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다이어트 열풍
이야기를 듣던 스콧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결 건조요?”
“그래, 아무래도 냉동 건조 방식은 고열처리보다는 영양소나 조직 손상이 적으니까요.”
일반 건사료의 경우, 재료를 분쇄 후 열처리를 하지만 동결 건조의 경우엔 바로 냉동 및 건조처리를 하기 때문에 가공시간이 짧아진다.
당연히 손상도는 더 낮고, 재료 본연의 맛도 좋아진다.
“지속성도 좋지요. 보통 수분 함유량이 일반 사료의 반밖에 안 되니 부패될 위험이 적으니까요.”
“보존제도 덜 필요해지고 말입니다.”
“기호성 측면에서도 괜찮겠지만 그러면 비용이 상당할 텐데요. 동결건조를 하려면 가공 과정도 까다롭지 않습니까. 진공 시스템과 극저온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자본 투여는 물론이거니와 운영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음식이라는 건 장비빨이 반이니까요.”
다행인 것은 브레튼 우즈 체제 붕괴로 금값이 폭등한 탓에 실탄이 충분하다는 것. 레토르트 식품이나 제약업에도 활용할 방법이 많은 만큼 투자비 회수는 걱정 없다.
하지만 스콧은 여전히 미덥잖은 기색이었다.
“흠, 그렇게 되면 초기 투자비가 너무 높아질 텐데. 장기적으로는 좀 부담 아닐 듯싶은데요.”
“일단 홍보가 필요할 거 같긴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요. 뭐 좋은 생각이 있습니까?”
“흠…… 마케팅이라.”
잠시 생각하던 유하가 슬쩍 끼어들었다.
“음…… 그럼 고양이 잡지에 다이어트 일기를 기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이어트요?”
“호야를 말입니까?”
“명품에서 브랜드 가치라는 건 스토리로 판가름되잖아요. 애완동물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으려면 품질도 좋지만 감성으로 승부할 필요가 있는 거 같은데요. 마침 생긴 걸로는 꽤 귀엽잖아요?”
“다이어트 일기라.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그러면 잡지보다는 영상이 더 낫겠네요.”
“촬영을 하겠다고요?”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는 거지요.”
마침 이쪽 분야에 전문가가 있지 않은가. 강태준은 슈피겔 감독을 찾았다.
샤크 어택 영화 개봉을 앞두고 편집을 끝낸 슈피겔은 마침 휴가 중이었다.
제안서를 읽어 본 슈피겔 감독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익광고 비슷하게 찍자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실내에서 키우는 애완묘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 고양이가 체중초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참에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자는 취지이지요.”
“흠. 찍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과연 수요가 있을까요?”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미국 반려동물산업협회(APPA) 쪽이랑 이야기를 해 뒀어요. 비디오 촬영 후, 스탬포드와 오렌지 카운티 지역방송국을 통해 한 달간 공익방송으로 방영할까 합니다.”
APPA는 50년대 후반 출범한 비영리 산업 협회로 미국 내 애완동물 산업을 관장한다.
애견 애묘 쪽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랄까.
흥행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방영하기로 했다는 말에 슈피겔도 동참 의사를 표명했다.
“공익목적 프로그램이라. 알겠습니다. 저도 참가하지요.”
“오, 허락하시는 겁니까?”
“네. 저도 펫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일 같지는 않아서요. 다만 촬영이라고는 해도 너무 살을 빨리 빼는 것은 안 좋을 거 같습니다. 혹시나 무리하다 건강에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 점은 저도 우려하는 부분이지만 영양학자가 옆에서 케어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1달에 대략 450그램씩 빼 나갈 생각이거든요.”
“그렇다면야 딱히 걱정할 필요 없겠습니다. 아 그런데 저 고양이 이름이 호야라고 했지요. 녀석은 무슨 종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멍해진 강태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에 대해 머리를 굴리던 강태준은 곧 생각을 포기했다.
“그냥 짬타이거입니다.”
