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12화 (312/361)

312화 천재 영입

같은 시각, 백경그룹의 엔지니어링 팀에서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여전히 콘솔용 제품에 쓸 칩을 배열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밥벌레들 같으니라고. 버그라니.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발열이 심해서 아무래도 칩 전체를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집적도가 별로 높지도 않은데 뭐가 문제인 거야? 불량 있나 찾아봐.”

개발이 지연되는 데에는 집중력이 짧은 놀런의 삽질도 한몫했다.

계속되는 실패로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탓일까.

스트레스가 쌓인 알트가 옆에서 푸념했다.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출고가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별로 진척이 없다니.”

“뭐 언젠가는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 편히 생각하십시오.”

강태준의 판단으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기다릴 작정.

그때 인사과 직원이 강태준에게 찾아왔다.

“사장님! 방문자가 찾아왔습니다.”

“아, 이번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얼치기 같습니다만.”

“그래요? 일단 확인해 보지요.”

강태준은 속으로 실망했지만 별로 표시를 하지 않았다.

콘솔 개발과 관련해 거액의 상금을 내건 이후로 엔지니어임을 자칭하는 작자들이 하루에 열댓 명씩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견본 확인을 위해 모니터 앞에 도착하자 엔지니어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이런 설계에 TTL 칩이 고작 50개밖에 안 들어가?”

“이런 미친. 이걸 누가 디자인했다고? 18살이?”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플레이를 관람하는 엔지니어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집중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전면에 위치한 X-Y디스플레이에서 공을 칠 때마다 스크린에 띄워진 공이 스무스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

두 명이 핑퐁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확인한 강태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가 온 것 같군요.”

“설계에서 칩 수를 얼마나 줄였습니까?”

“무려 100개 이상 줄였습니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시제품에는 150개 정도의 칩이 들어간 반면 견본품엔 고작 50개로 해결해 낸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런 압축된 설계에도 게임 품질에 전혀 차이도 없었다는 사실.

기대감에 들뜬 알트의 표정에 강태준도 내심 가슴이 설렜다.

응접실에 도착하자 그 문제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량품을 가져온 것은 놀랍게도 히피 스타일의 소년.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묘하게 낯이 익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태준이 물었다.

“이걸 자네가 설계했다고? 이름은?”

“스티븐 록웰입니다.”

강태준은 깜짝 놀랐다. 후일 과일을 베어 먹은 로고로 이름을 떨친 그 회사의 창립자가 아닌가.

하지만 강태준이 모르는 척 물었다.

“혹시 어디 출신인가?”

“린든 칼리지입니다. 중퇴입니다.”

“전기공학과가 아니라고?”

“그게 중요한가요?”

“별로 중요하지 않지. 그럼 이 설계도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혹시나 해서 해 본 질문이었지만 록웰은 마치 자기가 개발자인 것처럼 신나게 떠들었다.

그 천연덕스러움에 강태준은 감탄했다.

실제 다른 개발자가 있다는 사정을 몰랐다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언변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던 강태준이 품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대단하군. 여기 5,000불이야. 가져가게.”

“감사합니다.”

녀석이 나가고 난 뒤에 강태준은 사람 하나를 불렀다.

“록웰이 누구랑 게임을 개발했는지 알아 오게.”

“네?”

“말 잘하는 이과생 봤나. 그 녀석은 전형적인 문과야. 절대 엔지니어일 리가 없어.”

애초에 린든 칼리지라면 리버럴 아츠 계열로 유명한 학교다.

전기공학과도 아닌 사람이 이런 복잡한 회로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

그로부터 며칠 후에 춘삼이가 사람 하나를 물어 왔다.

키는 작고 텁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녀석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강태준이 반가이 맞았다.

“오, 자네가 그 콘솔 회로의 개발자로군. 이름이?”

“마이클 위즈입니다.”

“자 앉게. 자넬 보고 싶었어.”

강태준이 살갑게 맞았지만 위즈는 환대가 부담이 된 듯 잔뜩 위축된 기색이었다.

강태준은 몰랐지만 위즈 입장에서는 이만한 거물을 만나 볼 기회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비서가 따뜻한 차를 내오자 찻잔을 받은 녀석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뭐. 저를 개인적으로 부르신 연유가 뭔지, 여쭤도 될까요? 혹 회로에 이상이라도?”

“그럴 리가. 사실 자네가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해서 말이야.”

“저를 말입니까?”

“그 콘솔용 게임 설계 말일세. 오롯이 자네가 한 거 아닌가? 그런 실력은 이 업계에서도 좀처럼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아니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록웰과 함께 했습니다. 녀석한테 많이 도움을 받았죠.”

“그렇다 해도 자네가 주도한 사실은 변하지 않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사하군요.”

어리숙한 표정으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순박하기 그지없다. 강태준이 슬쩍 옆자리를 보며 물었다.

“그래. 록웰 그 친구는 어디 갔나?”

“인도로 떠났어요. 당분간 휴가랍니다.”

“어디로?”

“하이아칸 바바를 만나러 간다고 하더군요. 그 뭐시기, 구루라던가?”

구루라면 힌두 계통에서 스님이나 목사에 속하는 지도자를 뜻하는 말이다.

강태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 그래. 같이 일한다고 하지 않았나?”

“뭐 원래 별난 구석이 있는 친구라서요. 금방 돌아오겠죠.”

“아쉽겠군. 그래. 암튼 고맙네. 자네 덕에 수고를 덜었어.”

