출할 페이지는 어느새 세 트럭을 넘겼다. 그걸 본 광필이가 끔찍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장난 아니구먼. 이걸 매년 해야 될지도 모른다고요?”
“미 국세청도 중복조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니 걱정 마. 그래도 범죄수사국에 회부될 바에야 다소 손해를 감수하는 게 낫지 않겠나?”
강태준으로서도 죽을 맛이었다. 눈 밑이 시꺼멓게 변한 사람들이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격한 업무에 하루하루 말라 갈 때쯤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 쪽에서 사장님을 긴히 뵙고 싶다는데요?”
“그 인간은 또 왜?”
“아무래도 선거인단 문제로 온 것 같은데 정책 관련해서 긴히 이야기할 부분이 있답니다.”
“그런 자식이 뭐 할 말이 있다고. 걍 바쁘다고 하게.”
“그게 비서관들이 벌써 몇 번이나 왔다 갔어요. 아무래도 만나기 전에는 안 나가실 눈치입니다.”
“그거 사람 곤란하게 하는군.”
강태준은 별로 탐탁지 않았다. 여기저기 이권과 관련된 문의가 많아 정치인들과는 그간 최대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만나러 온 후보를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응접실로 도착하니,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앵그뉴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준을 만난 그가 살갑게 팔을 벌렸다.
“미스터 강! 이거 유명인을 만나 영광이군.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서야.”
“바쁘신 분께서 이렇게 찾아 주시다니, 한데 이렇게 찾아오실 줄이야 의외군요.”
“그게 무슨 뜻인가?”
“근래 말씀하시는 투로 보니 후보님께서는 제가 하는 사업을 별로 좋게 보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만?”
껄껄 웃는 앵그뉴가 어깨를 토닥였다.
“하하. 이 사람 뒤끝 있구먼. 이해하게. 그거야 참모들이 정해 준 대본대로 읽어 줄 뿐이지. 애초에 당적을 둔 입장이니 나도 당의 정치적인 스텐스에 편승해야 하지 않겠나?”
“오, 그럼 개인적인 사견은 다르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이 사람 급하긴. 그거야 나도 차차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겠나. 비디오 게임 산업이란 게 걸음마 단계니 산업화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지. 산업이 커지면 통제가 어려워질 테니 말이야.”
“충분히 크기도 전에 통제부터 한다는 건 좀 잘못된 발상인 듯합니다만.”
살짝 표정이 굳은 듯하지만 상대는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하하 말로는 못 이기겠구만. 정치권들도 다 사정이라는 게 있네. 그 보다 듣자 하니 요새 세금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지? 국세청 친구들이 영 융통성이 없어서 말이야.”
“당연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거쳐야 할 통과의례니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좀 아쉬운 것이 있지 않나. 문화도 환경도 다른 외지에서 사업을 하려면 걸리는 점이 많을 거 같은데 말일세.”
“괜찮습니다.”
“허허. 그래도 세상에 친구가 많을수록 좋지. 사실 그 부분에 대해 내가 다소 도움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듣자 하니 실리콘 밸리에 공장을 증설할 거라면서? 사실 내가 아는 건설업자들이 몇 있다네. 아주 유능한 사람들이지 말이야.”
강태준은 곧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먹었다. 우회해서 정치자금을 바치라는 소리 아닌가.
듣고 있던 강태준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조언 감사합니다만 시공사는 이미 선정이 끝났습니다.”
“하하. 내가 괜한 참견을 했나 보군.”
앵그뉴는 아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났지만 그것은 페이크였다. 시원스런 답을 얻지 못한 앵그뉴는 비디오 게임 규제에 대해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거기에 FBI를 불러 마약 관련 수사를 한다고 들쑤시기까지. 직원들로서도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자식은 처음 보네요. 뻔뻔하기도 유분수지.”
“앵그뉴 측이랑 건설업자 놈들이랑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시공사의 입찰 포기까지 속출하자 강태준은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현직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라는 프리미엄을 이용한 폭거였지만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광필이가 말했다.
“이거 몇 년간은 괴롭힐 거 같은데 그냥 몇 푼 주고 끝냅시다.”
“안 돼. 우리는 미국에서 엄연히 이방인 아닌가. 거기다 그런 놈이랑 엮였다가는 골치 아파져.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같이 덤터기 쓸 거 아닌가. 잘못하면 추방당할지도 모르고.”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약점을 잡아야지. 주지사로 근무하면서 엄청나게 해 먹었을 테니 말이야.”
정치인치고 깨끗한 놈이 없지만 앵그뉴는 유난했다. 심지어 부통령에 취임 후엔 백악관에 직접 기업가들을 불러 뇌물을 수수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뻔뻔한 종자였던 것이다. 역사에 대해 아는 강태준으로서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뇌물이랑 탈세 혐의로 낙마시킨다라 그게 쉽겠습니까? 지금까지 안 잡힌 걸 보면 보통 놈이 아닌데?”
“그러게요. 일단 뒷감당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런 거물을 상대로 증언을 할 놈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만들어야지. 우리에게는 남들이 없는 무기가 있잖나?”
강태준이 기다렸다는 듯 블루박스를 꺼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