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07화 (307/361)

307화 펫푸드

게맛살 냄새를 맡은 녀석이 코를 벌름거렸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밥 주는 거 깜빡했네.”

호들갑을 떠는 설유하가 사료를 준비하러 부산을 떨자 녀석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인마, 넘실대지 마라. 염분 있는 건 고양이한테 안 좋아.”

“냐!”

강태준이 머리를 밀어냈지만 포기하지 않는 녀석. 덩치가 얼마나 큰지 미는 힘이 묵직하다. 서둘러 연어 사료를 주니 허겁지겁 고개를 처박는 호야였다.

“아니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어요?”

“점례가 맡기고 갔어요. 당분간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슬쩍 녀석을 돌아본 강태준이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덩치가 좀 많이 큰데 원래 저랬습니까?”

“점례 말로는 중성화 수술을 한 여파로 급속히 살이 불어났다데요. 수술하고 불쌍해서 자꾸 먹였더니 그만 저렇게 됐다네요.”

사료를 다 먹고 피곤한지 바닥에 뒹굴거리는 녀석.

고등어 모양의 인형을 던져 주자 다리로만 갖고 놀다 흥미를 잃고는 다시 축 처졌다.

화장실 갈 때랑 밥 먹을 때를 빼면 저렇게 기어 다니기만 한다고.

하루 종일 와식생활을 한다는 말에 강태준은 기가 막혔다.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저거 건강검진이라도 받아 봐야 하는 건 아닙니까?”

“네? 저는 귀엽고 좋은데.”

“귀엽다고요? 아무리 봐도 저거 좀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요?”

원래 귀차니즘이 많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하는 짓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강태준이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안 되겠다 동물 병원에 가자.”

그러자 호야가 벌떡 일어나더니 슬그머니 피하는 것이 아닌가.

놀랍도록 민첩한 속도에 강태준이 인상을 썼다.

“어쭈구리, 이 자식이 일루 안 와!”

“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난리굿을 벌였지만 뚱뚱해서 둔해진 녀석을 붙잡는 데 성공한 강태준.

케이지에 넣은 녀석을 동물병원으로 데려가자 검진을 마친 수의사가 안경을 추켜세웠다.

“어떻습니까? 심각하나요?”

“큰 병은 없는데 살이 많이 쪘네요. 근데 그 정도가 좀 과해서.”

“어느 정도인데요?”

“사실 일반적인 고양이는 원시주머니가 이렇게 내려오진 않습니다. 요 식스팩처럼 보이는 게 사실 다 지방이거든요.”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삼겹살처럼 희게 보이는 것이 전부 지방이라는 말에 설유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털찐 게 아니라 이게 죄다 지방이라고요?”

“네.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은 건 기적입니다만. 사료 급여에 신경 쓰셔야겠습니다. 비만은 당뇨나 관절염 같은 병의 원인이 되니까요.”

수의사는 자율배식은 절대 안 되고 식이조절이 필요하다 신신당부했다. 이왕이면 염분이 적고 좋은 사료를 챙겨 먹이라고.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시무룩해진 유하가 기어들어 가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제가 관리를 못해서.”

“떠맡긴 사람이 문제지, 유하 씨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래도 좋은 걸 먹어서 큰 병은 없네요.”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건지.

없어진 땅콩 부위를 핥는 녀석. 잠자코 들어 보니 묵직하기 짝이 없다.

“어이쿠 무거워. 알아들었냐 호야! 너 이제부터 다이어트다. 앞으로 간식은 꿈도 꾸지 마.”

“냐?”

“노 참치! 네버 오케이?”

“냐~!!”

기세 좋게 울음을 토하는 녀석이었지만 목에 깔때기를 씌우자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된 호야가 애처롭게 울었다.

식습제한을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밥때가 되니 호야의 칭얼거리는 정도는 더 강해졌다. 웅엥거리는 소리가 아랫방까지 들려오자 강태준이 귀를 막았다.

“저 자식,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장이라도 보고 와야겠네요. 녀석 먹을 것도 사게.”

보챔을 견디다 못한 강태준은 데이트도 할 겸 장을 보기로 했다.

선남선녀 둘이 마트에 가자 절로 시선을 끌었다.

트레이를 끄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는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말했다.

“잘 어울리는 쌍이네. 둘이 부부요?”

“아직은요.”

“허허. 꼭 신혼부부 같구먼. 쇼핑 즐겁게 하소.”

“감사합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유하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신이 나서 이것저것 사는 것을 보니 진작 이렇게 할 것 그랬다.