슈피겔과 스콧은 호야와 함께 숙식을 같이하며 몇 달간 특별훈련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지역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jjamtiger’이란 이름으로 방영된 영상은 뚱뚱한 고양이가 다이어트를 하는 내용을 담은 30분 분량의 단막극이었다.
빰빰빰빰빰…….
영상이 시작되자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처럼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등장한 호야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뒹굴거리고 있다. 척추가 없는 것처럼 흐물거리던 녀석이 스콧과 만나는 순간. 긴장감 있는 음악이 흘렀다.
영상은 영양사와의 훈련을 통해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을 담았다.
제한급식을 하면서 엄선된 사료를 챙겨 먹이는 과정.
장난감을 갖고 놀아 주기. 계단오르기. 장애물 넘기.
수중 트레드밀을 통해 훈련하는 장면도 영상에 실렸다.
-3킬로를 뺀 호야의 다이어트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영상 말미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최근의 홀쭉해진 사진이 클로즈업되었다.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애완동물 업체와 시청자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했던 것이다.
-이야, 나태의 극치. 다시 태어나면 고양이가 되고 싶다.
-다이어트는 필요 없습니다. 호야는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Cheer up hoya! you can do it!
밤에 야식을 훔쳐 먹다 벌을 서거나 사료통을 엎어 놓고 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모습까지.
비글미 넘치는 행동이 애묘인들로부터 공감대를 산 것.
호야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영상은 LA등 캘리포니아 남부의 6개 카운티로 추가 방영되기로 했다.
그렇게 방영물의 시청자 수는 무려 680여만 명.
다이어트 영상이 그 정도 호응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장난감 회사에서는 굿즈 판매요청까지 들어올 줄이야.
트럭째로 배송된 편지에 놀란 강태준이었다.
“이게 다 우리 회사에 온 편지라고요?”
“너무하지 말입니다. 세상에 저만 나쁜 놈이 되었지 뭡니까?”
악마의 편집 덕일까. 고양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편지가 대부분이라고. 악역 기믹이 굳어져 버린 것이다. 조련사 역할을 맡은 스콧으로서는 몹시도 억울한 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스콧에 강태준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하. 원래 인기인은 고달픈 법이지요. 그래도 덕분에 여기저기 섭외가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오, 근데 여기 우리 유하 씨에게 온 편지도 있네요.”
“어 정말요?”
“고양이 확대범님께라니. 아우 명예로운 칭호입니다. 그래.”
“아 진짜. 누구야. 정말.”
놀랍게도 그 편지는 미국의 유명 고양이 잡지인 Cat Fantaa 편집장에서 온 연락이었다. 이번에 영상물에 깊은 감명을 받아 녀석을 표지모델로 쓰고 싶다는 것이다.
영화촬영 때랑 달리 움직이지 않는 자세는 호야의 전매 특허 아니겠나.
촬영장을 방문한 강태준은 호야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잘 어울리는데요. 역시.”
“오늘 특히 얌전하네요.”
“저거 표정 보게. 끼 부리는 거죠 저거?”
근엄한 표정으로 왕관을 쓴 호야가 잡지의 메인을 장식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선물과 편지가 도착했다.
응원과 격려가 넘치는 편지 옆에는 투박한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어린아이가 그렸음이 명백한 그림에 강태준이 녀석을 쓰다듬었다.
“복 받은 줄 알아라 이 녀석.”
“냥?”
이번 촬영에는 고작 1만 4,000달러밖에 들지 않았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가족이나 다름없는 펫들이 공장 쓰레기나 다름없는 사료를 먹고 있었다는 점에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던 것이다.
“애완동물 사료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곡물이 과다 함유된 사료는 전혀 건강하지 않습니다. 강아지의 신장과 장기들을 망가뜨리는 독약입니다!”