“감사합니다. 사실 시간이 좀 있었다면 더 개량할 수 있었는데.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오, 그게 정말인가? 더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네. 사실 칩 개수를 30개 이하로 줄일 수 있긴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부터 저었을 것이지만 상대는 컴퓨터 천재로 유명한 천재 공학자다. 강태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 반가운 소리군. 아참 내가 보너스를 줬던 걸로 아는데 제대로 전달되었나?”

“아, 네.”

“얼마 받았나?”

“350불 받았습니다.”

“응? 그거 이상하구먼. 난 분명히 5,000불을 줬는데 말이야.”

“네? 저는 700불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이거, 아무래도 자네한테 정당한 보상이 가지 못한 것 같군.”

“네? 설마 그럴 수가?”

이마를 좁힌 위즈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자기가 사기당했음을 깨달은 위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실망한 위즈가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설마 록웰이 저한테 그럴 줄이야. 배신감이 드는군요.”

“그 친구 몹쓸 인간이군. 자…… 여기 받게나.”

강태준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품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휘갈긴 수표를 받은 녀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건?”

“자네 일에 대한 대가일세. 일을 했으면 보상이 확실해야지.”

똑같이 5,000달러였다. 조심스럽게 수표를 살핀 위즈가 강태준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됩니까?”

“내 마음일세. 개발비를 단축해 얻을 수익을 생각하면 푼돈이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뭡니까. 말씀하십시오?”

“이참에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건 어떤가?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하지.”

강태준이 제시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일반 개발자의 3배에 달하는 연봉과 개발 시 로열티, 회사 차량과 집까지.

임원급에 준하는 대우였지만 조건을 전해 들은 위즈는 계속 망설였다.

“아, 솔직히 그건 좀 곤란한데요.”

“어째서?”

“이미 록웰과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녀석이랑 같이 일하겠다고요.”

“자네를 그딴 식으로 이용한 상대와 같이 일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전 록웰이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아요. 이야기를 해 봐야…….”

“허허, 진심인가? 또 거짓말을 치면 그땐 어쩌려고?”

진심으로 고민하는 녀석에 강태준은 어이가 없었다.

성인군자도 아니고 이런 호구가 있나.

‘이건 뭐,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군.’

이런 유형의 인간은 돈으로 설득당하지 않는 만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잠시 생각하던 강태준은 접근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럼 록웰이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 나랑 같이 일해 보는 것이 어떤가?”

“당분간만이요?”

“그래. 어차피 자네도 손 놓고 놀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뭔가 부업이라도 해야지.”

“하지만 제가 뭐가 도움이 될까요?”

“도움이 되고 말고. 사실 난 1인용 듈(dual) 게임을 개발할 예정이거든.”

“1인용이라니 그걸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공으로 벽돌을 부수는 게임을 구상 중이야. 컨셉은 탈옥이라고 할까, 알카트라즈 탈출처럼 말이야.”

“오, 그건 신선한 구상이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게임인가요?”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이는 위즈에 벽돌 깨기 게임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위즈의 탐구심을 제대로 자극한 듯 녀석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설마, 게임에 컬러를 넣을 거라고요?”

“사인파를 디지털 데이터화한 다음 하드웨어로 변이시키는 거지. 색상이라는 걸 오실로스코프로 보면 펄스 형태로 나타나지 않나? 그걸 이용하는 거야”

“천재적인 발상입니다. 그러면 컬러보드판이 아닌 칩으로 색을 구현한다라 훨씬 싸게 먹히겠네요”

“그래. 콘덴서와 인덴서 같은 하드웨어 없이도 싼값에 구현할 수 있겠지.”

“다만 그러려면 베이직으로 게임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요.”

“그래. 그 과정에서 막대가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면 어떨까?”

“네? 그건 또 무슨?”

“벽돌을 부수면 일정 확률로 아이템을 떨구는 방식이야. 거기에 부대 효과가 발생하는 거야. 공을 튕기는 막대가 커지거나. 무적이 되거나. 아니면 벽돌이 투명화되는 등 방식으로 말이야.”

위즈는 입을 헤 벌렸다.

키 입력과 배열 방식부터, 데미지와 충돌 시 효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수 계산은 어떻게 할지 이야기할 거리들이 산더미였던 것이다.

반쯤 넋이 나간 눈빛에 강태준이 녀석이 거의 넘어온 것을 느꼈다.

“정말 그 게임을 개발할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서 자네를 정식으로 고용하고 싶다는 거야. 하드웨어를 개선하는 건 자네 장기 아닌가? 이건 자네 같은 프로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과업이지 그래.”

“음…….”

“어때, 한번 해 보지 않겠나?”

위즈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애초에 위즈는 천생이 사업가이기 이전에 개발자로서의 성향이 강했던 것이다. 결국 유혹에 못 이긴 그는 고집을 꺾었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만입니다.”

“우리 회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위즈의 영입은 그야말로 최고의 한 수였다. 컴퓨터 엔지니어로서 그는 초일류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녀석의 영입과 동시에 홈 버전 발매에도 속도가 붙었다.

가정용으로 발매된 듈 (dual)에 최종적으로 사용된 칩 개수는 42개.

출시 가격은 300달러.

예상했던 금액에 100달러나 절약한 것.

곧바로 가정용 듈(dual)이 출시되자 게임기 산업은 사회에 새로운 붐을 일으켰다.

음향 효과와 이펙트가 추가된 게임은 훨씬 부드럽고, 재미가 있었다.

TV 형광체가 타거나 패들이 마모되어 교체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을 정도니 인기를 알 만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뜻하지 않는 악재를 낳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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