슈퍼마켓을 둘러보며 장을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애완동물 코너에 도착한 둘은 호야에게 줄 사료부터 찾았다.

“별로 괜찮은 게 없네. 뭐 좋은 거 찾았어요?”

“음. 글쎄요. 성분표시를 봤는데. 별로 좋은 게 없네요.

“그러게 죄다 탄수화물 덩어리더라고요. 단백질은 별로 없네.”

“유통기한이 길다고 홍보하던데. 딱히 믿음이 안 가네요.”

사료 라벨을 살펴보니 탄수화물 표시가 지나치게 높다. 혹시나 싶어 전문사료를 찾아봤지만 별반 차이는 없었다.

특정한 질병이 있는 개나 고양이에 주는 사료라고 선전하고 있었지만 같은 사료를 포장갈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식품 보충제나 비타민 같은 건 없나요? 아니면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그런 건 취급 안 합니다. 고급 사료만으로도 충분하지요.”

혹시나 싶어 매장 직원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사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아, 이건 인간적으로 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집에 갑시다. 차라리 로빈한테 물어보는 게 낫겠어요.”

육류 함량이 적고 저단백이 몸에 좋다니.

하지만 기대와 달리 로빈조차 좋은 사료는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자, 사료 사업 전반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곡식 부산물이랑 도축장 찌꺼기로 펫 사료를 만든다고요?”

“예. 공공연한 이야깁니다. 인간이 소비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곡물이나 부산물을 처리하는 편리한 방법이죠.”

“그렇게 되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동물도 있잖습니까?”

“하하. 상부상조 아니겠습니까? 곡물업자들은 쓸모없는 곡물을 팔고 도축장에서는 육류 부산물을 처리할 수 있어서 좋은 거죠.”

충격적인 것은 펫 사료에 적용되는 낮은 위생 조건이었다. 대부분의 건조 식품은 압출기를 통해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이라는 것이 극히 불량했던 것이다.

인간이 소비하기 힘든 가축 부산물이나 곡물을 섞어 잘게 갈아 낸 다음 밀가루 반죽에 섞어 공 모양으로 뭉쳐 만든 것이다.

“으으…… 심하네요.”

산업용 화학 첨가제를 넣어서 원재료가 뭐인지조차 불분명하게 만든 물건을 본 강태준은 혐오감을 금할 수 없었다. 인간이 먹을 수 없는 폐기물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비싼 값에 팔아 치우는 것이 애완동물 사료의 본질이라니. 기가 찬 강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공장 폐기 재료로 만든 먹이를 주면서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홍보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뭐 애초에 애완동물 사업이라는 게 인간 산업의 연장선이니까요. 다국적 펫 푸드 회사들이 만드는 식품도 거진 비슷합니다. 운반비도 그렇고 가격이 싸니 곡식을 많이 첨가하는 거고. 고탄수화물로도 얼마든지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호도하는 거지요.”

로빈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완전식품을 표방하는 홀리스틱 사료조차 개나 고양이에 전혀 필요 없는 탄수화물이 50프로 이상 함유되어 있다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설유하가 불쑥 나섰다.

“그럼 백경에서 직접 제품을 개발해 보는 건 어떤가요?”

“우리가? 말입니까?”

“알아보니 펫푸드 시장 규모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고급품이랍시고 나온 물건의 품질이 고작 그 정도라면 충분히 경쟁할 만하지 않겠어요?”

“흠. 펫푸드 시장이라면 이미 말스와 델리오 같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데요?”

“지금으로서는 그렇지요. 들어 보니 최근 미국이랑 유럽에서 펫푸드 시장이 매해 두 자릿수씩 성장하고 있다는군요. 일본이나 다른 시장도 성장 중이고. 좋은 원료들을 이용한 제품들이라면 차별화도 될 테고.”

“흠.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니치마켓을 노려보자?”

“니치마켓이 될지 아니면 업계를 주도하는 식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요. 아니면 기존의 다국적 그룹과 OEM을 추진해서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죠.”

강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펫푸드 시장이라. 현재 매출액 상위 5개 점유율을 합치면 세계적으로 약 60%가 넘는 만큼 하청이 안전한 선택이지만 제품이 성공했을 경우, 자사 브랜드의 인지도 확보가 불리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매해 두 자릿수 성장하는 시장에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면?

리스크를 지고 크게 먹을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게 작게 먹을 것인가.

강태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OEM보다는 직접 들어가는 편이 더 좋을 거 같군요. 일단 M&A할 업체를 선정하고. 상품 포트폴리오를 짜 봅시다. 업계 전문가들도 섭외하고요.”