소비자들의 항의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집단 위생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랜더링 과정에서 유기견 사체가 사료의 원료로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
거기에 메이저에 속하는 대기업 건사료 일부에서 간 손상을 유발하는 아플라톡신이 발견되기까지 하자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화들짝 놀란 애완동물 주인들은 펫 푸드 업체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업체에서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한편 문제 된 제품들에 전량 리콜을 실시했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반대급부일까. 합성보존료와 유화제를 무첨가한 백경 그룹의 사료는 안전성과 기호성 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펫푸드 판매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통조림 공장을 증축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고급 사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새로운 사업 루트가 생긴 것이다.
“이 추세라면 아무래도 공장이 추가로 필요하겠군요.”
“텍사스 쪽이 어때요? 그쪽은 자유무역지대라. 인센티브와 함께 추가로 세제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텍사스라고요? 거기는 왜?”
“네. 자유무역 지대 말이에요. 이번에 일본 업체 한 곳의 자문을 맡았는데 미국시장 확대전략의 하나로 자유무역지대 진출을 밀고 있더군요.”
미국은 일찌감치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에 따른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했다. 여기는 해외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는데 특히 지역으로 반입되는 상품은 관세 및 쿼터대상에서 제외돼 면세되는 혜택이 컸다.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와 동시에 미국에서 모든 수입품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10% 올려 버린 상황에서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라고. 설유하가 추가로 말했다.
“Double Freeport 지역일 경우 반제품이나 원자재 판매시 카운티 차원에서 이중으로 세금감면을 해 주기 때문에 매년 엄청난 절세효과를 볼 수 있지요. 게다가 물가가 올라가면 가치 상승분에 대해서도 감안해 주거든요.”
서류를 슬쩍 훑어본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고세 감면이랑 관세 혜택은 확실히 끌리네요. 근데, 도요나 산니 같은 첨단기업 말고 우리 같은 기업도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죠. 예전이라면 좀 깐깐했을지 모르지만. 요 근래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주 정부 차원에서 투자 규모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업체를 유치하는 데 혈안이에요.”
자유무역 지대에서는 관세 부과가 연기되니 재고 때문에 자금을 묶어 둘 필요가 없는 만큼 현금유동성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크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기준이 있지 않겠습니까?”
“재정 건전성 및 자본금 규모, 일자리 창출 여부가 중점이죠.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일자리당 수천 달러씩 지원금이 주어지기도 한답니다.”
“수천 달러요? 그럼 공장 설치 비용이 많이 절감되겠군요. 근데 지역 상공회랑 경제개발청 쪽에 이야기해 봐야 할 거 같은데. 아직 구체적인 입지가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가능하겠습니까?”
“상공회를 접촉해서 전체적인 지역 정보를 확인 후에 협상해도 되요. 대신 카운티를 설득하려면 제대로 된 투자 계획서가 필요하지요.”
“알겠어요. 그럼 투자 계획서는 맡겨요. 인센티브 협의는 그쪽에 맡길게요.”
전반적인 허가 및 시공 프로세스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도시마다 법규가 차이가 있는 만큼 현지 건축사를 에이전트로 삼아 대행하기로 했다.
지원을 위해 올라온 설인모가 고개를 저었다.
“각 주법이 전부 다르다니 이거 너무하구먼. 시공사 선정도 어렵고 바쁘구먼.”
“찬찬히 해도 되니 수고 부탁드립니다. 저도 컴퓨터 도입도 해야 하고 남은 과제가 많군요.”
“컴퓨터라고? 왜 갑자기?”
“네. 펫푸드 사료 배합도 그렇고 연구용으로 필요할 거 같아서요. 사실 오성 쪽과도 슬슬 결별할 시기일 거 같아서 말입니다.”
사업에서는 영원한 동료도 적도 없는 법.
최근 들어 이재무가 전자 사업에 욕심을 보이면서 오성과의 불협화음이 심해지고 있는 만큼 강태준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PDP시리즈를 비롯해 공정 관리나 회계를 담당하는 컴퓨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
기존의 대기업들이 현실에 안주해 고여 가는 동안 언더독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