“예스. 알겠어요.”

아무래도 펫 푸드 사업을 성공하려면 현지 사정에 능통하면서도 개발 취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적절한 협력 업체를 찾아보던 강태준은 올드 맘 허벌이라는 회사에 주목했다.

60년대 초반 동물 영양 학자인 스콧 제럴드가 인수한 회사로 최근 꽤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영양학자가 직접 회사를 세웠다? 특이한 경력이네요”

“네. 가족 기업으로 경영하고 있다는데 동물성 습식 사료를 주로 만든다는군요. 규모는 솔직히 좀 많이 작지만 아무래도 관련 지식도 풍부하니.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지만 규모가 너무 작은 탓일까, 로빈은 추천을 하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스콧 제럴드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강태준은 곧바로 그 연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웰빙 열풍을 선도한 사람이구먼. 그때 사료 사업에 투자했다가 완전 매운맛을 봤지 그래.’

9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윌비스 개발에 기여한 사람 아닌가?

예전에 국내 광고도 오질 나게 했었고.

강태준이 직접 찾아기로 하자 스콧은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저희랑 협력 계약을 맺고 싶으시다고요? 어째서?”

“그쪽의 창업 취지에 공감하는 점이 많아서요. 사업가이긴 하지만 저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건강한 식품을 만들고 싶어서요.”

“건강한 식품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시길래?”

“개와 고양이는 탄수화물과 섬유소를 필요로 하지 않게 진화돼 온 생물인데 대부분의 사료에 탄수화물이 많은 건 좀 뭔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신선한 고기와 필수지방 함량이 높은 사료를 만들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펫 푸드는 영향 불균형이 심하니까요.”

강태준의 말을 들은 스콧은 감탄했다. 사실 그간 스콧의 명망을 듣고 콜라보를 요청했던 기업들이 적지 않았지만 수익성만 생각했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기업이 없었던 것이다.

“저희랑 뜻을 같이하는 회사가 있다니 이거 영광인데요.”

“그렇다면 저희 쪽에 동참하시는 겁니까?”

“네. 하지만 대량으로 팔려면 습식사료로 개발하는 건 좀 힘들 거 같군요. 일단 수요도 그렇고.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호성 측면 아니겠습니까? 초반에는 안전하게 가야죠.”

“그렇다면 뭐가 좋겠습니까?”

“일단 건식에 도전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언에 따라 일단 건식 사료에 필요한 익스트루젼 방식의 기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익스트루젼 방식의 압출기는 재료를 혼합 조리한 후, 사출성형기를 통해 팽창시켜 소화율과 기호성을 높인 기계다. 설비를 살펴본 차대응이 중얼거렸다.

“건조물 위주로 만든 거니, 압력을 좀 조절해야 할 거 같네요. 재료는 뭐가 들어갑니까?”

“일단 해산물 위주로 지방의 최적 범위는 15-18% 정도라니. 흰살생선과 참치, 연어, 새우 같은 걸 쓸 거 같군”

“참치라면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유통도 그렇고. 산패하면 냄새가 날 확률이 높아요.”

“그럼 닭고기나 칠면조로 원재료를 수급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탄수화물 대신 아미노산이 풍부한 풍부한 고단백 다이어트식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

하지만 첫 타자인 호야였지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이런 까다로운 자식, 니가 내 상전이냐?”

“냐!”

“어이구. 도망가긴 야. 일루 안 와?”

식빵자세를 하고 앉은 녀석은 훌쩍 찬장 위로 올라가더니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통 생식만 하다 갑자기 사료만 먹으라고 하니 도통 먹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 자식이 배가 불러서. 그래 굶어라 굶어. 누가 그런다고 무서워할 줄 알고?”

“아무래도 신선한 맛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걱정스러운 설유하의 말에 강태준이 되물었다.

“신선함이요?”

“아무래도 고열에서 가공한 제품이다 보니, 뭔가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죠.”

호야에 대해 상담하자 연구를 맡은 스콧도 걱정을 금치 못했다.

“흠, 쉽게 볼 일은 아닌데요. 아무리 몸에 좋아도. 먹지 않으면 비싸게 유기농으로 만들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이러면 곤란한데. 다른 고양이들도 먹여 봤는데 기존 사료에 비교해 선호도가 높지 않아요.”

실제로 사료를 살필 때 가격과 기호성이 선택을 좌우한다. 하지만 기호성을 높인다면서 첨가물을 많이 넣는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잠시 생각하던 강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동결건조방식을 쓰는 게 어떨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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